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 ‘환승연애’ 등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시기에 실버세대도 사랑한다며 나타난 프로가 바로 HCN 충북방송 ‘홀로탈출’이다. 실버세대의 로맨스가 이렇게 귀엽고 순수하다니! 유튜브 채널 최고 조회수 57만 회를 넘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실버 싱글 남녀의 끝 사랑을 찾아드리고 싶다”고 말하는 조미선·이창수 PD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홀로 된 인생, 다시 한번 로맨스를 꿈꾸다.’ ‘홀로탈출’은 60·70대 싱글 남녀 8명이 짝을 찾는 과정을 담은 러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조미선 PD는 “문득 왜 젊은 사람들의 연애 프로그램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HCN의 주요 시청자층인 실버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면서 “처음 기획 때는 지금보다 출연진 연령대가 높았고, 경로당 미팅 콘셉트를 생각했다. 과거 ‘장수퀴즈’라는 프로그램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미선 PD는 든든한 후배 이창수 PD와 ‘홀로탈출’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두 사람 모두 PD 경력 10년이 넘었지만 예능 프로그램 제작은 처음이다. 섭외, 연출, 편집 뭐 하나 쉽지 않았다. 괜한 도전을 한 것인가 싶었는데, 내부 시사회에서 ‘재밌다’는 반응이 나왔다. 다행이구나 하고 마음을 쓸어내렸더니 이내 대중의 뜨거운 반응이 터졌다. TV 최고 시청률은 5.08%(디지털 케이블 플랫폼 전국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했으며, 유튜브 채널은 3월 현재 총 조회수 780만 회를 향해 간다.
나이 먹어도 똑같아
‘홀로탈출’의 기본 형식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출연진이 실버세대로 달라지니 변화가 확 느껴진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보통 사람들이 짝을 찾는다. 그래서 그들의 로맨스가 친근하게 다가오며 더욱 응원하게 된다. 조미선 PD는 “우리 이웃 같은 사람들을 계속 출연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일부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방송계 진출이라든지 홍보를 목적으로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는데, ‘홀로탈출’은 이 부분에서 자유로워 보인다.
제작진이 출연진 검증에서 철저히 하는 부분이 있다. 면담 후 출연이 결정되면 혼인관계증명서를 무조건 받는다. 싱글임을 검증하는 것. 현재까지 지원자 및 출연자는 이혼 또는 사별을 경험한 돌싱이었으며, 미혼은 없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여성 지원자가 남성에 비해 훨씬 많은 상황이라고 한다.
“남성 싱글들의 성향은 정말 극과 극이라고 하더라고요. 외부 활동을 많이 해서 연인이 있거나, 아니면 외부 활동을 극도로 안 하거나. 그러니까 진짜 싱글은 후자인 경우가 많은데, 주변에서 방송 출연을 권유해도 내켜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즌1 때도 남성 출연자들을 겨우 섭외해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죠. 여성들은 방송국 프로그램이라는 안정감 때문인지 많이 지원하세요. 경쟁률도 매 시즌 높아지고 있죠. 시즌1 때는 2:1, 시즌2 때는 8:1 정도였습니다. 현재는 시즌3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는데, 경쟁률이 벌써 10:1을 넘어섰습니다. 시즌3는 꽃피는 따스한 봄날인 4월에 촬영할 예정이에요. 시즌1, 2는 추울 때와 더울 때 촬영이 진행돼 출연진들을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죄송했거든요. 출연자도 8명 이상 될 수도 있습니다.”
실버세대 싱글들이 원하는 이성상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 조미선·이창수 PD는 “남성들은 여성을 볼 때 외모와 나이(연하)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성들은 남성을 볼 때 경제력 위주로 보는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또한 흥미로운 부분은 여성 출연자들이 ‘평범한’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패셔너블하거나 잘 꾸미는 남성을 보면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홀로탈출’의 여성 출연자는 대부분 ‘너무 튄다’면서 부담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실버세대와 MZ세대의 싱글 남녀가 원하는 이성의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홀로 탈출이 필요한 이유
5070 싱글들이 사랑을 찾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사랑 앞에 매우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이다. 상대방이 좋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굴에 그대로 표가 난다. 또한 오랜만의 데이트에 설레는 모습을 보이지만, 마음만 앞서 말실수를 하기도 한다. 조미선·이창수 PD는 “실버세대의 로맨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젊은 층과 동일한데 좀 더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 출연자들은 살림을 해줄 여성을 찾는 것 같다’는 시청자 반응이 나오기도 했죠. 그분들은 홀로 식사하고 살림하는 것을 어렵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그게 꼭 연애를 해서 이성이 해결해주길 바란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봐요. 잘 포장해서 말할 수도 있는데, 너무 마음속 생각을 그대로 말하다 보니 여성 출연자와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생긴 것 같습니다. 표현이 솔직하고 투박해서 벌어진 문제라는 거죠.”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은 시즌1의 자기소개 시간이 담긴 부분이다. 3월 현재 조회수 57만 회를 넘어섰다. 조미선 PD는 “연애 예능의 자기소개에서 사별 얘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우리 유튜브 채널 시청자의 90%는 50대 이상이다. 출연진이 사별과 외로움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 시청자들이 많이 공감하셨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버세대가 사랑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미선·이창수 PD는 결국 ‘외로움’이라고 얘기했다.
마음은 늙지 않는다
조미선 PD는 “출연진과 인터뷰를 해보면 그동안은 자식 키우느라 정신없었는데 자식들이 결혼 후 혼자 남으니까 적적함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이제는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 나를 찾고, 로맨스를 나눌 친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창수 PD는 시즌1에 출연한 군인 출신 박영수 씨를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로 뽑았다.
“처음엔 정말 밝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속사정을 들어보니 밝은 이면에 아픔을 가진 분이셨죠. 자신에 대해 ‘사별했고, 자식도 없고, 진짜 홀로라서 출연했다’고 덤덤하게 말하시는데, 외로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저희 프로그램의 취지와 정말 맞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촬영할 때도 성격이 좋으셔서 인기남에 등극했고, 네티즌한테도 응원을 많이 받으셨죠. 좋은 짝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미선·이창수 PD는 젊은이들이 사랑하듯이, 실버세대도 똑같이 사랑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두 PD는 앞으로도 이 마음을 잃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홀로 되신 분들이 다시 설레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프로그램이 되고 싶고, 더 나아가 실버세대가 당당하게 사랑하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홀로 탈출하세요!”
‘홀로탈출’ 커플 이충국♥최문숙 인터뷰
“사랑은 남사스러울 게 없다”
‘비주얼 커플’로 통하는 이충국·최문숙 씨는 ‘홀로탈출’ 시즌1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충국 씨는 촬영을 마친 후에도 직진 로맨스를 펼쳤고, 최문숙 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벌써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는 두 사람은 결혼도 계획하고 있다.
