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쁘셔요."
"그렇다고 빠지지는 마세요. 책임 못 져요."
며칠 전 남자 파트너와 홀딩을 하고 왈츠를 추는 중에 나눈 대화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은 필자가 춤을 꽤 잘 추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왈츠나 탱고는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밀착시키고 춤을 춰야 하니 뭔가 ‘썸’을 타지 않을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춤을 한번 배워보라 하고 싶다. 모든 일에 있어서 기본이 중요하다. 춤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이 쉽지 않다. 인터내셔널 왈츠는 루틴이 복잡해서 루틴 외우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춤추다 보면 자칫 자세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루틴대로 추려면 긴장해야 한다. 춤을 제대로 추는 사람은 춤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잡생각이 아예 불가능하다.
"인아야, 엄마 왈츠 열심히 배워서 왈츠 선생 할 거다."
"엄마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안 되거든. 엄마 몸치거든."
몇 년 전 딸에게 희망사항을 말했더니 단칼에 필자의 꿈을 날려버린다.
왈츠를 배운 지는 10년도 넘은 것 같다. 재직 시에는 송탄에 있는 국제대학교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다. 퇴직 후 집을 서울로 옮긴 뒤에는 서초문화원에서 3개월 수강한 뒤 신사동에 있는 샤리권 댄스 학원에서 3개월을 수강했다. 2년 전에는 선릉에 있는 더 댄스 스튜디오에서 몇 개월을 수강했고 양재에 있는 리세움에서도 3개월을 수강했다. 지금은 선릉에 있는 휴먼 서비스센터에서 6개월째 왈츠를 배우고 있다. 정리해보니 엄청 여러 곳에서 많은 세월 왈츠에 빠져 살아왔다. 그런데도 폼은 아직도 엉성하고 실력도 하품 수준이다. 필자는 왜 이렇게도 몸치일까?
"저는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이 지옥 같았어요."
그러자 왈츠 선생님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저는 너무 신났는데요."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못하면서 운동만 잘하는 애들을 무시했다. 그런데 정말 우수한 학생들이 체육도 잘한다는 것은 교사가 되어 알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본다든가 음악이나 영화감상을 즐기던 필자는 체육시간이 지옥 같았다. 특히 달리기는 딱 질색이었다. 그런 필자가 왈츠를 배우려고 한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니 스트레스도 있었다. 인터내셔널 왈츠는 A코스, B코스, C코스, 바리에이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도 A코스만 무한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왈츠를 꼭 배워야 하나?‘
몇 년 전이었다. 루틴을 외우지 못해 힘들어하던 피랒는 왈츠 수업을 가는 중에 문득 회의가 들었다. 지난 화요일 왈츠 수업 중에는 눈물까지 났다. 너무 못하는 자신에게 속이 상해서였다.
'발레를 할 때는 행복해서 눈물이 났었는데….'
'음지가 양지 된다고, 내가 춤 잘 추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될 줄이야.'
영화 '전쟁과 평화', '왕과 나', '사운드 오브 뮤직', '라스페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에서는 주인공들이 우아하게 왈츠를 추는 장면이 나온다. 필자의 목표는 영화에서처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나비처럼 우아하게 왈츠를 추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공주처럼 기품 있고 우아한 삶을 동경해왔던 필자가 가장 가슴 설레던 장면이 바로 멋진 왕자와 왈츠를 추는 장면이었다.
안 되는걸 기어코 하겠다고 왈츠에 집착하는 필자에게 얼마 전 딸애가 말했다.
"엄마 참 대단해. 나 같으면 두세 번 해보다가 안 되면 그만둘 텐데."
필자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그 꿈을 꼭 실현해보고 싶다. 언제 그런 날이 오려나? 아니 그런 날이 오기는 오는 건가?
날씨가 매우 차가워진 1월 10일 오전 코엑스 홀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진로교육 페스티벌의 개막식이 있었다.
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이 페스티벌은 교육부가 주최하고 17개 시도 교육청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주관하는데 학교와 마을의 여러 주체가 학생들의 진로개척 역량을 높이기 위해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네트워크 조성의 중요성에 따라 마련되었다.
‘온 마을이 함께하는 우리 아이들의 꿈’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큰 코엑스 홀의 행사장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수많은 진로에 관한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듯 너무나도 중요한 것임을 잘 알고 있지만, 주입식교육과 수행평가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문제에서 진로 탐색의 부재를 실감하는 부분이다.
행사 부스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 진로를 탐색할 기회가 많을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
개막식은 충남 공주의 석송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합주로 시작되었고 많은 내빈이 참석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나영선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염태영 수원시장의 축사가 이어졌는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아이들 스스로 흥미를 찾아가는 미래를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진로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혁신학교와 자유학기제 확대, 진로교육 집중 학년 학기제 안착, 아이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모두의 참여와 협력 속에서 진로개발역량을 더욱 튼튼히 키워주어야 하며 학생들이 참여하는 이런 진로교육프로그램이 살아있는 교육일 것이니 교육현장에서 꼭 필요하다는 실무자의 영상인터뷰도 있었다.
