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고점자들은 그만한 수준이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물론 소질이 있어서 빨리 고점자가 된 사람도 있기는 하다. 일반인들은 대부분은 거기서 거기이다. 그래서 200점대에 가장 많고 대부분 거기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당구는 심심하면 시간 날 때 치는 편이지만, 고수들은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 그 중 몇 가지는 참고가 될 만했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브리지를 한다. 스트로크 할 때 큐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브리지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른 공 때문에 가려져 편안하게 브리지하기가 곤란할 때도 있다. 소위 “큐 자세가 불안하다”고 하는데 이럴 때 손가락 힘이 필요하다. 특히 위에서 찍는 마세를 할 때는 심지어 새끼손가락만으로 브리지를 할 때가 있다. 그러려면 손가락 힘이 필요한데 그럴 때를 대비하여 평소 악력기로 손아귀 힘을 기른다는 것이다.
체력 검사할 때도 악력 검사를 한다. 팔 근육을 강화시키는데 악력기가 좋은 것이다. 당구를 잘 치기 위해서도 좋지만, 손아귀 힘을 세게 해준다는데 일석이조라 할 수 있겠다.
또, 고점자들은 개인장비를 갖고 다닌다. 당구장에 있는 큐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 큐를 갖고 다니는 것이다. 당구장 큐도 손질을 잘 해 놓으면 쓸 만 하지만, 아무래도 개인에 맞는 큐를 못 고르면 당구 치는데 막대한 지장을 준다. 특히 큐 무게가 스트로크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심지어 초크도 가지고 다닌다. 당구장에서 쓰는 초크는 분가루가 날리고 공을 칠 때 큐 팁 마찰에 적당하게 사용되어야 하는데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장갑도 고점자들은 자기 장갑을 가지고 다닌다. 엄지와 검지 끝을 가위로 잘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당구장에서 제공하는 장갑은 끝부분이 막혀 있고 심지어 손가락보다 길다. 브리지 할 때 손가락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갑 손가락 끝을 잘라 사용한다는 것이다. 프로 선수 중에는 장갑을 안 끼고 경기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만큼 민감하다는 얘기이다.
연습하는 과정도 고점자들은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공이 굴러가서 배치된 대로 계속해서 치는 것을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점자들은 한 가지 형태를 놓고 조금씩 변형해서 계속 반복해서 연습한다.
일반인들은 경기 중에 안 맞은 형태의 공은 그때가 지나면 기억도 못한다. 그러나 고점자들은 프로 선수들은 그 공 배열을 기억해서 다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도해본다. 그러면 다음에 비슷한 유형의 배치가 되었을 때 자신감을 갖고 성공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제1목적구가 멀리 쿠션에 붙어 있고 수구가 거리가 멀면 치기 어렵다. 일반인들은 대충 쳐서 맞으면 다행이고 안 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점자들은 맞히기 위해서 정성을 다 한다.
고점자들은 다음 공을 치기 쉽게 만들기 위해 힘 조절이나 두께 조절을 해서 공의 움직임을 조정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우선 맞히기 급급하기 때문에 다음 공까지 못 본다. 바둑에서 고점자들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것과 같다.
시스템 연습이라는 것도 있다. 당구대 프레임에 일정 간격으로 점이 있는 것을 이용하여 공의 움직임을 정하는 것이다. 뱅크 샷으로 쿠션만 먼저 맞혀 3 쿠션으로 맞혔을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시니어들은 당구를 배울 때 순전히 감으로 배웠기 때문에 시스템 계산을 안 하고 치는 사람이 많다. 시스템 계산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을 상대방에게 미안해하고 계산도 익숙해지기 전에는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 때 유명했던 여배우가 58세에 고독사 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있었다. 게다가 숨진 지 2주 후에야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으나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사회에도 고독사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고독사는 혼자 살다가 고독하게 죽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니 혼자 살다가 죽어도 주변에서 모를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질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숨진 후 2주 만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2주 동안 주변과 연락이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매일 또는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나이가 들면서 일단 폐쇄적으로 변하는 것을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싫거나 세상살이가 시들한 것이다. 호르몬 작용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요인도 있을 수 있다. 살만큼 살다 보니 더 이상 희망도 없고 염세적인 생각을 갖는 경우도 있다. 남들보다 안 풀려 실망하다 보니 풀이 죽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안으로 움츠러든다.
