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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맛있는 인생(Second Half)’
- 이런 영화가 있는 줄 몰랐다. 그리 대단한 흥행을 한 것도 아니고 마케팅도 열심히 한 것 같지 않다. 저예산 영화라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데 묘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마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조성규 감독 작품이다. 주인공인 영화제작자 조 대표 역으로 류승우, 젊은 여대생 민아 역으로 신인 배우 이솜이 나온다. 한때는 잘나가던 40대 영화제작자 조 대표는 최근 만드는 영화마다 망한다. 거래처 전화에 시달리다가 훌쩍 바다가 보고 싶어 차를 몰고 강릉으로 혼자 향한다. 무작정 떠난 것이다. 호텔을 정하고 레스토랑에서 차 한잔 하려는데 서빙하는 한 아르바이트 여대생에게 전류가 흐르듯 시선이 꽂힌다. 긴 생머리에 청순한 얼굴, 날씬한 몸매의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그런데 여대생이 조 대표가 유명한 영화제작자라는 것을 먼저 알아본다. 더구나 팬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쉬는 날이라며 강릉 가이드를 자청한다. 돌이켜보니 20년 전 친구들과 강릉에 왔을 때 묵었던 민박집에 또래의 딸이 있었다. 당시 친구들과 누가 그녀와 잘 수 있는지 내기를 했고, 조 대표가 그녀를 유혹해 하룻밤 정사를 나누곤 다음 날 새벽 서울로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둘은 강릉 일대를 다니며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아름다운 여대생과 중년 남자의 꿈같은 여행이었다. 유명한 명소와 맛집, 커피숍 등을 다니며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조 대표는 민아에게 묘한 떨림과 끌림을 느낀다. 20년 전 하룻밤을 나눈 그녀의 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조 대표는 민아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점점 민아가 자기 딸이라는 심증을 굳힌다. 그리고 자책감에 시달린다.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 둘은 어두운 바닷가에 앉아 서로 고백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조 대표는 20년 전 일을 고백하려고 했지만 민아가 먼저 고백하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가 바로 조 대표라고 말한다. 충격적인 그녀의 고백에 잠시 당황하던 조 대표는 돌아서서 그 길로 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온다. 남자들에게는 조 대표와 비슷한 죄책감이 있다. 젊은 시절은 이성보다는 본능이 더 강할 때다. 여자들은 혹시 이 남자는 뭔가 다를까 하고 받아들이지만 결국에는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말을 한다. 민아도 얼마 전까지 사귀던 또래 남자가 있었지만 헤어지고 보니 역시 똑같더라는 말을 한다. 영화 제목을 왜 ‘맛있는 인생’으로 지었을까 의아했다. 영어로 번역한 ‘Second Half'는 ’후반전‘이란 의미다. 40대에 인생 후반전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곰곰 생각해볼 나이다.
- 2018-01-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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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퇴직 이후
- 우리 가족은 6·25 전쟁 납북 피해자 가족이다. 저의 시부모님은 일제 강점기 시절 동경 유학 생활 중에 만나서 당시로서는 드문 연애 결혼을 하셨다. 시어머님은 3남 1녀를 낳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시던 중 6.25 전쟁의 발생으로 시아버님이 납치 되신 것이다. 어머님은 6·25당시 34살의 젊디 젊은 나이에 혼자 되셔서 갖은 고생을 하시면서 자제분들을 대학까지 교육시키셨다. 어머님은 저의 결혼 후 평생 우리랑 함께 사시다가 5년전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는데 얼마 전 6·25를 맞아서 정부로부터 를 받고 남편은 많은 감회에 젖었다. 남편은 아버님의 납치 후 직장 생활 초기에는 혹시라도 이북의 아버님과 접촉할까봐 출장 허가도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맞벌이로 직장에 다니던 필자는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 때는 지금처럼 건강 프로그램도 별로 없어 뇌졸중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가 회복은 했으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몸이 불편한 상태이다. 내가 쓰러지자 가정 생활은 즉시 엉망이 되었고 또 남편은 곧 정년 퇴직을 하게 되었다. 서울의 모 방송국에서 30 년 넘게 근무하고 정년 퇴직을 한 남편의 퇴직금은 그 때로서는 많은 금액이었다. 그 때는 퇴직금도 미래가 어떨지 모른다며 매달 지급되는 연금으로 받지 않고 일시불로 받던 시대였다. 그리고 당시엔 은행의 이자도 상당히 높아서 이자로만 살아도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 할 수 있었다. 또 그 때만 해도 장수 시대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은퇴 후의 생활 준비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어떻게 퇴직금을 관리 해야할 줄도 몰랐다. 그 때는 지금 유행하는 ‘은퇴 이후의 재무 설계’ 같은 말은 존재 하지도 않았다. 남편이 할 일을 못 찾아 힘들어 하던 어느 날 필자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은 주례 협회에서 직업적 주례사를 모집한다는 걸 보고 남편 몰래 응모를 했다. 남편이 방송국에서 방송 경험이 있으니 주례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실제로 주례 경험도 많았기에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남편 대신 응모 서류를 보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을 할 정도로 궁핍하진 않았지만 하루 하루 똑같은 무료한 생활로 시간 보내는 남편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면 나름대로 활력을 줄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합격 통지를 받고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말을 했더니 엄청 화를 내면서 누굴 뭘로 보냐며 자기를 무시 했다고 몇 달 동안 나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면 남이 자길 얼마나 궁하게 보겠냐며 자긴 앞으로 돈을 버는 일은 절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는 거였다. 사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 출근만 하면 하루 종일 온통 내 세상이었는데 갑자기 하루 종일 붙어 있기가 참으로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의 단순한 생각이 남편을 화나게 만든 것이었다. 요즘은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요령이 생겨, 퇴직 초기처럼 싸우지도 않고 서로 각자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필자를 보면 대견한 생각이 든다.