학교 교육과정에 스며드는 진로교육정책으로 학교 진로설계코칭 강화와 수요자 중심 진로교육 기반 구축, 미래를 탐색할 수 있는 다양한 진로체험기회제공으로 진로 탐색 활동 지원을 강화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에 창업 체험교육을 활성화한다고 했다.
삶의 경험과 지혜를 얻고 당당하게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응원하고 아이들의 진로, 희망찬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페스티벌은 주제마당, 교류마당, 체험마당, 창업 경진마당으로 구분되었다.
다양한 부스 중 특히 관심이 갔던 곳은 창업동아리 경진마당이었다.
진로교육 차원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육성된 전국의 60여 개 청소년 창업동아리가 총출동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젓가락이 서툰 동생이 파스타 먹는 걸 어려워하자 한 번에 감아 입에 넣을 수 있도록 개발한 ‘전동포크’가 흥미로웠는데 이 제품은 어르신이나 장애인에게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광 구명조끼도 관심이 갔다. 구명조끼에 GPS를 장착해 조난당한 위치를 알릴 수 있고 구명조끼에 열선을 설치하여 태양광 전지판으로 충전해 체온을 지켜주는 기능도 있다고 한다.
파라솔에 태양광을 설치한 아이디어작품도 있었다.
파라솔은 자외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동시에 햇볕을 많이 받게 된다.
파라솔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해 얻는 에너지로 전구나 휴대폰 충전을 할 수 있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60여 개나 되는 창업동아리 부스에서 각각 반짝이는 재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환하게 밝혀주는 것 같아 흐뭇했다.
진로교육페스티벌은 4차산업 혁명에 대응하는 인재육성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학교라는 고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꿈과 미래를 꿈꾸고 설계할 수 있는 진로교육의 장을 마련해 청소년에게 꿈을 키울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마을과 지역사회, 정부의 몫일 것이다.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인 청소년의 꿈을 진로교육의 장을 통해 더욱 튼튼히 키워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델!
시니어들에게 차별화된 자부심을 심어주는 명칭이 아닐까?
'나 이렇게 멋지다!'
패션쇼를 할 때 그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으로 빛난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모델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대다수 여성들의 로망이다. 요즘은 남성들도 많은 관심이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는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은퇴 후 재정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를 강력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은 없을까?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비용으로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2012년 퇴직하면서 무엇을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놀까 고민했다. 필자가 하고 싶은 것은 패션모델과 패션디자이너, 왈츠와 탱고 배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이었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곳은 서울이었다. 필자가 사는 평택은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그렇다면 서울로 가자! 그래서 집을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용되고 있는 곳은 강남시니어플라자와 서초문화원이었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영어회화, 수필 쓰기, 시 낭송하기, 문화해설사, 왈츠 과목을 수강했다. 모델 워킹 수업은 서초문화원에 없어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받기로 했다.
강남시니어플라자 프로그램 중에서 상한가를 친 것은 단연 '모델 워킹'이다. 이 과목은 늘 대기자들로 넘친다. 나는 초창기부터 수강해 벌써 3년이 지났다. 모델 워킹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서 바른 자세로 1시간 동안 워킹을 한다. 몸도 좋아지고 마음이 즐거워져 힐링도 된다. 이른바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훌륭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2018년부터는 강남구민만 강남시니어플라자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의 강력한 니즈가 있는 곳에서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탄생하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데 공급자가 없다. 누가 과연 이 블루오션을 선점할 것인가? 결실은 재빨리 트렌드를 읽어내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상암에서 영등포 비콤 벗들과 송년 행사가 있던 날 언주역에 있는 삼정호텔로 갔다. 코리아시니어 모델 학원 김소영 원장님 초대로 패션쇼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모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기 때문에 세련됨이나 기품이 떨어지는 옷들이 간혹 눈에 띄어 아쉬웠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모두 통과! 사진에 담지 않았다. 4기 수료식과 패션쇼를 마친 후에는 '시니어 롤 모델'에 관련한 짧은 강의도 있었다.
뷔페로 마련된 식사시간에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성악가들의 공연이 있었다. 먼저 바리톤의 우렁찬 목소리로 비제의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소프라노 차례.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에 나오는 너무도 아름다운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곱게 흘러나왔다. 이어진 순서인 테너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다. 이어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화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아름다운 이중창 '투나잇 투나잇'을 테너와 소프라노 둘이서 불렀다.
"이번에 부를 곡은 뭘까요?"
테너가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축배의 노래요."
필자가 대답했다.
그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아셨지요?"
당연한 것 아닌가?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대미를 장식해야 하는 노래로 그 곡을 뛰어넘는 곡은 없으니까 말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는 젊음의 환희가 가득한 아름답고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다.
바로 이거다!
