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가 자녀가 나중에 부모의 뜻과 달리 행동할 것이 걱정되기도 한다. 선뜻 재산을 이전했다가 성급한 결정이었다며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을 잘 활용하면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아들(A씨)이 아버지(B씨)의 어린 시절 유모였던 90대 노인을 내쫓으려다 패소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다. 유모는 과거 투병 중인 모친을 대신해 B씨 5남매를 키우며 가사 노동을 했다. 나이가 들어 그 집에서 나온 뒤에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나갔고, 치매마저 앓게 됐다. 안타깝게 여긴 B씨는 친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봐준 유모의 거처로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오피스텔은 아들 A씨 명의로 매수했는데, 유모가 사망하면 그에게 물려줄 목적이었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이 전문직으로 일해 모은 돈과 대출금으로 오피스텔을 구입했다며, 유모에게 오피스텔을 비워주고 지금까지 밀린 임차료 약 1300만 원도 지급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B씨는 유모 편에 서서 아들의 청구에 대응하는 한편, 아들 명의로 오피스텔이 등기된 것이 무효라며 별도로 소를 제기해 아들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시켰다. 기른 정을 소중히 여긴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준 불효자였던 셈이다.
부양의무와 증여
민법에 따르면 증여자에 대해 수증자(증여를 받은 자)가 부양의무가 있는 경우에, 그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자는 그 증여를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자녀의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다. 부모와 증여계약을 체결한 자녀가 그 후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부모는 그러한 사정을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만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경우,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미 자녀 앞으로 부동산 등기를 이전했다면 증여를 해제하더라도 다시 등기를 돌려받을 수 없다. 결국 해당 증여의 해제는 그 증여계약의 이행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만 실효성이 있다.
불화를 예방하는 효도계약서 작성
이러한 난점을 방지하고 불화를 좀 더 현명하게 예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이른바 ‘효도계약서’ 작성이다. ‘효도계약’이라는 용어가 민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에 증여계약을 체결하면서, 자녀에게 효도나 충실한 부양 등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조건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흔히 ‘효도계약’이라 일컫는다.
case 01
C씨는 아들에게 2층 주택과 대지를 증여하면서 ‘본건 증여를 받은 부담으로 부모님과 동거하며 부모님을 충실히 부양한다. 아들은 위 부담사항 불이행을 이유로 한 아버지의 계약 해제 기타 조치에 관해 일체의 이의나 청구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 해제의 경우 즉시 원상회복 의무를 이행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증여를 받은 뒤 아들은 급속하게 건강이 악화된 어머니를 간병하지 않고, 주택 1층에 살면서도 2층에 사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오지 않는 등 부모를 충실하게 부양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부담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증여계약을 해제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아들에게 증여받은 재산을 원상회복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부담을 이행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증여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증여를 받는 상대방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우는 증여계약은, 계약 당사자 일방이 아무 대가 없이 상대방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전형적인 증여계약과 달리 쌍무계약(당사자 쌍방 모두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그에 따라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도 계약 해제의 영향이 미친다. 즉 증여를 원인으로 이전등기까지 마친 부동산이더라도 그 부동산 등기를 원상회복시킬 수 있다.
효도계약서의 양식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취지가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부담을 명확하게 하려는 것인 만큼, 증여재산의 내용 외에도 자녀가 이행하려는 부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명시하는 것이 좋다. 부모에게 지원할 생활비 액수, 부모의 주거 및 생활환경에 대한 지원 방법, 정서적인 교류 방법과 횟수 등을 들 수 있겠다.
효도와 기여분
자녀의 효도는 상속재산 분할 사건에서 긍정적으로 고려되기도 한다. 민법은 기여분 제도를 두고 있다. 기여분 제도란 공동상속인 중에 상당한 기간 동거·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한 자가 있을 때 그에 대해 상속재산 분할 시 유리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기여분에 관하여 당사자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당사자가 기여분 청구를 해 그에 관한 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부양의무가 있기 때문에 통상적인 수준의 동거·간호만으로는 법원에서 기여분이 인정되기 어렵다. 기여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여 행위가 있어야 한다. 자녀의 동거·간호를 이유로 대법원에서 기여분을 인정한 사례로는, 딸이 결혼 후에도 거의 30년간 계속 어머니를 자신이 소유한 주택에서 모시면서 부양하고, 노약해진 어머니를 대신해 약 20년간 어머니의 유일한 수입원인 임대주택 수리 등 관리를 계속하였으며, 치료비를 계속 지불하면서 간호를 계속한 사안을 들 수 있다. 대법원은 다른 자녀들과 달리 해당 자녀가 어머니와 장기간 동거하면서 단순히 생계유지 수준을 넘어 어머니를 자신과 동등한 생활수준으로 부양함으로써,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부양의무 이행의 범위를 넘는 특별한 부양을 하였다고 판단했다.
기여분의 인정 여부 및 그 내용은 기여의 시기와 방법, 정도, 전체 상속재산의 규모, 실질적 공평 등 일체의 사정을 고려해 결정된다. 기여분은 통상 일정한 비율(‘상속재산의 %’) 또는 일정한 금액(‘상속재산 중 원’)과 같은 방식으로 정해진다. 기여자의 기여분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전체 상속재산에서 기여분을 제외한 재산을 기준으로 법정상속분에 맞추어 나눈 다음 기여자에게 다시 기여분을 가산한 몫을 주도록 분할함으로써 결국 기여자에게 더 많은 상속재산이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특별한 기여 행위를 한 자녀라면 상속재산 분할 과정에서 기여분을 적극적으로 청구할 필요가 있고, 증빙자료 역시 충분히 확보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당사자의 기여분 청구가 없다면, 설령 법원이 특별한 기여 행위가 있다고 보는 사안이더라도 직권으로 기여분을 정할 수 없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효도와 유류분반환청구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에서도 자녀의 효도가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유류분 제도란 상속인들이 일정 비율의 상속재산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을 유류분으로 산정해 유류분을 침해하는 범위 내에서는 그 재산 처분의 효력을 부인함으로써 법정상속인에게 일정 비율의 재산을 보장해준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유언으로 재산을 처분하여 증여나 유증을 받은 사람이 특별수익을 얻더라도 일정 부분 돌려받을 수 있다. 유류분 제도는 유족의 생존권 보호, 상속인의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보장 등을 목적으로 한다.
case 02
G씨는 어머니가 72세 남짓이던 1984년부터 107세 나이로 사망한 2018년까지 34년간 동거하며 부양했다. 그동안 어머니의 치료비로 약 1억 2000만 원을 지출했고, 아버지가 보증채무를 부담하여 어머니와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자신의 돈으로 보증채무를 대신 변제했다. 반면 다른 자녀들은 그동안 어머니와의 교류를 사실상 단절했고,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G씨가 아버지의 채무를 대신 갚아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하면서 2005년에 피고에게 토지를 증여했다. 어머니 사망 후 다른 자녀들은 G씨를 상대로 토지 증여에 대해 유류분반환을 청구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 증여를 받은 상속인이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했거나 피상속인의 재산 유지 또는 증가에 특별히 기여했고, 피상속인의 생전 증여에 상속인의 위와 같은 특별한 부양 내지 기여에 대한 대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생전 증여를 특별수익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피고의 어머니에 대한 기여나 부양의 정도, 어머니의 의사 등을 고려할 때 어머니가 피고에게 토지를 증여한 것은 피고의 특별한 기여나 부양에 대한 대가의 의미로 봄이 타당하는 의미다.
오히려 증여받은 토지를 유류분반환 대상으로 취급한다면 공동상속인 사이의 실질적인 형평을 해치는 결과가 된다고 하면서 토지 지분의 반환을 청구한 원고들에 대해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따라서 특별한 기여나 부양을 한 자녀라면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증여 등이 반환청구 대상인 특별수익에서 애초에 제외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효도는 여러 유형의 상속분쟁에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효도와 상속·증여는 가족 간의 사랑과 법이 교차하는 영역이다. 물론 효도나 가족 간의 사랑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이 이처럼 부양의무를 불이행하는 자녀에게 불이익을 주고, 부모님을 잘 부양하는 자녀에게 유리한 효과를 부여하는 것을 보면, 법은 ‘최소한의 도덕’으로서 가족 사이의 자연적 애정 관계, 원만한 유대 관계를 나름대로 세심하게 지지해주고 있는 셈이다.
