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0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헝그리(hungry) 세대다.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보다는 가족, 소비보다는 저축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는 아까운 줄 모르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몇 번이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5070세대다. 필자의 부모님도 평생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는 분들이다. 어쩌다 자식들이 좋은 옷을 선물로 드리면 “이건 얼마짜리냐?”, “환불은 안 되냐?” 하며 자식들 눈치를 본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에 인색하고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5070세대가 모으고 아끼고 저축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투자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누리면 어떨까? 이에 이번 호에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이하, 나·행·소)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원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유가 아닌 경험을 위해 소비하라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호 교수는 “행복의 기준이 과거에는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서 이제는 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금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소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는 크게 ‘소유를 위한 소비’와 ‘경험을 위한 소비’로 나눌 수 있다. 과거 5070세대는 소유하기 위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가령 자동차, 집, 옷 등을 소유하고 사용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소비의 행복감은 단발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렇다면 경험을 위한 소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령 학습하며 강의를 듣는 것, 여가활동, 여행을 떠나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하며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소유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훨씬 행복감이 크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경험은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활동으로 가장 선호하는 여행([자료1] 참조)을 예로 들어보자.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왜 그럴까?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5070세대에게 ‘경험하고 체험하는 소비’는 익숙하지 않다. 경험을 위한 여가활동은 기껏해야 TV 시청 정도뿐이다. 5070세대가 성장해왔던 과거 1970년대에는 마땅한 여가 활동도 없었다. 화투 정도가 전부였고 1980년대에 와서야 도심에서 탁구, 당구, 볼링, 테니스 등을 즐겼다. 최근에는 골프와 캠핑 등도 여가활동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경험을 위한 소비’가 반드시 여가활동이나 여행일 필요는 없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의 좌표를 배움에서 찾는 5070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 60세 이상 학점은행제 등록자는 2만2915명(대학학점인정 과정 기준)이며, 55~64세의 평생교육 참여현황은 OECD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교육과학기술부 국가평생교육 통계조사). 또한 지난 2013년에는 1972년 방송통신대 개교 이래 최고령자인 정한택(입학 당시 91세)씨가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5070세대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를 위해서는 ‘갖고 싶은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여가활동의 주역이 10대에서 60대 이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고수입의 활동적인 70대가 레저시장의 주도세력이다.
유병장수시대 행복하게 하는 소비
과거 학창 시절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따르면, 사람은 의식주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면 상위 욕구로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을 궁극적으로 꿈꾸고 싶어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욕구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이론이자 경험론이다. 나·행·소 관점에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1단계 생리 욕구는 의식주 관련 소비로, 2단계 안전 욕구는 건강 예방을 위한 소비로, 3단계 소속감 욕구는 친구/동호회 활동을 위한 소비로, 4단계 존경 욕구는 학습/교육 활동을 위한 소비로, 5단계 자아실현 욕구는 여행을 위한 소비로 매칭할 수 있다([자료2] 참조).
앞서 필자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나·행·소 첫 번째 요소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매슬로우 욕구 이론에 따르면 모든 5070세대가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빼어난 경치라도 당장의 배고픔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은퇴생활을 하는 5070세대의 소비 성향과 욕구도 동일하지 않다. 은퇴 후에 소득이 중단되어 의식주 관련 소비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자료3] 참조). 여기에 의료, 간병을 위한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험을 위한 소비’는 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5070세대가 나·행·소를 위한 소비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소비욕구 5단계에 따르면 1, 2단계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화와 건강과 관련된 소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자산을 모으는 웰스(wealth)가 아닌 건강을 지키는 헬스(health)에 관심을 갖는 50대가 많아지고 있다. 건강이야말로 최선의 노후대책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건강하지 못하면 노후생활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준비된 노후자산은 조금 부족해도 몸이 건강하면 긴 노후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산의 품질이 아닌 몸의 건강품질을 높이는 소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건강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될지 모른다. 건강을 통해 더 젊게 살고, 더 즐겁게 살며, 더 행복하게 사는 궁극적 가치에 한발 다가서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먹고, 건강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비야말로 나를 지키고 행복하게 하는 소비가 아닐까?
Clean & Dress up 소비에 인색하지 말라
몇 년 전 개봉한 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퇴직 후 은퇴생활을 즐기다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70세 노신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로버트 드 니로)은 다운타운에 방 여럿 딸린 자택을 소유한 나름 성공한 중산층이다. 비록 아내와 사별했지만 자녀도 별 탈 없이 잘 자라 독립했고, 취미로 요가나 화초 재배를 하며, 가끔 손자 재롱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은퇴세대다.
주인공은 혼자 사는 은퇴세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소 옷매무새 하나도 빈틈이 없다. 그는 언제나 젊은 사람보다 더 깨끗하고 말끔한 시니어다. 옷차림새뿐만 아니다.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한다(Clean up).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비롯된 노하우와 나이만큼 풍부한 인생 경험은 CEO뿐만 아니라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액티브시니어들도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옷은 비즈니스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편한 게 좋은 것이여!”라며 집에서도 외출할 때도 늘 입는 아웃도어 복장은 아닌지 살펴보라. 이왕이면 깔끔하게 잘 갖춰 입고(Dress Up) 다니자. 나이 들수록 깨끗하게 잘 차려 입어야 한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반듯하게 차려 입은 상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손주들도 좋은 향기가 나는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잘 차려 입은 옷은 자신감을 더해준다. 그러므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Clean & Dress Up 소비’에 절대 인색하지 말자.
