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어머니는 딸 앞으로 암보험, 실비보험 등 보험만 4개를 들었다고 했다. 40대 초반의 딸은 유방암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했지만 결국 말기 환자가 됐다. 주치의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고 했는데 모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키운 딸이고, 모녀가 함께 살 집 장만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태껏 죽도록 일만 한 딸이었다. 그리고 딸은 오래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이 발견됐다.
집 근처 병원을 마다하고 서울의 유명한 대형병원을 찾아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담당 교수는 신이었고, 병원은 신전이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녀는 살아남기 위한 갖은 고생 외엔 딱히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삶이었기에 딸의 암진단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대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었다. 그 어떤 가능성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암의 진행은 멈추지 않았고, 임상시험 치료까지 참여했지만, 야속하게도 암세포가 척추까지 퍼져 딸은 하반신 마비가 진행됐다. 그러자 주치의는 치료 중단과 함께 퇴원을 요구했다. 대신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모녀는 떠밀리다시피 퇴원을 했다. 딸은 평생 일해 장만한 그 오래된 아파트에서 눈을 감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고열과 함께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아 놀란 어머니는 119를 불렀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려 하자 딸은 서울의 대형병원 환자라며 당장 그곳으로 가달라고 졸랐다. 응급실에는 4일을 머물렀다. 각종 검사가 다시 진행됐고, 요로감염이라며 항생제 처방과 함께 퇴원이 결정됐다. 하지만 너무 놀란 어머니는 입원을 원했다. 그러나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했고 담당 교수는 끝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대신 젊은 전공의는 왜 호스피스를 가지 않냐 재촉했다. 단 한 번도 거부나 주저함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와서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밀려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그 병원을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모녀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한강변을 달리던 택시 차창 밖으로 다른 병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도저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나 입원을 부탁할 요량으로 택시를 돌려 무작정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었고 때마침 병실도 하나 비어 있어서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그 날의 상황을 나중에 모녀는 신의 인도라고 말했다.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가 안식처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일일이 그곳의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이름을 거론하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내게 풀어냈다. 그곳에서 2주가량을 쉰 후 딸은 다시 그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에게 그곳 호스피스에서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안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집 근처 병원의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면 집에서도 통증 조절과 영양수액 등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렇게 이 모녀는 내게 연결됐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은 딸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딸이 평생을 바쳐 장만한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딸이 우수사원이 되어 받은 상패를 꺼내 어루만지면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왜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그 다음은 어김없이 자신들을 버린 서울의 대형병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용기 있게 의미 있는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일찍 안내했으면 증오가 덜 했을 텐데,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를 제안하며 희망을 주었던 것들조차 이제 모두 원망스럽다고 했다. 여전히 상심과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녀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웠다. 우리 호스피스팀은 후원회의 도움으로 두 모녀에게 바다가 보이는 멋진 호텔에서의 추억 여행을 선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은 그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친척들 가운데 눈을 감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어머니는 그 집이 너무 싫어 팔고 이사를 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대형병원과 담당 교수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서 놓지 않던 딸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암환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병실이 없어 대형병원 옆에는 지방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위해 수일에서 수주 간 머물다 가는 고시원 같은 환자방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대형병원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암환자로 호황을 누리며 수도권에 큰 규모의 분원들을 건립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환자 중에 완치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셀 수 없는 말기환자들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암센터를 키우고 분원도 새로 건립하면서 그 말기환자에게 일말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작은 호스피스 병동을 만드는 것에는 왜 그리 야박한 것일까? 지금도 암환우 카페에 들어가면 말기진단 후 쫓겨나듯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서러움 담긴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갑자기 다큐멘터리 일본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69세의 말기위암환자다. 그는 선거에서 평생 지지했던 여당 대신 처음으로 야당에게 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암 환자에게 따뜻하길”
병원과 의사들은 수술도 함암치료도 하지 않는 말기암환자들에게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부부의 경제활동으로 벌어진 육아 공백을 채우기 위한 우선책이 조부모가 된다면, 자칫 그 책임감과 부담이 노후를 무겁게 짓누를 수 있다. ‘내 아이는 내 손으로, 혹은 가까운 가족이 돌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지역사회가 공동 육아를 실천하고, 주민들의 사회적 고립까지 방지하려 노력하는 독일의 마더센터를 찾아 그 해법을 들어봤다.