나보다 나은 사람, 못한 사람을 동시에 접할 필요가 있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배울 점이 있다. 못한 사람을 만나면 지금의 나는 행복한 편이라는 실감을 할 수 있다. 특히 봉사를 해보면 봉사를 받는 사람보다 봉사를 하는 사람이 더 얻는 게 많다는 얘기가 그런 이유이다. 물론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좋다. 유유상종의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적당한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좋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일부러 연락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들과도 공연히 연락해봐야 부담 줄까 봐 연락을 안 하고 산다. 자주 안 오고 연락이 없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다. 그렇더라도 혼자 얼마든지 잘 산다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혼자 할 일을 만들어야 한다. 할 일이 없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되도록이면 아침에 눈을 뜨면 밖에 나갈 일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에서도 할 일을 만드는 것이 좋다. ‘바보상자’라는 TV 시청도 나쁘지 않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어도 좋다. 좋아하는 스포츠를 보면서 즐기는 방법도 있다. 영화도 무궁무진하게 많다. 필자는 꼭 봐야 할 프로그램이 없으면 24시간 방영하는 당구 방송을 본다.
필자도 혼자 살기 때문에 지인들로부터 전화나 문자가 오면 반드시 답을 해준다. 답을 안 해주면 무슨 큰 변이라도 당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끼친다.
사실 고독사를 당해도 본인은 죽으면 그만이다. 자녀들이 너무 무심했다며 마음의 짐을 짊어지기는 할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 품에 둘러 싸여 편안히 가면 좋겠지만, 한 세상 후회 없이 살았으면 더 바랄 것도 없다. 수명을 다 했으면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제당구 대회에서 우리나라 허정한 선수와 베트남 선수가 30점 초반 대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베트남 선수가 친 공이 3 쿠션이냐 2 쿠션이냐로 판정 시비가 붙었다. 허정한 선수는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기는 그대로 이어지고 허정한 선수에게도 기회가 왔지만, 평범한 뱅크 샷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승부의 추는 베트남 선수에게로 기울어졌다. 평소보다 스트로크가 강하게 나가면서 미세하게 뱅크 샷의 각이 모자라게 도달한 것이다. 그 뒤로 베트남 선수에게 석연치 않은 타임 파울을 선언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으나 무위에 그쳤다. 베트남 선수도 3 쿠션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찜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은 덕분에 이겼다고 본다.
필자와 당구를 치던 지인이 있다. 한 큐마다 정교하게 치는 사람으로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다. 마지막 3개부터 필자가 카운트를 했다. 마지막 한 개를 남겨 두었을 때 그가 평범한 공을 안 치고 3 쿠션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분명히 “하나 남았다”고 멘트를 해주었으나 그는 못 들은 모양이었다. 마지막 하나를 어렵게 3 쿠션으로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필자가 다시 “하나 남았다”며 멘트를 했다. 어려운 공 배치였으나 정교하게 와서 맞았다. 그는 이긴 것으로 간주하고 승리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필자가 이제 마지막으로 3 쿠션을 쳐야 한다고 하자 화를 버럭 내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 남은 것을 이미 쳤고 마지막을 3 쿠션으로 마쳤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게임이 종료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당히 분위기가 머쓱했다. 그래서 그가 이긴 것으로 하자고 했으나 그럼 3 쿠션을 한 번 더 치겠다고 했다. 그 샷은 실패로 돌아갔고 다음 차례에 필자가 3 쿠션까지 한 큐에 끝냄으로서 게임이 종료되었다.