‘홀로탈출’ 촬영 당시 이충국 씨는 최문숙 씨의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최문숙 씨는 언제부터 마음이 열렸는지 궁금합니다.
이충국 최문숙 씨가 가장 예쁘기도 했고, 시니어 모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보니 호감이 갔습니다. 사실 저는 여성분들한테 관심을 많이 못 받았어요. 최문숙 씨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내게 호감을 갖도록 많이 노력했죠. 하하.
최문숙 이충국 씨의 첫인상은 날라리 같았고 비호감이었어요.(웃음) 그런데 데이트를 하면서 대화를 나눠보니 생의 아픔이 있는 분이더라고요. 그리고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이 있는 사람 같다고 느꼈죠. 그때부터 어떤 사람인지 탐구했어요. 촬영 후 5~6번 정도 만나서 얘기를 많이 나눈 뒤 교제를 결심했습니다.
교제하면서 느낀 연인의 장점에 대해 칭찬 부탁드립니다.
최문숙 이충국 씨는 굉장히 긍정적인 분이에요. 또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배려심이 깊다는 것도 장점이죠. 요리도 정말 잘해요. 또 시니어 모델로 통하는 점이 많아서 좋아요. 커플이자 동료로서 HCN 광고 촬영을 같이 할 때 편해서 좋았는데, 또 광고를 찍고 싶습니다!(웃음)
결혼 계획도 세우셨나요?
이충국 앞으로 1~2년 안에 혼인신고도 하고, 전원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최문숙 씨가 대전에 살고 있어서 그곳에서 살 가능성이 제일 큰 것 같아요. 혼인신고를 안 하고 동거만 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졸혼도 많이 한다는데, 저는 법적으로 부부가 되어야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가 70세를 바라보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일할지 모르잖아요. 그 안에 빨리 자리를 잡아서 최문숙 씨를 행복하게 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문숙 씨의 자녀분들도 만나보셨나요? 자녀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이충국 저는 방송에서 말했듯이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고 가족이 없죠. 자식을 먼저 보내면 평생 가슴에 안고 산다고 하잖아요. 최문숙 씨의 자식들을 친자식처럼 생각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최문숙 이충국 씨가 굉장히 사려 깊은 분이라 저희 애들이 잘 따르고, 응원을 많이 해줍니다. 손주들도 참 좋아하고요.
60대에 사랑을 찾은 소감과 함께 ‘홀로탈출’ 출연을 추천해주세요.
이충국 주변을 보면 방송 출연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번만 용기를 내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홀로탈출’에 출연하면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최문숙 씨를 만났죠.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고, HCN 방송국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여왕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최문숙 어렸을 때는 첫눈에 반해서 사랑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여러 가지를 따지게 되더라고요. 동년배들에게 이제는 조건만 따지지 말고 나와 공통점이 있고 재밌게 잘살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혼자 지내면 외로운데 같이 밥 먹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세상사도 같이 논하는 사람이 생기면 인생이 참 즐겁답니다. 주변에서 ‘이 나이 먹어 연애하는 게 주책 아닌가, 남사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랑에는 남사스러울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홀로탈출’ 출연도 좋고,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길 바랍니다.
통계청(2022)에 따르면 국내 평균 이혼 연령은 남자 50세, 여자 47세다. 평균 수명 150세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 40~50대에 이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지 않는다면 100년 세월을 독수공방해야 할 노릇이다. 다시 한번 설레는 로맨스를 꿈꾸는 그들. 최근의 통계를 통해 중년의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인식을 알아봤다.
Chapter 1 중년의 재혼(결혼)에 대하여
통계청 조사에서 국내 재혼자의 평균 연령은 남성 51세, 여성 46.8세로, 약 95%가 이혼 후 재혼한 경우였다. 이 중에서 초혼자 없이 남녀 모두 이혼 후 재혼한 경우는 57.7%로 절반을 웃돌았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재혼 성공 커플 통계에 따르면 첫 만남 후 결혼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14.8개월로 1년 남짓이었다.
Chapter 2 중년의 연애에 대하여
마크로밀 엠브레인 리포트에 따르면 4050세대의 약 70%는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연애’는 하겠다는 의향을 보였다. 이들은 최근 유행하는 소개팅 앱을 통한 만남에도 상당수(40.0%) 호의적인 편이었다. 소개팅 상대에 대해서는 성격, 나이, 직업 등을 우선시하여 살폈다. 연인과는 국내 여행과 취미 활동을 원했으며, 스킨십과 성관계에 대한 욕구도 적지 않았다.
자료 출처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신혼부부통계’, ‘사회조사보고서’(2022), 마크로밀 엠브레인 ‘연애관 및 데이트 관련 인식 조사’(2022), 듀오 ‘재혼통계보고서’(2023)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요즘은 SNS 때문에 옛 연인도, 잊힌 애인도 따로 없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물론 근황을 알 수 있을 뿐,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선 여전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면 그게 더 잔인한 일일지도 몰라. 깨끗이 세월 속에 묻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를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헤어진 지도 7년. 그 사이 당신은 애인을 두 번 바꿨더군. 역시 당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 알았어. 더는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니 당신 옆의 여자가 두 명 아니라 스무 명이라 해도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참 쓰라린 일이었어. 그러게 누가 보라고 했냐하면 할 말은 없어. 맞아,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본 것뿐이니까. 난 요즘 양희은의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의 가사를 자주 읊조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당신이 내게 그런 존재였는데, 그렇다면 또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될까. 그날도 나는 당신의 페이스북을 뒤지고 다녔어. 물론 당신이 그리워서였지. 나와 헤어진 후 두 여자가 당신을 스쳐갔고, 이후론 당신 옆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란 걸 알고 있어. 모르지, 공개를 안 했을 뿐 이미 새 여자가 생겼는지도. 울적한 마음, 보고 싶은 마음, 미련이 남은 마음으로 당신의 얼굴을 더듬고 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야!
7년 만에 받은 옛 연인의 온라인 편지
“잘 지내니, 현정?”
얼마나 놀랐는지 내 눈을 의심했지. 페이스북 대화창으로 당신의 메시지가 불쑥 올라왔으니. 무려 7년 만에, 그것도 내가 당신의 흔적을 더듬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마치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꼭 몰래 자위하다 들킨 기분 같았어. 마음으로 당신을 더듬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자위와 다름없지.
7년간 한 번도 소식이 없었던 당신이 마치 바로 옆에서 툭 튀어나온 듯했으니, 손가락이 오그라붙은 것처럼 꼼지락거리기만 할 뿐, 자판을 두드려 대꾸할 엄두를 못 내고 망설이고 있는데….