품격 높은 현역 성악가들을 초빙한 것은 감각 있는 원장님의 '신의 한 수'였다. 참석자들의 즐거운 저녁 만찬 시간이 단번에 럭셔리한 분위기가 되었다. 레퍼토리가 너무도 잘 알려진 곡들이라서 신선함은 떨어졌지만 익숙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 마니아인 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행사였다. 새삼 김소영 원장님의 기획력에 깊은 신뢰가 간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머지않아 멋지고 아름다운 그녀의 꿈이 큰 결실을 맺을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의 흔적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는 일반적으로 개항의 기점이 된 강화도조약(1876년)에서 광복을 통해 주권을 회복한 1945년까지로 본다. 조용했던 나라 조선에 서양문물이 파도처럼 밀려와 변화와 갈등이 들끓었던 시기. 그 시기의 유산들은 한국전쟁과 경제개발을 거치며 사라졌다. 조용히 걸으며 당시의 건물들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에 공주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백제문화의 중심지로만 알려진 공주의 숨겨진 근대 시대 모습은 어떨지 찾아가보았다.
사실 공주에게 근대 시기는 즐거운 추억이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철도 경부선이 공주를 비켜가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조선시대의 공주는 충주, 청주, 홍주와 함께 충청도의 4대 목(牧)이었고, 임진왜란 후에는 충청감영이 공주로 이전해왔다. 충청도의 제1도시였던 셈이다. 그러다 대전역이 생기면서 산업체와 인구는 대전으로 빠져나갔고, 전라선까지 대전을 거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대화, 산업화와는 조금 비껴나게 되었지만 대신 공주를 위안한 것이 있었다. 종교였다.
근대화의 중심 ‘공주제일교회’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 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바로 공주제일교회의 존재 때문이다. 공주제일교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02년 김동현 전도사가 초가 1동을 구입한 것이 시초가 된다.
이후 교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예배당이 절실해졌는데, 1909년 우산을 쓴 익명의 후원자가 나타난다. 그의 헌금으로 교회는 새로운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고, 교인들은 후원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이곳을 협산자(挾傘者, 우산을 쓴 사람) 예배당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협산자 예배당도 좁아지자, 교인들은 1931년 지금의 ‘문화재 예배당’을 건립한다. 장소는 협산자 예배당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다 문화재 예배당은 한국전쟁에 휘말린다. 폭격으로 일부 벽과 굴뚝만 남긴 채 파괴되었지만 교인들은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대한 결심을 한다. 새 예배당 건립을 위해 이웃해 있던 협산자 예배당을 자재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재건 과정에는 교인들만 참여했다. 1956년의 일이다. 1979년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교회 전면에 배치하는 등의 증축이 이뤄졌다.
역사 속에서 공주제일교회는 종교기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공주 지역의 학교, 유치원, 병원 등 주요 시설의 건립에 교회와 선교사들이 관여했다. 또 3·1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 후인 1919년 4월 1일 공주에서도 만세시위가 있었는데, 이 독립운동의 한가운데에 공주제일교회의 현석칠 목사와 감리회 공동체가 있었다.
현재 교회 건물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공식 명칭도 ‘공주기독교박물관’이 됐다. 2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에는 공주 지역 기독교 역사와 성장 과정, 문화재 예배당 건축사, 독립을 위해 힘쓴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각종 역사적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를 체험하는 ‘공주역사영상관’
공주제일교회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는 공주역사영상관이 있다. 공주의 역사적 배경이나 당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이곳이 제격이다. 이 건물은 1920년 충남금융조합연합회 회관으로 건립됐다. 그래서인지 건물 규모에 비해 입구가 웅장하고, 1층의 천장도 높다. 1930년부터 1985년까지는 공주읍사무소로 쓰이다 1986년 공주시로 승격되면서 건물도 ‘시청’으로 승진했다. 1989년 새 건물로 시청이 옮겨가면서 실직했다가, 2010년 공주시의 구도심 활용 계획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1층에는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각종 영상 자료와 멀티미디어 장비가 갖춰져 있고, 2층은 역사 속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사진자료실로 꾸며져 있다.
공주역사영상관에서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방향으로 다시 20분 정도 걸어가면 천주교 중동성당이 나온다. 서양의 고딕양식을 따르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이다. 1898년 프랑스 출신 진 베드로 신부가 이곳에 교당을 세우고 교지 전파를 시작하면서 공주에 천주교가 자리 잡게 됐다. 본당과 사제관이 나란히 있는데, 사제관은 현재 교육관으로 사용된다. 1997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성당 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2호로 지정됐다.
숨겨진 근대 건축물 ‘풀꽃문학관’
다시 남쪽으로 2km 정도 내려와 영명고등학교 뒤편 언덕 마을로 올라서면 선교사 가옥이 보인다. 3층짜리 건물이다. 미국 감리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머물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는 공주 지역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영명학교의 활동이 시작된 장소로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도 영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다 이화학당으로 편입했다.