한 주에 3일 나가는 동네 당구장에서는 3 쿠션을 치는 당구대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모두 4구 경기용이다. 4구 경기는 공 4개를 사용하며 빨간 공만 맞추는 게임이다. 3구는 공 3개를 사용하며 제1목적구와 제2목적구를 쿠션 3군데 이상 맞춘 후 맞춰야 하는 게임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200이하인 동호인들은 대부분 4구 경기를 즐긴다. 보통 80, 100, 120, 150 수준에 많다. 3 쿠션 경기를 즐기려면 당구의 요령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므로 200점 이상은 되어야 도전할 수 있다.
4구 경기는 대부분 스트로크를 부드럽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빨간 공이 가까이 있어서 치기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3쿠션 게임은 쿠션 3군데 이상을 맞춰야 하므로 파워 스트로크가 필요할 때가 많다.
필자는 4구 경기는 성격상 잘 못한다. 공을 살살 다뤄야 하는데 가까이 있는 공을 아주 살짝 건드리자면 더 힘들다. 입스도 자주 발생한다. 반면에 3 쿠션 경기는 대회전을 비롯하여 파워 스트로크로 당구대를 넓게 사용하므로 체질에 맞는 것 같다.
4구 경기는 어찌 보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체질에 맞는 것 같다. 힘을 덜 들이고 정교하게 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3구 경기를 못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역시 섬세한 터치가 남자들보다 유리할 때가 많다. 남자들이 4구 경기를 하면서 공을 너무 살살 다루면 답답하게 느껴진다. 프로 선수들은 ‘세리’라는 위치에 공이 모이게 되면 살살 건드리며 수없이 친다. 이론적으로 초구를 친 사람이 그렇게 하면 경쟁자는 후구 경기가 없으면 스트로크 한번 못해보고 그대로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4구 경기는 재미없다며 국제 경기에서 제외되고 3쿠션 경기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고수와 치게 되면 상대방은 한참을 앉아서 기다려야 하니 지루하다.
4구 경기에서 플레이가 느린 사람은 싫어한다. 리듬이 깨지기 때문이다. 4구 경기는 척 보면 어떻게 쳐야 할지 바로 답이 나오는데 이리저리 궁리하고 재느라고 꾸물거리면 꼴불견인 것이다. 그러나 3구 경기는 어떻게 쳐야할지 그림을 그려야 하고 빈 쿠션을 시도할 때에는 각도를 계산해야 한다. 해법을 같이 고민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좀 느리게 플레이를 해도 지루한 줄 모르고 이해도 해준다.
3구 경기는 보통 당구대보다 큰 중대나 대대를 사용한다. 보통 당구장에는 4구 용 당구대가 대부분이고 가끔 3 쿠션용 중대를 놓은 곳이 있다. 그러나 대대가 있는 당구장은 일부러 찾아가야할 정도로 희소성이 높다. 이번에 우리 동네 당구장에 대대가 한 대 설치되었다. 사장이 당구대를 아끼느라고 회원들은 사용하지 못하게 했었다. 대대 사용료는 일반 손님들에게도 더 비싸게 받기 때문이다. 회원 중 고점자들이 월 3만원 회비에서 1만원을 추가로 내기로 하고 대대 사용을 허락 받았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대대 당구대 사용권을 갖는 것이다. 대대에서는 3 쿠션 경기만 할 수 있고 그간 3 쿠션을 독점하던 사람들도 추가로 1만원을 낸 사람과 같이 3 쿠션을 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제 경기는 대대에서 하기 때문에 진정한 3쿠션을 익히려면 대대에서 연습을 해야 한다. 한 차원 높은 3 쿠션을 즐기게 될 것 같다.
조영환 AJ가족 인재경영원장(62)은 ‘가정도 회사처럼, 가족은 고객처럼 경영하라’고 말한다. 그는 “가정은 기업의 축소판”이라며 “가족에도 회사 경영 마인드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1990년부터 가정경영계획을 수립해, 27년여 실행해온 성공적 가장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에서 26년간 인사조직 분야를 담당했다. 이후 5년간 강연, 집필 등을 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했고 현재는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으로 3막의 인생을 경영하고 있다.
보통 베이비부머 세대의 직장인은 입사~퇴직이라는 한 우물의 인생이 일반적 코스입니다. 조 원장께선 55세에 퇴직해 5년간 프리랜서, 3막 기업인으로 재기와 변신을 거듭하셨는데요. 먼저 퇴직 후 프리랜서로의 변신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퇴직 후 충격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피가 흐르고, 역마살 체질이 있어서 물 만난 고기 같다는 생각이 곧 들더군요. 특히 생활 리듬은 깨뜨리지 않으려고 유의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아침식사는 집사람과 같이하는 등으로요. 퇴직한 지 3개월 만에 책을 냈습니다. 5년 동안 책을 13권 썼으니 그야말로 왕성한 활동이라고 할 만하지요. 그때 저는 삼성출신 전직 임원보다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고 했지요. 태국에서 2종, 중국에서 2종이 번역됐고요. 김구라, 이경규 등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강의를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습니다. 머리도 기르고, 넥타이도 매지 않고요. 모범 직장인의 전형인 삼성 스타일에서 벗어난 것이 자유로움을 줬습니다. 강연, 집필 외에 젊은이들을 위한 무료 취업 코칭 등의 재능기부를 했어요. 그러다가 커플이 생겨 주례도 서고… 심지어 아파트 동대표 회장까지 맡아 지역 봉사활동을 하는 등 보람이 많았습니다(웃음).”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으로 생활하시는 동안 특별히 명심하신 사항이 있었나요.