“너무 격조했구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미처 내가 답할 새도 없이 잠깐 짬을 두고 당신의 다음 글이 올라왔어. 그때부턴 가슴이 방망이질하는 것처럼 두근대기 시작했지. 어쩌면 당신은 내가 잠든 사이에, 그때가 새벽 두시였으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대화창에 올려두고 다음 날 아침에 내가 깨어서 읽기를 바랐는지 몰라. 그런데 나는 눈앞에서 당신의 메시지가 올라오는 것을 빤히 보고 있으면서 답을 하지 않는 것에 미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
“지금 나는 독일에 있어. 유럽 여행을 막 마친 터라 당분간은 독일에 머물 예정이야. 친구가 있거든. 나의 방랑벽이 너를 힘들게 했고 결국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되었지만, 지난 7년간 나의 진정한 연인은 너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어.”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으로 기분이 붕 떠올랐어. 그도 나를 잊지 못하고 있었어! 비록 다른 여자를 두 명이나 만났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나의 가치를 더 높이는 것 같잖아. 비교 우위를 차지한 결과였으니. 물론 순전히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때부터 나는 숨죽여(숨죽일 것까진 없었음에도, 어차피 온라인상이니)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하고 답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아예 접었지.
“현정아,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겠지만, 그래서 비밀이라고 하기엔 궁상스럽지만 내게는 성적인 장애가 있어. 우리가 40대에 만나 5년을 사귀면서 그 관계가 순조로웠을 때가 별로 없었잖아. 내가 너를 떠난 진짜 이유는 사실 그 때문이었어. 자유로운 영혼 운운하며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날 제발 잡지 말라고 했던 것도…. 남자로서 그게 얼마나 수치스럽고 존재 자체를 초라하게 만드는 건지 여자인 너는 모를 거야. 네가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할수록 내 자존심은 더 엉망으로 상했지. 잠자리에서 너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괴로운 게 아니라 나 자신이 한심해서, 그 사실이 더 괴로워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어.
이 대목에서 너는 나를 뻔뻔한 놈이라고 욕할지 몰라. 그래놓고는 다른 여자를 둘씩이나 만난 건 또 뭐냐고. 그것도 안 되는 주제에 말이야. 나를 떠난 구실,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그건 말이야, 현정아. 너를 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믿어줄래? 현정이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는 알아. 너는 나의 시원찮은 성적 능력에도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내 눈치를 보면서까지 나를 배려해주려고 했지. 그런 너를 내가 상처 주고 떠났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어. 그래서 다른 여자들을 만났던 거고.”
날 너무 사랑해서 다른 여자를 만났다니….
여기까지 읽고 있는데 참 기분이 묘하네. 방망이질 치던 가슴이 어느새 가라앉고 싸한 냉기가 흘러드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나를 너무 사랑해서 다른 여자들을 만났다니. 당신 말마따나 그것도 안 되는 주제에?
내 말에 바로 대답이라도 하듯 메세지가 이어졌어.
“솔직히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 성적 능력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반, 테스트 반 심정으로 만났던 건데, 역시 안 되더라고…. 그 여자들과 헤어진 이유도 역시 그거였어. 나는 완전히 성불구자가 되었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이젠. 그래서 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던 건데 그나마 젊어서 벌어놓은 돈이 있어서 지금까지 가능했던 건데 돈도 언젠가는 떨어지겠지.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연락을 하는 거냐고?
얼마 전에 어머니한테서 네 소식을 들었거든. 어느새 50 중반이 된 네가 여전히 독신으로 지내고 있고, 나에 대한 감정도 식지 않은 것 같다고 어머니가 그러시더군. 어머니는 너에게 부탁을 했다지? 제발 내 마음 좀 잡아달라고. 한 군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어머니도 참 염치없는 분이야. 자기 자식 살리자고 남의 귀한 딸자식한테 그런 말을 하셨으니. 그런데 말이야, 현정아.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말 네가 나를 좀 잡아주었으면 해. 그래서 오늘 이렇게 용기를 내어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는 거고. 현정아, 우리는 다른 연인들처럼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을 거야. 남녀 관계에 플라토닉 러브란 건 다 헛소리인 것도 알아. 산전수전 겪으며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가 나이 들고 병들어 더는 잠자리를 할 수 없게 된 경우와는 또 다르다는 것도 알아, 우리 관계는. 그러니 내가 네 옆에 얼씬거리는 자체가 못나고 죄 짓는 거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야. 그런데도 말이야. 나는 이제 너무 지쳤어. 네 품으로 돌아가 네 품에서 쉬고 싶어.”
육체관계 없는 사랑을 택하다
여기까지 당신은 내게 말을 걸어왔지. 당신의 메시지를 받은 지 3일이 흘러가고 있어. ‘읽음’ 표시가 되어 있으니 안 읽은 것처럼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답신을 하지도 못하고 있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했는지) 그건 당신과 나, 심지어 당신 어머니까지 알고 계시지만, 지금 내 복잡한 마음의 정체가 뭔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야.
육체관계만을 두고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육체관계가 없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원론적인 물음을 비롯해서 마음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해. 당신의 성이 불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야. 당신이 떠나고 그렇게 그리워했던 세월이 갑자기 퇴색되는 기분도 들고, 내가 사랑했던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혼란도 느껴. 당신이 이렇게 나오니 우리 관계에서 내가 갑이 된 것 같은, 그래서 이제는 내가 주도권을 쥔 것 같은 치사한 승리감도 없지 않아 있어. 그러고 나니 갑자기 시시해지는 기분도 들고, 구태여 지금 와서 내가 왜 당신을 다시 만나야 하나 하는 현실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내 나이가 50대 중반인 거 알지? 당신을 그리워하며 보낸 세월이 갑자기 억울해지기도 해.
결국 이렇게 돌아올 거면서 그냥 함께 있었더라면 7년 세월이나마 까먹지 않았을 거 아니야. 까놓고 말해서 어차피 잠자리는 신통치 않았더라도 마음이나마 서로 오순도순 의지하고 살았을 거 아니냔 말이야. 그래 바로 그거야, 복잡했던 내 마음의 정체가. 헤어져 가슴앓이하던 7년 세월이 아까워서라는 걸. 그러니 당신, 7년을 날 기다리게 한 벌을 받는 셈치고 7주 정도만 당신도 속앓이를 좀 해봐. 그때쯤에 내가 답을 할 테니까. 내 품으로 돌아오라는 답을. 알겠어? 이 바보 같은 남자야!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과 어울리는 감성적인 영화 5편을 소개한다.
체실 비치에서(2018)
【티빙, 웨이브, 넷플릭스 시청 가능】
가을 극장가에서 많은 관객이 찾았던 작품.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헤어지게 된 두 인물의 사연과 감정선이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리틀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5)
【티빙, 웨이브, 넷플릭스 시청 가능】
이치코는 요리와 얽힌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가을의 모습이 농촌 생활의 로망을 더하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2022)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시청 가능】
아내 세연의 마지막 생일선물은 첫사랑을 찾는 것. 남편 진봉은 아내와 함께 여정을 떠난다. 가을 풍경 속에서 시작되는 둘만의 추억여행.