“1000만 노인시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2024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퇴직이나 은퇴를 앞둔 시니어에게 2024년은 인생 2막을 여는 시점으로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한 책 ‘시니어 트렌드 2024’가 출판됐다. 인생 2막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고(Re Design), 우선순위를 재조정(Re Priority)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시니어 트렌드 2024’의 저자인 최학희는 시니어라이프와 비즈니스를 20년 넘게 연구해온 해당 분야 전문가이다. 시니어라이프비즈니스 대표이자 실버산업전문가포럼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그는 객관적인 트렌드 지표와 함께 37명의 전문가 기고를 통해 초고령사회 위기를 함께 헤쳐나갈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인 최학희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고, 상속 분쟁이 이혼소송보다 많아진 세상에서는 트렌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현학적 표현으로 점철된 명백한 사실(Facts)의 나열보다는 더 나은 시니어 삶을 향한 ‘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니어 트렌드 2024’에서는 소음 거리가 되는 트렌드가 아니라, 대안을 찾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책은 ‘글로벌 트렌드, 비즈니스 트렌드, 라이프 스타일’의 세 축을 중심으로 한다. 먼저 ‘글로벌 트렌드’ 관점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고령화 동향을 알아본다. 예를 들어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커뮤니티 케어 등의 제도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으로 보이나, 고령 선진국인 일본이나 유럽 등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21년 기준으로 약 35,000달러에 달하는 등 삶의 질이 높아지자, 북유럽 등의 고령 정책에 눈과 귀를 돌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두번째 ‘비즈니스 트렌드’는 시니어의 삶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다. 매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고령친화산업 제조·서비스업 실태조사 및 분석 보고서를 실시한다. 이에 따르면 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으로 약 72조 원에 달한다. 크게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구분하며, 제조업은 ‘용품, 의약품, 의료기기, 식품, 화장품’을, 서비스업은 ‘요양, 여가, 주거, 급식, 금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법과 제도에서 고령친화산업으로 정의한 기준에서 시니어 비즈니스의 현주소를 파악해본다.
세번째 ‘라이프 스타일’ 관점은 시니어의 삶을 제대로 조망해볼 수 있는 접근법이다. 사람의 삶의 조건을 3가지 축으로만 정의한다면, ‘현금 흐름(돈), 건강, 시간’을 들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현금 흐름의 구조는 변한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수입원이 되는 근로소득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며, 노인의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공공기관에서 개인에게 지급하는 소득인 공적이전소득은 약 26%에 달한다. OECD 평균 공적이전소득 약 57%에는 훨씬 밑도는 수준이지만, 노인의 삶에 있어 근로소득의 비중을 일부 대체하는 소득원이다.
건강에 있어서도 기대수명은 평균 83세인 반면, 건강수명은 73세다. 건강수명은 기대여명에서 질병과 사고 등으로 인해 일찍 죽거나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이 손상된 기간을 빼고 계산한 건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기간이다.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니어의 삶은 더욱 근원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상대적으로 일이 줄어들고, 남은 시간을 여가로 대체하는 것이다. 또한, 이전에 비해 줄어든 이동 동선과 사회관계망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줄어든 현금 흐름과 건강 자산을 가지고, 시간 자산을 증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움츠러들기 쉽고 외로운 시간으로 채워지기 쉽다. 보다 세밀하게는 ‘개인적 인연, 사회적 인연, 배움, 나눔, 영성, 유산, 평생학습, 디지털 라이프, 정서적 건강, 소통과 공감 등’이 시간 자산을 구축할 영역이다.
저자인 최학희는 “이 책이 퇴직이나 은퇴 후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웃과 ‘어울리며’ 나아가 ‘자기다움’을 만드는데 단서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말했다.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 부회장인 박영란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융복합적인 콘텐츠가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개인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생활은 물론 시니어 비즈니스의 성공을 추구하는 기업의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디지털 세상을 만나면서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엔딩 노트 및 유언장 작성이 가능해졌으며, 온라인 추모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그 결과 장례, 상속, 추모 등의 복잡했던 과정이 간편해졌고,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들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웰다잉 준비
40여 년 동안 샐러리맨으로 열심히 일한 남성은 정년퇴임을 앞두고 위암 5기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슬퍼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만의 엔딩 노트를 준비한다.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 이야기다. 2011년 일본에서 영화가 개봉된 뒤 엔딩 노트 작성 열풍이 불었다.
이후 국내에서도 웰다잉 문화가 확산되면서 엔딩 노트가 주목받았다. 엔딩 노트는 스스로 삶의 이력과 추억, 사후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기록하는 노트를 말한다. 일종의 자서전이나 유언장 같은 역할을 한다.
이제 엔딩 노트를 스마트폰에서 작성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대형 GA(법인보험대리점)인 iFA(아이에프에이)는 ‘엔딩 노트’ 앱을 개발해 지난해 출시했다. ‘엔딩 노트’는 유족의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주도적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다.
앱을 이용하면 장례식부터 장지까지 개성을 담은 맞춤형 장례식을 계획할 수 있다. 또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상속 플랜을 수립, 유족 간의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증여세 절세 방안도 마련할 수 있다. 아울러 유언장과 버킷리스트 작성, 장기 기증, 유품 정리, 디지털 클린, 펫 신탁 등을 계획할 수 있다.
유언장 작성을 주요 서비스로 제공하는 앱도 있다. 웰빙·웰다잉 전문 IT 기업 ‘웰브’가 론칭한 모바일 디지털 유언 서비스 ‘남김’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곳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와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남김’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유언을 모바일로 남길 수 있는 서비스다. 블록체인 등 4차 산업 기술 및 데이터 암호화 기술 등을 적용해 안전한 보관이 가능하다. 자필 유언이나 증서는 수정이 어려운데, ‘남김’에서는 이 점이 보완된다. 또한 상속, 법률, 장례 등 유언 작성 과정에서 고민이 생기면 전문가의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온라인으로 작성한 유언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유언 방식은 5가지(자필, 녹음, 구수증서, 비밀증서, 공정증서)다. 이에 따라 온라인에서 하는 유언 작성은 실제를 위한 연습 정도로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직접 하기는 어렵지만 사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겨두기에 적합한 창구로 보인다.
온라인 추모 서비스 활발
새로운 추모 문화로 주목받고 있는 ‘온라인 추모 서비스’란 비대면으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중심 디지털 생활이 가속화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추모 공간은 생전에 자신이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웰다잉과 관련이 깊다. 생전에 미리 공간을 만들어놓으면, 멀리 떨어져 지내 왕래가 어려운 친지의 부담 또한 줄어든다. 이에 따라 웰다잉을 생각하는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온라인 추모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상조회사에서는 온라인 추모 서비스 상품을 내놓고 있다. 업계에서 가장 먼저 온라인 추모관을 도입한 곳은 ‘보람상조’다. 보람상조 가입 고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고인의 생전 모습과 장례식 과정을 추모 앨범과 영상에 담아 제작한 ‘추모관’, 고인에게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작성할 수 있는 ‘하늘 편지’, 추억을 온라인 공간에 보관하는 ‘추억 보관함’으로 구성된다.
또 다른 상조회사 ‘프리드라이프’는 지난해 QR 코드를 활용한 ‘디지털 추모관’ 서비스를 출시했다. 디지털 추모관은 고인의 위패와 추모 액자에 새겨진 QR 코드를 스캔하면 입장할 수 있다. 물론 웹사이트 주소를 입력해도 접속 가능하다. 추모관 안에는 고인의 약력, 가족 사항, 묘역 위치 정보 등이 소개돼 있으며, 추모글 게시판을 통해 유족들과 위로의 마음도 나눌 수 있다. 또한 프리드라이프는 AI 추모 서비스 ‘리메모리’도 선보였다.