당구에서의 판정 시비는 종종 일어난다. 허정한 선수의 경우는 억울한 마음에 평정심을 잃었을 것이다. 원래 당구 룰에 ‘선수는 3 쿠션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3 쿠션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는 국내 같으면 무효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 무대였고 심판이 이미 판정을 내린 것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 당구는 미세한 멘탈 게임이므로 이런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제어하기 어렵다.
동호인들끼리 당구를 칠 때에도 공이 맞았느니 안 맞았느니 시비가 일어난다. 당구장의 조명이 어릿어릿하여 잘 못 볼 수도 있다. ‘희망사항’이라고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당구장에 ‘다시 보기’ 화면으로 반금 친 공의 움직임을 보는 시설을 갖춘 곳이 많다. 공도 단색은 미세한 움직임은 잘 안 보이므로 다른 칼라의 점을 집어넣어 움직임 여부를 쉽게 판정하게 한다.
필자와 지인의 경우에는 지인이 너무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카운트 착각을 한 것이다. 자신이 센 카운트와 필자가 센 카운트가 다른 경우인데 필자가 센 카운트가 더 객관성이 있다. 상대 선수는 게임하고 있는 사람의 카운트를 예의상 해주기 때문에 그것만 신경 쓰고 있는 데 틀릴 리가 없다. 즐겁게 한 게임인데 너무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둘 사이가 머쓱해진다. 앞으로도 자주 치게 될 것인데 그렇게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같이 치기 싫어지는 것이다. 지인도 그렇지만, 필자도 지지 않기 위해 승부에 집착하는 게임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월의 첫 주말, 고향친구들 송년모임이 있어 이른 오후에 길을 나섰다.
고속터미널역에서 9호선 환승을 하려고 이동 중인데, 때가 때인지라 구세군 냄비가 딸랑딸랑 종을 울리고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 촘촘하게 얹혀 실려 가는 짐짝이 되어 마음만 재촉해 본다.
김포공항에서 여의도를 거쳐 강남 도심권으로 관통하는 9호선은 출, 퇴근 시간이면 늘 상습적으로 붐비는 노선이다. 더구나 12월의 첫 주말, 이미 년말분위기가 무르익은 듯, 많은 사람들이 전철 문 앞에 줄을 서있다. 전철이 도착하자 내 몸은 저절로 빈대떡이 되어 차량 안으로 빨려들어갔는데, 숨이 막힐지경이었다. 어쨌거나 약속된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하여 정다운 고향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다가 당구장으로 가자는 유혹을, 길이 멀다는 이유로 뿌리치고 돌아오는 전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노량진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에 막 갈아탔는데, 저녁 8시를 넘긴 시간이라 올 때보다는 덜 붐볐으나 그래도 어지간히 복잡했다.
이 때, 전철 안에서 머리가 희끗한 사람들 무리 중에 한사람이 신나게 썰을 풀어내고 있었다.
“나가 말이여 50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내서…….하하하(호쾌한 웃음소리), 기분이 너~무 좋아부렀어. 나가 전주에서 올라왔는디 반백 년 만에 불x 친구들을 만나니 기분이 너~무 좋아 죽을뻔 했구마....하하하” 모처럼 오랜만에 노래방에 가서 김삿갓을 불러부렀어…….하하하” 한 잔술에 불콰해진 얼굴로 그 사람은 정말 유쾌하게 웃었다. 50년 만에 어린시절 친구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중충한 셔츠자락이 반쯤 바지에서 삐져나온 채 점퍼는 벗어 팔에 걸치고 서서 연신 큰소리로 얘기하며 웃어댔다. 평소 같으면 떠들어대는 소리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마치 상기된 아이처럼 진지하게 떠들어대는 그사람이 별로 밉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그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시끄러운 소음정도로 들으면 한없이 불쾌하겠지만 특유의 유쾌함으로 전이가 되어 은근히 주위사람들도 슬며시 따라 웃어주었다. 더구나 연말을 앞두고 여기저기 송년모임 분위기가 벌써 무르익었으니 그 사람의 우직한 말투가 미워 보이지도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주위에 있는 초로의 장년 남녀가 그 사람의 초등학교 동기들인가보다. 재담이 계속 이어진다. “예전에 말이야”, 발동기 시동을 거는 모습을 흉내 낸다. 소매자락을 반쯤 걷어올린체, 돌리는 흉내를 내면서 푸쉬푸쉬 (고무공에 바람빠지는 소리)힘차게 발동기 시동을 거니 주위사람들이 소리죽여 배꼽빠지게 웃고있다. 나역시 바로 옆칸에서 은근히 그 쪽으로 귀를 집중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덩달아 유쾌하게 웃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고속터미널역에서 그 사람은 내렸다. 남부터미널역을 찾는 것을 보니 아마도 오늘 밤에 전주까지 내려갈 모양이다.