한창나이 선녀님(2021)
【티빙, 웨이브 시청 가능】
강원도의 가을 풍경이 그려지는 영화. 가축도 기르고, 나무에 올라 감도 따고, 시내도 나가는 어느 선녀님. 새집을 지으면서 하루는 더 바빠진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왓챠 시청 가능】
뉴욕의 가을, 성격도 취향도 다른 두 사람이 재회했다. 둘은 과연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사방 천지로 빛이 뿌려진 날들이다. 멈출 수 없는 일상은 늘 촘촘하다. 이럴 때 가뿐히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잘 찾아왔다고 스스로 흐뭇해지는 길 위에 서본다. 굳이 계획을 세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가볍게 나서거나, 편안히 자동차 핸들을 돌려서 잠깐만 달리면 닿는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곳, 기분 좋게 훌쩍 길을 나설 수 있는 곳, 광교다.
수원은 당연히 익숙한 도시인데 같은 지역권의 광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낯설지는 않은데 옆 도시에 비해 어쩐지 새것 느낌이다. 신상품이라는 뜻의 신조어, 이른바 신상 또는 ‘새삥’ 같달까. 수원이 18세기 조선의 신도시라면 수원시 영통구에 속하는 광교는 21세기에 조성된 또 다른 신도시다.
광교가 특별한 것은 도시의 녹지율이 41.7%에 달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그 안에 엄청난 넓이의 호수가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쾌적한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가는 걸 부러워할 만하다. 인구밀도도 국내 신도시 중에서 최저다. 광교라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호수공원이 도심을 따라 연결돼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산책 코스가 되고 있다. 도서관, 호수, 수목원, 박물관, 미술관, 감성 맛집까지 일상과 이어진다. 그들이 가꾸어나가는 도시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정감 어린 골목길도 아름다운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초점을 문화 기능에 맞추어서인 듯하다.
독서 캠핑을 아시나요, 알싸한 숲속 도서관 책뜰
요즘 각기 다른 레저 활동의 이름으로 호캉스나 차박, 차크닉 등의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독서 캠핑 또는 북캉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가을이면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호수를 둘러싼 고요한 숲속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떨까. 광교푸른숲도서관에 가면 정말 이런 곳이 있다.
광교푸른숲도서관은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멋진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주제로 한 도서관이다. 푸른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비탈의 기울어진 숲 경사를 그대로 살렸다. 숲 사이에 입체감 있게 설계된 열린 공간 형태의 도서관은 외부와 내부 모두 예쁘다. 푸른숲도서관만으로도 충분한데, ‘푸른숲 책뜰’이라는 독서 캠핑장 콘셉트의 독서 힐링 공간이 특별하다.
도서관 옆의 경사진 숲길을 따라 걸어 오르는 길은 비밀스러운 정원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하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다. 그 언덕 나무들 사이에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 동의 독립적인 공간 ‘책뜰’이 앉혀졌다. 백리향, 산수국, 바람꽃, 물봉선, 금강초롱(장애인 우선 예약). 각 캐빈마다 붙여져 있는 이름은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계절 꽃인데 시민들의 제안으로 지어졌다.
내부에 드니 초록 이끼로 덮인 굵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신비한 트리하우스 느낌이다. 책뜰 주변을 알싸한 숲 내음과 푸른 기운이 감싼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작은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3~4평 정도 공간에 편안한 의자 몇 개와 작은 테이블, 그 위엔 책 받침대 하나, 옆쪽으로 안내 자료와 책이 꽂힌 서가가 전부다. 창문을 열면 아담한 전용 테라스도 있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빈백 체어에 깊숙이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평온함이 온몸에 퍼진다. 이런 호사라니. 비로소 크게 숨을 쉬고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사계절 언제나 책을 읽든 숲멍을 하든 오롯하게 사치스러운 쉼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시간의 이용 시간 동안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독서와 힐링의 시간을 나누기도 한다. 소풍 나온 만족감과 함께 충분한 사색과 쉼을 주는 3시간이다. 여기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책이 있는 정원 문화, 영흥수목원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의 도심 속에 숲과 연결된 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숲속 산책로가 구현되었다. ‘더 살아 있는 정원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라는 의미를 갖고 정원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온실 앞의 이국적인 풍경을 지나 아열대 식물을 주제로 꾸며진 온실에는 망고 열매가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수목원 입구의 책마루였다. 이 지역의 식물이나 정원 도구 전시실 등을 돌아보고 나면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진 마루에 그냥 앉아 책을 읽는다. 숲과 책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공간이다.
광교 도심을 한눈에, 프라이부르크 전망대
광교푸른숲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몇 걸음 숲으로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면 도서관 뒤편으로 우뚝 선 탑이 보인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Freiburg Observatory). 세계적인 환경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전망대와 같은 형태라고 한다. 환경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와 프라이부르크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의미를 더하는 전망대다.
건물 10층 정도인 33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광교 도심을 360도 조망할 수 있다. 각 층마다 카페, 전시관, 쉼터, 전망대가 이어진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으로 내려다보이는 원천호수와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압도적이다. 전망대 밑에는 ‘풀빛누리 광교 생태환경체험교육관’이 있어서 환경을 살피는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호수공원 주변 산책길에서는 자작나무 쉼터와 하늘정원, 수초섬 등 계절별로 변화하는 호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운치 있는 자연 생태 속으로, 신대호수
광교호수공원 중앙에 조성된 공원 산책로는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로 연결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였던 신대호수 쪽으로 걸어가면 금방 이어진다. 도심 속 호수공원을 잇는 순환 보행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누린다. 신대호수 쪽 수변 보행 데크에 들어서 둑방길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연꽃이 피어나고 뿔논병아리가 노니는 곳이 나타난다. 이처럼 습지식물과 야생 조류들이 살아 있는 생태계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 낀 이른 새벽의 몽환적 풍경과 해 질 무렵의 노을 풍경이 더없이 멋진 신대호수는 모든 시민의 생활 속 휴식 공간이다.
광교박물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실내에서 즐겨볼 만한 곳으로는 광교박물관이 있다. 광교의 역사와 도시 변천사를 알려주고 다양한 체험도 준비되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층에는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던 소강 민관식 님의 이야기와 올림픽을 비롯해 한국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유명 선수들의 기증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광교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갤러리아 광교 옆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다. 광교중앙역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전시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대부분 무료 관람이다.
광교푸른숲도서관 책뜰 이용 방법
대상 수원시도서관 관외대출회원(정회원) 이용 인원 최대 4명 운영시간 1회 09:30~12:30 2회 14:00~17:00 / 3시간 예약 신청 수원시도서관 홈페이지(www.suwonlib.go.kr) ‘푸른숲 책뜰’ 예약 기간 매월 1일 10시부터 선착순 이용료 1만 원
선선한 가을밤에는 전국 문화재 야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역별 문화재 야행을 알아보고 문화 체험도 소개한다.