그동안 온라인 추모는 웹사이트에서만 가능했는데, 플랫폼을 통해서도 할 수 있게 됐다. 교원그룹은 최근 장례 종합 플랫폼 ‘첫장’을 출시했다. 전국 장례식장 및 장지 검색, 가격비교, 부고 문자 발송 등 장례 준비 단계부터 온라인 추모 서비스까지 장례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조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와 이목을 끌고 있다.
정부도 온라인 추모 서비스 지원에 적극적이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한국장례문화진흥원과 함께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내에 비대면으로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온라인 추모 서비스’를 공개했다. 해외동포를 포함해 국민 누구나 어디서든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2020년 첫 도입부터 현재까지 매해 이용 실적은 20만 명을 넘는다. 기존 2차원(2D)에서 올해 3차원(3D) 온라인 추모관이 개발되면서 완성도가 높아졌다.
한 장례업계 관계자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온라인 추모 서비스는 앞으로 더욱 확대,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아직은 정식 추모가 아니라고 생각해 어색해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온라인 환경에 익숙해진 고령층이 늘어나면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디지털 세상에서 고인과 소통한 이들도 많아지면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아버지의 유언을 동영상으로 찍은 아들이 해당 유언이 무효가 되자 이를 사인증여로 보아야 한다며 다른 상속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증여의 효력조차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망인의 진정한 뜻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동영상 내용대로 재산을 분할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본인의 의사대로 사후에 상속재산이 분할되기를 원한다면 제대로 된 유언이 필요하다. 법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의 5가지 유언 방식을 정하고 있고, 법이 정한 요건을 따르지 않은 유언은 무효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기재하고 날인하는 방식이다.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혼자서 할 수 있고 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비교적 간단해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그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 사후에 유언의 효력을 다투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사례 1
A씨는 컴퓨터를 이용해 유언을 작성했다. 유언 전문, 연월일, 주소, 성명까지 모두 워드 파일로 작성한 후 출력했고, 자신이 작성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출력물 성명 옆에 서명 및 날인을 했다.
▶ 요즘 젊은 세대는 손 글씨보다 컴퓨터 타이핑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그러나 컴퓨터나 타자기 또는 점자기를 이용해 작성한 유언은 자필증서로 인정되지 않으며 무효다. 대필도 마찬가지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유언자가 유언서의 전문,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써야 한다. 유언자의 필적을 통해 개인적인 특성이 증명될 수 있다면 유언서의 위조나 변조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유언자가 직접 자필로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례 2
B씨는 유언 전문, 연월일, 성명을 자서한 후 날인까지 마쳤다. 본인이 작성했다는 것을 더 분명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성명 옆에 추가로 주민등록번호까지 기재했다.
▶ B씨는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 바로 ‘주소’다. 민법은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주소를 자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소를 자서하지 않으면 무효가 되며, 유언자를 특정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XX동에서’와 같이 동까지만 기재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대법원은 망인이 유언장에 주소로 ‘암사동에서’라고만 기재한 사안에서, 이는 다른 주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춘 생활의 근거되는 곳을 기재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위 유언장은 주소의 자서가 누락돼 무효라고 봤다. 자서가 필요한 주소는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따라 등록된 곳일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서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추어야 한다. 유언자의 주소는 반드시 유언 전문과 동일한 지편에 기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유언증서로서의 일체성이 인정되는 이상 그 전문을 담은 봉투에 기재하더라도 무방하다.
사례 3
C씨는 유언 전문, 주소, 날짜, 성명을 자서한 후 날인까지 마쳤다. 그런데 날짜를 기재할 때 ‘2023년 12월’이라고 작성 연월만 기재하고 정확한 작성일은 기재하지 않았다.
▶ 유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판단할 때 유언의 시기가 기준이 되고, 복수의 유언이 있으며 전후의 유언이 저촉되는 경우 저촉된 부분의 전 유언은 철회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유언을 작성한 연월일은 유언자가 직접 자필로 기재해야 한다. 연월일은 그 작성일을 특정할 수 있게 기재해야 하므로, 위 사례와 같이 연월만 기재하고 일의 기재가 없는 경우는 무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성일을 ‘특정할 수 있는지’이기 때문에 회갑일, 만 70세 생일과 같은 식으로 기재하는 것은 유효하다.
녹음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는 방식이다. 이는 녹음기만 있으면 문자를 모르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녹음된 것이 잘못하여 소멸되거나 변조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사례 4
D씨는 장남을 증인으로 참석시켜 장남에게는 건물을, 차남에게는 나머지 재산을 상속하겠다는 취지의 유언 내용과 성명, 연월일을 구술하였고, 증인으로 참여한 장남은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였다.
▶ 녹음에 의한 유언을 할 때 아무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증인의 참여를 요구하는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에 공통된다. 법은 증인의 결격사유를 정하고 있는데, ① 미성년자, ②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 ③ 유언으로 이익을 받을 사람, 그의 배우자와 직계혈족은 증인이 될 수 없다. 증인결격자가 증인으로 참여한 유언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무효다. 위 사례에서 증인으로 참여한 장남은 유언으로 이익을 받을 사람에 해당하기 때문에 증인결격자다. 따라서 D씨의 유언은 효력이 없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 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하는 방식이다. 이는 문자를 모르더라도 말을 할 수 있다면 가능하고, 공증인이 유언에 관여하기 때문에 방식의 불비도 생길 우려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공증인이 증서를 보관하기 때문에 분실이나 은닉, 변조 등이 이루어질 위험도 적다. 다만 비용이 들며, 유언 내용이 누설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사례 5
E씨는 지병이 악화돼 입원 중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그러자 장남은 공증인에게 E씨가 운영하는 법인의 주식은 자신에게, 부동산은 차남에게 유증한다는 내용의 유언공정증서 작성을 의뢰했다. 초안을 작성한 공증인은 E씨가 입원 중인 병실에 증인 2인을 참석시킨 후 작성한 유언증서 초안의 내용을 불러주면서 위 내용대로 유증하겠냐고 묻자 E씨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장남이 E씨의 팔목을 붙잡아주어 유언증서의 유언자란에 서명하게 했다.
▶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 중 하나는 유언자가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언 취지의 구수란 유언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실질적으로 구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진술이 필요한지 획일적으로 정하긴 어렵지만, 공정증서에 기재된 내용과 같은 유언의 구수가 있었는지에 관해 강력한 의심이 들 경우 그 유언은 무효라고 할 것이다. 대법원은 사례 5와 같이 공증인이 반혼수 상태로 병원에 입원 중인 유언자에게 유언 취지를 묻자 유언자가 고개를 끄덕거린 것만으로는 구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작성된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필자의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단단히 봉해 날인하고, 이를 2인 이상의 면전에 제출하여 자기의 유언서임을 표시한 후 그 봉서 표면에 제출 연월일을 기재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하는 방식이다. 위 유언봉서는 그 표면에 기재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 서기에게 제출하여 그 봉인상에 확정일자인을 받아야 한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의 존재는 명확히 하면서 그 내용은 생전에 비밀로 하고 싶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나, 분실·훼손의 위험이 있고 확정일자인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과 달리 유언자가 증서 그 자체를 자서할 필요는 없고, 작성 연월일, 주소의 기재 역시 필요 없다. 다만 증서의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도 자서하고 날인을 함으로써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방식에 적합한 때에는, 비밀증서로서의 방식에 흠결이 있는 경우에도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으로서 효력이 있는 것으로 본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인해 앞의 4가지 방식에 의해 유언할 수 없는 경우, 유언자가 2인 이상의 참여 증인 중 1인에게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그 구수를 받은 자가 이를 필기 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 날인하는 방식이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그 증인 또는 이해관계인이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내에 법원에 그 검인을 신청해야 한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급박한 경우에 간단한 형식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보통의 방식에 의한 유언이 가능한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민법은 유언의 방식과 요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 무효가 되므로, 의미 있는 유언을 남기기 위해서는 위 요건을 꼭 숙지하고 유언해야 한다. 내 자식들은 내가 남긴 재산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어설픈 유언은 남은 자들의 더 큰 분쟁을 유발할 뿐이다.