이곳은 관리가 잘되는 문화재는 아니지만, 산책 삼아 가볼 만하다. 공주고등학교 정문에서부터 이어진 언덕길 풍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선교사 가옥 옆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선교사 묘역을 만날 수 있다.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선교사 자녀들의 작은 무덤들이 당시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대변해주는 것 같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공주의 근대 건축물 중 하나는 바로 2014년 설립된 풀꽃문학관이다. 시집 로 잘 알려진 나태주(羅泰柱) 시인의 작업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이 과거 헌병대장의 관사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32년에 지어진 건물을 공주시가 사들여 문학관 측에 관리를 위탁했다. 지금은 공주 지역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exhibition
다빈치 얼라이브: 천재의 공간
일정 2018년 3월 4일까지 장소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예술, 과학, 음악,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사적 업적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색과 빛, 음향으로 재조명한다. 전시는 ‘르네상스, 다빈치의 세계’, ‘살아있는 다빈치를 만나다’, ‘신비한 미소, 모나리자의 비밀이 열린다’ 등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제1섹션에서는 실물 크기로 재현한 다빈치의 발명품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 베네치아에 보관된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다빈치의 걸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에 관심이 있다면 제3섹션을 확인하자. 세계적 미술 감정 기업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모나리자 원화를 10년간 분석해 밝혀낸 25개의 비밀을 공개한다. 당시의 색감을 그대로 복원해 재현한 진짜 모나리자를 감상해보자.
더 아트 오브 더 브릭
일정 2018년 2월 4일까지 장소 아라아트센터
전시회의 주인공인 네이선 사와야는 세계 최초로 오직 ‘레고’만을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다. 지구본, 전화기 등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부터 인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까지 약 100만 개의 레고를 사용해 제작한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 유명 예술가들의 대표작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품 관람 이후엔 레고를 활용해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디 아트 오브 더 브릭’전은 세계에서 꼭 봐야 하는 10개의 예술 전시 중 하나로 소개되었으며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book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저·나무생각)
늙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가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으며 기적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황량했던 언덕이 생기를 되찾고, 말라버린 하천에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언가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환자 혁명 (조한경 저·에디터)
현직 의사가 기존의 의료 상식에 반기를 들었다. 환자를 향해 ‘자기 병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고 잔소리하는 저자는 ‘약과 병원에 의존하지 말고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고 주장한다. 성인병 치료의 열쇠는 환자에게 달려 있다며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쉬우면서도 다양한 ‘혁명’을 제시한다.
◇movie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타워즈’ 시리즈가 첫선을 보인 지 40년이 되는 올해 또 하나의 시리즈가 탄생했다. “선과 악의 전쟁, 거대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번 영화는 비밀의 열쇠를 쥔 ‘레이’를 필두로 ‘핀’, ‘포’ 등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되어 운명을 결정지을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결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는 ‘레아 공주’ 역으로 얼굴을 알린 캐리 피셔가 지난해 작고하기 전 연기한 시리즈로 그의 마지막 ‘레아 공주’를 감상할 수 있다. 전편에서 감독으로 활약한 J.J. 에이브럼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향후 시리즈 3부작 연출이 확정된 라이언 존슨이 연출을 맡았다.
개봉 12월 14일 장르 액션, SF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마크 해밀, 캐리 피셔, 아담 드라이버 등
아들에게 가는 길
코다(CODA, 청각장애인의 정상인 아이) 가정의 한 장애인 부부가 아들을 키우면서 겪는 문제를 다룬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지만 떨어져 지내는 만큼 아이와의 거리도 멀어진다. 진심으로 다가서려 하는 부모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는 부모가 답답한 아이.
자식은 어떤 존재이고 부모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묻고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족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로 2016년 제17회 장애인영화제에서 우수상,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한 최위안 감독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봉 11월 30일 장르 드라마 감독 최위안 출연 김은주, 서성광, 이로운 등
◇stage
빌리 엘리어트
2010년 한국에서 최초로 초연된 뮤지컬 가 7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다.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이 배경이다. 복싱 수업 중 우연히 접한 발레를 통해 꿈을 이뤄가는 소년 ‘빌리’의 여정을 보여준다.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일정 2018년 5월 7일까지 연출 스테판 달드리 출연 천우진, 김갑수, 최정원 등
블라인드
시각을 잃은 후 세상과 단절된 청년 ‘루벤’과 몸과 마음이 상처로 가득한 여자 ‘마리’가 만나 마음으로 서로를 느끼며 교감을 해나가는 사랑 이야기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교감하는 둘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봐야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장소 수현재씨어터 일정 2018년 2월 4일까지 연출 오세혁 출연 박은석, 이재균, 김정민, 정운선 등
거미여인의 키스
남성 2인극으로, 이념이 다른 두 주인공인 몰리나와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이해하며 다가가는 슬픈 사랑을 연기한다. 몰리나 역은 배우 이명행과 김호영이, 발렌틴 역은 송용진과 김선호가 지난 공연에 이어 재연을 확정했다.