경복궁 별빛야행
10월 8일까지 | 경복궁
외소주방에서 궁중음식체험과 전통 공연을 관람하고, 전문 해설사와 함께 별빛 산책도 할 수 있다.
예산 문화재 야행
9월15~16일 | 예산군청 일원
예산 성당, 예산호서은행본점 등을 방문하며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야간 문화 향유 콘텐츠를 체험하자.
보은 회인 문화재 야행
9월15~17일 | 회인 인산객사, 회인로 일원
도깨비 마을로 변한 보은 회인에는 천연염색체험, 무형문화재 줄타기 등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부여 문화재 야행
9월 15~17일 | 부여 정림사지
백제의 문화유산 정림사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야간 역사문화체험을 하면서 사비백제의 밤을 누비자.
충주 문화재 야행
9월 22~23일 | 충주 중앙탑 사적공원 일원
가족, 연인, 반려견과 함께하는 문화재 야행. 문화재 스탬프 랠리와 공연 등을 즐기며 역사를 배울 수 있다.
case 01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힘들게 자녀들을 키운 A는 자녀들이 성장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본인을 위한 선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아파트 한 채를 자녀들 모르게 매각하고 연인 B와 여행을 다녔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는 부동산 매각 대금을 현금으로 수령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A가 여행 중 매각 대금을 다 써버렸는지, 누군가에게 몰래 준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자녀들이 A로부터 받은 현금은 없었고, 상속일 현재 남아 있는 매각 대금은 확인되지 않는다.
case 02
C는 자신이 죽으면 자녀들에게 상속세 부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일부 재산을 자녀들에게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파트 한a 채를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자녀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그런데 C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두 사례에서 A와 C는 모두 아파트를 매각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리고 상속일 현재 A와 C에게 아파트 매각 대금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아파트 매각 대금이 상속세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A와 C의 사망 시점에 매각 대금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자녀들은 왜 상속세를 내야 할까.
먼저 사례 2를 보자.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은 상속 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가액과 상속 개시일 전 5년 이내에 상속인이 아닌 자에게 증여한 재산가액은 상속재산의 금액에 더하도록 정하고 있다. 상속세의 경우 누진세율(과세표준 금액이 증가하면 적용되는 세율도 높아진다)이 적용되기 때문에 사망을 대비해 피상속인이 재산을 미리 조금씩 증여함으로써 사후의 상속세를 줄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1년 이내에 자녀들에게 지급한 현금은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대신 가산한 증여재산에 대한 증여세액은 상속세 산출세액에서 공제하도록 하고 있다. 어쨌든 C의 자녀들은 C의 사망 전 받은 돈이 있으니 이에 대한 상속세 납부는 우선 수긍할 만하다.
문제는 사례 1이다. A의 자녀들은 피상속인이 아파트를 매각한 사실도 몰랐고, 매각 대금을 구경하지도 못했다. A가 매각 대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왜 A의 자녀들이 아파트 매각 대금에 대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걸까? 왜냐하면 상증세법에서 상속 개시일 전 처분한 재산 등을 상속된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추정상속재산이란
피상속인이 사망 전 일정한 기간 내에 재산을 처분하여 받은 금액이나 계좌 등에서 인출한 금액 또는 부담한 채무의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 그 금액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상속인들이 이를 상속받은 것으로 추정하여 상속세 과세가액에 포함시킨다. 피상속인이 재산 등을 처분하여 과세자료의 노출이 쉽지 않은 현금으로 상속인에게 증여 또는 상속함으로써 상속세를 부당하게 경감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상속 개시 전 처분한 재산
피상속인이 재산을 처분하여 받거나 피상속인의 재산에서 인출한 금액이 재산 종류별로 2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1년 이내) 또는 5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2년 이내)으로서 그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경우 상속인이 이를 상속받은 것으로 추정해 상속세 과세가액에 더해진다. 따라서 사례 1에서 처분한 부동산 매각 대금이 2억 원 이상이고 A가 이를 현금으로 수령하여 모두 사용했다면, 그 용도를 객관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한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된다.
만약 부동산 처분으로 수령한 현금이 5억 원이고, A가 원래 통장에 보유하고 있었던 1억 원도 인출돼 총 6억 원의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6억 원 전부 추정상속재산에 포함될까? 이 경우 통장에서 인출한 1억 원은 추정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2억 원 또는 5억 원이라는 기준은 재산 종류별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재산 종류는 ① 현금·예금 및 유가증권, ② 부동산 및 부동산에 관한 권리, ③ 기타 재산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예금에서 인출한 1억 원은 기준금액 미만이므로 제외된다.
상속 개시 전 부담한 채무
상속 개시 전 부담한 채무는 두 종류로 나뉜다. 먼저 피상속인이 부담한 채무의 합계액이 2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1년 이내) 또는 5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2년 이내)으로서 그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경우는 상속인이 상속받은 것으로 추정해 상속세 과세가액에 더해진다. 이는 상속 개시 전 처분한 재산과 동일하다. 빌린 돈의 사용처가 객관적으로 불명확한 경우 상속인이 수령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피상속인이 국가•지방자치단체•금융회사 등이 아닌 자에 대하여 부담한 채무로서 상속인이 변제할 의무가 없다고 추정되는 경우에도 사용처가 불분명하면 추정 상속재산으로 포함된다. 이 경우 채무부담 행위 자체의 진실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상속인이 변제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란 채무부담계약서, 채권자확인서, 담보설정 및 이자지급에 관한 증빙 등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 등에 의하여 상속인이 실제로 변제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아니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 경우에도 2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1년 이내) 또는 5억 원 이상(상속 개시일 전 2년 이내)이라면 그 용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과정까지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지방자치단체•금융회사 등이 아닌 자에 대한 채무더라도 상속인이 사용처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구비하면 추정상속재산에서 제외된다. 다른 상속추정과 달리 이 규정은 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상속추정의 배제 등
과거와 달리 핵가족화되어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는 서로 경제적 생활기반을 달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부부 사이에도 재산을 별도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상속인의 상속 개시 전 처분 재산 및 부담 채무의 사용처를 상속인들이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현금을 사용하면서 그에 대한 증빙을 꼼꼼히 챙기는 경우는 드물고, 특히 그 사용처가 은밀하거나 불법적이라면 상속인으로서는 더욱 사용처를 알 수 없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하여 상증세법은 입증되지 않은 금액이 기준(처분 금액 등의 20%와 2억 원 중 적은 금액)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두어 상속인의 입증 책임을 완화했다. 또한 입증되지 않은 금액이 그 금액 이상이라 하더라도 입증되지 않은 금액 전체를 상속재산가액에 더하는 게 아니라, 처분 금액 등의 20%와 2억 원 중 적은 금액을 차감한 금액만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다고 추정하여 상속재산가액에 더하도록 하고 있다.