현지 취재 독일 뮌헨
한국의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게 된 원인은 하나만 꼽기 힘들다. 일·가정 양립의 불균형, 여성에게 기울어진 육아 책임, 부담스러운 양육비, 그리고 범위 밖의 사람들을 불신하는 분위기가 얽히고설켜 있다. 우리 삶의 여러 문제와 연관돼 있으므로 지엽적인 사고로는 매듭을 쉬이 풀 수 없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마더센터 건립을 저출산 고령화의 해답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국가가 나서서 유관기관을 만들고 인프라를 구축하면 맞벌이 부부의 육아 고민이 해결될 테고, 조부모에게 돌봄 부담이 넘어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한국형 마더센터’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선거 이후 흐지부지됐다.
마더센터는 지역공동체가 함께 꾸려가는 공동 육아 공간이자 세대 결합 공간이다. 독일에서 1980년대 초반 지역 운동을 펼치는 이들을 중심으로 하나둘 설립되기 시작해 독일 전역에 400여 개가 있다. 대부분의 마더센터는 시와 자선단체의 후원으로 운영비와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엄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의 보호자는 한부모, 미혼모, 나이 지긋한 노인 등 다양하다. 엄마와 아이가 혼자 온 할머니와 공용 공간에서 말동무가 되고,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등 돌봄을 제공할 수도 있다. 맞벌이 부부라면 아이를 맡기기 위해 들르고, 서로의 육아 비결을 나누기도 한다. 유아와 아동, 노인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지역민끼리 유대가 형성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기에 ‘패밀리센터’라 부르기도 한다.
공동 공간 넘어 세대 결합 주택 꿈꾼다
“마더센터는 독일이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에 대해 고민한 결과입니다. 공동 공간에서 이웃과 함께 교류하고 상생하며, 돌봄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과 아이에게 안전한 돌봄을 제공합니다. 특별한 교육을 하지 않지만 주변 이웃들과 어울리며 아이들은 자연스레 사회성이 발달하고, 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만난 수잔 베이트 독일 바이에른주 어머니및가족센터연합 전무이사와 수잔 바이엘 바이에른주 뮌헨중앙마더센터장은 마더센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자녀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책 마련과 마더센터 구축을 위해 40년 이상 힘썼다. 현재는 바이에른주 내의 모든 마더센터 관리를 맡고 있다. 더불어 기관과 기관뿐 아니라 전 세계 유관기관과의 국제적 교류를 통해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들은 마더센터를 통해 돌봄 공백의 해소와 지역사회 형성이 실현되고 여러 세대가 섞이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더 큰 미래를 꿈꾸고 있다. 수잔 베이트 전무이사는 그 모델로 ‘세대 결합 주택’을 제시했다.