신탁을 처음 들어본 사람은 없지만, 개념·원리를 깨우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 정도로 여기곤 한다. 고령화와 함께 구원투수로 떠오른 신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신탁 안내서를 시작한다.
Q 신탁이란 무엇인가?
신탁은 자산관리부터 증여·상속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반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유연한’ 금융 서비스다. 통상적으로 Trust, 즉 신뢰·신임 관계를 바탕으로 ‘믿고 맡기는’ 상품으로 설명된다. 신관식 세무사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신탁을 하면 소유권이 수탁자(신탁회사)로 바뀝니다. 부동산을 신탁하면 명의가 바뀌고, 주식을 신탁하면 주주명부의 이름이 바뀌는 식입니다. 즉,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굉장히 특이하죠? 이때 위탁자(고객)는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관리, 처분, 운용, 개발 등의 임무를 수탁자에게 부여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요. 맡고 맡긴다기보다 대신 해주라고 임무를 주는 겁니다.”
Q 고령화와 함께 주목받는 이유는?
신탁은 자익신탁과 타익신탁으로 나뉜다. 위탁자와 수익자가 같으면 자익신탁, 다르면 타익신탁이다. 원래 신탁은 투자 목적인 자익신탁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고령 인구가 늘면서 생전쪾사후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자익신탁과 함께 타익신탁도 주목받고 있다.
신 세무사가 종전 질문에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라고 한 부분에 집중해보면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다면 맡길 이유가 없죠. 그런데 나이 들면서 몸이나 정신 건강이 온전치 않아 자산관리를 못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표적으로 치매가 그렇죠. 내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더라도 생전에 나를 위해 자산이 쓰이도록 할 수 있고, 사망했을 때는 누구에게 남은 자산을 줄 것인지까지 설정할 수 있는 상품이 바로 신탁입니다.”
Q 신탁은 초고액 자산가들의 전유물 아닌가?
대표적인 오해다. 신 세무사는 “거의 대부분의 고객이 일반 서민”이라며 펄쩍 뛰었다. 서울 소재 30평형대 똘똘한 아파트 한 채만 소유해도 신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 시내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가 거의 10억 원이 넘습니다. 즉 상속세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상속세뿐만 아닙니다.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고려해야 할 게 많습니다. 그럼 자연히 상속 시점을 고민하게 됩니다. VIP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Q 유언대용신탁, 유언장과 무엇이 다른가?
가장 대표적인 신탁인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이 없더라도 신탁계약 형태로 재산 상속이 가능하도록 한 상품이다. 생전에는 본인을 수익자로 정하고 사후에는 생전에 정한 수익자에게 신탁재산을 안정적으로 승계하는 것이 목적이다. 상속은 위탁자 사망 사실과 수익자의 신분만 확인되면 바로 이뤄진다.
유언장으로 뜻을 전할 수도 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신 세무사의 설명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자와 상속인 모두 아는 행위입니다. 유언장은 상속인이 모르지요. 유언공증을 받아도 상속인은 모릅니다. 또 유언공증은 가장 마지막에 한 것이 효력을 가집니다. 도난, 분실, 훼손 우려도 있고요. 상속인들끼리 분쟁이 잦은 이유입니다. 그러다 보니 유언장으로는 작성한 사람의 의도대로 상속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Q 유언대용신탁을 하면 유류분에서 제외되나?
유류분은 상속인이 법률상 반드시 취득하도록 보장되어 있는 상속재산의 가액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상속분을 법으로 정했다는 뜻이다. 2020년 1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1심 판결에서 유언대용신탁을 유류분에서 제외한다고 판시한 적이 있긴 하나, 아직 그 관계를 속단하긴 이르다. 신 세무사는 판단 기준에 따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 했다. “그 판결은 센세이션했습니다. 법조계는 물론 신탁업계에서도 신탁재산을 유류분에 포함한다는 의견이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는 법리적으로 매듭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류분에서 제외될 수 있다, 없다를 아무도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Q 고령화와 함께 주목받는 신탁 상품은?
대표적으로 상조신탁, 봉안신탁 등이 있다. 상조신탁은 자산관리를 맡긴 금액 중 일부를 사망했을 때 상조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지정하는 상품이고, 봉안신탁은 사후를 대비해 스스로 장지를 준비하는 상품이다. 펫신탁도 있다. 반려동물 주인이 사망 등의 이유로 반려동물과 함께하지 못할 경우, 반려동물을 돌봐줄 새로운 주인에게 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Q 신탁, 어떤 사람에게 적합한가?
신 세무사는 먼저 독신을 꼽았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상속을 본인 뜻대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했다. 쉽게 말해 ‘예쁜 자식에게 좀 더 주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뜻이다. 자녀에게 장애가 있거나, 자산관리 능력이 부족해 동기부여가 필요한 경우도 신탁이 제격이라 했다. 끝으로 가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했다. “일종의 리스크 헤지(위험회피) 차원입니다. 각각의 재산을, 누가, 소유권 100%로 가져가는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위탁자 사망 후에도 각 상속인이 문제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73세 남현명 씨는 남다른 기억력과 판단력으로 자신의 재산을 꼼꼼히 관리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금 납부를 깜빡하거나 중요한 계약을 놓치는 등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남현명 씨는 자녀로 남일명, 남이명, 남삼명 씨를 두고 있는데, 그중 미혼인 남삼명 씨와 함께 살고 있다. 한편 첫째 남일명 씨는 본인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토지를 함께 개발하고자 남현명 씨의 토지 명의를 확인하다 땅이 매각된 상태인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남일명 씨는 최근 동생 남삼명 씨가 사업을 시작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남현명 씨의 토지 매각 대금이 남삼명 씨의 사업자금으로 쓰인 것이라고 강력히 의심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성년후견 판단 요건과 절차
남현명 씨와 자녀들의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일어난다. 판단 능력이 떨어진 부모의 재산을 자식이 흥청망청 써버리고 다른 자식들이 알았을 때는 이미 손쓰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필요한 법적 수단은 바로 성년후견 제도다. 우리 민법은 사무처리 능력 결여의 정도에 따라 후견의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한다.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에게 성년후견(민법 제9조)을,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인을 대상으로는 한정후견(민법 제12조)을, 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 후견 또는 특정 사무 후견이 필요한 성인에게는 특정후견(민법 제14조의2)이라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성년후견 제도를 이용하려면 가정법원의 성년후견 개시 결정이 필요하다. 우선 피후견인에게 후견을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지 판단한다. 2018년 판단 사례로는 뇌병변(외상성 뇌손상, 뇌경색, 뇌출혈, 뇌성마비, 뇌종양 등 뇌의 병변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 포함)으로 인한 경우가 41.6%로 가장 많았고, 치매(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알코올중독성 치매 포함) 26%, 발달장애 22.2%, 정신장애 7.4%, 기타 정신적 제약 2.8% 순이었다.
이러한 정신적 제약이 있는지는 법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병원 등에서의 감정을 원칙으로 하지만, 의사의 진단서(‘회복 가능성 없음’ 등의 문구가 들어가야 함) 등으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충분한 자료가 있으면 비용과 소요시간을 고려해 감정 절차를 생략하기도 한다. 감정이 필요한 경우, 필요에 따라 제출된 진료기록으로 진행하는 진료기록 감정과, 본인이 직접 의사를 만나 감정하는 신체 감정으로 진행된다. 신체 감정은 감정병원을 외래로 방문하여 감정을 실시하는 외래감정(의사가 직접 자택이나 요양원을 방문하는 출장감정도 있을 수 있음)과, 입원을 요하는 입원감정(보통 10~14일)으로 나뉜다.