- 2017-12-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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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 어렵든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나이가 들면 눈물샘이 쪼그라들고 말라버리는지 알았다. 그래서 어지간한 슬픈 일을 당해도 스쳐가는 바람 대하듯 무덤덤해 지는 방관자가 될 것으로 믿었다. 아니다. 조금만 소외되어도 잘 삐지게 되고 서러움의 눈물이 이슬처럼 맺힌 후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감성적으로 그냥 슬프고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아내가 아들에게 전화했더니 식구들 데리고 제주도 놀러갔단다. 우리보고 같이 가자고 했어도 같이 갈 형편도 못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만 갔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는 생각과 소외되었다는 느낌이 확 오면서 화가 치밀어 올라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따로 살고 있으니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며칠 다녀오는 것은 당연하다. 머릿속 이성은 그렇게 말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이유 모를 황량한 찬바람이 분다. 어머니는 저녁 할 때쯤이면 할머니의 의사를 꼭 물었다. ‘어머님 오늘저녁 뭘 할까요?’하고 묻는다. 농촌의 저녁메뉴는 언제나 특별한 것이 없으니 뻔하다. 밥, 국수, 죽이다. 할머니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네가 알아서 해라!’이다 매일저녁 되풀이되는 이 질문과 대답을 왜 하는지 어려서는 몰랐다. 필자가 나이를 들어보니 이런 몇 마디 말에 부모는 자신의 권위가 살아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 영화를 보러갔다. 슬픈 장면이 있다. 눈물이 핑 돈다. 주위의 반응이 너무 무덤덤하여 눈물 닦기가 조심스럽다, 나이든 사람이 눈물 찔끔거린다고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눈에 뭐가 들어가서 눈을 비비는 척 하면서 슬쩍 눈물을 훔친다. 양쪽 눈을 다 닦으면 저사람 울고 있네 하는 모습이 들킬까봐 한쪽 눈만 닦고 시차를 두고 다른 쪽 눈을 닦는다. 남들을 의식하면서 눈물조차 마음대로 흘리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 나이든 남자다. 집에서 TV를 보는데 다른 식구들은 무덤덤하게 잘도 보고 있는데 혼자 눈물이 흐를 때 참 민망하다. 슬그머니 일어나 세수를 하고 들어온다. 남자는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한다. K는 대학의 시간강사다. 전임강사 자리를 얻으려고 머슴 같은 노력을 계속하지만 점점 더 절벽을 느낀다. 정교수와 시간강사의 의미를 통 모르는 시골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인 아들 자랑이 대단하다. 아버지에게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은 맞지만 수입도 형편없는 시간강사라는 말을 차마하지 못한다. 더구나 대학교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아버지에게 쪼들리는 경제사정은 더더욱 말 못한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도 한다. 밤에는 대리운전도 해보지만 형편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지하 동굴이 있다면 몰래 찾아 가서 목이 터져라 ‘이 더러운 세상아!’하고 외쳐 보고 싶다. 그러나 통곡할 장소가 없다. 어디를 가도 인파의 행렬에 허우대 멀쩡한 남자가 마음 편히 울어볼 곳조차 없다. 화장실에 가면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이 눈물하고 이것이라고 적혀있다. 왜! 남자는 울면 안 되는가! 남자는 농경사회에서는 근육질의 몸만 필요했지만 지금은 감성이 필요한 시대고 생존경쟁의 다양한 변수가 많은 세상이다. 한마디로 울 일이 많은 세상이다. 남자도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가 있고 하늘을 향해 주먹질하고 싶을 때가 있다.