세대 결합 주택은 패밀리센터를 기본으로 공용 거실과 식당, 게스트룸, 체육시설, 개인 주거 공간이 마련된 복합 공간을 말한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일부를 공유하는 형태다. 수잔 베이트 전무이사는 “우리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부모와 아이, 혹은 노인의 고립”이라며 “세대 결합 주택의 구축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실현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이뤄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수잔 바이엘 센터장은 “독일 또한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확실히 있다”며 “돌봄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치부하면 저출산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결국 조부모에게 아이를 부탁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이 다 함께 선진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대를 위한 지붕, 트루더링 패밀리센터
‘트루더링 패밀리센터’는 바이에른주 뮌헨에 위치하고 있다. 마더센터와 기능은 같지만 ‘한 지붕 아래 모든 세대의 화합’을 운영 방침으로 하고 있어 패밀리센터라 이름 붙였다. 전반적인 시설 관리 및 운영, 각종 프로그램 진행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봉사로 이뤄지고 있다. 센터 내에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 보호자가 머물 수 있는 공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바깥 정원과 놀이터 등이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키가 작은 아이들을 위한 건물 설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실제로 센터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이 공간을 공유하며 가족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이 공동 거실을 뛰어다니고, 엄마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노인들은 체육시설에서 탁구를 하고, 노인을 모시는 가족이 찾아와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해당 센터에는 디지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교육, 아이와 노인이 함께하는 요리 시간, 모든 세대를 위한 회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캐롤라인 비크만 트루더링 패밀리센터장은 “마을을 하나의 집이라고 볼 때 우리 센터는 공동 거실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 공동체 형성과 관련 정책에 관한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며 “노인과 젊은이가 만나 서로의 아이디어를 배울 때 행복해진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황혼육아가 독일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캐롤라인 센터장에 따르면, 독일 노년층은 개인의 사회활동과 삶의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손주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로 임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일주일에 두 번 손주와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한 달에 한 번 나들이를 가는 식이다. 육아의 농도가 짙지 않아 자연히 조부모를 향한 금전적 보상도 없다. 자녀 부부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일정 수당을 받는 한국과 상반되는 양상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해법은 ‘서로의 육아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 핵심이다. 캐롤라인 센터장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 낳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돕고, 동기부여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저출산 고령화는 전 세계 최대의 숙제이기 때문에 다각적으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86세대, 최초에는 ‘386세대’라 불렸던 이들은 잘 알려진 것처럼 30대의 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생이었던 시대에 등장했다. 1990년대 새로운 담론이 요구되던 시기에. 6월 항쟁을 이끌었던 386세대의 등장은 사회 각계에서 ‘수혈’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기성세대와 차별화된 386세대의 활약은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 사회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밟고 서 있던 무대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나.
최근 86세대의 위기가 표면화된 장소는 바로 그들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던 정치권이었다. 지난해 30대인 이준석 대표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면서, 여권의 주류 세력이었던 ‘86그룹’이 다시 조명됐다. 젊은 야당의 당대표와 대비되는 기득권 그룹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는 86그룹의 용퇴론으로 이어지며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여권에서는 86그룹이 당의 주류가 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만큼 세대교체를 위해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과, 당의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면서 젊은 세대의 성장을 막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우리가 원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이지 기득권이 아니다”라며 “동일 지역구 국회의원 연속 3선 초과 금지 조항의 제도화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86세대 용퇴론에 대한 화답으로 평가받는다. 사실상 86세대의 정치 일선에서 활약은 다음 총선에서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재계에서 ‘빠른 퇴장’ 요구받아
86세대는 6월 항쟁에서의 활약과 함께 투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으로도 인정받는다. 한국 경제가 IMF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극복한 동력의 핵심에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재계에서 이들의 그림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지난해 연말 인사를 통해 경영진을 젊은 임원들로 대폭 물갈이했다. 비교적 보수적인 인사 성향으로 평가받던 현대차까지 임원들의 평균 연령을 크게 낮췄다. X세대로 불리는 1970년대생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86세대가 설 곳은 많이 남지 않았다.
4대 그룹의 한 인사는 “이미 일부에서는 1970년대 초반생들도 인사 때 눈치를 보는 시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86세대의 퇴장은 이미 자연스러운 수순이 됐다”고 평가한다.
사회의 주류에서, 주요 무대에서 내려오기를 강요받고 있는 86세대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 속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모든 책임론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한국 사회 만악의 근원
언론을 통해 평가되는 86세대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 선민의식, 과잉 정치화, 낙관적 진보주의 등의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묘사된다. 독재정권을 끝냈다는 승리감에 도취돼 자기 최면에 걸렸고, 이는 선민의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언론의 평가뿐만 아니라 86세대를 겨냥한 서적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86 세대유감’이나 ‘불평등의 세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저자들의 86세대에 대한 평가 역시 냉정하다. 이들이 주류로 성장한 이면에는 ‘자신만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바탕이 됐고, 오히려 불공정함의 상징이 돼 ‘실패를 모르는 혜택을 입은 세대’가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시민사회 운동은 86세대에 의해 일궈졌지만, 이 세대에 의해 문이 닫혔다는 평가도 찾아볼 수 있다.