장소 아트원씨어터 2관 일정 2018년 2월 25일까지 연출 문삼화 출연 이명행, 이이림, 김주헌 등
타이타닉
타이타닉 사건이 발생한 지 105년, 브로드웨이 초연 2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상륙한다. 영화가 이 사건의 비극적인 사랑에 집중했다면 영화보다 앞서 제작된 뮤지컬 은 배가 항해하는 5일 동안의 사건과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장소 샤롯데씨어터 일정 2018년 2월 11일까지 연출 에릭 셰퍼 출연 김용수 왕시명 이상욱 등
밴쿠버는 세계 4대 미항 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직접 가보니 세련된 대도시와 웅장한 자연의 조화가 아름다운, 매력적인 곳이었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서쪽에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보다 규모가 큰 도시공원이 있다. 1888년 당시 총독이었던 스탠리 경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스탠리 파크는 공원 둘레가 30k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밴쿠버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스탠리 파크에서 자전거를 타볼 것을 권했다. 방파제를 따라 10km가량 이어지는 해안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짐작이 가능했다. 공원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니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것이 효율적일 것도 같았다.
조카와 둘이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공원 입구에서 자전거 대여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형부는 전동자전거는 위험하니 일반 자전거를 타라고 권했지만 2시간 동안 페달을 밟을 생각을 하니 전동자전거에 살짝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전동자전거 대여소가 휴가 중이어서 일반 자전거를 빌렸는데 결과적으론 그게 더 나았다.
사실은 1시간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체력적인 걱정도 있었다. 작년이었다면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겠지만 지난 여름 루앙프라방에서 30년 만에 자전거를 타보곤 내 몸이 자전거 타는 법을 잊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니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다. 1인당 1시간에 10불 정도로 자전거를 빌렸다.
쌀쌀한 가을이서인지 스탠리 파크는 한산했다. 드문드문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해안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얇은 패딩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손이 시려웠다. 지원이는 이모가 걱정되는지 자꾸 뒤돌아보았다. 내 걱정 말고 실컷 달리라고 수신호를 보내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곧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자전거 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 나같은 초보도 쉽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었다.
도시 가운데 이렇게 자연 속에서 바다를 느끼고 가을 낙엽을 보고 달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내가 언제 또 태평양을 바라보고 자전거 바퀴를 돌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즐거웠다.
비수기여서인지 스탠리 파크는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다.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곳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 해안도로가 공사 중이라는 싸인이 눈에 띄었다. 그 곳에서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숲 속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처음엔 인적 없는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두려웠지만 해변을 달리다가 3만 년 이상 된 원시림이 우거진 숲 속을 달리는 맛은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신나게 달리고 맘껏 소리치며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비자림 속을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이제, 밴쿠버를 여행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스텐리 파크에서 자전거를 꼭 타보라고 권할 것 같다. 왼쪽엔 울창한 숲을, 오른쪽엔 바다를 끼고 달리는 맛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필자는 합창을 좋아한다. 현대백화점 합창단 출신이다.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사람이 여자 38명에 남자 2명이었는데 남자 한 명이 안 나오는 바람에 결국 청일점이었다. 여성들 소리에 알토로 겨우 끼어들어 연습을 하자니 여러 모로 죽을 맛이었다. 6개월 연습 후 경연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후 그만 두었다. 그러나 합창의 매력을 배웠다. 인간의 여러 목소리를 동시에 맞춰서 부르면 아름다운 소리가 되고 엄청난 감동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그동안 열심히 클래식 음악회에 다니면서 익숙해진 곡들이다. 합창만 모은 공연을 봤으면 했던 것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공연이었다. ‘환희의 송가와 오페라 합창 명곡(Ode to Joy & Opera Chorus)’ 공연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표를 구하기가 어려웠으나 겨우 3층 맨 뒷자리를 얻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층에 버금가는 급경사였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다 들어오니 좋긴 한데 역시 무대와 너무 멀어 합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합창은 남녀 각각 30여명으로 구성된 마에스타 오페라 합창단과 역시 30여명으로 구성된 송파소년소녀합창단이 맡았다.
무대가 특이하게 빈야드 방식으로 꾸며졌다. 평면이 아니라 포도밭처럼 원형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눈길을 끌었다. 평면보다 시각적으로 구성미도 있고 편안하게 보였다.
프로그램 1부는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입장 행진곡’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병사들의 합창’,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 무어의 루치아‘에 나오는 ’널 향한 기쁨의 소리’, 비제의 카르멘에 나오는 ‘집시 아이들의 합창’,‘투우사의 노래’, 베르디의 오페라 일트라바트레에 나오는 ‘대장간의 합창’,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허밍 코러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40분에 걸쳐 펼쳐졌다.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4악장’,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가 40분 동안 이어졌다.
이 중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필자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다. 이탈리아에서 제 2의 국가로 불리는 노래인데 베르디의 장례식 때 무려 8천 명의 합창단이 불러 유명하다. 8천 명의 합창은 대단했을 것이다. 남성 합창단의 웅대한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4악장’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유럽 연합의 공식 상징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모처럼 좋은 기회였는데 무대가 너무 뒷자리라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내심 곡마다 다른 합창단이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마에스타 오패라 합창단이 소화했다.
카르멘에 나오는 곡들은 월드컵 수변 무대, 롯데 콘서트 오페라 갈라 쇼에 이어 세 번째라서 아주 익숙해졌다.
