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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제 없애고 매출 두 배로 ‘껑충’… 세라후에노모토社 성공 사례
-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0세 (66.4%)와 65세(23.5%)정년인 기업이 가장 많다. 일본 정부는 2021년 65세까지 고용 확보를 의무화하고, 65세 이상 직원도 원한다면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도록 기업에 노력할 의무를 부과했다. 이에 기업들이 각종 대책을 세우는 가운데, 정년제를 폐지하는 회사(3.9%)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정년제를 폐지하고 오히려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난 회사가 일본 언론에 소개되어 찾아가 봤다. 도쿄와 인접한 사이타마현(埼玉県) 가와구치시(川口市)에 도착한 날은 5월의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날이었다. 입사 3년째인 미쓰타 하루카(満田遥花) 씨가 역까지 마중 나와 정중하게 인사했다. 주식회사 세라후에노모토(セラフ榎本) 본사는 니시도쿄역(西東京駅)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설립 61년째인 세라후에노모토의 대표 사업은 아파트 대규모 수선 공사, 반려동물과 살 수 있는 집 리모델링, AI와 드론을 이용한 아파트 외벽 상태 조사 등이다. 드론으로 아파트 건물을 촬영한 각종 영상 데이터를 AI로 진단하는 시스템은 2019년부터 도입했다. “저는 유튜버랍니다” 회사 유니폼을 차려입고 미소를 가득 띠며 들어온 에노모토 오사무(榎本修) 대표는 반갑게 맞이하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50대 대표의 첫마디가 뜻밖이라,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회사는 과거 사이타마현에서 아파트 수선 공사 부문 고객 만족도 2위였어요. 어떻게 하면 1위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5년 전부터 유튜브에 주목했습니다. 일주일에 20개의 영상을 올렸고, 현재는 2500개 정도 영상이 올라가 있는데요. 500개가 넘어가니 아파트 수선 공사 주문 전화가 걸려오더라고요.” 회사를 방문하기 전 사전 조사를 하면서 홈페이지에서 본 2분짜리 동영상에는 대표가 직접 골든위크(4월 말에서 5월 초에 걸친 일본의 장기 연휴 기간을 이르는 말) 연휴 대응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수선 공사 중인 아파트에 연휴 기간 발판이 그대로 놓여 있는 경우가 있을 텐데 불편함을 초래해 죄송하다면서,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공사 현장에 있는 작은 간판에 적어둔 전화번호나 라인(LINE) 메시지 혹은 회사 홈페이지 고객 문의로 연락하면 24시간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2023년에는 관동 지역에서도 아파트 수선 공사 부문에서 고객 만족도 2위를 달성했다. 다음 목표는 관동 지역 1위라고 한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공사 수주 금액에 관계없이 고객 요청에 응하고 있어, 작게는 2만 엔부터 크게는 1억 엔 규모의 공사 수주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고객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년제를 폐지한 이유 자신을 유튜버라고 소개한 에노모토 대표는 경력도 특이하다. 30세에 시의회 의원으로 세 번 연속 당선되었다. 열심히 의회 활동을 하다가 부친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시의원을 그만두고 대를 이어 회사 운영을 맡게 됐다고 한다. 전무로 일을 시작해 15년 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에노모토 대표는 언제부터 시니어를 채용한 걸까? “10년쯤 전부터 시니어를 채용했고, 정년제를 폐지한 건 3년 전이에요. 거래처나 전시회에서 훌륭한 기술을 가진 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들에게 ‘퇴직하면 우리 회사에 오지 않겠냐’고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에노모토 대표는 이런 분들이 오래 축적한 기술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정년제를 폐지하고 적극적으로 시니어를 채용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회사의 최고령자는 78세로 설계를 담당하는데, 숙련된 기술과 경험으로 회사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는 오래된 인사 관행으로 55세 역직정년(役職定年)이라는 게 있습니다. 과장·부장이라는 직책을 상실함과 동시에 월급이 줄어듭니다. 건설업의 경우 특히 보수적이어서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30년 정도 근무했다면 이력서도 보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노하우, 인맥이 대단하기 때문에 신뢰한다는 의미죠. 이분들이 정말 회사에 열심히 공헌하니까 채용 후 매출이 해마다 늘어나는 거예요.” 시니어 채용하자 일어난 변화 시니어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면서 매출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뉴스에 보도됐기에, 어떤 이유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물어봤다. “4~5년 사이에 20억~30억 엔이던 매출이 30억~40억 엔이 됐고, 최근에는 45억 엔까지 늘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타사에서 50대에 역직정년(일정 연령에서 직책을 그만두는 제도)을 맞고 우리 회사로 전직해온 우수한 인재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젊은 사원, 중견 사원, 시니어 사원이 잘 융합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봅니다. 젊은 사원만 많은 회사라면 시니어 채용을 권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에노모토 대표는 취직을 원하는 지원자로부터 온 이메일을 보여주었다. 전국에서 거의 매일 문의 메일이 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니어 사원의 월급은 얼마일까? “채용할 때 ‘월급은 70세 이후 감소합니다’라는 안내를 합니다. 만약 금·토·일요일을 쉬고 싶다거나 자택에서 거래처로 출퇴근하고 싶다는 분이 있으면 요청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런 경우 근무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월급도 감소합니다. 이 부분은 함께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협의하고 있어요. 시니어분들은 연금도 받고 있기 때문에 월급이 줄더라도 자율적으로 일하고 싶어 해서 그에 맞추어 배려하고 있습니다.” 정년제를 폐지하고 기술이 축적된 시니어를 채용하면서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직무 만족도와 생산성이 향상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대표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게 됐어요. 몇 살이든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회사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정년제를 폐지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장점밖에 없다니까요.” 시니어와 주니어의 화합 세라후에노모토 사원은 모두 100명이고, 이 가운데 65세 이상 시니어 사원은 10명이다. 시니어 사원 입사가 늘어남에 따라 직장 분위기가 바뀐 점은 없는지 궁금했다. “우리 회사는 대표실이 따로 없어요. 젊은 사원도, 시니어 사원도, 저도 대형 사무실에서 같은 크기의 책상에 앉아 일합니다.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평등하게 일하죠. 무엇보다 대표인 제가 시니어 사원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예우를 해드리면 다른 사원들도 마찬가지로 시니어 사원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세라후에노모토의 가장 큰 장점은 대표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에노모토 대표는 라이온스클럽이나 로타리클럽 등에 가입하지 않고 골프나 접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도 샐러리맨이라는 마음으로 사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대표는 “사원들에게 본을 보이는 거죠. ‘나도 열심히 일할 테니 여러분도 열심히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하니 사원들이 언제든 스스럼없이 다가와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시니어 사원을 뽑고 나서는 이런 분위기가 한층 더 정착됐다. “시니어분들은 인생 경험이 풍부해요. 몸에 밴 기술과 안목이 있거든요. 시니어들의 힘으로 젊은 사원과 중견 사원을 잘 융합시켰다고 생각해요. 시니어 사원과 임원이 이인삼각으로 회사 업적을 높이면 회사 매력도도 향상됩니다. 자연스럽게 젊은 사원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되죠. 사람을 대하는 방법, 클레임이 들어왔을 때 처리하는 방법 등을 시니어 사원이 젊은 사원에게 가르쳐주면서 지도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시니어를 적극 채용한 뒤부터 매출도 올랐지만 사원 수나 회사 규모도 두 배 이상 됐어요. 이런 상승효과가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시니어 사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죠.” 실제로 세라후에노모토는 이직률이 낮고 직원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고객 만족도는 직원 만족도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직원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입사 3년 차인 미쓰타 하루카 씨와 4년 차인 고토 하루나(後藤遙菜) 씨에게 회사 분위기에 대해 물었더니 같은 답이 돌아왔다. “대표님도 시니어 사원분들도 친근감이 들어요. 뭐든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상담하기 쉽습니다!” 30년 전쯤 일본의 대기업 회사 대표님에게 “한국의 S기업과 기술 제휴를 했는데, 기술 전수를 할 때 사무직 직원에게 전수하려 했더니 현장 직원에게 맡겨야 한다며 배우려 하지 않더군요. 왜 그럴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름의 답변을 드렸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대부분의 일본 회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갓 입사한 사원이 최소 1~2년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대표도 직원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일한다. 대표도 직원들과 같은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평등하게 일하는 문화가 일본 기업의 조직력을 발휘하는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2024-07-2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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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여행으로 딱 좋은 당진의 깊은 맛