- 2017-11-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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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년만에 만난 담임반 제자들
- 지난 10월 9일에는 1979년 담임을 한 제자들을 37년 만에 만났다. 당시 고 3 야간반 학생들이었다. 제자들은 공부를 하고자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 많아서 자취를 하며 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었다. 간절히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내가 처음으로 담임한 제자들이었다. 내 온 열정과 첫정을 듬뿍 주어서 가르친 제자들이기에 그 의미가 이만저만 각별한 게 아니다. 사당에 있는 한정식집 '달여울'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산이 거의 4번이나 바뀐 세월이었다. 악수나 인사만으로는 양이 차지않아 차례차례 포옹을 하며 감격스런 해후를 하였다. 눈물이 감당할 정도로 나와서 다행이었다. 고생하며 자신의 삶을 일궈온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 잘 살고 있는 듯싶었다. 여학교 선생님은 마치 친정 에미 심정이다. 결혼한 제자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아내한테 잘하는 제자남편은 그렇게 이뻐보일 수가 없다. 제자들은 내게 예쁜 꽃바구니와 밍크 목도리를 선물했다. '이건 아닌데 이러면 부담스러운데....' 제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는 것이 싫다. 제자들과 '지갑은 가볍게, 마음은 즐겁게' 만나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다. 그럴까봐서 미리 선물 같은 거 준비하지 말것을 당부할까 했는데 괜히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같아서 하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교육은 사람의 마음 밭을 곱게 가꿔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되었을 때 나는 서둔야학 선생님들한테서 배운 대로 내 제자들에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독서와 클래식음악으로 제자들의 마음 밭을 가꿔주리라 다짐했다. 우리 반 한쪽 귀퉁이에는 십여 권의 책을 구입해서 갖춰놓았고 본인이 다 본 책은 급우들 간에 서로 돌려 보도록 지도했다. 그리고 수업 틈틈히 카세트를 가져가서 '사랑의 인사' '아를르의 여인' ''아베 마리아' 등의 클래식음악을 들려주었다. 기억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선생님이 제 생일날 책을 선물해 주셨어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요." 반 아이들의 생일날 내가 선물로 책을 선물해 줬다고 하는데 내 기억에는 없다. 그랬다면 그것도 독서를 권장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졸업생이면서도 내 결혼식에 참석했던 수늬에게서 내 폐백 절 시중을 드느라고 엄청 힘들었다는 얘기도 37년 만에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수늬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각 결혼식을 했을 것이다. 신부화장 전 시골 미용실 원장은 내 피부가 너무 곱다고 하였다. 그럼 그 피부 톤을 최대한 살려서 자연스럽게 신부화장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신부화장이랍시고 해 놓았는데 이건 화장이 아니라 완전 가부끼 분장이었다. 파운데이션을 몇센티 두께로 발라놓은 것이다. 명동 '마샬'에서 신부화장을 한 내 친구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화사하고 예뻤는데! 사전에 '자연스럽게'를 강조했던 내 말이 완전 무시된 상황이었다. 나는 경악했다. '도저히 이 얼굴로는 결혼식을 할 수가 없어. 어떡해!' "이게 뭐예요 가볍게 해 주신다고 했잖아요 다 지우고 다시 해주세요!" 완전 화가 나서 펄펄 뛰는 나에게 "선생님 10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젠 제발 포기하고 식장에 입장하세요 네 선생님" 수늬가 몇번이나 애원하고 급기야는 등을 떠밀어서 신부 입장을 시켜서 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친구역할을 톡톡히 해준 수늬한테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수늬야 그날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한 거 미안해, 내가 한 턱 낼게" 별안간 병이 나서 오지 못한 반장 경숙이와 몇몇 제자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 많이 서운했다. 다음 11월 5일을 기약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 2017-11-1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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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틀렸네
- 동년 기자로 활동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매달 3편 이상의 글을 기고하려 노력하여 나름으로는 쾌나 많은 글을 썼다. 한 편의 글을 초안하고 나면 으레 맞춤법 검사를 하는 등 퇴고를 여러 번 거친다. 그런 과정을 2년이 가깝게 했으니 이제는 맞춤법에 달인이 될 만도 한데 또 다른 글을 쓰고 맞춤법 검사를 하면 여지 없이 틀린 단어나 문장이 맞춤법 검사기에 걸려든다. 예전에 틀려서 여러 번 고친 경험이 있는 단어가 또 걸려든다. 혼자 중얼거린다. “또 틀렸네, 나 참!” 나이가 든 탓으로 돌리며 혼자 웃곤 한다. 요즘은 여러 메신저와 SNS 등을 이용하면서 글을 쓰는 일이 더 빈번해졌음에도 맞춤법은 글을 쓸 때마다 꼭 검사한다. 필자만의 일일까? 과거보다 더 많아진 외래어나 신조어, 줄임말 등이 문장을 만드는 일을 까다롭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맞춤법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 누구나 쉽게 틀릴 수 있지 싶다. 특히 SNS를 통한 글 작성을 쉽게 또는 대충 쓰는 버릇이 몸에 배어 더 맞춤법을 헷갈리게 한다. 온라인에 가볍게 쓰는 댓글 하나라도 맞게 쓸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독자를 위한 예의이고 성의 문제다. 자주 틀리는 맞춤법을 정리해보는 방법도 좋지 싶다. 다음과 같은 단어가 자주 혼동된다(괄호 속의 단어가 바른 표현이다). 금새(금세), 넓직한(널찍한), 몇일(며칠), 오랫만에(오랜만에), 어의없다(어이없다), 차돌배기(차돌박이), 희안하다(희한하다) 등이 그런 예다. 한글날을 맞아 취업포털 가 아르바이트 포털 과 함께 성인 남녀 853명을 대상으로 맞춤법에 대한 설문을 했다. 가장 혼동되는 맞춤법은 띄어쓰기 48.0%로 가장 높았고 “되/돼” 43.3%, “이/히” 24.2%, “왠지/웬지” 20.1%, “던지/든지” 18.7%, “않/안” 15.5% 등의 순이었다. 이 내용 중 띄어쓰기를 제외한 나머지 단어의 세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성질이나 상태가 바뀌거나 변하다, 오거나 이르다, 행동이나 상태가 이루어짐을 나타내는 '되다'는 ‘되어’로 활용하며, 이를 줄여서 '돼'로 쓴다. 