86은 쉬웠지만 우리는 어렵다
젊은 세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에서의 86세대에 대한 기록은 더욱 처참하다.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와 이로 인한 저출산 문제에서 연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흉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은 “86세대가 노력하면 당연히 얻을 수 있었던 요소들, 연애·결혼·집·가족·노후 안정이 어느 순간 사치재가 되어버렸다”고 강변한다.
자신들에 대한 박한 평가를 86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86세대와 함께 활약했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유튜브 프로그램 ‘알릴레오’를 통해 “386 책임론은 다분히 보수 언론이 지어낸 프레임”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86세대가 물러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86그룹이 주류인 여당과 현 정부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적극적으로 ‘386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유시민 전 이사장은 그의 방송 말미에 386세대가 이런 책임론에 상처받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위로를 전했다.
그는 “후세대가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자. 민주화의 역사 사회적인 운동, 산업화 과정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그런 인생을 산 것이 괜찮았던 것 같다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세월을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도 부모 세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끼리 공감하면서 마무리해도 괜찮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이준석 당 대표의 취임, 뒤이어 이뤄진 국민의힘 당 대변인을 뽑는 토론 배틀이라는 이벤트는 국민의힘에 대한 주목도를 높임과 동시에 변화의 기미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유독 언론에서 주목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김연주 현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이다. 1990년대를 상징하는 아나운서였던 그녀가 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게 정치계라는 점은 신선하기도 했고, 그 자리에 서게 된 사연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6개월 임시직 부대변인으로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 하니까 더 치열하게 일하고 있어요. 많이 어렵지요. 정치란 게 거저먹는 게 아닐뿐더러 정치인들도 엄청 애쓰고 있구나 하는 것, 옆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대선 정국이라 선거 끝날 때까지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치열할 때 당에 들어왔으니 실수하거나 무책임한 처사로 당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되잖아요.”
김연주 부대변인은 논조도 목소리만큼이나 똑 부러진다.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토론 배틀이라는 거친 경쟁의 장을 통해 정치계 한복판에 입문하게 됐을까?
“현 정부를 응원하지 않아도 국민의힘을 지지하기는 힘든 분들이 많았죠. 그러다 이준석 대표가 되면서 ‘저 당이 뭔가 바뀌려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대중 특히 젊은 세대와 수도권 지역 분들이 많이 입당하는 걸 보면서 변화가 느껴졌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죠. 힘을 보태야겠다 싶었어요. 그러던 찰나 토론 배틀을 한다고 해서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인데’ 싶어 지원하게 되었죠.”
사실 김연주 부대변인은 토론 배틀에 임할 때 ‘떨어져도 그만’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사가 나오면서 부담이 부쩍 생겼다.
“위로 올라가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었어요. 같이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라 자신도 없었고 체력도 떨어졌어요. 8강 할 때는 잠도 못 자고 몸 상태도 안 좋았죠. 그래도 늙은 티 내면 안 되니까 아픈 소리도 못 하고.(웃음) 나이 먹어서 새로운 거 한다는 건 힘들어요.”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결국 김연주는 부대변인 자리를 꿰차고야 말았다. 55세 여성으로선 독보적인 일, 마침 정치를 하기에도 이상적인 나이다. 혹시 이 결과는 정치라는 두 번째 인생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 그래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뜻을 두려고 하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웃으며 아니라고 답했다.
“하려면 진작에 했죠. 가진 직업에 만족하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원래 직업에)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다 보니 경력도 끊기고, 그러다 언론과 정치는 통하는 게 있으니 정치 쪽에서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대학원을 그쪽으로 공부했어요. 그러던 중 도전의 기회가 왔고 부대변인이 된 거죠. 저 개인으로선 정치에 뜻이 있어 지원한 건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런 식으로 맞아 들어가긴 했어요. (앞으로) 정치를 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고 안 주어질 수도 있지만요.”