상속세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상속인들이 가장 빈번하게 요구받는 자료가 바로 피상속인이 사망 전 일정 기간 내 재산 처분 대금이나 예금 인출액 등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평소에 거액의 현금 인출 또는 재산 처분을 하거나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근거가 되는 계약서, 영수증, 거래 상대방의 입금 확인에 관한 증빙 자료를 꼼꼼히 챙겨둬야 한다. 물론 때마다 증빙을 갖추기란 쉽지 않고, 가끔은 어디에 돈을 썼는지 밝히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남겨질 자녀들을 위해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그건 말이지, 마치 이런 것과 같아. 냉장고에 먹을 만한 게 없는 것과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의 차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데도(애인이라고 해도 좋고) 마음이 허전한 것과 혼자 살기 때문에, 옆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공허한 것의 차이란 말이야. 전자는 냉장고 안에 먹고 싶은 게 없는 거고, 후자는 냉장고가 완전히 텅 비어 배고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말이지.”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산 지 15년. 늘 배고픈 사람처럼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제는 지겹기조차 한 나에게 역시나 혼자 사는 친구가 해준 말이다. “너와 나는 냉장고가 비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그러니 남편이, 연인이 옆에 있어도 외롭다든가, 한술 더 떠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냉장고가 그득한데도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서, 입에 맞는 식재료가 없어서 짜증이 난다는 말이지?”라고 응수해주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럴듯한 비유처럼 들린다. 냉장고가 완전히 텅 비어 있을 때와 먹을 만한 것, 내 입에 맞는 것이 없을 때의 차이란 차원이 다른 비교이지 않나. 아예 비교가 불가하거나. 그래서 냉장고가 텅 빈 사람들은 먹을 것 자체를 찾아 허덕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환상 속에서나마 가슴속에 어떤 남자, 어떤 여자를 들여놓게 된다고. 그 친구 말이 그렇게 막연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으로 허기진 마음을 달래는 것은 당연히 무죄이고, 냉장고는 차 있지만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소위 바람을 피우는 사람은 유죄란다.
그러면서 친구가 덧붙였다. 늘 배가 고프니까 먹을 수 없는 것조차 먹을 것인 줄 알고 간혹 마음에 품는 경우도 있다고.
품지 말아야 할 사람을 품은 나
1년 전 나는 과거 결혼할 뻔한 옛 연인을 만났다. SNS를 통해 내가 그 사람을 찾았다. 문득 궁금했고 그 궁금함이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은 조바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만난 것이다. 듣기에 따라선 얼마나 로맨틱한가. 아내와 이혼 후 젊은 시절 자신을 짝사랑하던 여성과 재혼한 운 좋은 50대 남자 이야기를 어느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남자는 적극적으로 그 운명의 여인을 찾아 나섰다고. 20년 전 자기를 좋아해주었다는 인연만으로 용기를 낸 남자. 그 여자가 여전히 자신을 좋아하는지 궁금했고, 좋아한다 해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면(응당 꾸렸을 테고) 아무 의미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무작정 찾아보고 싶었고, 무모한 짓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던 것처럼,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 나섰을 때 기적 또한 찾아온 것이다. 어떤 연유인지 그 여자는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살고 있었고, 비록 재혼이지만 가슴 설레던 풋풋한 시절 짝사랑하던 남자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나 청혼을 해왔으니 ‘Why not?’, 그 청혼을 덥석 받아들여 두 사람은 지금 알콩달콩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기적을 바란 것은 아니다. 그저 한 번 보고 싶었고, 인터넷 세상이니 큰 어려움 없이 만날 수 있었던 것뿐이다. 그는 물론 기혼남이었다. 나를 기다리며 결혼하지 않은 기적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내 마음은 설렜다.
32년 만이었다. 내가 결혼하던 해가 그와 헤어진 해이니. 결혼의 인연은 따로 있다지만, 그렇다고 작정하고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따로 인연이지 않았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나는 결혼하기 3년 전 여행지에서 그를 만났다. 대학 졸업 전에 친구 세 명과 함께 간 2박 3일의 늦가을 강릉 여행이었다. 셋 다 남자 친구가 없었기에 여행지에서 근사한 일이 생겼으면 하는 20대다운 기대와 설렘으로 떠난 여행. 그런데 그 바람대로 여행지에서 대학 졸업반 남학생 세 명을 만난 것이다. 군대 다녀온 복학생들이어서 나이는 우리보다 많았지만, 그래서 더 의지가 되고 든든한 면도 있었다. 그중에서 그와 내가 커플로 맺어졌다. ‘커플 탄생’이라고 했지만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일상으로 돌아온 후 그에게서 연락이 왔고 이후 둘이 사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을 만났다. 그리고 내가 결혼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가 아닌 다른 남자와. 그도 물론 결혼했다.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내가 다른 남자(15년 전 세상 떠난 남편)와 결혼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그 남자는 직장 동료였다. 의상학과를 나온 나는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이 되었고, 같은 해 입사 동기로 남편을 만났다.
당시 호황기를 타고 야근하는 일이 잦았는데, 마침 집이 같은 방향이라 늦은 밤 퇴근길에 나를 집에 바래다주고 가는 것이 죽은 남편의 또 다른 일상이 되었다. 물론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연인이 있었지만 일이 바쁘던 그 무렵에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 틈을 타고 ‘오피스 와이프’라는 말처럼 그가 ‘오피스 연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30년을 뛰어넘어 찾아온 설렘
업무상 실수가 발생한 것은 입사 후 3년을 넘긴 직후였다. 내가 오더를 내는 과정에서 숫자를 잘못 기입하는 바람에 문책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마침 그도 같은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상황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그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나 대신 징계를 당할 각오를 하고 자신이 실수한 것으로 상부에 보고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은 모르게 하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 내게는 더 감동적이었다. 그 일로 그와 나 사이엔 비밀이 생기게 되었다.
하늘이 도왔을까, 다행히 징계는 면했고 이후 그와 나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단순히 고마운 마음을 넘어 나는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되었고, 그 틈을 타서 그는 내게 사랑을 고백해왔다.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한 고백이니 그로서는 모험이자 용기가 필요했을 터. 인연이 되려고 그랬을까. 나는 그의 고백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결과 3년을 사귀던 애인을 배신하게 된 것이다. 물론 결혼을 약속하고 사귄 것은 아니었지만 연애의 배신도 배신이었다. 나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수밖에. 내 마음은 이미 직장 동료에게 기울어져 있었으니.
날벼락을 맞은 건 당시 나의 연인. 그러니까 남편이 죽고 32년 만에 만난 지금 이 사람. 한 가지 현실적 변명을 하자면 그 사람과 나는 동성동본이었다. 당시 동성동본은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때였다. 사귀고 있을 때는 의식하지 않으려고 서로 애를 쓰던 장애물이 헤어지려고 하니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어 수면에 떠올랐다. 저절로 떠오른 게 아니라 내 쪽에서 일부러 밀어 올렸다는 표현이 옳다. 그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오피스 연인과 결혼하기 위해서.