따라서 ‘되어’로 바꾸어도 틀리지 않는 경우에는 ‘돼’를 쓰면 된다.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 또는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 예를 들어, ‘이’로만 나는 것은 ‘가붓이’, ‘깨끗이’, ‘나붓이’, ‘느긋이’ 등이고 ‘이, 히’로 나는 것은 ‘솔직히’, ‘가만히’, ‘간편히’, ‘나른히’ 등이다. 왜'는 '어째서, 무슨 이유로'를 뜻하는 부사로 '왠지'는 '왜인지'의 준말이다. '웬'은 '어찌 된, 어떠한, 어떤'을 뜻하는 관형사이다. '무슨 까닭인지'로 바꿀 수 있는 말에는 '왠지'를, '어떤'으로 바꿀 수 있는 말에는 '웬'을 쓰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얼마나 덥던지’와 같이 과거를 회상할 때 ‘-던지’를 쓴다. 반면, ‘하든지 말든지’와 같이 둘 이상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의미로는 ‘-든지’를 사용한다. ‘않다’는 ‘아니하다’의 준말이다. ‘안’은 부정의 뜻을 지닌 부사이며, 앞뒤 단어와 띄어 쓴다. 확실하게 외워서 쓰는 사람도 없지는 않으나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기억력이 떨어지면 외웠던 내용도 가물거리기에 십상이다. 한자를 읽을 수는 있어도 자주 펜으로 쓰지 않아 잘 쓸 수 없는 현상과 닮았다. 필자는 번거롭지만, 글을 쓸 때마다 맞춤법 문법 검사기로 확인한다. 다행히 요즘엔 두꺼운 국어사전을 펼치지 않아도 간단히 온라인으로 검사할 수 있어 글쓰기에 편한 세상을 산다. 필자는 개인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speller.cs.pusan.ac.kr)”를 주로 사용하여 도움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로 부산대학교 인공지능연구실과 (주)나라인포테크가 함께 운용한다. 그외에도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stdweb2.korean.go.kr), 다음 어학사전(dic.daum.net), 네이버 사전(dic.naver.com)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가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 2017-11-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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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져가는 커피시장, 시니어 위한 ‘틈새’ 있을까
-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발간한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은 1년 동안 413잔의 커피를 마셨다.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셈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4년에 비해 30% 이상 성장한 6조441억원 규모다. 이렇게 시장이 매년 성장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니어들도 커피를 기호식품이 아닌 사업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교육 과정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심 걱정도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카페가 즐비한데 인생 후반전의 또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커피는 신맛이 나면서 약간 과일 향도 느껴지네요. 먼저 마신 것과 완전히 달라요.”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 현장. 한 참가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평가한다. 같은 원두로 내린 커피인데 로스팅(수확한 커피콩의 맛을 내기 위해 열을 가하는 과정)과 분쇄에 따라 달라진 맛을 보고 감탄한다. 이들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막 첫발을 내딛은 사람들이다.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은 최초의 시니어 대상 커피교육 과정으로 꼽힌다. 2010년 6월에 문을 열었고, 지금은 이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활동하는 카페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다. 시니어 일자리의 첨병 역할 이 교육을 시작으로 현재는 다양한 기관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시니어 커피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니어 교육기관인 50플러스센터는 물론이고 사회복지관이나 지자체 차원에서의 교육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도 시니어 대상의 커피교실을 개최한 적이 있다. 시니어들의 이 뜨거운 커피 열기를 어떻게 봐라봐야 할까? 관계자들은 청년들의 관심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바리스타 단기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서울남부기술교육원 관계자는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니어 입장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워낙 카페들이 많이 생기니까 자리가 나면 취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직접 카페를 창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또 반드시 직업이 아니더라도 모임이 많은 노후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죠.” 시니어 대상 커피 교육이 활성화된 데에는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커피를 유용한 노인 일자리 대책의 한 분야로 판단한 것도 영향을 줬다. 커피를 내리는 일이 육체적으로 강한 근력을 요구하지도 않고,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적합하다는 인식이 많다. 실제로 부산시나 인천시 등 일부 지자체 공공기관에는 시니어 바리스타를 고용한 ‘실버 카페’의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공공기관에도 커피를 마시려는 수요가 존재하고 카페는 큰 예산 마련 없이도 어렵지 않게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 지역 내 사회복지관 등 교육기관과 연계해 시니어 바리스타를 수급하는 모델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건물뿐만 아니라 활용 가능한 문화재 시설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카페 창업 전망은 어떨까 시니어에게 카페 창업은 취미와 직업이 결합된 로망 중 하나로 꼽힌다. 매장이 클 필요도 없다. 가져가는 손님만 상대로 하면 그만이다. 꼭 대로변 임대료가 비싼 곳일 필요도 없다. 동네 단골이 생기면 그럭저럭 운영이 가능해보인다. 최근엔 장비 값도 내려가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식당이나 술집에 비해 노동 강도도 낮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력 있는 카페를 유지해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설명한다. 