3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사람의 잔상(殘像)이 떠올라 기분이 유쾌했다. 초등학교 동창을 50여년 만에 만났다고 하니 분명 내 또래인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과 담을 쌓고 사는 각박한 도시 생활 속에서 이렇듯 조금만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유쾌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의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갈등하고 이리 저리 갈라져 보이지 않게 서로 반목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상대방에게 조금만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온기가 감도는 연말연시를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댄스 스텝에서 남자 스텝은 거의 대부분 전진하는 스텝이다. 그러나 가끔 뒤로 가는 스텝이 있다. Back Check, Back Lock, Back Whisk, Back Corte 등이다. 가장 어렵다. 앞만 보고 가다가 뒤로 간다는 것은 루틴이 아주 훤해서 여유가 있지 않으면 자칫 까먹고 실수하기 좋다. 뒤로 가는 스텝이 모양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당구에서도 대부분 공이 앞으로 진행하는 형태로 친다. 끌어치기가 유일하게 백 스핀으로 공의 아래쪽을 치면 수구가 앞 목적구에 맞고 나서 공이 뒤로 굴러 오는 기술이다. 4구에서는 이 기술이 필수이다. 동호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3구에서는 끌어치기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공이 앞으로 진행하는 길만 보다 보니 뒤로 끌어치기 해서 3 쿠션을 만드는 기술은 못 보는 것이다.
자동차 운전도 전진은 쉽지만, 뒤로 가는 후진은 어렵다.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전진은 감이 익숙하지만, 후진은 고개를 돌리고 보면서도 단순히 보이는 것 외에도 몸이 익숙하지 않아 접촉 사고를 내기도 한다.
유모차를 앞세우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초보 아줌마가 있었다. 횡단보도를 거의 건널 무렵 유모차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이 아줌마가 진행을 멈추고 그걸 주우려는 찰라 신호대기 중이던 자동차가 돌진했다. 하마터면 엄청난 비극이 발생할 뻔 했다. 전진만 입력되어 있는 세상에 잠시 멈춤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좀 더 뒷쪽에 떨어졌더라면 되돌아 가야 하는데 이미 신호는 바뀌어 있었다면 여지없이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앞으로 걷는 것은 익숙하지만, 뒤로 걸어보라고 하면 힘들어 한다. 연습해 보면 할 수는 있지만, 눈이 앞을 보기에 적당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안 해봐서 뒤쪽은 어려운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니어들은 뒤를 돌아보기 싫어한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는 익숙해져 있는데 뒤를 돌아보자니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남들은 앞만 보고 달리는데 혼자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퇴보를 뜻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지나온 과정이 힘들어서 일지도 모른다. 다시 군대에 입대하라고 하면 돈을 준다고 해도 싫다는 사람이 많다. 다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의외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사람이 많다. 그때는 고민도 많고 고생도 많이 해서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꽃길만 걷고 싶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지나온 과정이 꽃길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의미이거나 반대의 경우로 지나 온 과정이 험난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희망을 갖자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그간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되돌려 보인다고 한다. 더 이상 앞은 기대할 수 없으니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7080세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를 말한다. 필자는 71학번이므로 ‘7080 세대’의 선두에 서 있다. 1970년대에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그 사이에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과 결혼까지 했다. 아이 낳고 열심히 가족을 먹여 살리다가 퇴직하고 이제 환갑을 넘어 칠십고개를 향해 가고 있다. ‘7080 세대’에서 빠르면 60대 중반이고 마지막 세대는 50대 초반이다.