친족 등 관계인들 사이에 다툼이 있는 경우, 신상보호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출장조사가 필요한 경우, 후견 청구의 실질적인 동기가 된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이나 문제점을 파악해야 할 경우, 후견인 후보자가 지나치게 연로하거나 연소한 경우 등일 때는 보통 가사조사가 실시된다. 가사조사에서는 사건 본인의 정신적 제약 여부와 정도, 사건 본인 생활 내력, 현재 생활 상태, 재산 내역 및 관리 상황, 후견 개시 여부 및 후견인 선정에 대한 상속인들의 의견 등을 조사한다. 본인이 의식불명이나 사지마비 등으로 법정에 출석하여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는 심문 절차도 가진다. 후견 신청 절차는 다툼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6개월 이내부터 1년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성년후견인 선정 과정
성년후견 개시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등이 이를 청구해야 한다. 다만 성년후견인은 반드시 친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후견인 선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후견인의 의사지만, 성년후견 신청 단계에서는 피후견인의 의사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피후견인이 예전에 작성해둔 문서나 영상, 친족들의 진술 등 정신적인 제약 상태에 이르기 전에 표시한 의사를 토대로 피후견인의 보호와 복리에 가장 적합한 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참고한다.
친족후견은 대체로 피후견인과 친밀감 및 심리적 유대감이 높고 피후견인의 필요를 잘 알고 있으므로 신상 보호에 용이하지만, 후견인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하고 횡령이나 학대 같은 비행이 나타나는 사례도 있다. 친족 간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전문가 후견인을 선정하기도 하는데, 주로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공익법인 등이 있다. 전문가 후견인은 친족 사이의 다툼에 휘말리지 않고 공정하게 사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비용이 비교적 높으며 실질적인 욕구를 잘 알지 못할 우려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후견인이 복수로 선임돼 신상에 관해서는 현재 본인을 돌보고 있는 친족에게, 재산에 관해서는 전문가 후견인에게 각각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기도 한다.
재산을 마음대로 쓸까 불안하다면
성년후견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견인은 선임 후 2개월 내에 재산을 조사해 목록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기 전까지는 재산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또한 법원은 필요한 경우 후견인을 감독할 성년후견감독인을 선임하는데, 이러한 후견감독인은 후견인의 사무를 감독한다. 후견인의 가족은 감독인이 될 수 없으므로 주로 전문가가 후견감독인으로 선정된다. 후견인은 정기적으로 후견감독인에게 후견사무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출, 부동산 매매, 소송 등 중요한 행위는 별도로 후견감독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성년후견인이 피성년후견인과 부동산 거래를 하는 등 서로 이해가 대립되는 행위를 하면 후견감독인이 피성년후견인을 대리한다. 예컨대 성년후견인이 돈을 빌리면서 피성년후견인을 연대보증인으로 하거나, 피성년후견인 소유의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하고자 하는 경우다. 성년후견인이 제3자에 대한 채무에 관해 성년후견인과 피성년후견인의 공유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특히 피성년후견인이 거주하는 부동산에 대해서 매도, 임대, 저당권 설정, 임대차 해지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
재산뿐 아니라 성년후견이 개시되면 혹시 멋대로 정신병원 등에 격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수 있다. 성년후견이 개시되더라도 자신의 신상(의료 행위에 대한 동의, 사회복지 서비스 선택 또는 결정, 거주 이전에 관한 결정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하고, 그럴 수 없다면 성년후견인이 본인을 대신해 동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치료 등의 목적으로 정신병원이나 그 밖의 다른 장소에 격리하려는 경우, 의료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하거나 상당한 장애를 입을 위험이 있을 때에 그 의료 행위를 성년후견인이 동의하기 위해서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의할 점은 법원이 피성년후견인(위 사례의 남현명 씨)으로 심판한 자는 원칙적으로 행위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그가 한 법률 행위를 성년후견인이 취소할 수 있다. 다만 법원은 피성년후견인에게 남아 있을 능력을 고려해 일정액 이하까지 성년후견인의 법률 행위 취소를 제한할 수 있다. 즉 취소할 수 없는 피성년후견인의 법률 행위 범위를 법원이 정해줄 수 있다. 법원이 따로 정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그 대가가 과도하지 않은 피성년후견인의 법률 행위는 성년후견인이 취소할 수 없다. 더불어 법원은 후견인의 청구에 의해 피후견인의 재산 상태를 참작하여 피후견인의 재산 중에서 상당한 보수를 후견인에게 수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민법 제955조). 다만 일반적으로 친족후견인에게는 전문가 후견인과 달리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맘대로 후견인을 정할 수 있을까?
남현명 씨의 입장에서는 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데 남은 가족들끼리 후견 신청을 하네 마네, 누가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 등 다투는 것이 보기 좋을 리 없다. 건강이 온전할 때는 집안 어른으로 호통이라도 치겠지만, 이미 판단 능력이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 것도 불편할 테다. 그렇다고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는데, 법원이 정하는 사람 말고 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미리 후견인을 정할 수는 없는 걸까? 나를 어떻게 돌봐줄지, 내 자신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미리 정해두고 싶다.
민법은 임의후견이라는 제도를 두어, 당사자 간 사적인 후견계약을 통해 후견 개시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 가정법원에 임의후견인을 감독할 임의후견감독인의 선임을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임의후견인 등이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후견계약서의 내용 역시 미리 상세히 정해둘 수 있다. 이러한 후견계약은 신중한 결정과 사후 분쟁의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공정증서로 체결해야 하고, 후견계약 체결 후 정정 또는 변경하는 경우에도 공정증서에 의하여야 한다.
후견계약에는 후견인이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비용이 필요한 경우 어떤 재산을 순서대로 처분하여 비용을 충당할지(재산 처분 순서), 후견 개시 이후 몇 년간 특정 재산은 처분 금지, 후견 개시하는 경우 요양원 입소 여부(원하는 요양원 지정), 후견 개시 이후 후견인의 피후견인 방문 횟수(월 몇 회 이상), 의료 행위가 필요한 경우 원하는 병원 지정, 연명치료 여부 등도 기재할 수 있다.
임의후견인의 자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으므로 친족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임의후견인이 될 수 있다. 다만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해야만 임의후견의 효력이 발생한다.
초고령화 사회가 다가오면서 성년후견 제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아직 성년후견 제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초고령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취지에 맞게, 성년후견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지 약 8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상속 고민은 속 시원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재산을 물려줄 사람의 거주지에 따라 법이 다르고, 밟아야 할 절차가 복잡해서다. 아직 법률에서 전 세계 통합이 이루어지기는 요원한 듯하다. 그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법률 가이드에서는 사례를 통해 해외 상속의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보자.
case
“미국에 사는 54세의 Kate Song(케이트 송)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미국 유학 시절 어머니를 만나 결혼해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분은 이a혼하셨고,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셨어요. 새 사람과 재혼해 아들도 태어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더군요. 그 아들은 저의 이복동생인 셈이죠. 행복하게 지내시는 듯했지만 최근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아가 애도의 뜻을 표하고 계모, 이복동생과 상속에 관한 대화를 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꽤 많은 부동산 자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다 평소 관계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합리적인 분배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들은 받을 재산이 거의 없다며 아버지의 재산 내역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례는 피상속인의 이혼 전 자녀(전혼 자녀) 케이트 송 씨와 이혼 후 재혼 배우자, 그 자녀 간 상속 분쟁이 일어난 경우다. 통상적으로 이들은 모두 상속인으로 인정되지만, 전혼 자녀는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돼 있지 않으면 재산을 받을 수 없다. 더불어 전혼 자녀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과정이 더욱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선 국제적인 문제에서는 어느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경우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법령에 따라 상속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국제사법상 상속은 고인의 국적에 따라 관할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상속 절차를 진행하는 방법
계모와 이복동생이 아버지의 자세한 재산 내역을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겠지만 다행히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상속인이라면 고인의 자산과 채무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24에서 제공하는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기관 방문 없이 국세(체납, 고지세액), 금융거래(은행 잔고, 대출, 보험, 주식 등), 국민연금(가입 여부), 지방세(체납, 고지세액), 자동차(소유 정보), 토지(소유 내역) 등 사망자의 재산 상황을 볼 수 있다. 서류를 구비하면 대리 신청도 가능하다.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처리 기한은 7~20일가량 소요된다. 금융감독원 역시 상속인이 사망자의 금융 재산 및 채무를 확인할 때 각 금융회사를 일일이 방문해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고자 상속인 금융거래정보 조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알고 보니 케이트 송 씨의 아버지는 서울시 강남구의 아파트 세 채와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계모, 이복동생과 협의를 마친 끝에 부동산을 한 채씩 나눠 갖기로 했다. 예금은 상속세 납부에 보태기로 한다. 그러나 송 씨는 한국에 자주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성인이 된 후 한국 방문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터라 아는 친척이나 친구도 없다.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할까?