미국과 유럽의 바리스타 교육관이자 시험 감독관인 신림 마티스커피 심병준 대표는 두 번 세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많은 시니어에게 카페 컨설팅 의뢰를 받는데 대부분 쉽게 생각하고 찾아와요. 커피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시장입니다. 기계를 다루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죠. 처음에 익히는 것이 힘들지, 알고 나면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매우 쉬워요.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고, 이미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내려간 상태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어요.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창업 자본을 까먹기에 딱 좋죠.” 커피가 시니어들에게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고객층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카페는 요즘 유행하는 인형뽑기방이나 빨래방처럼 장비만 놓으면 그만인 분야와는 다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니어들도 커피를 많이 즐기지만, 카페의 실질적인 고객층은 20~30대예요. 그런데 이들 입장에서 접객인이 나이가 많으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바리스타를 고용할 때 청년들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 시니어가 운영하는 카페가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에요. 따라서 ‘내가 어른인데’ 하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시니어가 가진 강점을 개발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특히 커피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카페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공부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커피시장이 시니어에게 틈새 없는 레드오션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커피시장이 만들어낸 일자리가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퇴직 전 근무하던 분야가 무역과 관계되는 일이었다면 커피를 거래하는 일에 뛰어들어도 된다. 커피는 원유와 함께 선물시장에서 취급되는 주요 상품 중 하나다. 또 해외에서는 커피머신을 전문적으로 세척, 수리, 세팅하는 엔지니어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는 추세다. 커피머신의 조정 값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예 커피콩을 직접 키워볼 수도 있다. 온난화하는 기후 탓에 국내에서도 커피콩 생육을 시도해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커피, 어떻게 배워야 할까 커피를 배우는 과정은 워낙 다양해 꼭 집어 무엇이 옳다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커피시장을 이끌었던 유명 바리스타들의 학원식 교육과정도 있고, 대학 교육과정도 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나사렛대학교, 충북대학교 등의 평생교육원을 통해 커피를 배울 수도 있다. 단국대학교에는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가 운영 중이다. 학교가 부담스럽다면 앞서 설명한 각 지역 50플러스센터나 기술교육원, 사회복지관에서 하는 강의를 찾아 들어도 된다. 일부 문화센터도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커피 관련 자격증 중 국내 자격증은 모두 민간 자격증이기 때문에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취업을 하거나 카페를 창업하는 데 필수도 아닌 데다, 업계에서도 자격증에 따라 크게 대우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 바리스타를 중심으로 바리스타 대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커피 추출 실력이나 자신만의 원두를 혼합한 블랜딩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계기로 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도 있고,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이런 대회는 시니어 바리스타 상대로도 열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노인고용 주간을 맞아 ‘시니어 바리스타 경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커피를 어디서 배우느냐보다는 커피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기계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쉽고, 커피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커피와 함께 고객을 유인할 상품이나 공간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치열한 대한민국의 커피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 2017-09-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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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한 수가 된 속셈
- 18년 전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을 때 아내가 재산분배에 대한 계산서를 내밀었다. 지금 회고해보면, 아내나 필자가 이혼 얘기는 많이 했지만, 실제로 이혼할 생각이 확고했던 것은 아니었다. 졸지에 퇴직을 하게 된 충격으로 필자는 다른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잘못해서 이혼 당할 유책 배우자도 아니니 이혼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가 얼굴만 보면 이혼 얘기를 꺼내 견디기 어려웠다. 이혼 절차를 밟아도 마지막으로 구청 신고를 하지 않으면 별거를 하다가 재결합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내민 계산서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서명을 했다. 당시 아내가 내민 계산서에는 우리가 가진 재산이, 동산과 부동산 합해서 5억 원 정도로 되어 있었다. 50평짜리 아파트가 2억5000만원 정도였다. 맞벌이를 했으므로 아내가 축적한 비자금이 상당액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아내는 가진 동산이 한 푼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필자의 동산은 퇴직금과 당시 주식시장에 약간의 여윳돈을 넣고 있던 것까지 합해 2억5000만원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깡통계좌가 속출하던 시절이어서 주식시장에 넣어두었던 돈의 잔존 가치는 별로 없었다. 