어느 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기온 때문에 겉옷을 집어들게 되었지만,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은 아직 그 위력을 잃지 않았다. 가을의 풍요로운 수확을 위해 쨍쨍한 햇볕은 꼭 필요한 고마운 존재이니 덥다고 불평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뜨거운 햇볕을 양산으로 가리고 오후 3시 공연인 오페라를 보러 예술의전당에 갔다.
천재 작곡가라 불리는 모차르트의 대표 오페라 를 관람했다. 는 1993년 오페라 하우스 개관 이래 예술의전당이 가장 많이 제작했던 오페라 작품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총 9차례나 토월극장 무대에 올려 매년 매진기록과 함께 가족 오페라라는 공식을 세우며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2015~2016년에는 의 작품성을 관객들이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기획해 큰 감동을 주었다는데 이번 공연에선 ‘우리 가족 첫 오페라’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어린이들도 재미있고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준비했다. 또 누구든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징슈필(Singspiel)을 통해 극의 재미를 느끼도록 했다. ‘징슈필’이란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 있는 독일어 노래극이다. 필자는 공연 내내 무대를 보랴 양옆에 마련된 자막을 보랴 눈이 매우 분주했다.
도로가 한가로운 시간에 출발했기 때문에 예술의전당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20여 분 정도 일찍 자리에 앉았는데 무대 저편에서 리허설 중인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악기도 조율하고 하모니도 맞추어보는 듯했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연극 등을 감상할 때는 항상 조용한 분위기에서 막이 오르길 기다렸는데 이번처럼 리허설을 보게 된 것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마침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 많아 공연 시작 전의 객석도 약간 소란스러웠다. 공연을 자주 다녀봤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와 무대 뒤에서 연습하는 소리가 뒤섞여 소음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잘 어우러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인터미션 15분에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긴 공연의 막이 올랐다. 무대는 어린 관객을 생각해서인지 머리에 풍선을 단 세 어린이가 등장하면서 동화적인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고대 이집트 제국의 신전 부근. 현자 ‘자라스트로’가 지배하는 지혜의 세계와 밤의 여왕이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커다란 뱀에게 쫓기던 ‘파미노’ 왕자를 밤의 여왕을 모시는 시녀 세 명이 구해준다. 밤의 여왕은 납치된 딸을 구해달라며 초상화 한 장을 보여주는데 바로 ‘타미나’ 공주였다. ‘타미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 왕자는 꼭 공주를 구하겠다며 길을 나선다. 그때 밤의 여왕은 위험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며 마술피리를 왕자에게 준다.
왕자는 나쁜 ‘자라스트로’에게서 공주를 구하려 하지만 ‘자라스트로’는 현명한 사람이다. 사악한 밤의 여왕인 어머니로부터 공주를 보호하려고 데려온 것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왕자와 공주가 만나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특한 ‘밤의 여왕 아리아’를 들을 수 있는 즐거운 오페라다. 매우 고음으로 부르는 ‘아아아~’는 모든 성악가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수미의 밤의 여왕 아리아가 유명하다.
출연진의 노래도 멋지고 무대장치도 환상적이어서 동화 속 꿈나라에 다녀온 듯 재미있었다. 특히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파파파’하는 경쾌한 이중창이 오페라가 끝난 후에도 귓가에 계속 들려오는 듯했다.
아이들이 많아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우리 손주들 생각을 하니 이해가 됐다. 여섯 살인 우리 손녀도 내년쯤이면 오페라 공연장에 데리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하다.
5070세대 대부분은 보릿고개가 있을 정도로 먹고살기 힘들던 지난날이 있었다. 청년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을 들려주면 마치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현재의 청년들이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개개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어른들이 굶주리며 일할 때 지금의 시니어들은 가사를 도와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달려왔다. 책도 부족하고 TV나 라디오도 흔치 않았던 시대, 아이들의 정서 함양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친구와 싸웠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부모님께 꾸중 들으면 화가 나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 때 아이들 옆에는 만화가 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세상을 알려준 만화에 대한 기억들을 꺼내보자.
최초의 단행본 만화 작가 ‘코주부’ 김용환
코가 뭉뚝하고 키는 작달막하지만 다부진 모습의 ‘코주부’는 김용환 작가의 대표 캐릭터다. 때론 모자를 쓰고 점잖은 어른으로 나와 신문에서 당대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사만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코주부’가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 잡지에 연재된 를 통해서였다. 청소년 교양지였던 은 10만 부 가깝게 판매되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잡지였다. 책이 부족했던 시절, 읽을거리가 풍부했던 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곳에 빼어난 이야깃거리인 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었으니 당시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에 연재된 ‘코주부 삼국지’는 1955년 만화책 로 발행되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용환의 만화는 세련된 그림,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그는 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이미 아동만화를 많이 발표한 작가였다. 최초의 단행본 만화를 발표한 작가도 김용환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발표된 만화는 1909년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만평이라고 소개하지만, 어린이에게 친숙한 만화책이 처음 나온 것은 해방 후였다. 바로 동화작가 마해송의 작품인 를 김용환이 만화로 각색해 1946년에 발표한 다. 이 작품은 해방 후 아동문화를 만들기 위해 을유문화사에서 만든 아협만화문고 시리즈 중 하나다. 한국 최초의 단행본 만화로 기록되었고 2013년, 등록문화재 제537호로 등록되었다.