실수 없이 지금의 일을 완수하는 게 목표
김연주는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뽑힌 부대변인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녀가 세운 1호의 기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제가 최연장자란 사실도 안 변할 테고.(웃음) 지금은 야당 대변인이니 여당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죠. 여당을 견제할 일이 많아요. 그래서 논평 쓰는 게 중요하고요. 제가 글솜씨가 좀 돼요.(웃음) 언론에서 인용 보도도 많이 하는 편인데, 내 생각을 나 혼자만 가지는 게 아니라 공유되니 의미 있는 일이죠.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정권 교체니까 꼭 이뤄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선 열심히 해야겠죠. 올해 말까지 임기가 예정되어 있으니 실수 없이 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목표예요.”
그녀는 단편적인 원고 청탁 이외에 책을 출간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토론 배틀에서 함께 경쟁했던 젊은 사람 몇 명과 한국의 미래에 관한 대담을 묶은 대담집을 내볼까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그녀가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나이 듦의 미덕은 뭐든지 덜 하는 것
김 부대변인이 젊은 사람들과 함께 책을 펴내려 한다니, 이제 중장년에 이른 그녀가 바라보는 관계에 대한 시각이 궁금해졌다. 그녀가 생각하는 나이 듦과 관계란 무엇일까.
“저는 사회성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일 관계로 만나는 분들에게 싫은 소리 안 들으려고 노력하며 살았어요. 사람을 만나면서 정말 안 맞는 관계도 있잖아요? 그 사람이나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안 맞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안 되어야겠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며 살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관계는 확장돼도 깊이는 순수하게 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좋을 순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내려놓게 되죠. 편안하게 생각한다고 할까요.”
내려놓는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젊은이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하잖아요? 나이가 들면 생활 영역이 좁아져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죠. 그런 걸 지양해야겠죠. 나이를 먹는다고 너그러워지진 않아요.(웃음) 나부터도 고집이 세졌고, 우리 엄마를 봐도 그렇고. 자기가 가진 게 더 세지죠. 그런데 요즘에는 과거보다 더 오래 살기 때문에 더욱 자제의 미덕을 발휘해야겠죠. 뭐든지 조금 덜 하는 것. 그게 나이 듦의 미덕이 아닐까 싶어요.”
자로 잰 듯한 성격이라 스스로도 피곤해
방송이라는 거친 환경에서 자신만의 주관을 갖고 일하느라 단련됐기 때문일까. 그녀에게선 얼핏 달관한 듯한 면모가 보였다. 어쩌면 그러한 달관이 정치라는 또 다른 거친 세계에 뛰어들게 도와준 방패였을지도 모른다.
“방송 일을 하면서 도전도 많이 하고 성취도 많이 느낀 거 같아요. 고비마다 선택을 많이 받지 않았나….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거 같고. 방송 일은 인기 프로그램부터 종류별, 방송사별로 웬만한 건 다 해봤어요. 물론 유재석 씨처럼 인기가 길게 가고 오래 일할 수 있으면 좋겠죠. 그러나 대중의 선택을 받는 직업은 그럴 수가 없고, 또 저희 때는 여자들은 결혼하면 일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전 아이 엄마일 때도 일했으니 그보다 더 욕심부리면 지나친 거죠.”
대화를 하다 보니 그녀가 우직하고 자신만의 법칙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본 프로페셔널한 MC의 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부분이다.
행복은 반복적이고 소박한 것
완고한 자신만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김 부대변인에게 행복은 거창하고 대단한 정의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행복은 지극히 소박한 개념이다.
“하루하루 똑같은 루틴이지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냈을 때 그게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싶어요. 일상적으로 매일 똑같이 돌아가고 무탈한 것이 행복이죠.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노화를 최대한 늦추는 등 건강관리에 힘쓰고,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이들과 따뜻한 말을 주고받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해요.”