증권회사 직원의 강권으로 대박이 난다는 텔슨전자 주식을 샀다가 얼마 안 되어 상장 폐지되면서 휴지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의 계산서에는 투자한 원금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부부가 재산을 반분하면 필자 몫이 2억5000만원인데 아내는 여기서 또 1억원을 떼었다. 왜냐고 물으니 앞으로 있을 아들딸 결혼자금이라는 것이었다. 왜 벌써 떼냐고 물으니 10년 후 아들딸이 결혼할 때 필자가 경제적 여력이 없을 수도 있고 다른 여자와 재혼하면 입장이 달라져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내도 오랜 시간 고민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충고를 한 모양이었다. 필자는 재결합의 가능성도 열어놓았으므로 다투지 않고 그대로 수락해줬다. 결국 필자에게 남은 돈은 장부가격으로는 1억5000만원이었지만 주식으로 날린 돈 때문에 잔존 가치는 500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돈이면 일단 원룸을 전세로 얻을 돈은 되니까 그대로 수락하고 짐을 씨서 나왔다. 독립을 하고 나서 당장 수입이 없어 막막했다. 그래도 아직 젊고 건강했으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스포츠용품 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동대문 지역에 빌붙어 있다 보면 무슨 수가 생길 것 같았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Umbro’ 대표이사를 지냈기 때문에 경력도 있었고 영어가 취약한 업체들이 필자를 필요로 할 거라고 예상했다. 마침 계약 추진 중이던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 ‘Kappa’도 결국 다음 해 성공적으로 따내서 성가를 높이고 있었다. 개인 사업도 바이어 중 하나가 당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메인 스폰서로 선정되면서 매출이 급증해 승승장구했다. 형제간에 끝없는 갈등을 낳게 했던 아버님 유산도 필자가 나서서 해결하고 공평하게 배분받았다. 그렇게 해서 경제적으로 기사회생하고 겨우 노후 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년 후 아들의 결혼 소식을 접했다. 아들은 그동안 엄마와 같이 살았으므로 결혼 준비는 전 아내가 다 했다. 아내는 이혼할 때 떼어줬던 돈으로 오피스텔을 사서 자금을 불렸고 그 돈으로 아들에게 신혼집으로 작은 빌라 전세를 얻어줬다. 그리고 예물이며 결혼식장 계약 등은 전 아내와 아들이 직접 해결했다. 이윽고 아들의 결혼식 날, 아내와 필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상적인 부부처럼 나란히 서서 하객들을 맞았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그날 온 하객들의 80%는 필자가 부른 손님들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전 아내의 직장 동료들 몇 명과 처가 친척들을 빼고는 거의 필자 손님이었다. 직장은 물론 동창모임, 댄스와 커뮤니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한 덕분에 필자의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전 아내나 필자 모두 처음 치러본 결혼식이라 잘 몰랐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전 아내가 결혼식이 끝났는데도 하객 명단을 필자에게 안 주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었다. 아내의 직장 동료들이 접수를 봤고 그대로 아내에게 전달되었으므로 필자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하객들이 누가 왔고 축의금으로 얼마를 냈는지 알아야 인사도 하고 추후 관혼상제가 있을 때 갚아야 할 돈이라 반드시 명부가 필요했다. 필자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내는 우여곡절 끝에 명부를 건넸다. 필자는 그것을 기초로 결혼식장에 와준 하객들에게 직접 인사 또는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누구 손님인지를 가려 들어온 축의금을 그대로 나눠야 하는데 아내는 한 푼도 못 내놓겠다고 했다. 그동안 아들에게 들어간 양육비며, 사두었던 오피스텔이 안 올라 신혼집 빌라 전세금 마련하느라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이혼 초기에는 필자도 상당히 어려웠다. 밥은 안 굶었지만, 여윳돈이 없어 당장 전세금을 올려달라 하면 대책이 없었던 시절이다. 반면, 전 아내는 살던 집도 있었고 직장도 있었으므로 아이들 양육에 큰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제적으로 도움도 주고 있었다. 돈 문제로 다투는 것이 아이들 보기에도 안 좋은 것 같아 포기했으나 섭섭한 마음은 금할 길이 없었다. 덕분에 이제는 아내와의 이혼이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돈 문제에서는 한 푼의 양보도 없는 전 아내의 냉정한 태도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들이 결혼도 했으니 전 아내를 배척할 필요까지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느슨했던 마음이 냉수 마시고 정신 차린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들딸 결혼식을 대비해서 미리 돈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아내의 속셈은 신의 한 수였다.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전 아내는 필자를 가능한 한 빈털터리로 내보내면 얼마 안 가 못 버티고 항복하고 다시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직 딸이 출가 전이다. 제 말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니 결혼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아빠로서 결혼을 강권하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더구나 제 힘으로 벌어 이미 그럴듯한 아파트 한 채도 사놓았다. 필자가 18년 전에 남긴 결혼 비용 5000만원을 얼마나 불려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큰 아파트로 이사 가는 데 보태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 재테크에 밝은 똑똑한 딸이나 신의 한 수를 두었던 전 아내가 이 방면에 해박하니 알아서 할 일이다.
- 2017-09-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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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한듯 뭉클한 영화 <천수위의 낮과 밤>