- 여름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바다를 찾고, 누군가는 숲으로 갈 것이다. 바쁘게 사는 세상, 멀리 훌쩍 떠나기엔 살짝 망설여진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거야? 가만히 앉아 여름 타령만 하기엔 아까운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고’ 하며 투명한 햇살이 부추긴다. 초록 물이 듬뿍 올랐다. 퍼석한 시간 속에서 기꺼이 자신을 끄집어내 주기로 한다. 당진은 서울과 수도권 기준 자동차나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남짓 거리다. 무심히 그냥 떠나면 된다. 무심코 떠난 곳에서 맞는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하루가 행복하다. 사람들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에 굳이 의미를 담는다. 알고 보면 그럴 일은 아니다. 마을 골목을 어슬렁거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지역 들판이나 노포에 주저앉아 바라보는 느린 풍경에 세상 스트레스 날리면 되는 것 아닌가. 당진은 그러기에 적당하다. 당진에서 여름을 맞는 법, 왜목마을 바다와 갯벌 제법 덥다. 아무래도 바다를 먼저 봐야겠다. 충남 당진은 서해와 아산만을 경계로 절반 이상이 바다와 접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비릿한 포구와 너른 들길이 번갈아 나온다. 당진의 왜목마을 해수욕장에선 바다와 갯벌, 일출과 일몰뿐 아니라 해안가 절벽 쪽의 해식동굴을 비롯해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한 왜목마을 앞바다는 예부터 많은 배의 왕래가 있었다. 해안가에 해상 조형물 ‘새빛왜목’이 우뚝하다. 왜목의 지형이 왜가리 목처럼 생겼다는 유래에서 착안하여 꿈을 향해 비상하는 왜가리를 표현한 작품이다. 모래사장이 워낙 넓고 갯바위가 공존하는 왜목마을 해변은 바다의 즐거움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모래밭에 그늘막과 파라솔이 즐비하다. 해변에 서면 바닷바람에 금방 땀이 마른다. 바닷가는 일반 지역보다 기온이 내려간다. 바닷물에 발 담그고 잠깐만 서 있어도 서늘하다. 물이 빠지면 갯벌 위에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주저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즐겁다. 다시 물이 차오르면 푸른 바다와 시원한 파도 소리가 일품인 왜목마을 바다 풍경이 청량하다. 당진 바다의 대표적인 왜목마을과 난지섬은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마을이기도 하다. K팝 스타 BTS의 슈가가 앨범 작업으로 며칠 머무르며 조용히 머리 식히기 좋았던 당진 바다를 추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해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맞을 수 있는 왜목마을을 지나면서 이근배 시인의 ‘왜목마을에 해가 뜬다’는 시비를 만난다. 여기 왜목마을에 와서/ 백두대간의 해는 뜨고 진다/ 저 백제, 신라의 찬란한 문화/ 뱃길 열어 꽃 피우던 당진…. 푸근한 시간여행, 레트로 감성의 면천읍성 마을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당진이다. 성안마을로 불리는 면천읍성(沔川邑城)일대는 뉴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따사로운 마을이다. 면천읍성은 조선시대 서해안권 내포 지역의 대표적인 요충지였다. 그 옛날 중국으로 통하는 바닷길이 있었고 국방상 거점이었다. 평탄한 지형에 축조되어 면천군을 방어하는 성곽으로 기능이 유지되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그 후 동학운동과 항일의병 활동지였고, 성 안쪽에 면천 3·10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진 걸 볼 수 있다. 읍성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왕조의 정통성이 깃든 공간 면천 객사 앞에 천년 세월을 넘긴 은행나무 두 그루가 노구를 지지대에 받친 모습으로 울울창창하다. 바로 옆 계단 밑에 자리한 군자정 역시 고려 공민왕 시절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부근에 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 재직 시 세웠다는 골정지가 있다. 봄과 여름이면 벚꽃과 연꽃으로 절경을 이루고, 당진의 걷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성 안으로 들어왔으면 지나치지 않고 돌아볼 곳이 곳곳에 숨어 있다. 당진이라면 폐교를 이용한 아미미술관이 많이 알려졌지만, 우체국이 미술관으로 예쁘게 변신한 ‘면천읍성 안 그 미술관’의 앞마당과 정원의 쉼도 좋다. 언덕길의 낡은 자전거포는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로 바뀌어 동네 사람들의 문화 마실터이기도 하다. 책방 옆집의 감성 소품 진달래상회, 공출판사, 그야말로 옛날식 ‘별다방’, 시장제분소 떡방앗간 골목을 느린 걸음으로 둘러보기에 딱 좋다. 걷다가 허기질 때쯤 되면 초록색 쑥면의 초원콩국수집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마음 챙김의 시간, 성지 순례길 당진을 신앙의 못자리이자 한국의 베들레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돌아보다 보면 내심 수긍이 된다. 천주교가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한 분들이 순교한 유적지 신리성지,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충청 최초의 본당인 합덕성당,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이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솔뫼성지 등이 있다. 세 군데 각각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어 성지 방문만을 목적으로 하루를 계획해도 좋을 듯하다. 또 다른 길이 있는데 바로 버그내 순례길이다. 버그내는 합덕의 오래된 장터 이름이다. 순교자들의 길을 따라 고요하고 평온하게 자연 속을 걷는다. 솔뫼성지를 시작으로 합덕성당과 신리성지까지 13.3km 코스로 비순환형 길이다. 대략 4~5시간 걸으며 차분히 나를 다스리는 시간이다. 당진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챙김의 시간도 갖는다. 하얀 연꽃잎이 스며든 맛, 신평양조장 당진의 술도가 신평양조장 역사는 9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발효된 술맛은 더 깊어졌다. 하얀 연꽃잎을 발효 과정 중에 곁들여 빚어내는 백련막걸리로 지금껏 맛을 지켜왔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3대째 이어온 가업은 장인정신으로 양조 문화를 계승해나가는 중이다. 오래된 한옥 고택 옆으로 신평양조장 뮤지엄이 먼저 보인다. 해풍을 맞고 자란 당진의 품질 좋은 쌀로 오랜 세월 동안 백련막걸리와 백련맑은술을 어떻게 빚어왔는지 보여주는 곳이다. 백련막걸리는 한때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여전히 전통주 명가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양조갤러리에서는 술의 제조 공정, 역사의 흐름에 따른 술의 변화, 세상의 술 이야기를 꼼꼼하게 보여준다. 술 한 모금 시음도 하고, 막걸리 만들기 체험과 소믈리에 교실 등의 참여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시간이 익어가는 양조장’이라는 테마로 돌아보는 옹골찬 예술 감성 공간이다. 술과 인문학에 관한 공부, 하얀 쌀과 그에 대한 가치 또한 비로소 새롭다. 하얀 꽃 백련잎과 연잎주의 전통이 이어지면서 신평양조장의 꿈도 쉼 없이 발효되고 익어간다. 불꽃 같은 삶, 작가 심훈의 필경사 신평양조장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필경사(筆耕舍),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농촌 소설 ‘상록수’가 탄생했다. 작가 심훈이 낙향해 터를 잡고 직접 설계해 지은 집이다. 필경사 마당에는 당시 농촌 계몽 활동을 하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조형물들과 시비가 전시되어 있다. 마당 옆에 자리한 심훈기념관에는 작가 심훈의 활동이 전시물과 영상, 디오라마 등으로 다양하게 분류되어 전시되었다. 작가이면서 영화감독이기도 했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당시 경성방송국 조선어 아나운서까지 맡았던 다재다능한 인재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아나운서로 뉴스를 읽던 중 ‘황태자 폐하’라는 부분을 도저히 읽지 못하고 어물거리며 불편한 기분을 참지 못해 3개월 만에 해고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산 아래 소박한 작가가 직접 설계했다는 ‘심훈의 집’. 전통적인 외관과 내부는 오밀조밀 짜임새 있고 정갈하다. 집 앞으로 들판이 펼쳐지고 저편으로 서해가 보이도록 자리 잡아, 문학적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초가집 뒤편으로 그가 심었다는 대나무 숲이 가끔 바람에 일렁인다.