필자가 졸업하던 무렵에는 취업이 잘되던 시기다. 기업들도 한창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라서 1980년대 말에는 오히려 구인난에 허덕였다. 직장에서는 승진 바람이 불었고 증권, 부동산 등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달고 잘나가던 시기라서 노후 준비도 끄떡없었다. 그래서 퇴직한 시니어도 여유 있게 노후생활을 즐겼다. 퇴직은 했지만 하나의 소비 주체로서 인정도 받았다. 그래서 7080 TV 프로그램이나 7080 노래방 등은 이 세대를 인정하는 대명사처럼 불렸다. 1970년대에 포크송과 기타가 등장해 문화적으로도 독특한 세대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7080’ 대신 ‘8090’이라는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 대신 19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가 주류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간판들은 주로 단란주점 등 라이브 술집에서 사용하는 상호다. 70세대면 현재 60대 중반이다. 필자 주변에는 단란주점에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술 마시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건강상의 이유로 고기도 끊고 술을 끊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러니 70세대가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 같다.
강남역 등 새로 생긴 번화가의 도로변은 10~20대 차지다. 도로변의 가게들은 온통 이 세대를 상대하는 업종이다. 골목 상권으로 들어가면 나이 차가 10년쯤 나서 고객층이 30~40대다. 또 그다음 안쪽 골목에는 50대 이상 시니어가 좋아하는 메뉴의 음식점들이 있다.
양재역 부근은 그나마 덜 북적대던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가 보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양재역 사거리 남쪽 부근 골목에는 70세대가 가기 좋은 만만한 음식점이 모여 있었다. 초입에 큰 막걸리 집이 있어 필자도 자주 갔다. 그런데 그 집이 횟집으로 바뀌어 고객이 젊은 층으로 바뀌었다. 이제 막걸리를 마시려면 양재시장 포장마차 같은 허름한 곳밖에 없다. 최근에 가 보니 골목 안쪽 깊숙이 막걸리 촌이 생겼다. 주요 소비층은 당연히 시니어다. 번화가에서 도로변은 젊은 고객들이 차지하고, 시니어는 안쪽 골목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가 많다 보니 아예 시니어가 모이는 지역이 따로 있다. 바로 종로3가 일대다. 탑골 공원 안이나 주변으로 주로 70대가 모인다. 음식점도 시니어가 좋아하는 메뉴에 값도 싸다. 도로 건너 국일관 주변도 그렇다. 국일관 건물에는 시니어가 좋아하는 당구장, 활어회 시장, 사우나, 콜라텍 등으로 차 있다. 주변에도 전통 먹거리가 많다. 종로3가는 20대가 몰리는 익선동, 30~40대가 몰리는 종로3가 5번 출구와 3번 출구 사이에는 포장마차들이 많다. 소비 주체에 따라 상권도 바뀌는 것이다.
필자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동네 당구장 회원이다. 몇십 년 전 당구를 처음 배우고 그때의 점수대를 유지하고 있다. 몇십 년 동안 실력이 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려 독학으로 배우다 보니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해 기초가 약하다. 그 바탕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지금이다. 획기적인 전기가 없으면 실력이 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거의 매일 당구를 치면서 실력이 좀 늘었다. 그렇다고 점수를 올리면 소위 ‘물당구’가 된다. 그리고 점수를 올리려면 여러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특히 같은 점수대 사람들이 실력을 인정해줘야 한다. 이기는 확률이 높다면 당연히 올려야 한다. 그러나 당구는 칠 때마다 다르다. 이기기도 하고 질 때도 있다. 그러니 못 올리는 것이다.