“회사 다닐 때, 하루 종일 밖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가족 간의 문제점, 약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지니 잔소리가 늘어났던 겁니다. 당연히 식구들이 점점 불편해했지요.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집사람에게 슬쩍 물어보더래요. ‘아빠, 언제까지 집에 계실 거냐’고. 그 말을 듣고 가까운 헬스클럽에 등록해 2시간 운동하고 점심과 저녁 약속 억지로라도 만들면서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잔소리하고 싶은 것 있으면 꾹 참고요. 좋은 점, 칭찬거리만 보고 말하려 애썼지요.”
프리랜서 생활 5년 만에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가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이 되셨습니다.
“(웃음) 바쁜 중에도 모처럼 스케줄이 비는 날이 있잖아요. 어느 날 점심약속이 없어 오피스텔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데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더군요. 같이 일할 조직과 구성원이 그리웠어요. 마침 AJ가족의 문덕영 부회장이 제 책을 읽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와 응하게 됐지요.”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 이후 새로운 2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공통의 당면과제입니다. 아직 조직에 있는 사람이든 프리랜서이든 준비해야 할 필수사항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전 조직에서의 좋은 평판이라고 봅니다. 평가가 실력에 관한 것이라면 평판은 인품을 포함하는 것이지요. 퇴직 후엔 평가보다 평판이 더 중요해요. 술버릇, 말과 행동, 주변과의 교류 등인데,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평판입니다. 누구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2막 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2막 인생에 빨리 적응한 것도 사람농사를 잘 지어놓은 덕분이었어요. 조직생활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일을 한다면 가장 잘하는 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성공률이 높습니다. 어설프게 다른 사람의 권유로 원하지 않는 영역의 일이나 잘 모르는 일을 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성화재 인사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사기획, 이론연구, 노사관리업무를 담당했지요. 또 삼성화재 사업부장(상무이사급)을 지내셨지요. 이론연구와 현장 근무의 양수겹장 경력을 갖고 계신데요. 인사조직관리의 요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인가요.
“인간 존중입니다. 저는 리더가 하는 일은 직원들의 일을 대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군불을 때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말만이 아니라 진정한 인격체로 대해주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일선 직원들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고충을 처리해주고 산간벽지라도 경조사는 다 찾아다녔지요. 제 자동차 1년 주행거리가 6만5000km로 웬만한 택시 버금갈 정도였어요. 보험사 사업부장 때는 보험설계사 900명의 이름을 석 달 만에 다 외웠어요. 본인은 물론 배우자, 자녀 대소사까지 챙겼지요. 혼자 사는 사람은 반려동물 이름까지 외우고 예방접종 시기까지 먼저 알려주며 인사했습니다. 고성과자에겐 그 사람을 위한 맞춤형 시를 써서 액자에 담아 감사를 표했고요. 그러니 제가 보험 지식은 하나도 없어도 저절로 사기, 성과가 함께 올라가더군요.”
그는 ‘인간 존중’의 핵심은 효율보다 효과를 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계산으로는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산에서는 남게 돼 있다는 것. ‘작은 진동이 큰 감동의 파동을 일으키게 돼 있다’는 게 그의 수십 년 경험의 철칙이다. 조 원장은 지금도 그때 알고 지내던 직원들과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 회원 100여 명의 ‘조사모(조영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라며 자랑했다. 퇴직 후 그가 고객 감동경영의 노하우를 묶어낸 처녀작의 제목은 다.
인간 감동경영도 배우면 가능합니까?
“저절로 할 줄 알면 성인이게요(웃음). 저는 신참 때도 꿈이 임원 승진보다 ‘상사한테는 신뢰, 부하한테는 존경을 받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현실에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힘들잖아요. 상사한테 인정받으려면 직원들에겐 몰인정한 사람이 돼야 하고, 직원들한테 존경받으려면 상사한테는 무능한 사람으로 무시받기 쉽고…. 그래서 위아래에서 모두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누가 있나 찾아봤어요. 롤모델로 삼으려고요. 책은 물론, 조직 내외의 인물들에서 찾아보고 적용하고, 실패하면 수정하고… 그러면서 제 나름의 감동경영 방식을 개발하고 만들어나갔습니다.”
직원 감동경영과 가족경영은 자칫 시소게임이 되기 쉬운데요. 어느 하나에 치중하다 보면 한쪽은 소홀히 하게 됩니다. 가족은 어떻게 감동시키셨는지 궁금합니다.
“고객감동 방식과 가족감동 방식은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가족을 너무 쉽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족도 고객처럼 대하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전략과 기획 마인드를 가지고 감동시킬 방법을 연구하라고요. 가족감동도 공짜는 없어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꾸준히 기대 이상으로 해주고,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요. 가족경영도 프로젝트를 세우고 예산을 배정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점검하고 시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 원장께서 실행하신 가정경영의 대표적 히트작은 무엇인지요.
“가족경영과 조직 인사관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1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회사 운영계획을 자세하게 수립하지요. 그러나 가정에선 그런 걸 잘 안 합니다. 저는 과장으로 지내던 시절인 1990년경부터 집사람, 두 아들 등 온 가족이 참여해 가정경영계획을 매년 세웠습니다. 먼저 가족 모두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 예컨대 건강, 재산, 가정, 친족, 문화, 지식 등으로 범주를 정해 각각 실천사항 등을 토의해 결정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노트에 기록해놓고 같이 실행할 것을 다짐하면서 서명, 관리합니다. 다음 해 초에는 결산을 해 잘잘못을 따져서 차기 계획을 수립하고요. 가족 구성원이 참여하고 공감한 것이라 실천하기가 한결 쉽고 실행률도 높더군요. 아이들에게 계획적인 삶을 사는 습관을 키워주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출근 전 1분간 가족과의 포옹 습관도 스스로 자부하는 가정경영의 히트작으로 꼽았다. ‘포옹이 포용’을 낳더라는 이야기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거실에서 1주일 1회 온 가족 회식 프로젝트 등을 실행했단다. 덕분에 각각 가정을 이룬 두 아들은 지금도 아버지를 친구처럼 여긴다. 술친구는 물론이고 스크린 골프, 당구도 같이 치고 고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찾는 지피지기 1호다.