- 2024-07-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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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활ㆍ고령친화산업 최신 경향 한눈에, ‘독일 REHACARE 2024’
- 세계 최대 재활 산업전 ‘REHACARE 2024 (레하케어)’가 오는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된다. REHACARE는 ‘장애인과 노인의 삶의 질 향상’과 ‘통합’을 위한 솔루션을 다루는 종합 전시회다. REHACARE 주요 전시 분야는 △직업재활과 통합(inclusion) △모빌리티와 장애인용 차량 개조 △스포츠와 레저활동 △장애아동 △감각장애 보조 △무장애 여행이며, 휠체어, 성인용 보행기, 이동변기, 목욕리프트, 보조기/의지(prostheses), 지각훈련용 보조기기, 재활공학 로봇, 재활 장비, 물리치료/작업치료와 같은 다양한 제품과 솔루션이 전시된다. 또한 고령자와 장애인 관련 시설 및 기관도 다수 참가해 정책입안자들에게 모범사례와 선진 복지 모델을 제시할 전망이다. 재활 분야는 중증/중복 장애인의 증가, 기대수명 증가로 인해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높다. 최근에는 고령친화제품 및 보조기기 시장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관람객으로 이어져 지난해에 이 전시회를 방문한 관람객은 약 3만 명에 이르렀다. REHACARE는 국내에서도 관심 받는 전시 중 하나로, 재활병원 및 의과대학, 재활공학 관련 대학교, 관련 기관을 비롯해 재활로봇공학, 배리어프리 솔루션 전문 기업 등에서 방문했었다. 지난 전시회의 경우 국가보훈부 장관이 전시장을 방문해 국내 참가사를 독려하고, 상이군경 보장구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솔루션 발굴에 힘을 쏟았다. 올해 REHACARE에는 40개국, 850개 이상의 글로벌 리딩 기업이 참가한다. 휠체어를 비롯한 모빌리티 제품부터 엑소스켈레톤 기술을 선도하는 ‘오토복’,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선라이즈 메디컬’, ‘메이라’, ‘퍼모빌’을 비롯해 보행기/휠체어 및 장기 돌봄 솔루션 전문 ‘인바케어’ 등, 재활 및 치료의 미래를 선도하는 재활 장비 및 스마트 기술 솔루션 발전상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국내 참가사의 경우 이동보조기기, 욕창방지, 시니어 헬스케어 솔루션, 간병 및 재활용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출품한다. 토도웍스, 캥스터즈, 세비앙, 페블아이, 영화의료기, 케어메이트, 리버텍, 영원메디칼, 메디엔비테크, 엔에스비에스까지 의료기기 및 재활실버용품 우수 기업 10개사 이상이 참가한다. 국내 기업은 우수한 제품과 기술 안정성을 바탕으로 제품 홍보 및 잠재 고객 발굴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전시장을 장악한 트렌드는 디지털 재활 및 재활 로봇공학 분야로, 엑소스켈레톤과 웨어러블 로봇/엑소수트 제품이 대거 출품했다. 재활 로봇시장은 적은 인력으로 더 빨리, 더욱 정밀한 재활 훈련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어 가파른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올해 전시회 역시 환자중심의 치료 모델 및 효과적인 재활과 외래 치료를 위한 다양한 보조장치 솔루션을 확인할 수 있다. REHACARE 전시회 참관 문의는 공식 한국대표부 라인메쎄에 할 수 있다.
- 2024-07-0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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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지붕으로, 적막을 전각 삼은 원주 법천사ㆍ거돈사 터
- 절만 절이랴. 터로만 남은 폐사지도 절이다. 전각이며 석물 따위는 이미 스러져 휑하지만 오히려 절의 본질이 느껴진다. 삼라만상은 변하고 변해 마침내 무(無)로 돌아간다. 제행무상이다. 절은 그걸 깨닫게 하기 위해 지은 수행 도량이다. 그렇다면 무위로 잠잠한 폐사지 역시 통째 경전이며 선방이다. 가장 적나라한 절집의 한 형태다. 흔히 폐허 이미지에서 야기되는 선입견을 가지고 폐사지를 보잘것없는 곳으로 오해한다. 빈 절터에선 마음을 덩달아 비울 수 있다. 깨끗이 비움으로써 되레 순수한 충만감을 맛볼 수 있는 역설적·철학적 공간이다. 문화유산 답사를 즐기는 이들 가운데 폐사지 답사를 최고로 치는 이들이 드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주시 부론면 야산 아래에 있는 법천사지는 폐사지의 우뚝한 본이다. 터의 넓이는 무려 5만여 평으로 드넓다. 신라 말에 창건돼 고려 중기에 법상종의 본산으로 전성기를 누린 법천사의 옛터다. 이곳에선 2001년부터 2022년까지 12회에 걸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건물지 20여 곳과 우물지, 계단지, 담장 유구와 석축, 연화대석, 금동불입상 등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 유물들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해 법천사의 본색과 영화를 가늠해보라. 고려의 중견 사찰다운 위용이 저절로 눈앞에 떠오른다. 비록 폐사지로 주저앉았지만 흔적만으로도 여전히 웅장하다. 하늘을 지붕으로 하고 적막을 전각으로 삼은 특유의 폐사지 도량이라 할까. 법천사는 고려시대에 대대적으로 중창된 거찰이었다. 특히 왕사를 거쳐 국사에 올랐던 지광국사 해린(984~1070)의 위력에 힘입어 사격을 널리 떨쳤다. 고려의 왕들은 지광을 극진히 우대했다. 생불로 대접했다. 이는 불교 국가 고려의 왕들이 지닌 불심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불교의 장악력을 왕권 강화에 활용하고자 한 정치적 계산의 소산이기도 했으리라. 문종은 아예 지광을 어가(御駕)에 태우고 다니며 법화경과 유식학 강의를 듣기도 했단다. 지광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소한 언설조차 도(道)의 강물로 간주해 경청했다지. 지광의 위세가 어떠했을지 눈으로 똑똑히 본 듯 환히 비친다. 법천사지엔 화려한 탑비 한 점이 고스란히 현존해 사람을 매혹한다. 사지 뒤편 산비탈에 있는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가 바로 그것. 형상을 빚고 문양을 새겨 넣은 석공들의 우거진 솜씨가 완연한 탑비다. 특히 비신의 좌우 측면에 조각한 쌍룡문은 살아 꿈틀거리는 듯 극히 사실적이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에 무수히 새겨진 임금 왕(王)자, 그리고 비석에 얹은 왕관 모양의 머릿돌은 왕실 권력의 비호를 받은 지광국사의 존엄성을 추앙한 신호일 터다. 비석 상부엔 고려인들의 유토피아였던 미륵정토, 즉 용화세계를 표현한 문양들을 깨알처럼 세밀하게 흩뿌렸다. 이는 지광국사를 용화세계의 선도자로 보는 대중적 정서를 고려한 장식으로 보인다. 그런데 법천사지가 보유한 걸작 성보가 더 있다.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이야말로 눈부신 석물이다. 이건 지광국사의 유골과 사리를 봉안한 부도다. 보통 부도탑은 원형이나 종형 형태, 그리고 전체적으로 단순한 구조를 보이지만 이 탑은 매우 다르다. 파격적인 사각형 구도를 근간으로 삼은 데다 탑의 모든 부위를 실로 미묘한 조각으로 채웠다. 조각 기법은 능란하기 그지없어 차라리 경악스럽다. 높이 6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 역시 탑의 장엄함을 돋우어 드높은 품격을 구현했다. 고려 승탑의 백미로 꼽힌다. 전무후무한 부도탑이다. 지광국사현묘탑은 원래 지광국사현묘탑비 바로 앞쪽에 있었다. 그런데 수난이 잦았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모리배들에 의해 서울로 빼돌려졌는가 하면, 오사카로 밀반출되기도 했다. 용케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경회루에 설치되는 등 10여 차례 위치 변동이 잇달았다. 한국전쟁 와중엔 폭격으로 심각하게 파손되기도 했다. 2015년까지 국립고궁박물관 뜰에 전시되었던 이 부도탑은 이후 대대적인 보수와 보존처리 작업을 완료하고, 지난해 112년 만에 고향 법천사지로 귀환했다. 올해 하반기면 완전히 복원된 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오감이 열리는 폐사지 서정 법천사지에서 6km쯤 떨어진 산자락에는 거돈사지가 있다. 통일신라 때 창건돼 고려 초기에 이름을 드날린 거돈사의 옛터다. 1만여 평에 이르는 터의 규모도, 간신히 남아 옛일을 두런거리는 석조 유물들의 위용도 만만치 않지만, 법천사지에 비해서는 조촐하다. 군살과 치레가 없는 미모처럼 말쑥한 풍경이 수평으로 펼쳐진다. 법천사지의 뭔가 동적인 분위기에 반해 이곳엔 정적인 운치가 감돈다. 어쩌면 거돈사지는 별유천지다. 세상의 소음과 어지러움이 침범할 수 없는 고요가 깊어서. 거돈사가 침몰한 시기는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이 폐사지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쑥 들어오는 건 삼층석탑이다. 천년을 버틴 노구다. 그러나 훼손된 구석이 드물어 의외롭다. 삼층석탑 뒤편엔 장대한 규모의 금당지가 있다. 금당지 중앙부엔 화강암으로 큼직하게 만든 불좌대가 불상을 잃은 채 자못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거돈사에 족적을 남긴 걸승은 단연 원공국사(930~1018)로, 사지의 외진 자리에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있다. 크고 당차고 수려한 탑비다. 세련된 문양의 행진도 볼 만하다. 다만 비석 크기에 비해 머릿돌이 너무 커 안정감은 다소 떨어진다. 탑비의 비문은 ‘해동공자’로 통한 대학자 최충이 지었다. 탑비 부근엔 원공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 있었다. 탑비와 짝을 이루는 승탑이다. 현재는 복제품이 놓여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조선 고적조사 약보고’엔 이런 구절이 있다. ‘원주에는 철불, 석불, 석탑이 흔해 빠지게 널려 있어 경주도 놀라 맨발로 도망갈 정도다.’ 일본인들이 원주 지역의 불교유산에 침을 흘렸던 걸 알 수 있다. 학자들은 물론 도굴꾼까지 원주를 노다지가 묻힌 곳으로 지목하고 여러 사찰의 석물 약탈에 나섰다. 그들은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을 빼돌렸듯이 이곳의 원공국사승묘탑을 훔쳐 서울로 가져갔다. 해방 뒤에야 회수된 원공국사승묘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리저리 거돈사지를 거닌다. 폐사지의 서정을 오감으로 느낀다. 발길에 밟히는 풀과 흙이 융단처럼 푸근하다. 여기에서 바라보이는 세상엔 숲이 절반이고, 구름을 매단 하늘이 절반이다. 절반의 적막감과 절반의 먹먹함이 칵테일처럼 뒤섞여 문득 몽유하는 기분을 자아내기도. 옛 스님들의 독경 소리도 문득 허공을 떠돌다 흩어지는 것 같고. 천년 전 스님들은 지금 어디에 머무나? 무명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 있나? 알 바 없다. 분명한 건 폐사지에 겨우 남은 유적들마저 종내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일 따름이다. 