고인의 재산을 내 명의로 가져오려면, 기본적으로 상속인 전원의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합의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외국인이나 해외 거주자는 인감이 등록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 다소 복잡하지만 방법은 있다.
먼저 예금 수령 또는 상속등기에 동의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본인 확인을 위한 서명확인서와 신원 확인을 위한 거주확인서를 작성하고 여권 사본을 첨부한다. 대신 인감증명서를 대체할 공식 절차가 필요하다. ‘아포스티유’ 또는 ‘영사인증’을 받아야 한다. 본인이 거주하는 국가가 미국, 일본 등 아포스티유 협약국이면 아포스티유를, 그렇지 않으면 영사인증(캐나다, 중국 등)을 받으면 된다.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영사관을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영문으로 작성된 서류는 모두 한글 번역문을 제출해야 하지만, 한국에 직접 가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이러한 서류는 반드시 원본이어야 하니 ‘Fedex’ 등 국제우편을 통해 원본을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
준비해야 할 서류 적지 않아
케이트 송 씨가 어릴 적 아버지가 한국에 출생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가족관계증명서의 이름은 송지연이었다. 미국 여권 속 Kate Song이라는 이름과 다른데, 가족관계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한국 내 등록된 이름이 따로 있다면 동일인확인서(Certification of Identity)라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여권 이름과 한국 이름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동일인확인서도 함께 준비해 아포스티유 또는 영사인증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아파트를 내 명의로 상속등기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할 ‘부동산등기용 등록번호’ 부여까지 신청하면 상속등기를 포함한 모든 상속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외국인 토지취득신고까지 마치고, 상속세를 납부하면 마무리된다. 드디어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치고, Kate Song 명의로 압구정 아파트 한 채의 등기를 끝냈다.
그러나 케이트 송 씨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매각 대금을 미국으로 가져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임대료를 받기도 번거롭고, 임차인 관리 또한 쉽지 않아서다. 한국에 그대로 두자니 아깝고, 해외 거주자 신분으로는 투자도 녹록지 않다. 게다가 세금 신고와 납부의 번거로움까지. 이럴 때는 중개업체를 통해 부동산을 처분한다. 매수인과 계약을 마친 후에는 매도인 인감증명서가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아포스티유 또는 영사인증을 통해 처분위임장과 관련 서류를 준비하면 된다.
한국 비거주자인 케이트 송 씨는 상속으로 취득한 부동산의 매각 대금을 외국으로 송금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를 상속받았다는 점을 입증할 관련 서류를 외국환은행에 제출해야 한다.(외국환거래규정 제9-43조) 거주자란 상속 개시일 현재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를 둔 개인을 말하며, 비거주자는 거주자가 아닌 자를 말한다. 주소는 거주 기간, 직업, 국내에서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국내 소재 자산의 유무 등 생활 관계의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판단한다. 상속세, 양도소득세를 모두 완납했다는 세금완납증명서 역시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외국인이 국내 재산을 상속받기 위한 절차는 결코 쉽지 않다. (여담이지만 쓰면서도 몇 번이나 주제를 바꾸어야 하나 고민이 컸다. 이를 모두 읽었다면 자녀들에게 문해력을 자랑할 법하다.) 실제로 진행할 때는 서류에 문제가 있을 경우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니, ‘가능하다’는 점만 알고 반드시 경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한다.
최근 재벌가의 이혼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의 이혼 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됐다. 노 관장은 약 5조 원대로 알려진 최 회장의 재산 중 1조 3600억 원대에 달하는 SK 주식 50%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요구했다. 세기의 이혼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1심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665억 원의 현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일반인이 보기엔 어마어마한 금액이겠으나, 노 관장이 청구한 금액과는 큰 차이가 있다.
2020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간 이혼 소송에서도 임 전 고문은 이 사장 소유 재산 약 2조 5000억 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조 2000억 원대를 재산분할로 청구했지만, 대법원은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14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혼 소송 재산분할 규모는 13억 3000만 원으로 기대(?)보다는 적은 금액이었다.
통상적으로 부부의 동거 기간이 길수록 재산분할의 비율은 높아진다. 재산분할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가 고려되므로, 위와 같은 통념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위 판결들에 나온 재산분할 비율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재벌가의 이혼 소송은 어떤 점이 다른 것일까?
재산분할의 비율
본래 재산분할은 부부가 결혼 생활 중 함께 모은 재산을 분배하고 청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분할 비율은 공동재산의 형성, 유지에 대한 기여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 결정한다. 경제적 약자에 해당하는 배우자에 대한 배려, 미성년 자녀의 양육 등 부양적 요소도 포함된다. 대부분의 판결에서는 ‘재산의 형성 유지에 대한 기여 정도, 혼인 생활의 과정 및 기간, 당사자의 나이·직업·경력·경제력·소득, 혼인 파탄의 경위 등’을 분할 비율 산정의 일반적인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
이 밖에 △일방 배우자(어느 한쪽)의 부모나 형제자매 등이 재산적 도움을 준 점 △일방 배우자가 혼인 전 재산을 취득한 점 △일방 배우자가 재산을 낭비하거나 손실을 입힌 점 △상대방 배우자의 전혼 자녀를 양육하거나 부모를 봉양한 점 △일방 배우자가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나 입증 부족 등으로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되지 못한 점 △분할 대상 재산의 규모 등이 있다. 한쪽의 사업 영위, 부동산 투자, 전문직 종사 등으로 형성된 재산이 많다면 동거 기간이 길어도 상대방의 재산분할 비율이 대폭 낮아질 수 있다. 공동재산을 형성하는 데 한 사람의 기여가 월등하다고 볼 수 있어서다.
액수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 특유재산
일방 배우자의 재산 규모가 너무나 큰 재벌가는 이혼 소송 때 ‘특유재산’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재벌가의 이혼 사건들은 공통적으로 특유재산을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인정할지가 관건이었다. 특유재산은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생활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말한다. 특유재산은 결혼 생활 중 쌍방의 협력에 의해 취득한 공동재산과 달리 분할 대상에 속하지 않는다.
다만 부부의 일방이 혼인 생활 중 단독 명의로 취득하였으나 재산 형성에 배우자의 협력이 있다면 형식적으로는 특유재산이지만 실질적 공유재산으로 여겨 분할 대상이 된다. 결혼 생활을 하며 취득한 주거용 아파트는 누구의 명의라 하더라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 식이다. 법정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혼인 생활과 관련 없이 외부적 요인(상속, 증여 등)으로 취득한 재산의 경우다. 재벌가 재산의 대부분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주식 혹은 물려받은 재산에 기초하여 취득한 주식인 경우가 많아 특유재산에 속할 때가 많다. 즉 아래 그림에서 3, 4번 재산은 당연히 분할 대상이 된다. 파탄 이후 순수하게 일방 당사자의 노력으로 취득한 5번은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 쟁점이 되는 것은 1번과 2번, 특유재산이다.