김용환은 만화 발표 외에도 만화신문과 만화잡지를 직접 발행하고 기획하기도 했다. 1948년, 최초의 만화신문인 의 기획자, 작가로서 참여했고 도 직접 발행했다. 또 한국전쟁 후인 1956년엔 성인시사만화잡지인 를 통해 시사만화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물론 각종 신문에도 시사만화를 발표했다. 이렇듯 김용환은 한국 만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방송인 만화가 신동우
가정에 TV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한 만화가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슥슥슥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충격적이었다. 바로 신동우 작가였다. 그가 유명 방송인이 된 것은 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1967년 1월 7일 서울 대한극장을 비롯해 많은 극장에서 상영된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만화영화)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 작품의 탄생은 신동우 작품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은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인데, 이 연재만화를 대본으로 신동우 작가의 형인 신동헌 감독이 우리나라 최초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 것이다. 홍길동에 관한 만화는 이전에도 많았고 이후에도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신동우 작가의 은 홍길동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정도였다. 이 작품은 허균의 에 대한 가슴 벅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홍길동’ 외의 주변 인물인 ‘호피’와 ‘차돌바위’, ‘곱단이’ 등의 캐릭터도 개성 있게 묘사되어 있어 매력적이다.
신동우는 1970년대에 유행했던 잡지의 만화 광고로도 유명하다. 오랫동안 진주햄소시지 제품을 일상 만화로 풀어냈는데,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었다.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 웹툰의 시조격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의 미학으로 전쟁의 상흔을 위로한 김종래
휘영청 밝은 달은 금준의 마음을 알듯 구름을 머금고 내려다본다. 나쁜 사또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일하러 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를 찾아 나선 금준은 괴나리봇짐을 지고 풍천노숙을 하며 전국을 떠돌다 지쳐 장승에 기대어 엄마를 불러본다. 김종래의 중 한 장면이다. 김종래는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이 파괴된 삶과 가족과의 이별로 고통스러워할 때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감동 만화로 인기를 누린 작가다.
1956년에 발표한 은 한국전쟁 당시 충남 예산의 한 가족사를 다룬 만화다. 주인공 김일, 최도천, 향순이가 전쟁을 겪으면서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게 되는 내용으로, 전쟁 후유증을 겪던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김종래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알렸다. 특히 1958년 에 연재했던 는 당시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 금준이 전국을 떠돌며 온갖 위기에 맞서 나가는 사이, 두만강 건너로 팔려간 엄마는 모진 수모를 겪으며 아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이렇게 아들과 엄마가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이야기 구조는 독자들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버렸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까지 그의 만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1962년에 발표된 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피란을 가던 한 가족이 엄마와 헤어져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며 겪는 이야기다. 엄마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영진이네 가족 이야기이지만 전쟁 이후 사람들의 사나운 인심, 영진이 선생님 같은 선량한 사람들의 모습을 감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김종래의 만화는 치밀한 구성과 감성적인 문장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애잔하게 보여주며 사람들의 힘든 마음을 위로했다. 또한 길가의 돌부리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섬세한 필체가 특징이다. 25년간 4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그중 시리즈는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소녀들의 판타지를 보여준 엄희자
1960년대 초반에는 예쁜 공주들이 만화책 속에 등장했다. 이전에도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가 다수 있었지만 엄희자 작가의 등장으로 순정만화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큰 눈 속에 들어가 있는 빛나는 별, 머리를 장식한 예쁜 리본,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주인공은 순식간에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로 영화나 영미소설의 스토리를 각색한 작품이 많았는데, 현대적인 패션들을 한껏 뽐내며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최고 인기였다.
소설 을 만화로 만든 , 소설 을 각색한 등 서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화려한 패션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만화방에서 빌려온 엄희자의 만화책을 보면 찢긴 페이지가 많았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친 주인공의 모습이 소녀들의 소유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만화 주제는 권선징악이었고 순정만화는 그러한 교훈이 더 강했다.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은 착한 주인공을 질투, 음해하고 모함하지만 결국은 주인공의 선행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엄희자의 작품에 그려진 아름답고 순수하고 맑은 감성도 이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소년·소녀들의 명랑사회를 보여준 길창덕
1970년대는 ‘꺼벙이’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범생이나 천재나 능력자가 많았다.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어린이상이 그러했던 것이다. 비록 아이일지라도 어른들의 몫을 나눠서 해냈어야 했다. 그러나 조금씩 먹고사는 것이 안정이 되던 1970년대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어른의 몫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광고카피가 등장할 정도로 아이들의 철부지 같은 모습이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런 시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길창덕의 다. 1970년에 에서 연재를 시작해 으로 옮겨 1977년에 완결된 작품으로 잡지뿐 아니라 단행본으로도 만들어져 1970년대를 풍미했다.