이상현 원주문화원 원장 ‘대중가요 박물관’ 건립 추진중 “원주 사람들은 배타성이 없다. 사람들끼리 잘 어울려 지내는 풍토가 정착됐다. 여느 도시보다 살기 좋은 곳이다.” 이상현 원주문화원 원장의 얘기다. 원주엔 이른바 ‘텃세’도 없단다. 이건 어디서 유래한 경향일까?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 성장한 도시라는 데 그 배경이 있다고 한다. 원주는 일찍부터 중앙선 원주역을 통해 드나드는 외지인들로 무척 북적인 지역이었다. 따라서 한껏 개방적인 풍조가 지역 구석구석에 만연했다. 현대 문화는 물론 전통문화의 파워도 만만치 않은 지역이다. “원주의 문화자산은 매우 풍성하다. 강원도에서 ‘문화의 도시’로 약진한 첫 도시가 원주다. 이를테면 1971년 군사도시라는 특수성을 살려 민·관·군 3자가 어우러져 펼친 ‘군도제’(軍都祭)는 도내 최초의 종합문화축제였다. 원주문화원이 주도한 행사다.” 원주시의 동의어는 치악산이 아닐까? 치악산이 원주 문화에 미친 영향은? “치악산은 구룡사와 상원사로 대변되는 불교 문화의 발흥지다.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치악산 남쪽 신림면의 신림 성황림(천연기념물)에선 예부터 이어진 성황제가 펼쳐진다. 원주의 빼어난 지성이었던 고 장일순(호 무위당) 선생은 치악산을 일컬어 ‘모든 생명을 품어주는 산’이라는 뜻을 담은 모월산(母月山)이라 했다. 이러한 치악산의 힘과 포용력이 원주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나아가 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근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부도탑의 걸작 지광국사현묘탑이 112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원주시 법천사지로 돌아왔다. 원주문화원의 역할이 컸다지? “지광국사현묘탑 환수는 국가 귀속 석조 문화재가 원래 있었던 지역으로 이관된 첫 사례로 굉장한 평가를 받았다. 많은 지자체의 관심을 모은 사안이었다. 원주문화원은 지광국사현묘탑 환수 운동 초기부터 시민 서명에 나서는 등 갖가지 역할을 도맡아 했다. 문화재 환수 기법을 배우기 위한 타 지자체 관계자들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 이 원장이 현재 추진하는 문화 프로그램 중 특별한 게 있으면 소개해달라. “원주시에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들어서면서 이주해온 인구가 크게 늘어났다. 이들에게 원주 문화를 알림으로써 유대감과 애향심을 갖게 하는 가족형 역사 문화 캠프인 ‘원주역사문화사랑캠프’를 운영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원주문화원이 처음 시작한 ‘부부의 날’ 기념 축제인 ‘원주부부축제’에 대한 반응도 매우 좋다.” 원주문화원 특유의 운영 방식이 있다면? “문화원에 있는 공연장, 전시실, 강의실 등을 문화원 회원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개방했다. 문화원에 소속된 문화 동아리들과 지역의 모든 문화 동아리들이 동참해 실력을 겨루는 ‘생활 동아리 감성축제’도 펼친다.” ‘대중가요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어떤 목표를 설정했는지? “대중가요계의 가수, 작곡가, 작사자에 관한 다양한 소재, 또는 소장가치 높은 자료를 모아 박물관을 만들 참이다. 독특한 문화 콘텐츠와 관광 콘텐츠를 운영해 원주 문화의 폭을 확장하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미 지난해에 사업설명회를 마쳤다. 지금은 유관기관, 한국가요작가협회와 함께 논의 중이다.”
- 2024-07-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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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이라고 꼭 외로운 건 아니야!” 고정관념 깨다
- ‘아마도, 여기’는 뉴스레터로 발행한 다섯 편의 블라인드 에세이, 두 번의 오프라인 사진전, 그리고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라는 책으로 구성한 프로젝트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노년’이라는 생애 시기를 조명한다.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브라질 사진작가 ‘카로우 셰지아크’(Carol Chediak)와 전시·출판 기획사 ‘턱괴는여자들’의 이야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카자지 베타니아’, ‘베타니아의 집’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양로시설에 요양 서비스가 더해진 시설이다. 거동이 가능한 이와 돌봄이 필요한 이가 함께 생활한다. 베타니아의 노인들은 건강 상태에 따라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일 없이 여생을 보낸다. 카로우 셰지아크는 뉴욕에서 요가 지도자 과정을 이수한 경력을 살려 베타니아의 자원봉사자로 5년간 요가 수업을 진행했다. 관계를 마주하다 셰지아크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항상 일찍 도착해 시설의 마당과 주방, 주민들의 방이 있는 입소동 복도를 거닐며 수업 참여를 독려하고, 지난 한 주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었다. 처음엔 굳게 닫혀 있던 방문들이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 열렸다. 1년 정도 수업을 하다 문득, 수업보다 주민들의 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 의식하고 나니 방에 놓인 장식, 향기와 분위기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셰지아크는 햇살이 침대 위에 앉은 노인의 어깨를 감싸는 장면을 목격했다. 98세의 최장수 입주민 이스테르였다. 장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한 번에 드러나는 방과 그 주인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 조심스레 촬영을 요청했다. 이스테르는 8개월을 살고 세상을 떠난 어린 딸의 사진을 들고 요청에 응했다. 이후 약 1년 동안 거의 매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충분한 신뢰와 친밀감이 느껴질 때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부탁하곤 했다. ‘이벤트’는 베타니아 거주민들의 삶에 소소한 재미가 됐다. 바우데미라, 사우바도르, 비바우두, 마리아 콩스탄자, 카스토리나 등의 노인들은 먼저 셰지아크를 초대했고, 각자의 방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쇠창살이 달린 창과 침대, 선반 등 똑같은 가구가 놓여 있지만, 창가에 조화를 놓거나 직접 만든 인형들을 앉히고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을 잔뜩 진열해두기도 했다. 성격이나 취향으로 만들어진 공간의 고유한 분위기는 사진에 그대로 드러났다. 침대에 앉아 굽은 허리를 최대한 꼿꼿하게 펴거나, 삶에서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을 꼭 쥐는 등 제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를 취했다. 노년을 보내는 이들의 다양성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아마도, 여기’라는 이름으로 엮은 사진들은 원래 전시를 목적으로 촬영한 것이 아니다. 2012년 말 무엇이 포착됐는지 확인해보고자 초상들을 출력했다. 사진들을 보는 순간 그는 스스로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셰지아크는 사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노인들은 사진을 받아 들고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놀라거나, 어색함에 괜히 친구를 놀리고, 고마움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인생의 역사 속 서로 몇 달 지난 후 셰지아크의 선물은 방의 독특한 장식품이자 필수 요소가 되었다. 노인들이 초상을 배치한 모습을 기록하고자 새로운 사진을 찍었다. 이 모든 과정은 서로의 삶에 오래 남을 추억이 됐을 테다. 2014년 양로시설이 리모델링으로 인해 폐쇄되고 베타니아 주민들이 임시 주택으로 이주하면서 요가 수업은 끝이 났다. 셰지아크는 노인들과 형성한 관계가 단순히 작품의 소재만으로 여겨지지 않길 소망한다. 사진은 사회에서 지워지길 기다리던 노인들의 삶과 세계를 존중하고,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곳을 비추는 매개체다. 그는 “이 사진들은 그들의 존재를 존경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집단적 역사의 일부분을 드러내는 독특한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라며 “긴 시간 동안 함께 만들어낸 관계를 바탕으로 한 무형의 가치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마도, 여기’ 사진 연작은 과거와 현재, 젊은이와 노인, 그리고 다국적 사람들이 교차하는 지역적 특성을 지닌 공간 가배도 시청점에서 선보인다. 커피 한잔과 함께 멀게만 느껴졌던 노년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2024-07-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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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생활로 무더위 탈출”…7월 문화소식