최태원 회장 역시 SK 주식은 선친인 故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서 증여•상속받아 형성한 재산이므로 재산분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소영 관장은 SK 주식이 최태원 회장의 경제활동과 그에 대한 본인의 내조를 통해 가치를 형성한 재산이기 때문에 특유재산 유지에 협력하였다고 보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기여도는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재산의 취득 시기, 부부의 동거 기간, 다른 부부 공동재산이 충분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부양적 요소가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되는 경우에는 혼인 전에 취득한 재산이나 혼인 중 상속이나 증여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도 상대방 배우자의 기여도를 인정해 특유재산이더라도 분할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오래 살면 반반이다’라는 말도 틀렸다고만은 볼 수 없겠다.
재산분할의 방법
재산분할은 분할 대상 재산을 구분하고 그 가액을 확정한 후 분할 비율, 액수, 방법을 정하게 된다. 이때 법원은 청구 취지에 구속받지 않고 가정의 평화와 사회정의를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심판하도록 한다.(가사소송규칙 제93조 제2항)
노소영 관장은 SK 주식 현물(약 548만 주)의 지급을 재산분할로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주식 자체를 재산분할 대상에서 배제하고 현금으로 줄 것을 명하였다.
최태원 회장의 SK 주식이 만약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면, 경영권의 중대한 변동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재판부의 고심이 깊었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사건 1심 판결은 ‘가사노동 등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사업용 재산을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경영자 내지 소유자와 별개의 인격체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회사나 기타 사업체의 존립과 운영이 부부간의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다. 또한 기타 이해관계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영향을 미치게 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칙적으로 이혼 사건에 대한 판결은 비공개이므로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구체적인 내용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접근했다.)
대법원은 분할 대상 재산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분할 비율을 달리 정할 수 없다. 설사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 해도 판결에서 재산별 기여도를 나누어 SK 주식은 1:9, 나머지 재산은 5:5로 비율을 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경영권 변동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9년 1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의 이혼 사건을 참고할 만하다. 제프 베이조스는 결혼 25년 만에 이혼을 선언했고, 그해 4월 아내 매켄지가 제시한 조건에 합의하며 두 사람은 정식 이혼했다. 베이조스는 이혼 이후 보유하고 있던 아마존 지분 16.1% 중 4%(356억 달러, 당시 약 40조 7000억 원)를 매켄지에게 넘겼다. 다만 해당 지분의 의결권은 베이조스에게 그대로 귀속되고, 추후 매켄지가 이를 양도하더라도 의결권이 계속 베이조스에게 귀속된다(포괄적 의결권 위임계약)는 조건에 양수인이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베이조스가 거주하는 워싱턴주의 법에 따르면 12년 이상 결혼을 지속하면 이혼 때 무조건 5:5로 재산을 나눠야 한다. 이 경우 베이조스가 가진 아마존 주식이 반토막 나 경영권 보호에 위기가 올 수 있기에, 막대한 조건의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라 생각된다.
포괄적 의결권 위임계약이 우리 상법상 가능한지는 불분명하다. 이러한 내용을 판결에서 정하기도 어려운 탓에(베이조스도 이 때문에 합의 이혼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재벌가의 이혼 판결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기는 어렵다.
현재의 재산분할 실무에 따르면 재벌가의 이혼 사건은 재산 규모가 막대하다는 점, 재산 형성 기반이 선대로부터 상속 또는 증여받은 것에 기인한다는 점, 재산의 대부분이 주식 형태를 띤다는 점 등으로 해당 주식이 특유재산인지 아닌지에 따라 ‘모 아니면 도’ 식의 재산분할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급격히 변화해온 만큼 여성의 지위, 가사노동의 가치, 맞벌이 가정의 증가, 고령화, 재혼과 사실혼 증가 등 이혼 사건에서 고려해야 할 점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사회 현실에 맞는 공평하고 합리적인 재산분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부별산제(각각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하고, 특유재산은 부부가 각자 관리하는 제도)와 재산분할제도의 조화로운 해석 문제, 재산분할제도에서의 부양적 요소에 대한 비중, 재산분할에 관련한 일반 국민의 법의식 변화에 따라 꾸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계산법
한동안 모 가수를 둘러싼 부모와 형제 사이 분쟁이 전 국민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언론을 연일 장식하더니 최근에 또 다른 모 방송인과 부모, 형과 형수 사이 고소고발이 텔레비전은 물론 인터넷,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으면 가족 면면 사생활과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부모와 자식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부부가 소송과 맞소송을 벌이는 건 계산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베푼 은혜는 100인데 상대가 갚은 것은 10도 안 된다거나, 오히려 부모, 자식, 배우자 등골을 빼먹은 마이너스라고 여기는 데서 갈등이 촉발됩니다. 급기야 봉합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말 그대로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 되물으며 마음 미장공 열한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한 부엌에서 은혜와 원수가 난다
“한 부엌에서 은혜와 원수가 나는 것이니, 나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원수가 되며 은혜가 될 수 있는가.” 성철 스님 생전 법문을 좀 더 깊이 새겨보겠습니다. 나를 그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아내, 남편, 자식, 형제, 친구, 선후배가 은혜도 되고 원수도 되기 쉽습니다. 같은 부엌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큰동서와 작은동서가 둘도 없이 각별한 사이가 되는가 하면, 그 각별함이 도리어 화근으로 작용해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나한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반드시 나를 위해 이롭게 행동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반대로 생면부지 남보다 더 헐뜯고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베푼 은혜가 거꾸로 원수가 되는 이야기를 드라마를 통해 살펴볼까요.
‘가족끼리 왜 이래’ 속 불효 소송
“그저 잘 되라 잘 되라만 가르쳤지 인생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해서 이 못난 애비가 뒤늦게나마 뉘우치고 자식들한테 회초리를 들까 하는데 자식들의 머리는 너무 굵었고 저는 초라하여 손에 힘이 없습니다, 판사님. 그러니 법으로 그 회초리에 힘을 좀 실어주십시오. 제 인생의 마지막 회초리입니다. 이 회초리가 우리 자식들 인생에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부디 한 번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2014년 방영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KBS-2TV)에서 주인공 차순봉(유동근 분)이 삼남매에게 불효 소송을 제기하며 자신의 입장을 판사에게 호소합니다. 원고와 피고가 된 부모와 자식. 합의할 때까지 조정을 계속하겠다는 판사. 마침내 세 남매 월급 가압류 해지와 소송 취하 약속에 대한 선행 조건을 내걸고 합의에 도달합니다. ‘아버지의 소원판’이란 제목으로 적은 합의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엔 암 선고를 받아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삶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긴 합니다.
① 애들(삼남매)이랑 밥 같이 먹기
② 애들이랑 하루에 한 번씩 전화 통화로 안부 묻기
③ 우리 딸 짝 찾아주기
④ 우리 큰아들 내외랑 3개월 동안함께 살아보기
⑤ 우리 막내아들한테 한 달에 백만 원씩 용돈 받기
⑥ 고고장 가기
⑦ 가족 노래자랑
소송을 제기한 아버지 역을 연기한 배우 유동근은 그해 연말 KBS에서 연기 대상을 받았습니다.
“저를 뒤돌아보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극 중에서 두 아들이 젊은 날의 저였습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이제라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 돼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그게 너무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너무 죄송합니다. 지난날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제 아이들이 잘 되게끔 지켜봐 주십시오.”
은혜는 빨리, 원수는 아주 느리게
고마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옅어지다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뭐 그까짓 것쯤이야 하고 가벼이 생각하거나, 그만큼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처음 마음을 눙치기도 합니다. 변명할 구실을 찾느니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물질이 여의치 않으면 말로라도 반드시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에 원수는 최대한 천천히,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그 당시엔 분하고 화가 치밀지만 3초 심호흡, 3분 명상, 30분 산책, 이렇게 3시간, 3일 원수 갚을 일을 늦춥니다. 그러다 보면 태산만큼 억울했던 가슴 아픔도, 밤새 바늘로 찌르던 두통도 어느덧 잦아들고 큰 문제가 사소한 일로 줄어들기도 합니다.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피 묻은 칼을 피로 씻어내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피는 맑은 물로 씻어야 깨끗해지듯 원수 갚으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사라지도록, 원수가 누구였는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나를 정화해야 합니다.