-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이불 속에서 뭉개다 일어나 TV를 보는 고등학생 아들 가오(량진룡 분). 그 시각 어머니 정 여사(포기정 분)는 동네 ‘Wellcome’ 슈퍼마켓에서 일하느라 바쁘다. 도입부만 보면 게으른 망나니 아들을 둔 홀어머니 고생담 아닐까 싶지만, 점차 관객은 가오가 HKCEE(홍콩 중등교육검정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학생이며, 신문을 사오라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달라는 어머니의 소소한 심부름에도 군말 않는 착한 아들임을 알게 된다. 외할머니 생신 잔치 때, 외국을 들락거리는 잘사는 외삼촌 가족 사이에서 쭈뼛거리는 정 여사와 가오. 외할머니가 입원하자 가오는 바쁜 어머니 대신 사촌 여동생(진옥련 분)과 함께 부지런히 죽 도시락을 날라댄다. 외할머니는 “네 엄마는 일밖에 모른다. 남동생 둘을 다 공부시켰고, 맏딸로 고생 많이 했다”며 울먹인다. 이 장면은 공장에서 일하는 홍콩 여성들의 옛 사진과 남편의 관 앞에서 서럽게 우는 정 여사 모습으로 이어진다. 정 여사는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혼자 사는 할머니(진려운 분)의 TV 구입을 도와주고, 할머니는 말린 버섯을 선물한다. 서로 의지하는 이웃이 된 정 여사와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의 시험 결과를 궁금히 여긴다. 세상 떠난 딸이 남긴 유일한 자손인 손자가 보고 싶지만, 사위가 재혼해 맘놓고 전화하기도 힘든 할머니. 정 여사는 사위와 손자를 만나러 가는 할머니와 동행한다. 손자는 아르바이트로 바쁘다며 나오지 않고, 사위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해준 게 없어서…”라며 내미는 금반지를 물리치고, “새 장모님이 아프셔서…” 하면서 음식 값을 치루고 훌쩍 나가버린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할머니는 “자네와 가오에게도 주려고 은반지를 샀어. 손자와 사위 내외에게 주려던 금붙이도 자네가 갖게”라며 반지 상자들을 내민다. 정 여사는 “그럼 간직해둘게요. 무슨 일이든 도와드릴게요” 한다. “나도 가오를 손자로 여기고 기도할게”라고 답하는 할머니. 중추절을 앞두고 월병(月饼) 티켓을 구해온 외삼촌(고지삼 분)은 배웅 나온 가오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던진다. “네 유학비용은 걱정하지 마. 외삼촌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허안화 감독의 은 정 여사와 가오, 할머니의 일상(장을 보고, 조리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안 대소사에 참석하는 별스럽지 않은 하루하루)을 통해 서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특히 밥 먹는 장면이 어찌나 많은지 고기와 푸성귀 볶음, 계란 부침과 국 등 두 개 이상 찬이 오르지 않는 식탁에, 젓가락으로 밥과 반찬을 입안에 쓸어 넣듯 하는 빠른 식사까지. 만한전석(滿漢全席)을 자랑하는 중국 요리를 느긋느긋 음미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초간단 조리와 초스피드 식사 장면으로 시간 흐름을 보여주며, 원제목인 ‘天水圍的日與夜’와 영어제목인 ‘The Way We Are’에 충실한 영화임을 증명하려는가 싶다. 먹는 문제를 중하게 혹은 별스럽지 않게 보여주던 영화는 마지막도 식사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중추절을 맞아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정 여사와 가오와 이웃 할머니. 웃으며 과일과 월병을 나누는 그들 뒤로 고층 아파트 불빛이 보이고, 창밖으로 이동한 카메라는 아파트 광장에 모여 중추절을 기리는 주민들을 보여준다. 노동으로 그날의 끼니를 장만하는 서민 아파트 사람들에게도 달은 은은한 빛을 내린다. 이 영화는 허안화 감독의 생활 밀착형 세밀화 작품(, )의 맥을 잇고 있다. 가족과의 마작놀이 셈도 바로 치루는 정 여사의 반듯함, 금목걸이를 주고받는 정 여사와 할머니의 정서적 연대를 식사 장면처럼 무심하게 그려낸다. 눈썰미 좋은, 영화에 푹 빠진 관객이 아니라면 물처럼 흘려보내기 쉬운 장면들. 산다는 것은 밥 먹고 잠자는, 그날이 그날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아들은 교회 선생님을 잠깐 흠모하고, 어머니는 늙고 병들며, 친척 장례식장에서 종이돈 접는 품앗이를 하기도 한다. 이렇다 할 설명이나 교훈 없이 담백한 장면을 그리기만 했는데도 허안화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차곡차곡 쌓여 가슴이 뻐근해진다. 세월이 흘러도 뭉클하게 떠올릴 것 같다. 허안화 감독의 작품에는 영화배우 같은 배우가 아닌, 마치 그 지역에 사는 평범한 외모의 실제 인물이 일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한다. 무심한 표정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삶의 회한을 미세하게 드러내는 포기정과 진려운의 연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은 영화 배경으로 천수위를 택함으로써 홍콩 현실을 담아내는 사회적 책무에도 충실하게 복무한다. 천수위(天水圍)는 1990년대 홍콩의 토지 개간으로 생긴 서민 주거 지역이다. 1980년대부터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이민 온 이들 30여 만 명이 살며 고층 아파트형 공용 주택이 많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적응과 사회 지원 부족으로 가정 폭력, 자살, 실업 등의 불행한 뉴스가 많았는데, 2007년 10월 어머니와 두 자녀가 고층 주택단지에서 사망한 사건이 유명하다. 홍콩과 중국은 하나가 됐지만, 영화에서는 높은 벽이 그려진다. 특히 천수위는 1980년대 홍콩 누아르의 몽콕 지역처럼 묘사된다. ‘슬픔의 도시’로 알려진 천수위는 중국과 홍콩의 관계, 홍콩의 정체성 모순이 집약된 배경으로 등장한다. 천수위를 배경으로 한 유국창 감독의 (2008)도 홍콩 영화 금상장 신인상과 미술상 후보에 오르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천수위에서 영화를 찍겠다는 허안화의 제안에 제작자는 영화가 음울해질 거라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한다. “그럼 아주 저렴한 텔레비전 영화를 찍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9월에 촬영을 시작해 연말 전에 완성했다. 제작비도 100만 홍콩 달러 정도밖에 안 들었다. 고화질 HDV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을 본 제작진은 다음 작품인 (2009) 제작에 동의했다고 한다. 중국과 홍콩의 경제적 격차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구 이동과 계급, 사회 격차를 은유적, 함축적으로 담아낸 은 제28회 금상장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는 과는 무관하다. 중국에서 온 웡히우링(장정초 분)과 리삼(임달화 분) 부부는 천수위의 아파트에 산다. 의처증 심한 리삼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아내를 폭행한다. 참다못한 웡히우링은 두 딸과 여성복지시설에 몸을 의탁한다. 리삼이 찾아와 마치 새 사람이라도 된 양 사과하며 마음을 고쳐먹은 듯하다가도 발작적으로 웡하우링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홍콩 남자와 사랑에 빠져 홍콩에서의 근사한 삶을 상상했던 중국인 아내의 팍팍한 일상. 이 나이를 초월한 두 여성의 우정을 그렸다면, 는 중국-홍콩 가족의 파멸 드라마다.
- 2017-08-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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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 연예인, 예능 프로그램 통해 화려하게 부활!