- ●Exhibition ◇한국 근현대 자수 :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일정 8월 4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9세기 말 이후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 상황과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한국 자수를 조명하는 전시다. 근현대 자수, 회화, 자수본 170여 점, 아카이브 50여 점이 출품됐으며, 전시는 4부로 구성됐다. 1부 ‘백번 단련한 바늘로 수놓고’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제작된 ‘전통 자수’를 소개한다. 생활 자수, 복식 자수, 병풍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2부 ‘그림 갓흔 자수’는 20세기 초 미술공예로 거듭난 자수 실천의 변화를 살펴본다. 일본 ‘여자미술전문학교’(이하 조시비(女子美)) 유학생들을 통해 자수가 전파됐다. 3부 ‘우주를 수건으로 삼고’에서는 광복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 국내 최초로 자수과가 설치되는 등 조시비 자수의 영향에서 벗어나 성장한 한국 자수의 면모를 살핀다. 4부 ‘전통미의 현대화’에서는 한국전쟁 후 자수가 근대화·산업화 시대에 산업공예로, 그리고 보존·계승해야 할 전통공예로 부각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자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을 촉발하고, 자수가 지닌 동시대적 의미를 미술사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스튜디오 지브리-타카하타이사오전 일정 8월 3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애니메이션 거장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에 관한 전시다. 그는 1970년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등을 제작·연출했으며,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 후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가구야 공주 이야기’ 등을 만들었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그의 자필 제작 노트와 스토리보드, 레이아웃과 콘티 등 1300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과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전시 관계자는 “애니메이션 마니아뿐 아니라 작품을 보고 자란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Book ◇67년생 김영수와 02년생 이보람의 같은 장소 다른 추억(김찬휘, 김형진, 정치영·인라우드) 대한민국의 1970년대 과거와 2020년대 현대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과거 모습은 1971년에 출간된 고(故) 조성봉 선생의 ‘이것이 한국이다’라는 사진집의 사진을 도판 작업한 것이다. 현대 사진은 콘텐츠 무상공유 운동을 펼치고 있는 ‘셀수스협동조합’의 조합원이자 이 책의 저자인 김찬휘, 김형진, 정치영이 한국을 누비며 찍은 사진들이다. 그들은 과거 사진의 구도와 최대한 비슷하게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으며, 역사·정치·경제·문화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흥미를 유발한다. 책은 총 5장의 카테고리로 나뉜다. 첫 번째는 덕수궁 돌담길에서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과거와 현대의 모습이 크게 바뀌지 않은 장소들로 구성했다. 두 번째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간직한 곳을 조명했다. 인천 어시장, 부산 광복동 등이다. 세 번째는 서울 삼일빌딩, 세종대로 사거리 등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거나 바뀌어, 마치 타임슬립하는 듯한 흐름으로 구성했다. 네 번째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수원 팔달문 등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문화재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 장은 더 이상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거나 과거 속으로 사라진 풍경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서울역 고가도로,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 등 추억의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은퇴 후에는 재미있게 살기로 결심했다(서병철·두드림미디어) 30년 직장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연구소를 설립한 저자는 39가지 준비법을 소개한다. 일, 재미, 인간관계, 건강수명, 경제력 5개 영역을 포함했다. ◇어쩌죠? 사는 게 점점 재밌어져요!(김옥란·미다스북스) 중년의 저자는 스스로를 ‘즐거운 단독자’라고 표현하며 ‘나 혼자 폼 나게 산다’고 말한다. 그의 책, 그림, 사랑으로 가득한 일상은 긍정 에너지를 전한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정덕현·페이지2북스) 대중문화평론가인 저자가 드라마 속 45개의 명대사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에세이북이다. 김은숙·박지은 등 유명 작가들이 추천사를 남겼다. ●Stage ◇젠틀맨스 가이드 일정 7월 6일 ~ 10월 20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김동연 출연 송원근, 김범, 손우현, 정상훈, 정문성, 이규형, 안세하 등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오는 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는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가난한 청년 몬티 나바로가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후계자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과정을 그린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줄거리, 아름다운 음악을 인정받아 토니어워즈, 드라마데스크어워즈, 외부비평가상 등을 휩쓸었다. 주인공 몬티 나바로 역은 송원근, 김범, 손우현이 맡았으며, 1인 9역을 소화하는 다이스퀴스 역에는 정상훈, 정문성, 이규형, 안세하가 캐스팅됐다. 몬티 나바로의 연인 시벨라 홀워드 역은 허혜진, 류인아가, 몬티 나바로를 사랑하게 되는 다이스퀴스 가문의 피비 다이스퀴스 역은 김아선, 이지수가 함께한다. ◇맥베스 일정 7월 13일 ~ 8월 18일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연출 양정웅 출연 황정민, 김소진, 송일국, 송영창, 남윤호, 홍성원 등 배우 황정민이 ‘리처드 3세’ 이후 2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듣고 국왕을 살해한 뒤 서서히 타락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맥베스 역을 맡은 황정민은 “제게 연극 무대는 힐링하는 시간이자 공간”이라면서 “‘맥베스’ 원작이 수많은 작품으로 오마주·재창작됐는데, 저도 무대 위에서 예술하는 배우로서 꼭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맥베스가 왕이 되도록 부추기는 아내 레이디 맥베스 역은 김소진이 연기하며, 맥베스의 부관이자 동료 뱅코우 역에는 송일국이 캐스팅됐다. ◇베르사유의 장미 일정 7월 16일 ~ 10월 13일 장소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왕용범 출연 옥주현, 김지우, 정유지, 이해준, 김성식, 고은성 등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가 역사적인 초연 무대를 갖는다.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은 자유, 사랑, 인간애를 프랑스혁명이라는 장중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담아낸다. 앙투아네트를 호위하는 왕실 근위대 장교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역은 옥주현, 김지우, 정유지가 연기한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오스칼을 향한 마음을 숨긴 채 그녀를 지키는 ‘앙드레 그랑디에’ 역은 이해준, 김성식, 고은성이 맡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4-07-0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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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상흔과 평화 느끼는 하루, 관광명소로 거듭난 김포
- 그토록 노래하던 벚꽃도, 진달래도 바람에 날려갔다. 푸릇푸릇하게 숲을 이루기 시작한 초여름을 걷는다. 그 길을 따라 높은 산 전망대 망원경을 통해 애타는 그리움을 보았다. 산과 강과 철책이 어우러진 이 땅의 아름다운 길 위엔 평화를 염원하는 발걸음이 이어진다. 분단의 현장을 고스란히 밟으며 가슴 시린 역사를 살피는 유월의 사뭇 다른 마음을 기억하려 한다. 자연 그대로의 애기봉평화생태공원 구불구불 비탈진 산길을 거쳐 당도한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최북단인데도 말 그대로 평화롭다. 한반도 유일의 남북 공동이용수역에 위치한 평화와 화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남북 접경지역의 154m 쑥갓머리산이라 불리던 애기봉은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건축물과 자연생태가 잘 어우러진다. 얼핏 갓난아기를 떠올릴 수 있는 애기봉이라는 이름은 평안감사와 기녀 애기의 애틋한 설화에서 온 말이다. 피난길에 오랑캐에게 붙잡혀간 감사를 그리워하던 애기가 ‘님이 잘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며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애기의 한이 마치 실향민의 한과 같다 하여 이곳에 애기봉(愛妓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 먼저 평화생태전시관을 둘러보자. 전시관을 둘러싼 생태 조성과 조각 전시는 작품마다 평화가 가진 다양한 의미를 보여준다. 실내 전시 공간의 조강 생태 디오라마와 조형물들 역시 볼 만하다. 상주하는 해설사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으로 사전 지식을 얻고 오른다면 강 건너 북녘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다르다. 평화, 생태, 미래를 주제로 한 3개의 평화생태전시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전망도 시원하다. 물길 저편의 남쪽과 북쪽의 경계가 모호하다. 38선을 중심으로 한 DMZ는 분단 70년이 지나면서 정확한 구분이 없어졌다고 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조강과 전시관 바닥 및 벽에 그려진 위치도를 가리키며 전하는 해설이 생생하다. 한강 하류 끝의 물줄기와 김포와 강화, 북쪽의 개풍군이 뒤엉킨 모습을 눈앞에서 본다. 전시 미디어아트와 VR 체험을 통해 개성으로 떠나는 가상현실도 이곳에서는 유난히 실감 난다. 평화생태공원의 두 번째 건물인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흔들다리를 건넌다. 산골짜기에 길게 이어져서 고개를 돌리면 온통 울창한 숲이다. 흔들다리 끄트머리쯤부터 지그재그형 탐방로가 완만하게 이어진다. 빙글빙글 돌아 걸으면서 초여름의 풍성한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다. 1953년 휴전 이후 아무도 오갈 수 없는 고립 지역이 자연스럽게 생태의 보고가 되었으니 천혜의 생태공원인 셈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그저 건넛마을이다.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린 날이었는데도 고배율 망원경을 통해 북녘땅이 선명히 보인다. 수도권에서 북한의 최전방을 볼 수 있다니. 1.4km 거리에 그들이 살고 있었다. 