품기가 쉬울까 버리기가 쉬울까 : 후한 광무제의 도량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가 왕망을 무찌른 뒤 왕망이 살던 궁에서 편지 한 뭉텅이를 발견했습니다. 각 군현의 관원과 지방 유지들이 왕망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왕망을 칭송하고 유수를 헐뜯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로 살생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유수는 관원과 호족들을 불러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편지를 불살랐습니다. 이를 ‘분소밀신’(焚燒密信)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를 묻는 막료에게 과거의 은혜와 원한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고 불살랐다고 답했습니다. 광무제의 도량은 앞으로 적이 될 수도 있었던 이들을 감복시킬 만큼 넓었나 봅니다. ‘채근담’(菜根譚) 전집 136장에도 “은혜와 원수는 지나치게 밝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어 배반하게 된다”(恩仇不可太明 明則人起携貳之志)는 말로 일침을 가합니다.
은혜와 원수는 한 끗 차이
같은 책 108장에는 원수와 은혜의 본질과 대처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원망은 덕으로 인하여 나타나니
남들이 나에게 덕이 있다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덕과 원망 모두 잊게 하느니만
못하고,
원수는 은혜로부터 생겨나니
남들이 나의 은혜를 알게
하기보다는
은혜와 원수를 모두 없게
하느니만 못하다.”
(怨因德彰 故使人德我
不若德怨之兩忘
仇因恩立 故使人知恩
不若恩仇之俱泯
-‘채근담’(菜根譚) 前集 108장
은혜와 원수는 마주 댄 양 손바닥처럼 딱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친밀하고 소중한 사람한테 은혜와 덕을 베푸는데, 내가 베푼 덕이나 은혜를 못 알아보고 몰라줄 때,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억울함이나 원망이 생겨서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 오히려 원수가 되고 척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불효 소송을 하는 것도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베푼 은혜와 덕에 값을 쳐서 돌려받으려는 셈법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원수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줬다는 것조차 잊고 다정하게 지내시렵니까.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에 “사람들에게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곳에서든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사람들과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난다면 회피하기 어렵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주변에 둘지, 나를 해치고 망하게 하려는 사람을 곁에 둘지 참 답은 쉬운데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 못 하는 게 더 큰 어리석음이지 싶습니다.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시 한 편 함께 나누면서 마음 미장공 열한 번째 이야기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늘 셈법
삶은
가까이 보면
공정하지 않고
부당하고
억울한 일투성입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빈틈없이 공정합니다.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봄이 가고 겨울이 온 적이 있던가요.
가을이 가고 여름이 온 적이
있던가요.
더하기 빼기는
짧은 순간엔 맞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밑졌으니
더 받아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방정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가지고
더 많이 누리는 게
얼마나 축복과 호사인 줄 모릅니다.
하늘 같은 가호로
보살핌을 받았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저지른 큰 잘못이
아주 조그만 손해로 청구되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내가 준 상처가
당신이 준 상처보다
훨씬 크고 깊었음을
너무 뒤늦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 ‘혼자 술 마시는 여자’ 182~184쪽
불효자 방지법 : 은혜와 원수를 대하는 자세
부모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부모를 외면한 때 은혜를 저버리는 망은(忘恩) 행위에 대해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지만 몇 년째 국회 발의에 머무른 채 논란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앞선 드라마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부양료 청구 소송(불효 소송)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송을 제기한 부모가 거의 패소한다는 게 현실입니다. 2020년 98세 아버지가 셋째 아들을 상대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20년 전 증여한 선산을 돌려받으려고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처럼, 불효자 방지법은 자식이 부모 재산을 받고 효도나 부양을 하지 않은 채 ‘먹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입법이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편 지난해 법무부가 사전 상속재산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과 가능성, 여파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공방은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앞서 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독일 민법 제530조는 ‘증여자에게 중대한 배은 행위를 저질러 비난을 받을 경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 민법 제953조도 ‘증여를 받은 자가 학대·모욕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을 거절하는 경우 증여 철회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56세 강 씨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병상 생활을 10년 가까이 지속했다. 강 씨는 아버지의 병간호와 병원비 부담은 물론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지원했다. 반면 8살 터울의 남동생은 직장 구조조정이나 수험생인 딸 핑계를 대며 자식의 도리를 저버리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긴 재산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안 동생은 그제야 “나도 자식이니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속재산을 요구했다.
상속 분쟁은 피를 나눈 가족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지독한 분쟁 중 하나다. 특히 ‘불공평한 분배에 대한 불만’으로 가족 간 다툼이 일어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부모 사망 후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형제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가 제기된 건수는 2020년 기준 2095건에 달한다. 부모님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평생 헌신한 자녀와 본인의 편의를 위해 형제에게 부담을 지우고 선택적 효도를 한 또 다른 자녀. 두 사람이 상속재산을 똑같이 갖는 것이 과연 공평한 일일까?
특별한 부양일수록 달라지는 상속
피상속인(사망자)이 유언으로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분을 특정하지 않고 상속인들 사이에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민법에 따라 분배되는 비율을 법정상속분이라고 한다. 이때 같은 순위의 상속인이 여러 명이라면 그 상속분은 동일한 것으로 한다.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직계비속이나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할 때 배우자의 상속분은 5할을 가산한다.
그러나 강 씨처럼 자신이 다른 형제 자매보다 부모를 더 많이 봉양해 재산을 동등하게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기여분 제도를 고려해볼 수 있다. 기여분은 △공동상속인 중 상당한 기간을 동거, 간호, 그 밖의 방법으로 특별히 부양하거나 △피상속인 재산의 유지·증자에 일정 수준 이상 이바지했을 경우 법원이 상속분 산정에 이를 고려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단 기여분은 공동상속인에 국한하므로 사실혼에 의한 배우자처럼 공동상속인이 아닌 사람은 기여분의 권리자가 되지 못한다.
기여분을 인정받기 위한 특별한 부양은 법률상 부양의무 범위 내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양의무의 성격상 1차적 부양의무자인 배우자에게는 더 높은 정도의 동거 및 부양의무를 부담시키기 때문에 기여분을 인정받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년 자녀는 부모에 대해 2차적 부양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장기간 그 부모에게 생계유지의 수준을 넘는, 혹은 자신과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부양을 했다면 기여분이 인정될 수 있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사업에 무급으로 종사한 첫째 아들, 공동상속인 모두가 부양 능력이 있는데도 모든 부양료를 지출한 동생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여분 결정 방법
기여분은 상속재산분할 과정에서 대두되는데, 통상 상속재산분할 심판청구와 동시에 청구하거나 반심판으로 청구하게 된다. 공동상속인 중에서 ‘특별한’ 기여(또는 부양)를 한 사람의 수고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가는 먼저 공동상속인들이 협의해 결정한다. 협의 시기는 피상속인 사망 후 최소한 상속재산을 분할하기 전까지다. 협의가 되지 않거나 할 수 없을 때는 기여자가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기여분 청구를 하면 기여의 시기, 방법 및 정도, 부양 비용의 부담 주체, 상속재산의 범위 등을 토대로 정해진다.
공동상속인들 간에 기여분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지거나 법원에서 기여분이 인정되면, 전체 상속재산에서 기여자의 몫을 제한 뒤 나머지 부분을 가지고 각자의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들에게 상속재산분할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여 상속인은 총 상속재산에서 자기 기여분을 받는 외에도 기여분이 공제된 상속재산에서 자신의 법정상속분만큼 받게 된다.
기여분 제도는 일부 상속인의 공로를 인정해 재산분할 시 공동상속인 간에 공평성을 더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분쟁이 생기면 가족관계에 금이 가기 쉬우니 사전 증여, 유언장 작성, 녹음,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등을 통해 미리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