그녀는 자신과 같이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다른 이들을 위해 최근 40년 만에 새 노래를 발표한 그룹 아바에 대해 말했다. 70대가 된 아바는 새 앨범과 함께 공연까지 준비 중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만큼 제2의 인생, 혹은 제2의 도전을 꿈꾸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저를 포함해 어려운 시기를 뚫고 오늘에 이른 5060세대가 이미 중장년에 접어들었는데, 무슨 큰 꿈이나 어마어마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매일을 새롭게 살아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시라는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온 당신, 참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부터 스스로를 칭찬하며 환한 얼굴 한번 지어봅시다’라고요.”
국회의사당이 1975년 9월 1일 준공돼 올해로 46주년을 맞았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사 굴곡을 품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이곳에서 모든 정치가 시작된다. 웅장한 자태로 여의도를 지키고 있는 국회의사당 곳곳에는 여러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당시 국내 자금과 기술, 자재만으로 새 의사당을 짓는 것이 순탄치 않았다. 우선 화강석 4만3000㎡, 대리석 2만7000㎡를 사용한 ‘돌과의 싸움’이 시작이었다. 전국을 뒤져 어렵게 석공 250여 명을 찾아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완공 무렵에는 프로급 석공이 2000여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공사 현장이 석공 양성소였던 셈이다.
의사당 지붕에 돔을 올리는 것도 공사에서 난제 중 하나였다. 돌 자체 무게만 1000톤에 달했으며 이런 거대한 무게를 지붕 위에 올리는 것이 국내 최초였다. 처음에는 의사당 지붕을 평평하게 설계했으나 “권위가 없어 보인다”, “미국 의회처럼 돔을 얹자”,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5층)보다 높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둥근 모양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준공 후에 둥근 돔에는 “전쟁이 나면 국회의사당 돔이 열리고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우스개스러운 이야기도 생겼다.
국회의사당 정문을 나서면 양쪽에 해태상이 있다. 이 해태상은 악귀를 물리치고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계획했다. 그런데 당시에 해당 예산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을 들은 해태제과가 3000만 원을 들여 해태상 암수 한 쌍을 조각해 국회에 기증했다. 또 해태상 10m 아래에는 해태주조가 1974년 출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정통와인 ‘노블와인’ 백포도주 72병을 각각 36병씩 나눠 묻었다. 이 와인들은 100년 뒤인 2075년에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건배주로 사용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2075년이 돼야 이 와인을 보고 맛볼 수 있다.
국회의사당엔 대한민국 건국 이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상징들이 여럿 있다. 의사당 건물을 떠받치는 화강암 재질의 팔각 석주 24개는 24절기를 상징한다. 이는 경회루를 모티프로 했다. 이는 항상 국민을 생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물 내부에도 또다른 의미를 담은 장치가 숨어 있다. 본 회의장에 있는 전등을 모두 세면 365개인데, 국회의원들이 1년 내내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다.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국회도서관은 지하에 각 건물을 잇는 지하 통로가 있다. 이 통로는 지난 1984년 국회도서관을 신축할 때 설치했다. T자형 모양이며 길이가 460m에 이른다. 날씨가 궂을 때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 출입 기자들이 자주 이용한다. 지하도 벽에는 전·현직 의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기증 그림 등이 걸려 있다.
최근 세종시에 국회의사당 분원을 설치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됐던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해 균형 발전을 이루려는 목적이다. 세종시는 "국회 본회의 관문까지 넘게 되면 국회세종의사당 개원과 함께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환영했다.
1975년 국회의사당 준공 당시 정일권 국회의장은 “이 집은 통일을 기원하는 민족의 전망대요, 번영을 약속하는 역사의 증언탑으로 이 시대 우리들의 뜻과 유산을 자손만대에 길이 전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46주년, 정 전 의장의 바람처럼 ‘민족의 전망대’, ‘번영을 약속하는 역사의 증언탑’이 되기 위해서일까, 오늘도 국회는 요란스럽다.