사실 점수를 올리는 것은 별것 아니다. 200점이 250점을 치려면 20개에서 5개를 더 쳐야 한다. 다섯 개 정도는 운 좋으면 한 큐에 다 친다. 초구가 잘 맞으면 5개 정도는 치고 들어간다. 그러면 올리기 전과 같은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먼저 자기 점수를 다 치고 마지막 관문인 3쿠션을 돌리고 있어도 한 큐를 믿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
점수를 올리지 않는 것을 겸손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점수를 올리고 매번 지는 것보다는 하수라며 겸손을 떠는 것이다. 물론 너무 짜다고 소문나면 욕을 먹기도 한다.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끔 너무 짜다며 점수를 올리라는 원성을 듣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같은 점수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올릴 수 없다. 사실 같은 점수대 사람들에게 압승을 거두면 인정을 받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서로 물고 물리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모아 치는 공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힘들어 한다. 반면에 상대방이 모아 치는 스타일이면 잘 치는 날에는 모아 쳐서 득을 보기도 하지만, 실수할 경우 필자에게 고스란히 바치는 꼴이 되어 지기도 한다.
그래서 새해를 맞아 회원들 모두 같이 올리기로 했다. 150은 모두 200으로, 200은 250으로 말이다. 물론 ‘물당구’가 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동반 자살’을 하자는 셈이다. 그러면 불만이 없을 거라는 주장이다. 점수를 올려서 치다 보면 확실히 실력은 좋아진다. 한 큐에 더 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점수를 내려놓으면 더 치고 싶어도 못 치는 것이다.
150이 200으로 점수를 올리면 그전에 도전하지 못했던 3쿠션에도 합류할 수 있다. 어느 당구장이든 ‘300 이하 맛세이 금지’라고 써놓아 자신도 모르게 맛세이를 포기했지만, 시도는 해볼 수 있다. 200이 250으로 올리고 나면 일단 4구에서는 공을 모아 치는 연타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3쿠션에서도 10개에서 13개 정도로 올릴 수 있다. 같은 당구장에서는 서로 마찬가지이지만, 바깥 당구장에서는 한동안은 올린 점수만큼 감당하지 못해 질 때가 많다.
이것이 바로 ‘감투 효과’다. 어떤 자리에 앉게 되면 그만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바둑 천재 이창호의 좌우명이다. ‘부득빈승(不得貧勝)’이란 바둑용어로 ‘욕심이 과하면 승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이 들면 승부가 걸린 것은 피하라’는 말이 있다.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상대방과 다툴 수도 있고 자신에게도 건강 상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약간의 긴장은, 약간의 스트레스로 오히려 정신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댄스 경기에 나가 보면 경기시간 종목당 2분 동안 틀리지 않고 춤을 춰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어 좋다. 아직까지 여러 번 경기 대회에 출전하면서 순서를 까먹은 적은 없다. 그만큼 많은 연습과 요령에 속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결과이다.
필자는 당구도 즐기는 편이다. 당구는 승패가 있다. “져서 기분 좋은 사람 없다”고 한다. 일단 승부에서 져서 기분 나쁘고 결과에 따라 게임비나 술값을 내야 하니, 지면 기분이 더 안 좋은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 이기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너무 이기는데 집착하다 보면 오락의 범주를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승부 게임에서 팽팽하면 경기가 끝났을 때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다. 이기면 짜릿한 승리의 기쁨이 있어 피로가 덜 하지만, 졌을 경우는 더 피로감이 심하다. 당구도 머리싸움이라 뇌 에너지 소비가 상당하단다.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 자신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으로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게임을 치르고 나면 탈진 비슷하게 되는 모양이다. 뇌 에너지 소비는 근육 에너지보다 에너지 소비량이 많고 회복도 느리지만, 치매 예방에는 그만큼 도움이 될 것 같다.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하여 전투에서 한 번의 패배나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늘 이기기만 하면 좋겠지만, 승부를 겨룬다는 것은 상대방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덤비는 것이므로 결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전투에서 한번 졌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전투가 여러 개 모여 대세로 나타나고 작은 전투에서의 패배는 귀중한 참고가 되어 큰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도 있다.