빌라 같은 공동주택이 새것 같은 느낌으로 마을을 이룬 북한 땅이 거기 있다. 주민들의 사는 모습이 마냥 친근하다. 돛배를 젓거나 수영을 해서라도 단숨에 건널 수 있는 코앞인데도 구경꾼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물길을 가운데 두고 김포와 강화도, 파주시가 개풍군을 마주한 채로 사는 중이다. 남북의 가운데로 흐르는 조강은 임진강, 한강과 만나 서해로 흐른다. 그 물줄기를 조강이라고 하는데 큰 강,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이 담겼다. 물길 사이로 마주 보는 북쪽 건넛마을과 우리의 분단 현실을 청정의 생태공원에서 평화롭게 둘러볼 수 있으니 최고의 안보 여행지가 아닌가 싶다.(방문 시 신분증 지참과 인터넷 예약 필수) 숲속 문화예술 여행, 김포 국제조각공원을 걷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을 내려오면서 들를 수 있는 김포 국제조각공원은 문수산 숲속이 작품 전시장이다. 통일을 테마로 만들어진 세계 유일의 자연 속 전시장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산속에 풍덩 빠져 자연 지형에 어울리게 전시된 예술작품 한 점씩 찾아보는 숲속 문화예술 여행을 한다. 미로 같은 숲길을 걸으면서 전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서 산책과 힐링을 동시에 맛본다. 솔향기 번지는 군하숲길 주변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작품들을 둘러본다면 온전히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 전시는 연중무휴다. 덕포진의 손돌목 산책길과 짭조름한 대명포구 사적 제292호 덕포진은 강화해협을 마주하는 김포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 서해에서 강화만을 거쳐 한양으로 진입하는 길목의 바닷길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미국과 프랑스 함대와 맞서 싸웠던 격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기서 발굴 출토된 포와 포탄, 조선시대 상평통보와 주춧돌 등은 오르기 전 덕포진 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현재 덕포진은 3개의 포대와 그 끄트머리에서 파수청터가 발굴되었다. 이어서 강화해협이 건너다보이는 마지막 지점에 손돌묘가 보인다. 강화해협 중에서 가장 폭이 좁고 물살이 거센 지형을 이용한 천혜의 요새 손돌목이다. 바다가 보이는 수려한 풍광 사이로 수백 년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당시 포격전이 펼쳐졌던 포대 중 첫 번째 포대가 가장 길고 언덕의 곡선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방풍림 소나무 아래에서는 수백 년 역사를 더듬듯 바다를 내다보며 걷다가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덕포진은 평화둘레길 1코스와 염하강 철책길 순환 코스로 연결된다. 이윽고 포대를 지나고 손돌묘에 이르면 눈앞에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손돌은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난 갈 때 물길을 안내하던 중 세찬 물살에 겁이 난 왕의 오해로 죽임을 당한 뱃사공이다. 죽기 전 손돌은 바가지를 물에 띄우며 ‘이 바가지를 따라가면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죽었다. 바다를 무사히 건넌 임금은 자신의 성급한 오해로 죽은 손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히 장사를 치러주었다고 한다. 후에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쯤이면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 사람들은 손돌바람이라 했고, 이 무렵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불렀다. 지금은 손돌의 배가 지나던 물길에 고깃배가 유유히 흘러간다. 바다 건너편으로 강화의 광성보와 용두돈대가 보인다. 손돌묘 옆으로는 덕포진 둘레길을 만난다. 평화누리길 1코스를 알리는 대명포구의 조형물을 지나 시작되는 염하강 철책길 순환 코스가 손돌묘까지 와서 부래도, 덕포마을, 덕포진, 대명항 코스의 6.5km를 걸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 철책길과 절반 이상 겹치는 순환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으면 철책 너머 보이는 김포 들녘과 바다 풍광에 가슴이 탁 트인다. 우리의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이 휴식을 주고 둘레길 코스가 되어 사람들이 오간다. 더불어 마음 가득 평화를 염원하게 된다. 오래된 숲의 위로, 장릉 벚꽃과 진달래꽃의 반영이 예쁘던 김포 장릉 연못에 이제 오래된 나무들이 연둣빛으로 비친다. 김포 장릉은 조선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추존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 구 씨의 능이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입장 시간이 오전 7시부터여서 이른 아침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역사 속 장소지만 일상에서 찾아가 차분히 힐링을 얻는 공간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봄이면 목련과 벚꽃이 눈부시다. 초록으로 울창한 여름을 지나 가을엔 오래된 숲의 위로가 마음을 토닥인다. 긴 세월을 담은 수목들 사이를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단청 없이 소박한 재실 앞의 연지는 묘역과 함께 이루어진 긴 세월을 담고 있다. 새롭게 단장된 장릉 역사문화관에서는 정조 임금이 직접 지은 시도 감상할 수 있어서 뜻깊다. 복잡하고 소란한 세상을 뒤로하고 하루쯤 깊이 잠겨보아도 좋은 곳. 무해한 시간이다.
- 2024-06-2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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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안한 노후 위한 2024 홈케어·재활·복지전시회 성료
- 최근 한국 사회의 초고령화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행전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앞질렀다. 독거노인 또한 늘고 있다. 1인 세대 가운데 70대 이상 비율이 가장 높다. 혼자 사는 사람 5명 중 1명은 노인인 셈이다. 이제 ‘안전한 나이 듦’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됐다. 나이 들수록 신체적, 심리적 원인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처럼 고령화 사회에 따른 국민의 노후 생활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건강한 삶, 행복한 인생’을 주제로 홈케어 재활 복지전시회(RehaHomecare 2024, 레하홈케어)가 지난 6월 4일(화)부터 6일(목)까지 3일간 서울 코엑스 전시장 1층 B홀에서 열렸다. 레하홈케어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한국의료기기유통협회, 위엑스포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무역협회,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한노인회, 대한간호협회, 국립재활원 등 복지 관련 기관과 단체들이 후원한다. 이번 전시회는 건강을 장애인·노인 등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는 이들의 환경을 개선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교원구몬, 로보케어, 유한건강생활, 인바디, KB손해보험, 실버에듀넷, 효돌, 휴럼 등 185개 기관과 기업들이 참여해 그동안 개발한 재활·복지 관련 제품과 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였다. 국내·외 시장 확대를 위한 유통·바이어, 여러 전문가가 참가 업체를 대상으로 판로개척 등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상담회와 분야별 맞춤형 투어 프로그램 또한 진행됐다. 전시 품목으로는 체온계·혈압계·체성분분석기 등 가정용 의료기기, 매트리스·욕창 방지 제품·수면 보조용품 등 침대 관련 기구, 이동식 욕조·높낮이 조절 세면대·이동식 샤워기 등 목욕 기구, 배변용품·배뇨 감지기·배변용 안전 손잡이 등 화장실 기구, 휠체어 동력장치 및 악세서리·보행 보조차·워킹 보조벨트 등 보행 기구, 차량용 리프트·차량용 경사로·휠체어 고정 장치 등 차량 관련 기구와 같이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용품들이 구성됐다. 요양원이나 병원 등에서 수요가 있던 환자식을 넘어 맛과 영양을 잡은 저당식, 영양 강화식 등의 케어푸드·푸드 배송 서비스·식사 보조기기·맞춤형 식단 서비스처럼 식사 관련 용품 및 서비스를 전시해 식품 업계의 고령화 대비 흐름까지 짚었다. 이 외에도 배회감지기·돌봄 로봇·교육용 교구 및 소프트웨어 등 생활 관련 기자재나 주택용 리프트·안전 손잡이·IoT 기기처럼 주택 환경을 개선하는 스마트 시스템이 소개됐다. 특히 건강보험고령친화연구센터에서는 복지용구 체험기회 확대를 위해 ‘찾아가는 전시체험관’을 운영했다. 침실이나 욕실 등 실제 가정의 모습을 유사하게 구성한 특수차량을 활용해 박람회, 지역행사, 도서산간 지역 등을 방문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복지 용구를 체험하게끔 돕겠다는 취지다. 70여 가지 용품의 올바른 사용법을 전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정보도 제공한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이 고령자의 신체 수준을 만들어주는 장비를 착용한 뒤 계단을 오르거나 침대에 스스로 누워보고, 휠체어를 타는 등 일상생활을 체험했다. 더불어 효돌, 로보케어 등 인지훈련 돌봄 로봇 개발 기업 부스에 마련된 체험 공간에서 직접 로봇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하고 인바디 등 헬스케어 기업 부스에서 체성분을 측정하거나 재활 장비를 통해 경직됐던 근육을 직접 수축, 이완시켜 보기도 했다. 한편, 최신 산업 동향과 전망을 제시해 시설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문 세미나도 열렸다. 고품격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발행하는 이투데이피엔씨가 올바른 시니어 문화 형성과 실버 산업계의 발전을 위해 진행한 ‘브라보 시니어 프렌즈 론칭 기념 세미나’를 비롯,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 중증자 돌봄을 위한 새로운 제안’, ‘장애인·노인 자립생활을 위한 보조기기실용화연구개발사업’, ‘메디푸드산업의 현재와 미래’, ‘스파연계재활헬스케어 제품의 2024년 국제 표준화 및 인증 획득 방안’, ‘2024 시니어 트렌드 세미나’ 등 다양하게 꾸려졌다.