둘째 아드님이 내성적이라 친구를 못 사귀자 안방을 최고급 음향, 모니터를 갖춘 피시 장비를 설치해 오락실로 만드셨다고요. 그때 ‘예산 개념 없이 무조건 무한정 지원, 이 방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글귀를 방문에 써 붙이셨다면서요.
“교육은 비용이 아니고 투자입니다. ‘정보화 기기들과 빨리 친해지고, 트렌드를 놓치지 말고, 그리고 즐거운 학창 시절을 만들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란 취지’에서요. 만일 내가 이것을 말로 수십 번 했다면 아이가 따랐겠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환경 조성이에요. 왜 안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고요.”
그는 “가정에서 부모도 마찬가지고, 조직에서 상사도 마찬가지다. 왜 못하냐고 질책할 것이 아니라 잘하려면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가를 고심하는 게 어른의 의무”라고 강조하면서 “내가 아닌 상대에게서 사고나 행동 규범을 출발시키는 게 필요하지요. 내 사고방식이나 가치체계, 생존 방식을 고객의 수준과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대의 언어와 습관, 취미 등을 눈여겨보고 다가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퇴 후 가장 확실한 보험은 배우자와의 금실이라는 시쳇말도 있습니다. 부부경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가슴에 안아버리는 것입니다. 따지기 시작하면 풀리지 않아요. 다 들어주고, 생각이 정말 다르면 다음에 마음이 편안할 때 다시 의견을 조율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게 부부입니다. 나이 들어선 의식적 노력이 필요해요.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부부애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젊어서야 애정으로 살지만, 나이 들면 인간애로 사는 게 부부 아니겠습니까.”
조 원장은 고객 감동경영을 부인 감동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결혼 20주년엔 부인을 위한 글을 직접 써 감사패를 수여했고, 30주년엔 직접 끓인 소고기미역국을 비롯해 정성 어린 생일상을 진상했다. 동시에 30주년 숫자에 맞춰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30가지 이유’를 작성해 헌정했다. 처음엔 ‘쓸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아내의 장점들이 소록소록 떠오르더란다. 이런 패키지 상품을 선사하니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이 술술 잘 풀리더라고.
배우자 몰래 만들어놓은 비자금 내지 비상금이 간혹 문제가 되곤 하는데요. 조 원장께선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비자금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있지만 저는 찬성 입장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가정살림에서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거든요. 살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요. 비자금은 숨겨둔 돈이라는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긴급할 때 활용할 수 있어 남자나 여자나 어느 정도의 비자금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이 들수록 경조사비 부담도 만만찮고, 긴급 용도로 써야 할 경우도 있는데 이 비용을 배우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해 그때그때 손을 벌리려면 궁색합니다. 구태여 비율로 이야기하자면 총소득의 20% 정도는 비자금으로 비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 들으니 조직관리의 노하우를 가정경영에도 잘 접목시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가장 행복하셨을 때는 언제인지요?
“후배들이 멘토라고 많이 찾아와줄 때입니다. 책을 출간한 뒤 여기저기서 후배와 친구들이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사진을 찍어 보낼 때도 그렇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면접토론 때 참고서적으로 제 책 을 제일 위에 꽂아놓았을 때도 행복하더군요. 다만 이순(耳順)이라는 육십을 지나니 잘났다고 뻐기거나 욕심내는 것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익어가는 징조인지, 기운 빠지는 징조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는 앞으로 인생 4막의 꿈은 집필하고 강의하고 코칭하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역사기행이나 문화기행 같은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나 후학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 사람부자가 되면 잘 사는 삶 아니겠습니까?”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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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현재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 삼성화재 인사팀에서 채용-인사기획-노사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삼성경제 연구소 인사조직실 컨설팅 등을 수행했으며 삼성화재 인사담당 임원으로 부임, 상무이사 승진 후 삼성화재 사업부장을 지냈다. 당시 ‘함께 근무하고 싶은 상사’로 뽑혔다. 저서로는 , , 등 다수가 있다.
당구를 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아마추어들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애버리지가 1이 넘으면 한 큐를 칠 때마다 한 개 이상을 치는 것이다. 4구에서도 그렇지만 3쿠션 경기에서는 프로들도 애버리지 1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은 애버리지 1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공을 맞추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방법이 틀리거나 일단 의도한대로 맞추지 못하는 실수가 많다. 실수는 창피한 것으로 치부한다. 실수 때문에 그 판에서 결정적으로 질 수도 있다. 한 번의 실수가 그 판에서 지게 되는 결정적인 말미를 주는 경우가 많다. 복식으로 칠 경우 실수가 잦으면 같은 편 사람에게도 전의를 상실하게 하거나 결과적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게 하여 민폐를 주는 것이다.
‘패배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다. 싸움에서 지는 것은 군대에서는 보통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싸우는 족족 이기면 좋다. 그러나 상대방도 최선을 다해 응해오므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질 수는 있지만, 계속 지면 싸움 자체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임이기 때문에 계속 이기기만 한다면 상대방이 같이 치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자신의 점수를 올려야 한다.