- 70세의 중견 배우 윤여정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바로 젊은 연예인과 신세대 스타들의 전쟁터로 변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윤여정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담아낸 tvN 에서 사장 겸 요리사로 나섰다. 윤여정은 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어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상승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함께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81세의 신구 역시 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젊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BS 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입담을 과시하며 장·노년 연예인 예능 스타 붐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70세의 여배우, 81세의 원로 남자 연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계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은커녕 비중 있는 조연 맡기도 힘들다. 가족이 밥 먹는 장면에만 출연하는 ‘식탁용 배우’로의 전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견 연예인들의 의미 있는 반란과 도전이 시작됐다. 그 반란과 도전의 진원지는 바로 젊은 연예인의 전유물이자 1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장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끼, 면모를 보여주고 친근감을 배가시키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과 인기 상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중장년 연예인의 재스타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중장년 연예인의 재발견 창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2013년 방송된 tvN 다. 황혼의 해외 배낭여행 포맷으로 진행된 는 파격적으로 노년(老年) 예능을 표방하며 당시 78세였던 이순재, 77세 신구, 73세 박근형, 69세 백일섭을 출연시켰다. 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했다. 중장년 예능 프로그램이 전무한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원로 연기자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씨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에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의외의 재미있는 모습을 드러낸데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까지 전달돼 할배 신드롬이 일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장·노년 출연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 성공 이후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중장년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예인들과 함께 고정 멤버로 출연하는 중장년 연예인도 많아졌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을 화두로 던지며 공론화했던 백일섭(73)과 이혼 이후 혼자 살며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행을 하며 활기차게 장년의 삶을 사는 김용건(71)은 각각 KBS 과 MBC 를 통해 살림살이에서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혼자 사는 장·노년 사람들의 생활 트렌드를 이끌 뿐만 아니라 유익한 삶의 정보까지 제공해 사랑을 받고 있다. 김국진(52), 강수지(50) 등이 출연하는 SBS 과 김건모(50)가 나오는 SBS 는 중년 연예인의 이미지 확장과 인기 부활 예능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거나 미션, 놀이를 하면서 싱글 중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실태와 인식을 보여주는 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김국진의 모습, 소탈한 김완선의 이미지 등을 엿보면서 많은 사람이 중년 연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 출연을 통해 천진무구한 모습과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김건모에게 대중은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순재·윤여정, 백일섭·신구·김용건·이한위·김구라를 비롯한 중년 및 장·노년 연예인들이 이미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모습과 끼를 선보이며 예능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다. 김용건은 “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년, 장·노년 연예인의 재발견과 인기 부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장년,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노년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 나영석 PD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장·노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청자들이 이들 세대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이해의 범위도 넓어져 세대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중장년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와 등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10~30대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사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 2017-07-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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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라이프] 중장년 연예인, 예능 프로그램 통해 화려하게 부활!
- 70세의 중견 배우 윤여정이 인기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바로 젊은 연예인과 신세대 스타들의 전쟁터로 변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예능 프로그램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윤여정은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섬에서 작은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과정을 관찰 예능으로 담아낸 tvN 에서 사장 겸 요리사로 나섰다. 윤여정은 에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꼰대 짓을 하지 않는 바람직한 어른 이미지를 보여주며 시청자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상승한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하고 있다. 에서 특유의 소탈함과 함께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81세의 신구 역시 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젊은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KBS 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입담을 과시하며 장·노년 연예인 예능 스타 붐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70세의 여배우, 81세의 원로 남자 연기자. 한국 대중문화와 연예계에서 이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 나이쯤 되면 일반적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은커녕 비중 있는 조연 맡기도 힘들다. 가족이 밥 먹는 장면에만 출연하는 ‘식탁용 배우’로의 전락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견 연예인들의 의미 있는 반란과 도전이 시작됐다. 그 반란과 도전의 진원지는 바로 젊은 연예인의 전유물이자 10~30대 젊은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중장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와 끼, 면모를 보여주고 친근감을 배가시키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과 인기 상승을 바탕으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으로 나서는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중장년 연예인의 재스타화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중장년 연예인의 재발견 창구로 부상시킨 것은 바로 2013년 방송된 tvN 다. 황혼의 해외 배낭여행 포맷으로 진행된 는 파격적으로 노년(老年) 예능을 표방하며 당시 78세였던 이순재, 77세 신구, 73세 박근형, 69세 백일섭을 출연시켰다. 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많은 우려를 했다. 중장년 예능 프로그램이 전무한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주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원로 연기자 이순재·신구·박근형·백일섭씨의 모습을 보면서 성공을 예감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에서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하고 의외의 재미있는 모습을 드러낸데다 연륜이 주는 현명함까지 전달돼 할배 신드롬이 일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장·노년 출연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 성공 이후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중장년 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쏟아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예인들과 함께 고정 멤버로 출연하는 중장년 연예인도 많아졌다. 결혼을 졸업했다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을 화두로 던지며 공론화했던 백일섭(73)과 이혼 이후 혼자 살며 다양한 취미생활과 여행을 하며 활기차게 장년의 삶을 사는 김용건(71)은 각각 KBS 과 MBC 를 통해 살림살이에서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혼자 사는 장·노년 사람들의 생활 트렌드를 이끌 뿐만 아니라 유익한 삶의 정보까지 제공해 사랑을 받고 있다. 김국진(52), 강수지(50) 등이 출연하는 SBS 과 김건모(50)가 나오는 SBS 는 중년 연예인의 이미지 확장과 인기 부활 예능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들이 여행을 하거나 미션, 놀이를 하면서 싱글 중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실태와 인식을 보여주는 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로맨틱한 김국진의 모습, 소탈한 김완선의 이미지 등을 엿보면서 많은 사람이 중년 연예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 출연을 통해 천진무구한 모습과 충격적인 행태를 보인 김건모에게 대중은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순재·윤여정, 백일섭·신구·김용건·이한위·김구라를 비롯한 중년 및 장·노년 연예인들이 이미지를 확장하고 새로운 모습과 끼를 선보이며 예능 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다. 김용건은 “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사적인 부분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라.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며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년, 장·노년 연예인의 재발견과 인기 부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젊은 시청자들에게 중장년, 노년층에 대한 이해의 접점을 확장하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노년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 나영석 PD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장·노년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청자들이 이들 세대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게 되고 이해의 범위도 넓어져 세대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섭은 “드라마와 영화를 할 때는 중장년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와 등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10~30대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사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 2017-07-13 0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