- 2024-06-1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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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개 넘는 낡은 라디오가 울리는 추억 하모니
-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는 ‘모던춘지’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다.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것이 무엇일까 싶어 문을 활짝 열어보니 라디오 1000여 대가 얼굴을 드러낸다. 나이도 국적도 달라 보이는 라디오가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라디오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없는데, 이곳 주인 김형호 기자는 “그냥 라디오가 좋아서 모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전시나 수익의 목적이 아니라 취미 수집의 결과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덕후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이 붐박스는 마돈나가 ‘Hung-Up’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공연에서 갖고 나온 모델이에요. 겉모습만 봐도 화려하죠.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캐릭터와 성향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건 VE301이라는 굉장히 오래된 라디오입니다. 히틀러는 이 라디오를 국민에게 보급해 연설을 내보내는 등 선동하는 용도로 사용했죠.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히틀러의 마지막 연설이 담긴 LP판도 공수해와 놓았답니다. 어느 날 여길 방문한 독일 분이 보고는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김형호 기자는 모던춘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라디오에 대해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가장 오래된 라디오가 가장 비싸냐’는 식의 질문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다고 꼽았다. 그의 답은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비싼 게 아니다. 당시 어떤 가치를 구현했느냐가 중요하다”였다. 보통은 라디오의 외형이나 금액 등을 궁금해하지만, 그는 라디오 뒤에 숨은 스토리에 주목한다. 라디오가 가진 역사, 가치, 그리고 라디오 주인과 그의 사연. 그 모든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있다. 라디오를 수집한 지 약 15년. 김형호 기자도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라디오 스토리를 갖고 있다. 어부인 아버지는 매일 아침 라디오 방송으로 날씨를 확인했고, 어린 소년은 늦은 밤 아버지의 손때 묻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을 들었다. 파도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라디오의 음색은 소년의 감수성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이후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소년은 TV에 나오는 지역 방송국 기자가 됐다. 그러나 늘 마음속 한편에는 라디오가 자리한 터. 그리하여 라디오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라디오 안식처, 모던춘지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필연인 순간들이 있다. 김형호 기자는 결혼할 때 아내로부터 TV 대신 티볼리 라디오를 혼수품으로 받았다. 라디오를 애지중지하며 매일 방송을 청취했던 그는 어느 날 1970년대 독일에서 나온 라디오 소리를 듣게 됐단다. 티볼리 라디오보다 30년 정도 일찍 만들어진 것인데, 놀랍게도 소리의 차이는 엄청났다고. 김 기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여기에 그의 지적 호기심이 더해지면서 라디오 수집과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날이 갈수록 김형호 기자의 집에 쌓이는 라디오도 늘어났다. 문제는 보관이었다. 다행히 2017년 삼척에서 강릉으로 이사 가면서 라디오 보관 공간이 생겼다. 단독주택인데 지하실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이번에는 습기가 문제였다. 라디오가 상할까 봐 걱정하던 가운데, 김 기자는 대형 사고를 터뜨리고 말았다. 라디오 전문 사이트에서 한꺼번에 내놓은 라디오 100대를 집에 데려온 것. 더 이상 라디오를 지하실에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즈음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는 모던춘지가 지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어머니를 보내드리면서, 죽음이라는 게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물건의 의미도 생각하게 됐죠. 장례 후 자식들이 어머니 집 정리를 했는데,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의 가치를 모르니 버릴 수밖에 없어 너무 죄송스럽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라디오에 대한 가치를 정립해놓지 않으면 이 물건들이 쓰레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공간을 지었어요.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위로받고 싶기도 했죠. 모던춘지의 ‘춘지’는 어머님 성함이에요. 여기 있으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죠.” 2019년 모던춘지를 지을 당시 건축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다. 그는 삼척 신혼집 아파트를 팔고 보험도 해지해 1억 원이 넘는 돈을 마련했다. 라디오 수집에 이어 창고 만들기까지, 취미활동으로 큰돈을 소비한 김형호 기자는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는 “평일에는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여기에서 노는 게 좋다. 이런 놀이터 같은 공간을 갖는 것이 어른의 로망 중 하나인데, 아내가 이해해줘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호주에 사는 친형과 라디오 수집을 같이 시작했어요. 사실 호주에는 여기보다 더 많은 라디오가 있답니다. 4년 전쯤 형과 라디오 수집을 위해 호주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라디오의 의미, 사연 등을 인터뷰한 것을 영상으로 남겨놓았어요. 그걸 편집해 만든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2월 13일 세계 라디오의 날에 여기에서 가졌죠. 라디오에 대해 생각하고 얘기를 나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종종 토론회, 전시회를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는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가서 라디오를 기반으로 하는 복합 문화 공간을 형성하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습니다.” 라디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유리관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어 전극을 넣은 진공관 라디오다. 두 번째는 1954년 미국에서 발명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다. 반도체 부품이 쓰이면서 파손 위험이 줄어들었고, 오늘날 휴대용 라디오도 탄생했다. 그렇다면 라디오 역사계에 있어 혁명적인 일은 무엇이었을까. 김형호 기자는 붐박스(Boombox) 탄생이라고 꼽았다. 붐박스는 트랜지스터에 속하며, 손잡이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힙합과 브레이크댄스의 영향으로 1980~199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다. “저는 붐박스를 문화가 접목된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흑인들이 랩 배틀을 할 때 비트 음악이 필요하잖아요. 그때 휴대 가능한 붐박스가 큰 역할을 했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에 청춘들한테 인기를 끌었어요. 그래서 붐박스는 중년들에게 향수의 물건인데,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죠. 저는 붐박스만 100개 넘게 모았어요. 전 세계적으로 붐박스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국내에서는 이렇게 모은 사람이 없어요. 붐박스를 계속 수집하고 연구해서 어떤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래된 라디오 생존법 김형호 기자는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볼 때, 시대나 상황에 맞지 않는 라디오가 소품으로 나와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주인공이 2000년대에 나온 노트북을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얼마나 어색한가. 그러나 컴퓨터와 달리 라디오는 변천사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소품이 잘못 쓰여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김 기자는 “라디오 전문가로서 자문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도 가끔 비공식적으로 소품 자문 요청을 받는다. 작품의 배경, 인물의 환경 등을 분석해 답을 찾는다. 작은 디테일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라디오가 오래된 물건 같지만 사실 역사가 100년이 채 안 된 물건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1980년대 이전의 라디오 스토리를 잘 모르죠. 저도 수집하면서 진공관 라디오를 처음 접했으니까요. 라디오 연구와 자문을 통해 시대별로 만들어진 라디오가 다르다는 점과, 그 안에서 읽어야 하는 코드는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라디오의 가치를 찾아주고 싶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아는 사람 집에 오래된 라디오가 있었는데, 저는 보자마자 그 라디오의 가치를 알아봤어요. 그게 지금 영월 라디오스타 박물관에 전시돼 있어요. 박물관 전시 주제와 맞는 라디오라고 생각해, 제가 중간에서 가치에 대해 보증을 섰죠. 자신이 갖고 있던 물건이 어느 날 박물관에 전시되다니, 얼마나 놀랍고 뿌듯한 일인가요.” 