나는 물론 옛 연인을 좋아했다. 여행지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그와 함께 있으면 흥겹고 재미있었다. 고된 업무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일상의 지루함과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사람이었다.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내 기질에도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피스 연인을 선택했으니, 업무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일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랬던 그를 남편과 사별한 후 다시 만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많이 설레었다.
냉장고가 꽉 찬 사람
만남이 1년으로 이어지면서 친구의 ‘냉장고론’을 떠올린다. 그는 유부남, 나는 사별녀. 한때 아무리 사랑했다 해도 우리의 현주소는 이러하며, 그의 냉장고는 채워져 있고 나의 냉장고는 텅 비어 있다. 그에게 나는 별 의미가 아니지만 내게 그는 큰 의미다. 아내가 있는 그는 재미로, 호기심으로 나를 만나는 거겠지만, 혼자인 내게는 그가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서 그만 끝내야 한다. 윤리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두려운 것보다 내가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 두렵다.
재혼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뿐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재혼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기 마련이다. 재혼까지는 아니라 해도 친구로 지낼 정도의 누군가를 사귀기를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만남 쪽으로 내 마음이 자꾸만 쏠린다는 것이다. 나의 냉장고는 늘 비어 있으니 지금 이 사람으로 채우고 싶은 강박적 생각을 끊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나는 지인으로부터 곧 누군가를 소개받기로 되어 있다. 소개를 받는다고 맺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소개조차 받고 싶지 않은 게 문제다. 아무 실속도 없고, 실속은커녕 결국 가슴앓이로 끝날 관계, 나만 상처받게 될 인연임을 잘 알면서도.
그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시들하든 무심하든 그는 자신의 냉장고를 채우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자신의 냉장고를 비우지 않을 것이며, 꽉 채워진 그 상태 그대로 나를 만나려고 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로 질주하는 내 마음을 어찌할까. 이대로 그에게 사로잡혀 그의 노리갯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좀 그러면 어떤가.
지지난해엔가 가을에 갔던 연천은햇살이 바삭하고 고요했던 산하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에 찾아간 봄날의 연천은 조금 달라진 기분이다. 충분히 봄날인데도 바람이 차서 자꾸만 옷깃을 여몄다. 더구나 휴전선과 가까운 최북단이라는 이유로 사진 한 장 담아보지 못한 채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봄바람을 맞으며 산을 내려왔다.
마침 전방 마을의 주민께서 안내해주신 덕에 고맙게도 최전방 마을을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백학면이라는 연천의 최전방 마을은 아무리 둘러봐도 인적이 드물다. 마을 길 옆으로 자그마한 단층 지하에 백학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게 보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3.1 독립운동 시절에 몸과 마음을 바쳐 대항했던 이 지역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그들만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소중한 이야기다.
바로 맞은편 작은 광장에는 영웅정신계승마을이라는 탑이 우뚝하다. 그 옆으로 전장(戰場)에서 총을 잡는 대신 지게를 짊어진 민간인들의 활약을 새겨놓은 긴 설명이 있어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호국보훈의 달, 최북단의 접경지역 연천을 가다
한국전쟁 당시 접전지역이 산악지형이었기 때문에 전투물품 운반에 어려움이 컸다. 이때 5시간씩 걸리는 험한 길을 민간인들이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로 짊어지고 날라다준 덕분에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었다.
지게부대로 연인원 30만 명이 투입되었다 하니 주민이라면 누구나 지게를 짊어지고 날마다 나선 셈이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애국자들이다. 지게 모양이 영어의 A와 비슷하다 하여 미군들은 A부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탄약을 지어 나르는 이들을 보면서 유엔군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생명줄이며 전투의 절반은 이들의 공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복이나 총기도 지급되지 않았고 가파른 절벽을 걸어 다니느라 희생되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하니 마음이 못내 안타깝다.
다크 투어리즘의 증표, 레클리스 하사 이야기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지게부대 이야기 옆으로 숨은 영웅 레클리스(Reckless) 하사와 한국전쟁 이야기가 그림으로 남아있다. 레클리스는 전쟁 당시 군인이 아니라 군마(軍馬)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중에 포탄 운반용 말이 필요했다. 이때 미군들이 신설동 경마장에서 구입한 퇴역 경주마의 이름이 바로 ‘아침 해’였다. 미군들은 아침 해의 별명을 레클리스라고 지었다.
레클리스는 영리한 전투마로 미 해병들과 지내면서 우수한 전투병이 되어갔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통에 엄청난 양의 포탄을 짊어지고 옮기는 용기와 헌신은 전쟁 영웅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자서도 고지를 왕복했다고 한다. 병사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던 전우 레클리스는 정전협정 후 미국 버지니아 본부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켰고 성대한 전역식으로 예우를 다했다고 전한다.
레클리스는 해외 유명 언론에서도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라이프 매거진’ 특집에서는 ‘세계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다. 한국에서도 2013년 우리의 전쟁영웅 레클리스의 실물 크기 동상을 세워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게 했다. 이른바 연천 백학마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증표, 한국전쟁의 영웅 레클리스 동상이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북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고랑포구는 1930년대에 최고의 무역항으로 번창했다. 한국전쟁 때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했고 휴전 후에도 통일 한국을 위한 접경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고랑포구 역사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실과 VR, AR 체험은 물론이고, 저잣거리와 카페테리아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는 옛 명성과 달리 역사공원 앞으로 임진강변의 강물만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백학면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하나 있다. DMZ백학문화활용소라는 갤러리는 연천만의 지역적 특색도 있지만 전시물도 특별하다. 현재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백학역사박물관 유물 다시 보기’ 전시를 진행 중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치열했던 전쟁과 그 상흔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다. 행사는 6월 30일까지다.
한탄강 주상절리 천혜의 지질 여행
연천은 한탄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상절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지질공원 투어도 있고, 힐링을 겸한 트레킹 코스도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주상절리라는 특이한 지질 구조는 화산 지형인 제주도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여러 군데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수직의 주상절리는 병풍처럼 독특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지질 명소다. 물결은 잔잔하고 봄볕은 화사한데 한두 명의 강태공이 낚싯줄을 던져놓고 하세월이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바람은 아직 차다.
주상절리 바로 위쪽으로 숭의전을 올라가 봐도 좋다. 홍살문 입구에서 찬 우물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들이켜고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조선시대에 고려의 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공신들의 제사를 지냈던 고려의 종묘인 숭의전이다. 주변으로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고 담장이나 기와에서 자라는 잡풀과 푸른 이끼가 세월을 말해준다.