여야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기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연장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국민 고충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해 2차 추가경정예산 심의 기한,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논의했다. 박 의장은 “코로나19 사태가 1년 반 이상 지속되면서 국민들이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국민들께서는 재난지원금과 손실보상금이 하루라도 빨리 나오길 고대하고 있다”며 “이런 뜻을 감안해서 추경이 23일 통과될 수 있도록 논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미 지난 5일, 7월 23일까지 추경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23일 추경이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앞선 합의가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세 자릿수에 머물던 시기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네 자릿수로 치솟고 거리두기 단계도 격상되면서 추경안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여당과 정부 의견부터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여당과 정부가 부랴부랴 확대하기로 합의한 3조5000억 원가량을 소상공인 회복희망자금과 손실보상액으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당은 소상공인 지원 예산은 1조1000억 원 규모의 신용카드 캐시백 예산을 줄이고, 약 2조 원으로 계획한 국채 상환을 철회해 확보하자는 의견이다. 반면 정부는 국채 상환을 포기할 수 없고 다른 사업을 줄여야 한다는 방침이다.
재난지원금도 정부는 형평성과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 전 국민 지급은 부적절하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야당도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우왕좌왕하고 있어 혼란을 더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전 국민 지급을 동의했다가 100분 만에 철회했다. 이후 재난지원금에 대해 ‘추경액이 늘지 않는다면 지급 규모를 늘릴 수 있다’는 조건부 찬성으로 선회했다.
이날 진행된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야당은 코로나19와 무관한 정부 사업에 대해 “시급성이 없다”고 질타하며 대대적인 삭감을 요구했다. 여당과 정부는 원안 유지를 위해 맞섰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추경안 통과가 당초 합의한 23일보다 미뤄질 수 있다고 시사했다. 송 대표는 21일 TV토론회에서 “이번 주나 다음 주 초에 정리될 것”이라며 “소상공인 회복희망자금은 8~9월 안에 지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19일 소상공인 피해 지원금을 최대 2배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희망회복자금을 8월 17일부터 지급한다고 밝혔다.
현재 추경안에 포함된 소상공인 지원은 일회성 지원금인 희망회복자금이 3조2500억 원, 손실보상법에 따라 10월부터 매달 지급하는 손실보상금 3개월(7~9월) 치 6000억 원을 합쳐 3조8500억 원이 예정돼 있었는데,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8월 17일부터 지급하는 희망회복자금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집합금지, 영업제한 등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113만 명에게 100만~900만 원씩 지급할 계획이었다. 당정 협의로 지원 금액과 인원이 늘어난다. 전체 지원 대상 약 113만 명 중 80%인 90만 명가량이 1차 지급 대상이다. 나머지 소상공인에게는 8월 말까지 지급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당정은 올해 7월부터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영업 손실을 보상해 주는 손실보상과 관련해, 법 시행일인 10월 8일 손실보상심의위원회를 열어 보상금 지급까지의 소요기간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방역단계 상향을 반영해 이번 추가경정예산은 물론 내년 예산 등으로 맞춤형 보상을 추진키로 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현재 33조 원 규모인 2차 추경안 증액 여부에 대해서는 "예결위 심사에서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추경 규모와 부문별 금액은 더 논의해야겠지만 더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현금자산이 부족한 시니어들이 올해부터 종부세를 유예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종부세 과세이연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공감대가 확인돼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르면 이달 임시국회에 종부세법 개정안이 통과돼 올해 종부세 부과분부터 과세이연이 시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획재정부와 여당은 고령자 종부세 과세이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상으로는 ‘주택에 실거주 중인 60세 이상 1주택자 중 연소득 3000만 원 이하인 사람’이 유력하다.
정부가 여당에 종부세 납부유예 대상으로 60세 이상이면서 1가구 1주택 실거주자인 사람이 직전 연도 소득이 3000만 원 이하인 경우에 종부세 과세 이연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아무 조건 없이 종부세 납부를 미뤄주는 것이 아니다. 납세담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양도·증여·상속 등 부동산 소유권 변동 시점까지 종부세 납부를 유예한다. 매년 1.2% 이자도 붙는다.