현재는 ‘옛 물건’, ‘서민형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과거에는 라디오가 고급 물건으로 대접받았다. 1970년대만 해도 라디오 한 대 가격은 100만 원, 현재 가치로 보면 100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TV가 보편화되면서 라디오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수요가 줄어들자 제조사에서도 예전만큼 좋은 부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라디오는 저품질화되고, 대중의 인식 또한 저하되고 말았다. 김형호 기자가 가장 아쉬워하는 지점이다. “오늘날 라디오에 손이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소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에요. 부품의 차이가 크죠. 쉽게 얘기하면 과거에는 스피커를 쇠와 자석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비싸다는 이유로 자석을 쓰지 않아요. 그래서 과거 라디오와 같은 단단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겁니다. 저는 소리가 좋아지면 사람들이 라디오를 들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고 있죠.” 김형호 기자는 라디오 수리도 직접 한다. 회사의 필요에 따라 무선설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그 덕에 기초 지식을 갖게 됐다. 그리고 수백 대의 라디오를 직접 고쳐보며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오래된 라디오의 전원이 켜지게 하고,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 방송이 스피커에서 나오게 한다. 블루투스 스피커 장치 연결로 휴대폰 음악 듣기도 가능하다. 세상의 변화는 때로 아주 사소한 움직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좋은 소리를 좇아 라디오를 모으고, 수명 다한 라디오를 살려내기까지 하는 김형호 기자. 그 낭만의 나비효과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라디오가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현재 사람들은 라디오를 방송으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물건으로서 다가가면 또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제가 만든 것처럼 오래된 라디오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활용할 수도 있죠. 오래된 라디오의 소리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 방송 진행자가 가까이 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일반 전자기기로 노래를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오래됐다고 무조건 낡은 물건이 아닙니다. 숨을 불어넣어 주면 물건의 가치는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 2024-06-1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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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이 되도록 몰랐던 나의 여행 성향, 파악하는 3가지 방법
-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동행이 있다면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여행관이 맞지 않으면 ‘갈 때는 같이, 올 때는 따로’가 된다는 괴담(?)도 들린다.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나와 동행의 성향·취향을 계획에 적절히 반영한 뒤 실행해보자. 여행 말미에는 ‘잘 놀았다!’는 말이 절로 나올지 모른다. 결국 여행의 목적은 ‘환기’다. 나를 위협하는 그림자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 김영하 작가는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기왕 어딘가 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미리 짜인 틀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여행보다 내 취향과 상황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자유여행은 어떨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막막할 때 참고할 만한 몇 가지가 있다. 너, 내 동료가 되라! 여행 궁합 보기 가족여행에서 하지 말아야 할 십계명이 화제다. ‘부모님 버전’은 ‘아직 멀었냐, 음식이 달다, 음식이 짜다, 겨우 이거 보러 왔냐, 조식 이게 다냐, 돈 아깝다, 이 돈이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낫다, 이거 무슨 맛으로 먹냐, 이거 한국 돈으로 얼마냐, 물이 제일 맛있다’가 포함됐다. ‘자녀 버전’은 ‘똑같은 거 물어본다고 짜증 내기, 1시간 이상 외출 준비하기, 하루 종일 휴대전화 하기, 30분 이상 맛집 줄서기, 음식 사진 다 찍은 다음 먹기, 못 알아듣는 줄임말 쓰기, 사진 다시 찍어줘, 조금만 더 가면 돼, 다시는 같이 여행 안 올 거야, 엄마는 몰라도 돼’가 꼽혔다. 평소 잘 통하는 사이여도 여행지에서 생각지 못한 문제로 부딪힐 수 있다. 따라서 여행 전 서로의 성향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합의점을 찾으며 맞춰갈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동행이 없다고 해도 본인의 스타일을 파악해두면 도움이 된다. Plus Check 여행 성향 체크리스트 겉핥기는 그만, 맞춤 테마 찾기 # 책방에서 얻는 감성: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명소를 둘러보며 ‘도장 깨기’(유명한 도장을 찾아가 그곳의 실력자들을 꺾는 것처럼, 특정 분야에서 어려운 장벽이나 기록 따위를 넘는 일) 하듯 다녀본 경험이 있는가? 몇 개국 몇 도시를 다녀왔는지 세어보는 재미도 있지만, 낯선 공간과 마음을 나누며 고유의 기억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나에게 맞는 테마를 잡아보길 권한다. 아직 목적지와 테마를 선정하지 못했다 해도 괜찮다. 여행 관련 서적을 소개하는 책방을 방문해 아이디어를 얻어보자. 뮤지컬 주인공의 대사 한 줄에 감명받아 해당 장소를 뒤따르는 이야기, 현지인들의 생생한 삶을 포착할 수 있는 마트와 슈퍼마켓 중심으로 돌아다니며 맛있는 상품을 발견하는 이야기, 유명 화가에 대한 단서를 수집하러 무작정 떠난 이야기 등 저마다의 가치를 찾는 과정을 엿보다 보면 어느새 묻어뒀던 로망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걸 느낄 테다. 고른 책을 한 손에 들고 여행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 Plus Check 가볼 만한 여행 책방(자세한 영업시간은 홈페이지 확인) 책방 여행마을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7길 57 지층. 월·목 정기 휴무. 여행 관련 독립출판물과 여행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책방지기는 왕초보 여행 짜기, 맥주 마시며 여행 수다, 부루마블로 여행하기 등 관련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책을 만들고 싶은 이에게 한컴으로 책 만들기 수업, 꾸준히 글쓰기 모임을 통해 독립출판물 제작을 돕기도 한다. 캠핑 장비로 분위기를 낸 공간이 돋보인다. 책크인 :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29안길 29 2층. 영업일은 매달 상이. 매달 열흘간 여행을 떠날 정도로 진심인 책방지기는 여행사도 운영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상적인 카페 혹은 근사한 맛의 커피를 만나면 원두를 구매하고 돌아와 ‘이달의 원두’로 사용한다. 매달 세계 곳곳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셈이다. 와인도 판매한다. 공간인흑석 : 서울시 동작구 흑석로5길 94, 1층. 예약제 북카페. 시즌별·나라별로 새로 출간된 여행책을 전시 중이다. 러시아, 중국, 몽골, 스웨덴, 독일 등 해외 서적도 보유하고 있다. 2~4층은 게스트하우스 및 임대주택, 옥상에는 셀프 사진관이 마련돼 있다. 스페인책방 : 서울시 중구 퇴계로36길 29 기남빌딩 302호. 일요일 정기 휴무. 스페인 사진집과 여행 에세이를 꾸준히 펴내던 독립출판 제작자들이 연 책방. 스페인어 문화권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한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책과 원서도 있다. 명확한 테마가 있는 장소라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거나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 AI가 안내하는 코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기 위해 일정을 짜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AI는 우리의 여행 코스를 구성해줄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원하는 방향과 인원수, 기간 등을 입력하거나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명소를 추천받을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오류가 조금씩 있고 면밀하지 않기 때문에 참고만 하거나, ‘AI의 말대로’ 떠나는 여행을 시도해보는 데 의의를 두자. Plus Check 참고 홈페이지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작은 목표 세우기 장소 위주로 계획을 짜기보다 나만의 목표를 정해 챌린지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우선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Plus Check 예시에 따른 추천 과제 인간관계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은 사람 : ‘여행 기간 타인에게 하루에 세 번 이상 연락하지 않기’, ‘일상과 관련 없는 현지인 친구 한 명 사귀기’, ‘한 시간씩 바닷가에서 멍때리기’ 루틴을 잃어 건강을 되찾고 싶은 사람 :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 ‘서핑·승마·스쿠버다이빙 등 레포츠 한 종목 배우기’, ‘간편식 끊기’, ‘7시간 이상 수면하기’ 나쁜 습관을 고치고 싶은 사람 : ‘동네 반경 5km 안에서 생활해보기’, ‘전자기기 없이 살기’,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최소한의 돈으로 살기’ 흔한 기념품보다 색다른 물건을 수집하고 싶은 사람 : ‘그 나라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향수 구매하기’(뿌릴 때마다 해당 장소를 떠올릴 수 있다), ‘여행지의 언어로 된 좋아하는 책 찾아보기’
- 2024-06-11 0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