승자는 적이 많이 생긴다. 진 사람이 적의를 품는 것이다. 경쟁자들도 호시탐탐 승자를 꺾을 기회를 노린다. 승자의 약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약점이 보였다 하면 가차 없이 공격해 들어간다. 그러므로 삶이 피곤해진다. 결국 ‘부득빈승(不得貧勝)’의 결과만 남는다.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남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물러서면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면 져주면 효과가 좋다. 그러나 일부러 지려는 듯 져주면 상대방이 오히려 농락당한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져주는 방법이 상책이다. 져주는 방법은 양보이다. 한 번 이겼다고 해서 큰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번 졌다고 해서 크게 손해 볼 일도 없다. 어느 편이 속 편할지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댄스학원에서 대충 배운 댄스로 댄스 경기 대회에 나가면 백전백패 한다. 댄스도 오래 했고 학원 내에서는 잘 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나름대로 자신을 가졌으나 실제 경기에 출전해 보면 모든 면에서 다르다. 일단 경기장에서 하는 댄스는 동작이 화려하고 이동 반경이 커야 한다. 그래야 여러 경쟁자들보다 눈에 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댄스 휘겨와 루틴 등을 경기에 맞게 짜야 한다. 일반적으로 보폭도 커야 한다. 그러나 일반 댄스학원은 작은 편이기 때문에 학원에서 익힌 루틴으로 경기장에 올라서면 넓은 경기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경기장을 제 집처럼 넓게 활용하는 선수와 넓은 경기장에 버거워하며 움추러드는 선수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구도 그렇다. 당구도 동호인들이 늘어나면서 작게는 지인들끼리 또는 다른 당구장 사람들과 경기를 벌이는 일이 잦아 졌다. 당구 전용 TV에서도 하루 종일 당구 경기를 보여준다. 동호인들끼리 당구장에서 즐기는 당구와 실제 경기는 다르다. 동호인들이 경기 대회에 나가면 너무 긴장해서 평소 기량도 제대로 발휘 못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동호인들의 당구 경기를 보면 공격과 수비의 개념이 약한 것 같다. 4구 경기나 3구 경기 모두 공격과 수비까지 감안하고 쳐야 한다. 그런데 생각 없이 치다 보니 눈앞에 놓인 공을 치기 바쁘고 어떻게 쳤는지 우왕좌왕하다가 끝난다.
4구 경기는 다음 공을 치기 좋게 하기 위해서는 공이 모아져 있으면 좋다. 그래서 평소 지인들과 즐길 때는 모으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아쉽게 실수할 경우 모아 놓은 공을 상대방이 쉽게 쳐서 낭패를 보는 것이다. 가끔 하수가 고수를 이기는 이유가 그럴 때이다. 그러므로 경기에서는 확실한 공이 아니면 공을 모으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공이 목적구 하나는 멀리 단 쿠션 쪽에 벌어져 있고 다른 하나의 목적구는 반대편 단쿠션 쪽에 있으면 보통 두께를 조정하여 단쿠션을 먼저 맞히고 장쿠션을 거쳐 공이 돌아오게 친다. 그러나 성공할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성공 확률이 높지 않으면 그렇게 치면 다음 공이 멀리 있던 제1목적구가 아래로 내려오며 다음 공이 가까이 모인다. 그러면 상대 선수가 치기 좋은 배치가 되는 것이다. 죽 쒀서 남 주는 꼴이다. 그래서 확률이 높지 않으면 제 1 목적구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많이 움직이지 않는 방법으로 친다. 그럴 때는 빗겨 치기나 세워치기가 요령이다. 맞으면 다행이고 안 맞으면 상대 선수가 공을 모아주기를 한 차례 기다리는 것이다.