당구를 야무지게 잘 치는 사람들은 실수가 나오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왜 실수가 생겼으며, 다음에 어떻게 하면 그런 실수를 성공으로 만들 수 있는지 되새긴다. 보통 사람들은 실수를 하고 나면 그 결과에만 반응을 보일 뿐 실수에 대해서는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 차이가 나중에 실력 향상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상대방의 실수도 눈여겨본다. 상대방이 빈 쿠션으로 쳤는데 그대로 못 미쳤다면 상대방이 친 빈 쿠션의 포인트를 보고 각도를 조정 계산할 수도 있다. 고점자와 칠 때는 보는 방법 자체가 다를 수 있다. 고점자가 왜 그렇게 쳤는지, 왜 실수가 나왔는지 눈여겨보는 것은 많은 공부가 된다. 고점자가 친 기술을 눈여겨보았다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것은 바둑에서의 복기와 마찬가지이다. 당구를 치는 중간에는 복기라는 것을 할 수 없지만, 게임이 끝나고 나서 그 상황을 재현하여 성공적으로 공을 맞추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승패에 따라 일희일비하기만 한 사람은 발전이 없다. 감이 좋으면 잘 맞고 그렇지 못하면 실수가 연발하게 되는 것이다. 복기는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실수를 통하여 더 많은 공부가 되기도 한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발전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연습은 실수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나 연습을 통하여 공을 맞추는 확률을 높이고 다양한 경험을 재산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프로선수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당구도 어릴 때부터 쳐야 경험이 풍부하게 쌓여 확률 높은 공을 칠 수 있다고 한다. 실전은 연습처럼, 연습은 실전처럼 해보면 실력이 부쩍 는다.
당구는 프로 선수들에게는 경기이기도 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즐기는 스포츠 게임이기도 하다. 승패를 가리는 것이므로 승부에 집착하게 된다. 공격 일변도로 하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수비를 염두에 둔다. 확률이 떨어지는 공을 쳤다가 상대방이 치기 좋은 공을 주면 상대방은 손쉽게 공격 포인트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노리다가 실패하면 상대방에게 여러 개의 공을 주는 결과도 생긴다.
일반적으로 4구 경기에서는 빨간 공이 가까이 모여 있으면 치기 쉽다. 그래서 수비란 빨간 공을 되도록 멀리 떨어뜨리는 전법, 스트로크를 제대로 할 수 없도록 수구 앞을 내 공으로 가리는 방법, 목적구 근처에 파울볼을 위치하게 해서 파울을 유도하는 방법 등이 있다. 그래서 4구 게임에서는 스트로크를 힘을 빼고 살살 친다. 그러면 수구가 목적구에 안 맞더라도 어느 공이든 근처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노골적으로 수비를 하다 보면 즐거운 게임이 아니라 상대방의 비위를 건드리게 할 수 있다. 수비란 상대방의 공격을 어렵게 하거나 방해하는 목적이므로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수비하는 것이 보이면 게임의 목적에 어긋난다. 본인도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수비가 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가끔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자기 공격을 하지 않고 수비만 하려고 공을 상대방 수구 앞에 가려 놓는 사람도 있다. 한번은 통하지만, 그런 사람은 매너가 나쁘다는 평을 들어서 다음에는 안 끼워준다.
일반적으로 3 쿠션 게임에서는 공격과 수비가 정당화 되어있다. 포지션 플레이라 하여 다음 공을 치기 쉽게 배치하려면 공 하나는 코너에 있는 것이 좋고 다른 공 하나는 쿠션을 세 군데 이상 맞히고 들어 와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 중에 들어 있는 공 배치가 되면 좋다. 그러려면 살살 칠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 파워 있게 스트로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4구 경기처럼 다른 공 근처에 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게 만드는 것이 잘 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3구 경기에서는 공 두 개가 당구대의 한쪽에 위치하게 하는 방법이 수비 방법이다. 너무 붙어 있으면 시스템 당구라 하여 각도를 계산해서 쉽게 맞힐 수 있다. 적당히 한쪽으로 몰아 놓아두면 소위 처리하기 힘든 난구가 된다.
당구의 수준은 초보자 때는 공을 맞추기에 급급해 한다.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으로 치는 것이다. 재수 없으면 키스가 나서 의도하던 방향으로 공이 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우선 공을 맞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한번 맞히고 나서 다시 또 맞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연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4구에서는 공이 모여 있으면 치기 쉬우므로 당연히 공이 흩어지지 않도록 살살 쳐야 한다. 가까이 있더라도 제1목적구를 멀리 보냈다가 다시 모아 치기 쉬운 배치를 만들기도 한다.
3구 경기에서는 공이 당구 테이블 안에서 돌아다니는 궤도가 크다. 하나를 성공시키기도 어렵지만, 다음 공 배치를 생각하며 쳐야 하고 돌아다니는 궤도가 크다 보니 공끼리 중간에 부딪혀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는 키스를 방지해야 한다. 키스를 방지하는 방법은 수구의 움직임은 물론 제 1목적구가 가는 방향과 속도 등을 알아야 한다. 당구에서도 고수가 되는 길은 멀다.
주사(酒邪)는 ‘술을 마신 뒤에 나쁜 버릇으로 하는 언행’을 말한다. 생전의 아버지는 주사가 심했다. 언행에 더해 고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 당시는 필자가 사춘기라서 그런 주사를 참지 못하고 욱하곤 했다. 그 결과는 가출이었다. 한창 감정이 예민했던 고등학생 때 무려 4차례나 가출을 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맨손으로 상경해 서울에서 장사를 하며 자리를 잡았다. 한때는 우리가 살던 용산 지역의 돈은 우리가 다 쓸어 담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복잡한 재래시장에서 주류 대리점을 열고 주류 배달 화물차를 무려 58대나 운행했으니 어지간한 기업이었다. 그렇게 집안을 부유하게 일으키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전쟁 후의 사정이 어디든 그랬듯 먹고사는 것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경쟁에서 지면 문 닫는 것이고 이겨야만 살아남았다. 돈이 모이는 곳이 조용할 리 없다. 동네 폭력배부터 경찰, 경쟁업체, 상인조합, 거래처 등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세상은 전쟁터이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자는 강해야 한다며 복싱, 유도, 태권도, 합기도 등 격투기를 배워 반드시 초단 이상까지 따라고 가르쳤다.