머리의 기계충 자국과 졸린 눈에 약간 모자란 듯하지만 착하고 여린 심성의 꺼벙이는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해서 항상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드는 명랑 어린이다.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살다 상경한 여동생 꺼실이가 후에 등장하면서 그 재미는 한층 더 배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 , , 등 그의 작품 속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말썽을 부리고 엉뚱했다. 그러나 그 모든 사건 속에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가족들과 친구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잘 살자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가족의 희로애락 그려낸 이상무
가난하지만 명랑한 아이인 독고탁은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대문에서 주저한다. 대문을 열면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직 어린아이인 독고탁의 키만큼 달려들기 때문이다. 개는 독고탁이 좋다고 달려들지만 그는 자기 몸집만큼 큰 개에 겁을 먹는다. 무서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항상 머리를 굴리며 대문을 들어서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이상무의 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귀여운 모습과는 달리 희귀 성인 ‘독고’와 강한 이름인 ‘탁’이라 불리는 이 아이는 6남매의 막내로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서 슬프다. 아버지의 실직과 교통사고, 일찍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권투 유망주였던 형은 돈을 받고 경기를 하게 된다. 독고탁의 가족에게 벌어진 시련은 1970년대 여느 가정에서 겪었을 법한 일들이다. 독고탁은 누나들의 살뜰한 보살핌이 필요할 정도로 어렸지만 집 안의 어두운 분위기를 재빨리 눈치 채는 섬세한 아이였다. 또, 그런 독고탁을 통해 가족 드라마의 희로애락을 만화 속에 진하게 담아낸 작가가 이상무였다.
그의 작품에는 가족과 스포츠가 등장한다. 특히 같이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는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 스포츠 세계의 현실을 만화 속에서 시련을 극복하는 자기훈련과 노력들로 보여준다. 좌절의 순간에는 가족들의 응원이 있었고 무한 경쟁이 아닌 사람 간의 교류가 있었다. 이상무 작품의 인물들은 악인이라도 사람 냄새가 난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G.E.N.Y 가족음악회’라는 행사가 있어 가 봤다. G.E.N.Y는 Global Education Network for Youth의 약자로 학생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해 만든 청소년 단체라고 한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음악회에서 마지막 곡이 ‘한국환상곡’이었다. 뉴서울오케스트라, 제니오케스트라의 협주로 30분간 연주되었는데 성악가들과 여러 합창단이 함께 불러 전율을 느끼게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곡은 고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관현악곡이다. 태고 적부터 유구한 역사를 유지하며 외적의 침략에도 항거하여 독립을 이룬다는 스토리가 들어 있는 곡이다. 애국가도 들어 있다. 연주가 진행되다가 합창단이 동시에 함성을 지르는 순간 머리칼이 바짝 서는 전율을 느꼈다. 연주 마지막 즈음, 모니터 화면에 태극기가 나오자 전 관객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립하여 연주와 합창을 들었다. 이 대목에서 가슴이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음악적으로도 대작이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감동이었다. 원래 합창의 위력이라는 것이 그렇다. 특히 남성들의 합창은 가슴을 울린다.
제니오케스트라는 어린 학생들로 구성되었는데 프로 연주자들 속에 섞여 무난히 대작을 소화해냈다. 합창단으로는 콘서트홀 무대 뒷면에 메트 오페라합창단, 국민대 합창단, 숭실대 콘서트 콰이어로 구성한 대학연합합창단, 인천동구립 소년소녀 합창단, 부천시소년소녀합창단, 강원해오름어린이 합창단 등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이날 음악회는 1부에서는 브루흐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Op.85’를 시작으로 ‘투우사의 노래’, ‘험담은 바람을 타고’, ‘정결한 여신이여’,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오늘밤’, ‘축배의 노래’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들을 성악가들이 불렀다.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역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 바이젠 Op.20’으로 시작했다. 이어 성악가들이 ‘그리운 금강산’, ‘비목’, ‘청산에 살리라’, ‘신아리랑’, ‘강 건너 봄이 오듯’을 불러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원래 청소년 관람객들이 많이 와서 해설이 있는 음악회라고 했는데 정작 해설은 빈약했다. 곡마다 해설을 한 것은 아니고 1, 2부 시작 전에 한꺼번에 소개하는 정도였다. 영화 에 나왔던 우등생 서태화가 해설을 맡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성악과 출신에 미국 음악대학원까자 졸업한 음악인이었다.
장마 막바지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마지막 연주곡인 ‘한국 환상곡’에서 받은 감동이 너무 커서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보통 때 같으면 폭우를 피해 빨리 실내로 들어갔겠지만, 이날은 폭우 속에서 우산에 내리치는 빗발을 그대로 받으며 서 있었다. 청소년 관객들을 위해 오후 5시에 시작하고 7시에 끝났다. 보통 음악회는 직장인들을 고려하여 오후 8시쯤 시작하여 10시 반쯤 끝나는데 7시에 끝났으니 뒤풀이하기에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