3구 경기는 반대로 제1목적구와 제2목적구가 한쪽으로 몰리면 공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자신이 칠 때는 포지션 플레이라 하여 다음 공을 치기 좋게 공을 친 후의 제 1목적구와 제 2목적구의 위치를 봐둔다. 한쪽은 코너 쪽으로 몰고 다른 하나는 반대쪽에 두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자신이 없는 경우에는 목적구 두 개가 한 쪽으로 몰리는 방향으로 치는 것이 전형적인 수비 방식이다. 지인들끼리 칠 때는 우선 눈앞에 놓인 공을 치기 급급하다. 맞으면 다행이고 안 맞아서 상대방이 쉽게 칠 수 있는 공 배치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골프에서 드라이버의 한 타나 퍼팅의 한 타는 같은 가치를 갖듯이 당구도 마찬가지이다. 동호인 골프에서는 호쾌하게 날아가는 드라이버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퍼팅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어지간한 거리이면 오케이를 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는 것이다. 실제 경기에서는 오케이가 통하지 않고 공을 당연히 홀에 넣어야 한다. 당구에서도 일반적으로 초구나 경기 초반에는 대충 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구가 중요하다. 초구가 맞으면 이어지는 공까지 성공했을 경우 초반에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경기이긴 하지만, 승부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마음 자세로 임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초반에 대충 친다. 그러나 경기는 경기이기 때문에 한 타 한 타가 중요한 것이다.
필자의 일가친척 중에는 치매 환자가 한 명도 없다.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도 계시지만, 90세 이상 사신 분들도 꽤 있다. 그래서 치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가끔 깜빡깜빡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에도 사무실에 왔다가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을 알고 다시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보니 이번에는 열쇠를 사무실에 벗어둔 재킷 주머니에 넣어두고 왔다. 다시 사무실로 가서 열쇠를 꺼내 집으로 갔다.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휴대폰을 겨우 손에 쥐었지만 사실은 열쇠 가지러 다시 사무실에 갔을 때 집에 가져다 둬야지 하며 내놨던 짐 보따리를 또 잊고 나왔다. 이런 필자가 과연 치매에 안 걸리고 여생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필자는 매우 꼼꼼한 성격이다. 여간해서는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책 내용을 까맣게 잊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다 보고 나왔는데 금세 스토리가 가물가물하다. 알코올성 치매도 염려된다. 평소에 술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과음한 날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1, 2차는 기억이 나는데 3차는 어디로 갔었는지 희미할 때가 있다. 위험 신호다. 그래서 되도록 독주보다는 막걸리를 고집한다.
지인들은 기억력 퇴화와 치매는 다르다며 필자의 경우를 기억력 쇠퇴로 정의해준다. 건망증 정도이지 치매 걱정은 아직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머리를 자주 쓰라고 조언한다. 필자의 블로그 활동은 그런 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것 같다. 글을 쓰는 한 머리도 쓰게 되어 있다. 노래를 배우거나 춤을 추는 것도 뇌 활동 중 하나다. 당구도 그렇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을 익히고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가 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본격적으로 대책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관련 보험은 오래전에 들어놨다. 보험 모집원이 하도 집요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귀찮아서 든 보험이다. 새 대통령이 치매는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공약을 했으니 치료비 걱정은 안 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리면 인생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우선 재산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동산, 부동산 관리를 아들에게 맡길 작정이다. 다행히 재원은 충분하니 경제적으로 아들딸 신세를 질 필요는 없다. 매년 연말이면 재산 목록을 컴퓨터에 업데이트해 한눈에 알 수 있게 해놓는다. 금융거래도 한 장짜리 종이에 정리해놓았다. 여차하면 컴퓨터 비공개 자료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가르쳐주면 된다. 요양병원 입원비를 충분히 떼어놓고 남은 재산은 아들딸이 반분해 나눠 갖도록 할 것이다.
필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을 만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찾는 일이다. 요양병원, 요양원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면서 부실한 시설로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대기자가 많다. 수요가 늘어나면 공급도 늘어날 것이다.
치매로 가족들을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믿을 만하고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 있다가 조용히 눈감으면 될 일이다. 치매를 앓게 되면 온전한 정신이 아니므로 병원에서 요구하는 잡다한 수술이나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어떤 형태로 장례를 치를 것인지, 장지는 어디로 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아들에게 부탁할 것이다. 한평생 해볼 것 다 해보고 후회 없이 살았으니 어떠한 미련도 없이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지낼 것이다. 미뤄뒀던 종교는 그때쯤 가져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