아버지는 무서운 것이 없었다. 나름대로 맨땅에 헤딩해서 성공했다는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쭐하고 으스대는 면이 강했다. 경찰 출신으로 당시로서는 큰 키인 185cm 장신에 힘도 세서 당할 사람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 말릴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면도 있었다. 특히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면 동네 사람들이 다 불안해했다. 집에 있는 우리 어린 형제들은 더 공포스러웠다. 아버지가 만취한 날은 밖에서의 주사 소문이 먼저 들려왔다. 집에 들어오셨을 때는 우리 형제들을 이유 없이 나무라셨다. 우리는 자는 척하기도 했고 장롱 속에 숨어 아버지의 주사가 어서 잦아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겠지만, 술이 올라 벌게진 얼굴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들에게 큰 소리로 마구 호통을 치니 그런 주사를 점점 참기 어려웠다. 기껏 하는 반발이 가출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잘 참는데 필자는 아버지의 주사를 볼 때마다 분노 조절이 안 되었다. 욱하는 마음으로 가출했으니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당장 하루 세끼 먹는 것이 문제라 배를 곯아야 했다. 어쩌다 친구들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그 집 부모님들이 눈치 채면 더 이상 신세를 질 수도 없었다. 하루에 호떡 하나로 허기를 달랜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여러 자식 중 하나가 가출했다고 생각했는지 크게 상심하지도 않았다. 어떤 때는 가출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필자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판 시끄럽게 하고 나면 아버지는 숙취로 만사 제쳐두고 고생하셨다. 그러니 집 나간 자식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결혼을 일찍 한 것도 일단 집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 아버지의 주사를 더 이상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아버지의 주사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아버지의 주사는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았다. 술로 벌게진 얼굴과 되지도 않는 논조의 큰 목소리가 바로 트라우마다. 그래서 지금도 술집에 갔을 때 옆자리 사람들 목소리가 커지면 당시의 생각이 나서 나와버린다. 당구장에 갔을 때 취객들이 들어와 당구를 치면서 너무 시끄럽게 굴면 게임을 하다가도 나온다. 주인에게 자제시키라는 주문을 해보기도 했지만, 손님 떨어질까봐 대답만 하고 모른 체한다. 늦은 시각 전철 안에서도 취객이 너무 떠들면 다른 칸으로 이동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주사를 봐온 필자는 술을 마시면 곧바로 조용히 잔다. 술김에 자녀들이 귀엽다며 무슨 얘기를 해봐야 주사가 되기 쉽다. 평소에 맨정신으로 할 말을 왜 술에 취해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술이 오르면 기분이 좋고 흥도 오른다. 그럴 때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날 술이 취해 귀가하면서 전철을 타고 오다가 스마트폰 SNS를 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는 실수하기 쉽다. 그 기분에 SNS를 하는 것은 주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손주를 보러 갈 때마다 아들 집 근처에서 한잔하고 갔다. 손주가 아직 어려서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좀 더 크면 기억할 테니 자제해야 할 일이다.
우리 형제 중 동생이 바로 아버지의 주사를 닮았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얌전하다가도 술만 취하면 알 수 없는 넋두리에 목소리가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술에 취해서 한 행동이 그다음 날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라면 “술은 취하려고 마신다”며 큰일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술은 즐기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고, 어느 정도 취하면 술 마시는 속도를 조절하든지 그만 마셔야 한다”고 말해주면 그런 사람과는 술 마실 맛이 안 난다는 한다. 자기는 술김에 속마음 풀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안 취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은 계산적인 것 같아 같이 마시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한번은 둘이 술을 마시다가 형님에게로 갔다. 이미 많이 취했지만 좀 더 마시겠다며 간 술집에서 동생이 마구 큰 소리로 욕설을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마침 민감한 문제로 어색해하던 형제들 사이가 그날 일로 인해 아예 끊어져버렸다. 동생에게 실수에 대해 형님에게 사과하라고 하자 사과는 했다. 그러나 정작 형님은 사무적으로 사과를 받아들였을 뿐 섭섭한 마음을 풀지 않았다. 술 취해서 한 행동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술 좋아하는 우리 집안에 술은 필요악이다.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아버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술을 드셨다. 그러니 필자도 술을 오래오래 즐길 것이다. 그러나 필자로 인해 다른 사람이 트라우마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한다.
돌아보니 남들과의 경쟁이 삶이었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놓고 학우들과 경쟁했다. 명문학교에 가려고 치르는 입학시험도 경쟁의 확대판이었다. 군대에서 선착순을 시키면 기합을 면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 탈락자 대열에서 빠져야 했다. 취업도 승진도 경쟁이었다. 예쁘고 착하고 스펙 좋은 배우자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다.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일도 많다. 학교에서 성적을 위한 경쟁은 의미가 약하다. 그 나이 때는 전력투구를 잘 모른다. 경쟁은 전력을 다했을 때 비로소 경쟁의 의미를 안다. 필자는 권투를 배울 때 만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사각의 링에 올라가 둘이 시합을 할 때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전문 선수가 아니면 한 라운드 3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길다. 전력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숨도 쉬어야 하고 체력도 받쳐줘야 하고 기술도 상대보다 나아야 한다. 그러나 맞지 않기 위해 초긴장을 하고 공격하다 보니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양손을 다 쓰다 보면 어느새 숨이 가빠진다. 그러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남과 겨뤄 이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치열하게 치고받고 난 뒤 서로 포옹해주며 경기를 끝내는 것이다.