최근 공시가격 상승과 종부세율 인상으로 주택보유자들의 세금 부담이 커졌다. 특히 은퇴한 노인들은 마땅한 소득이 없어 보유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주택을 매각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과세이연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한 제도다.
원래 여당 부동산특별위원회(부동산특위)가 제시한 종부세법 개정안은 ‘상위 2%’에게 종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과세이연은 ‘상위 2%’ 과세안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논의할 미세조정안으로 분류돼 있었다.
과세이연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당도 과세이연을 검토했던 만큼 세부 요건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논의된 상태다.
여당은 종부세 개편안을 이달 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다. 이때 과세이연도 함께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임시국회에 종부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시행령 개정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도 올해 종부세 부과분부터는 과세 유예 제도가 시행될 수 있다.
올해 광복절부터 주말과 겹치는 모든 공휴일에 대체공휴일이 적용되면서 시니어들이 손주를 봐줘야 하는 날이 줄어들 전망이다. 귀여운 손주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휴일이 늘어 시니어들이 자기만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게 됐다.
‘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지금까지는 추석과 설, 어린이날에만 대체공휴일을 적용했다. 앞으로는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성탄절 같은 날까지 확대된다. 공휴일과 겹치는 주말 바로 다음 평일이 대체휴일이다.
법 시행은 내년 1월 1일부터이지만 부칙에 따라 오는 광복절부터 적용된다. 광복절 대체휴일인 8월 16일, 개천절 대체휴일 10월 4일, 한글날 대체휴일 10월 11일, 성탄절 대체휴이ㅐㄹ 12월 27일까지 총 4일의 휴일이 추가되는 셈이다. 평일에 손주를 봤던 시니어들은 법안이 통과되면서 4일을 더 쉴 수 있게 됐다.
한편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야당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은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선의로 포장된 악법이자 시급성을 핑계 삼아 졸속 강행 처리된 법”이라며 “광복절 등 하반기 휴일 나흘은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임시휴일로 처리하고, 국민의 휴일권 보장이라는 취지에 맞게 정부가 제대로 법안을 만들어 다시 제출해달라”고 주장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비국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7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을 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의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여당은 근로기준법에서 관공서 공휴일 적용을 제외한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5차 재난지원금 중 피해계층 맞춤형 지원금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최대 700만원 안팎을 지급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금은 이르면 8월, 일반 국민 지원금은 9월 지급될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까지 네 차례 지원금을 지급한 바 있다.
1차 재난지원금은 지난해 5월 전국민을 대상으로 4인 이상 가구 최대 100만원을 지급했고,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따로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150만원을 지원했다.
이후 2차 재난지원금부터는 소상공인, 고용취약계층 등 피해 계층에만 선별 지급하는 방식을 따랐다. 2차는 100만~200만 원, 3차는 100만~300만 원, 4차는 100만~500만 원씩 지급했다.
이번 5차 재난지원금에는 2∼4차와 같은 소상공인 등 피해계층 맞춤형 지원금, 1차와 같은 방식인 일반 국민 대상 지원금이 모두 포함된다. 피해계층 대상 맞춤형 지원금은 8월 중에, 일반 국민 대상 지원금은 9월 추석 전에 지급할 계획이다.
현재 논의 중인 소상공인 피해 지원금은 1~4차에서 지급했던 것보다 두텁게 지원한다는 원칙으로 지원금 최대 액수 상향을 추진하고 있다. 최대 700만원 가량을 논의하고 있다.
집합금지·제한업종과 코로나19 타격이 큰 위기 업종을 지원한다는 큰 틀은 4차 재난지원금과 비슷하다. 다만 당정은 사각 지대를 줄이기 위해 지원금 지급 업종 분류를 더 세분화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한편 일반 국민 대상 지원금은 범위를 두고 막판 조율 중이다. 여당은 전국민에게, 정부는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정이 줄다리기 끝에 소득 하위 80% 또는 90%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금액은 지난해 전국민 재난지원금과 마찬가지로 4인 이상 가구 기준 100만 원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