한탄강 지질 명소 중에 연천 전곡리 유적은 이 땅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기록에 따르면 1977년 주한미군 그렉 보웬이 데이트를 하던 중 한국인 연인이 주워온 ‘이상한 돌’을 보고 전문가에게 조사를 요청해, 이곳이 중요한 유적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돌이 30만 년 전의 돌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라고 한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질 명소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곡선사박물관에는 그 옛날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유적공원이 형성돼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당시를 상상해볼 만하다. 넓은 잔디광장에서 다양한 조형물을 보면서 까마득한 옛 시간을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볼거리도 많고 공기도 맑아서 산책길이 더없이 즐겁다.
돌아가는 길에는 한탄강 인접 지류인 재인폭포(才人瀑布)를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물길 아래로 내려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구경하거나 길 옆 절벽 위에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주차장도 넓어졌고 넓은 캠핑장도 생겨났다. 전망대와 출렁다리가 이어졌으며, 데크를 따라 양옆으로 편리하게 내려갈 수 있다.
비가 많이 온 후에는 엄청난 수량이 쏟아지며 물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렇지 않을 때도 직선의 길쭉한 물기둥이 소리를 내며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폭포 이름이 재인인 것은 옛날에 줄타기를 잘하던 재인(才人)의 이름으로, 그에게는 예쁜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을 수령이 부인을 탐하여 재인에게 폭포에서 줄타기를 하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한 것이다. 부인은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에서 자결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역이다. 길을 가다 보면 군부대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지만 인구밀도가 낮아 사방으로 한적하고 여유롭다. 울창한 산림자원도 풍부하고,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 옛 성곽이 보여주는 오랜 세월의 이야기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지금껏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연천이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는 최대 규모인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교통이 좋아야 하는 건 현대인의 주거 선택 시 중요 요소인데 여행지를 향한 여행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때로 먼 길 찾아가 고요히 만나는 여행지의 맛도 남다를 수 있지만 짧은 시간을 만들어 찾아온 사람들에겐 이럴 땐 반갑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니 두오모 성당이 기다린 듯 보이는 건 쾌재를 부르게 한다.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어로 대성당을 뜻한다.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대성당이 있는데 그중에 피렌체와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이 유명하다. 특히 오래전에 가 보았던 피렌체의 두오모는 그 독특함이 지금도 떠오른다. 어쩜 이다지도 문양이 정교하고 오묘한지 감탄스러웠다. 웅장하고 장대한 건물 곳곳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섬세함에 놀랐다.
피렌체 두오모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먼저 떠오르는 성당이다.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그리운 사람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명대사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본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영원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성지로 준세이와 아오이가 서른 살의 생일에 만나기로 했던 곳. 그러나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헤어진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는 스틸컷의 효과가 크다. 만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피렌체에서 다시 그들은 서로 연결되었고 마음을 주고받았다.
여행자들도 두오모 성당 앞에서 영화처럼 나름대로의 무언가를 하는 것, 하다못해 혼자 배회를 하거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BGM이라도 듣는다. 우리들에게 그곳은 매체의 영향이 있는 곳이 되었다. 그 영화음악을 듣다 보면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만 두 연인의 풍경을 배경으로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첼로 연주곡이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걸 느낀다. 낮으면서도 풍부한 첼로음의 분위기가 수분을 머금은 듯한 피렌체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좋다. 준세이와 아오이가 어느 공원에서 첼로 연주 공연을 보면서 키스하던 장면도 함께 오버랩 된다. 그리고 느닷없는 일이지만 아오이 역의 진혜림이 다른 영화에서 조용한 반주로 이쁘게 불렀던 A lover's Concerto 도 연달아 떠오른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 아오이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갔을 때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영화와는 무관하게 대성당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 속의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화려한 외관과 내부 그림의 장엄함에 압도되어 시종일관 경이로움의 여행이었다. 지금과는 달랐을 그때의 촉촉하던 정서가 문득 그립다. 갑자기 피렌체의 풍경에 잠겨 그 도시를 걸어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밀라노의 두오모를 이야기하려고 시작했는데 슬그머니 피렌체의 두오모와 영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삼천포로 빠졌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엔 이번에 본 밀라노 두오모의 첨탑을 올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을 또다시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저 웃으며 그땐 밀라노의 두오모에서 피렌체의 두오모를 떠올렸고 영화 생각만 했었다 하면서 말이다. 두오모는 단순한 종교적 장소만이 아닌 지역민들에게 가장 중심적인 장소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 건설할 때 두오모를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배치했다. 그래서 두오모를 바라보면서 밀라노와 피렌체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여행의 기억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기에 때로 문득 이렇게 떠올려 보며 아릿해져 오는 걸 혼자 즐겨보는 것도 괜찮다.
연말의 두오모 광장은 이른 시간인데도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맞은편 노천카페의 노란 테이블엔 부부나 연인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 햇살은 두오모 성당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앉아있는 그들을 비춘다. 때로 어딘가 지나치다가 우연히 만나던 안개 속 풍경에 멈춰 서기도 한다. 안개가 내게 스미는 촉촉함과 그 속에 파묻혀 더 머물고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엄청난 포스의 두오모 대성당의 광장과 따사로운 노천카페의 풍경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그 풍경 속의 풍경이 되어 보기도 한다.
성당 광장의 비둘기 떼들과 노니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바라본다. 일상을 떠나 있다는 묘한 일탈감과 생경한 도시의 인상이 절묘하게 배합되는 순간이다. 바로 그 옆으로 대형 아케이드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가가 아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비토리오 에마뉴엘리 2세 갈레리아 아케이드라는 이름이다. 웅장한 건물의 통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중앙을 십자로 가르며 사방의 건물의 연결하는 길이 이어지고 천정의 창 구조물이 예술 작품이다.
모르고 들어선다면 처음엔 백화점이나 일반적인 상가인 줄 알 수 있다. 그러나 들어서면서부터 고풍스러운 이곳엔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하는 프라다, 베르사체, 루이뷔통 등의 명품 샵이 우아한 무게감으로 쭉 입점해 있다. 고색창연함과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켠으론 피자와 젤라토를 한 입 먹느라 줄 서 있고, 기둥도 천정도 예술이구나 하며 바라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두리번거리며 산책하듯 지나가려 해도 쉽지 않은 인파다. 골목도 자칫 길을 잃을 만큼 복잡하게 이리저리 길이 나 있다. 아케이드를 벗어나면 베르디의 푸치니를 초연했다는 스칼라 극장이 있지만 생각만큼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 의미 있겠지만 그냥 쓰윽 보고 지나친다. 미술관이나 동상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정도로 볼거리가 널려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수백 년 된 건물들이면서도 정갈하고 도시적이다. 오래된 연말의 찬 기운과 함께 오전의 햇볕이 그 건물을 지나는 길에 그림자를 만들고 배회하던 그곳에 발걸음 소리를 남긴다. 지하철 입구나 거리 곳곳에 빨간색의 선명한 M자 폰트가 밀라노를 더욱 기억하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