골프나 당구를 즐기면서도 내기를 하면 초긴장 상태로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과 돈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에 몸이 경직되기 때문에 끝나고 나면 탈진해서 뻗는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로 여겨야 한다. 승부에 너무 연연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기에 지면 돈으로 메우면 된다. 어떤 경우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아야 한다.
마라톤 경기에서 일반인들이 무리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빨리 뛰어야 남보다 나은 기록이 나오겠지만 목표보다는 목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위권 성적이나 기록보다는 건강이라는 목적 때문에 참가한 것이라면 말이다. 댄스 경기 같은 단체전에서도 다른 선수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선수들이 있다. 경쟁 선수가 엔트리에 있으면 출전을 포기하거나 그 종목을 피해서 다른 종목으로 출전하는 것이다. 댄스가 직업인 프로선수가 아니라면 순위보다는 그냥 즐기면 된다. 댄스 경기에서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의 친분과 교감이다.
사회적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을 이겨야 내 존재가 부각되고 자존심을 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때 져주는 것이 오히려 이긴 것보다 나을 때가 많다. 이긴 사람은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겠지만, 경쟁에서 진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갖지 않으니 적이 생긴다. 갈등이 생길 때 경쟁심을 풀고 상대를 동정적인 마음으로 대하니 얻는 것이 많다. 나이가 들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더더욱 경쟁을 멀리해야 한다.
2017 포르투 세계 3쿠션 당구대회를 TV를 통해 관전했다. 우리나라의 김행직 선수가 우승하고 허정한 선수가 공동 3위를 한 대회다.
김행직 선수와 결승에서 맞붙은 베트남의 윙꾹윙 선수는 외모부터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머리를 밀었고 인상은 산적처럼 생겼다. 거기다 큐대를 다루는 태도가 몹시 보기 흉했다. 보통 선수들은 큐대를 양손으로 잡거나 한 손으로 잡더라도 목 부분을 잡는다. 그런데 이 선수는 큐대 아랫부분을 한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장면이 여러 번 포착되었다. 거기에다 큐대를 당구 대 위에 놓을 때 소리를 내며 큐대로 겨누거나 동선을 재어보는 등 세계적인 선수 같지 않은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분명 눈에 거슬리는 행동인데 해설하는 사람도 이런 행동에 대한 지적이 한마디 없었다.
당구 4대 천왕으로 불리는 브롬달, 쿠드롱, 야스퍼스, 산체스 같은 선수들은 선진국 선수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매너가 좋다. 반면에 윙꾹윙 선수는 후진국인 베트남 선수라 당구 매너를 제대로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당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매너도 중요하다. 당구대회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정장 조끼를 갖춰 입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큐대는 일단 위협적이다. 작대기, 몽둥이, 창 같은 느낌을 준다. 액션 영화를 보면 당구장에서 난투극이 벌어질 때 종종 무기가 된다. 자칫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므로 큐대는 보검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보기 좋다.
2016 구리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의 제레미 뷰리 선수도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선수다. 해설자가 한 번은 개인적으로 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멘트를 했다. 뷰리는 제한시간 40초를 매번 거의 다 쓴다. 큐대로 요리 재어보고 저리 재어보면서 신중을 기하는데 그런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지친다.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세계적으로 제한시간을 줄이는 추세이므로 더 이상 이런 선수가 설 땅은 없을 것이다.
당구를 즐기는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이라면 큐대를 다루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스로는 모를 것이다. 보는 사람들도 아직은 그런 모습이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머릿속에서 세팅이 끝나고 당구대에 브리지와 큐를 내려놓고 수구를 겨누는 동작은 연속 동작으로 한순간에 깔끔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스포츠 용구 중에 검도는 죽도 등 긴 칼을 사용하고 펜싱도 검을 사용한다. 골프도 골프채를 사용한다. 하키나 아이스하키 종목도 긴 스틱을 사용한다. 야구는 방망이가 사용된다. 이런 스포츠 용구를 다루는 모습은 자칫하면 남을 다치게 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경기 중이라면 몰라도 한쪽 끝을 쥐게 되면 다루기도 어렵다. 당구 큐대도 마찬가지다.
P씨는 동네에서 같이 당구를 즐기는 사람이다. 150점을 치는데 여간해서는 지지 않는다. 기초가 탄탄해서 당구를 정확하게 치는 편이다. 150점을 넘는다는 얘기이다. 200점실력인데 150점대에서 놀다 보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충고 했다. 200점으로 올리라고 했더니 드디어 오케이 했다. 200점을 놓고도 150점대에서 자기 점수에 좀 약한 사람들을 상대로 계속 이겼다. 그리고 몇 몇 약한 200점 대 사람들을 이기고 나서 자신이 붙었나 보다.
드디어 필자와 같이 200점을 놓고 치는데 그가 연전전패 했다. 말 펀치도 심하고 잘 웃던 그가 말도 없고 찌푸린 얼굴 표정을 봐도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그가 150점을 놓고 치는 것이나 200점을 놓고 치는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5개 차이인데 한 큐에 5개 정도는 쉽게 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개 정도는 그리 큰 부담이 안 된다. 그러나 지나친 승부욕이 문제였다. 평상 시 스트로크보다 소심하게 샷을 했다. 당연히 공이 예민하게 움직였고 원하는 대로 가지 않고 살짝살짝 빠졌다. 스트로크를 평소대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했더라면 200점을 놓고도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이기려고 하다 보니 어깨에 힘을 들어간 것이 보였다.
같은 200점이지만, 필자는 믿는 구석이 있다. 게임을 운영하는 방법을 안다. 승패는 병가지 상사라며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 공격도 중요하지만, 수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한 점을 치려다가 놓치고 상대방에게 몇 점을 주게 되면 차라리 안 치는 것만 못하다. 상대가 필자보다 하점자인 경우에는 그 몇 점은 승부애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맞을 확률이 떨어지는 공 배치는 다음기회로 미루고 상대방에게 좋은 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그러다 필자에게 좋은 공이 오면 한 큐에 여러 점을 쳐서 단숨에 따라 잡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점자들은 파울을 몇 개 범해서 주산 알을 몇 개 더 하고 나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같이 공격 위주로만 하다보면 전체적으로 몇 개만 치는 하수에게 지는 수가 많다. 특히 공을 가깝게 주면 하점자들도 몇 개씩은 쉽게 친다. 여유를 갖고 상대방에게 좋은 공을 안 주면 무리하다가 스스로 파울을 범하며 자멸하기도 한다.
200점이면 4구 경기에서 빨간 공 맞히기 20번을 성공해서 주산 알 20개를 다 털고 마지막으로 3쿠션으로 쳐야 게임이 끝난다. 그는 3쿠션에 약했다. 여기서 필자가 수비에 들어가면 그는 맥을 못 춘다. 수비란 공을 3쿠션이 용이한 배치로 주지 않고 한 쪽으로 몰아 놓거나 오차가 많아도 맞을 확률이 많은 코너에 공을 두지 않는 전략이다. 일찌감치 3쿠션에 들어갔으면서도 번번이 3쿠션에서 필자에게 역전 당하자 다시 150점으로 내려야겠다는 것이다. 한번은 필자는 두세 개 치고 말았는데 그가 3쿠션에 들어갔다가 결국은 역전을 당하자 굴욕적이었다고 분해했다.
150점에서 200점으로 올렸으면 당분간 승률이 떨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서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꼭 이겨야 한다며 이를 악물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평소 실력보다 더 못 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승부에 일희일비 하다보면 늘지 않는다. 친선으로 치는 당구를 꼭 이기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사람은 내기 당구를 하면 손이 떨려 더 못 친다.
당구도 멘탈 게임이다. 정신적으로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힘을 빼야 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스트로크가 경직되어 큐의 질이 나빠진다. 프로들도 상대방이 너무 잘 쳐서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그때부터는 더 잘 친다. 내려놓으면 잘 풀린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시니어들이 모여서 당구를 즐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대부분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이다. 몸이 안 좋은 사람들도 있다. 당구를 칠 때도 사람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얌전한 사람들은 당구도 얌전하게 친다, 당구를 치면서도 거의 말이 없다. 그래서 곁에 있었는지 조차 기억을 못할 수도 있다.
필자는 그 중에 스트로크의 힘이 좋다고 소문이 나 있다. 당구대를 한 바퀴 다 돌고도 반 바퀴를 더 돌 정도로 힘이 넘친단다. 그러다 보면 앞에서 맞추지 못한 당구가 뒤로 돌아가 맞는 경우도 생긴다. 행운의 득점이라고 한다. 4구 경기와 달리 3구 경기에서는 파울이 없으므로 마음 놓고 후려치는 것이 유리할 때가 있다. 사실 200점 이상의 고점자들이라면 그 정도의 파워는 누구나 있다. 그러나 초급자들은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그래서 요령을 알려달라는 경우가 있다.
물론 힘 있게 치는 것이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재1목적구를 치고 제2목적구에 겨우 맞을 정도로 힘을 조절해서 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고 한다. 4구에서도 그렇지만, 3구에서도 다음 포지션을 쉽게 치기 위해 약하게 치는 경우가 더 많다. 제 1적구가 코너 근처에 있으면 되도록 거기서 머물도록 살살 쳐야 다음에 여러 경우에도 맞을 확률이 높은 빅 볼이 되는 것이다. 프로들도 세게 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단은 세게 칠 때는 세게 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약하게 칠 때는 약하게 쳐야 하는 것이다.
같이 즐기는 사람들에게 당구대를 한 바퀴 도는 대회전을 치라고 하면 힘이 없어 아예 시도를 안 한다는 사람도 있다. 세게 쳐도 수구가 한 바퀴를 다 못 돈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더 이상 진전을 볼수 없다. 파워는 스트로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요령의 문제이다.
일단 스트로크는 똑바로 나가야 한다. 겨냥점과 당점이 다르면 소용없는 것이다. 조금 세게 치려고 하면 큐 미스가 더 난다. 가장 기초적인 것인데 독학을 하다 보니 기초를 점검하고 굳힐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스트로크 방식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초급자들은 제1목적구를 맞추는데 급급하다 보니 큐의 진행이 수구가 제1목적구에 맞는 순간 거기서 끝난다. 그러나 공이 맞은 후에도 팔로우 스루로 큐가 거기서 조금 더 나가야 한다. 당구의 성질상 큐를 끊어 치면 세게 쳤는데도 공이 밀리면서 임팩트 때의 에너지가 줄어든다.
필자는 무거운 큐를 선호한다. 큐 무게를 느끼면서 스트로크를 하고 큐의 무게를 실어 스트로크를 하면 무게감 때문에 힘이 더 실린다.
얇게 치기를 활용해야 한다. 수구가 제1목적구에 두껍게 맞으면 에너지가 거기서 상당량 상실된다. 그러나 얇게 맞으면 에너지 손실이 적으므로 수구가 힘 있게 진행한다.
초급자들은 회전을 맥시멈으로 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회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공의 가장자리를 치는 것이다. 그러면 큐 미스가 날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한다. 스트로크가 직선대로 못 가니 겨냥점대로 치지 못하기 때문에 큐 미스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회전은 스트로크에 힘을 더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