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발한 성격인 필자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장비를 늘어놓고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미학을 즐겨야만 하는 낚시는 필자의 성질에 맞지 않았다.
정적인 우리 남편은 취미가 식물 가꾸기와 낚시이다.
한창 젊었을 때 남편이 낚시를 즐기니 어쩔 수 없이 몇 번 낚시터 동행을 하기도 했다.
낚시터는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있어 꼭 물고기를 잡는 목적이 아니라도 따라갈 만했는데 더욱 좋은 건 낚시터 밥집의 짭짤한 시골 음식이었다.
대부분 낚시터를 관리하는 사람의 집에서 밥집을 겸하고 있어 그 집의 토방에 앉아 둥근 양은 쟁반 상에 오른 시골 된장찌개며 아삭한 오이장아찌, 어떻게 졸였는지 구수한 생선찜 등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즐겁게 따라나설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들이 아빠의 취미를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낚시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낚시 대회가 열려 많은 학부모가 참가해서 즐거운 하룻밤을 보냈는데 많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안 우리 아들과 친구 하나가 밤새 한자리에 앉아 낚시에 집중하고 있는 걸 보고 다들 놀라기도 했다.
필자가 낚시를 싫어하는 이유는 고기가 잡히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도 있지만 잡힌 물고기가 불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음식 중에서 생선을 가장 좋아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잡은 후엔 꼭 다시 놓아주지만 그래도 물고기는 상처를 입을 것이니 마음이 언짢다.
주말에 남편이 시동생 부부와 같이 가기로 했다며 낚시터 예약을 했단다.
필자는 낚시를 즐기지 않지만, 시동생과 동서는 낚시를 좋아한다고 한다.
오랜만의 형제간 단합을 위해 흔쾌히 따라가기로 했다.
요즘 날씨가 무척 가물다. 비가 많이 내려서 해갈이 되어야 식수며 농수에 대한 걱정을 덜 텐데 어제 좀 비가 내렸지만, 오늘은 아주 햇볕이 쨍쨍하다.
장소는 안성의 고삼 낚시터로 근처의 다른 저수지는 밑바닥이 갈라져 낚시 좌대가 땅 위에 얹혀있을 정도로 메말랐다. 그 모습이 매우 황량해서 가뭄에 대한 걱정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고삼낚시터에 도착해 보니 전보다는 물이 줄긴 했다지만 저수지 위로 드문드문 서 있는 좌대가 그림같이 펼쳐졌고 이미 많은 좌대에 사람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예약했다는 집 모양의 좌대가 물 건너편으로 보인다. 보트를 타고 갔는데 이곳은 저녁 6시면 관리인이 다들 퇴근해서 6시 이후엔 뭍으로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전기도 없어 배터리로 TV를 보고 저녁은 미리 주문해야 했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집 옆으로 만들어진 화장실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다만 화장실 갈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가격은 한 사람당 3만 원이어서 방값만 12만 원이니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방안에 짐을 넣고 베란다처럼 생긴 좌대에 낚싯대를 설치한 후 의자에 앉았을 때 눈에 들어온 풍경은 시리도록 아름다워서 아깝다기보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제 내린 비로 모든 먼지가 다 쓸려 내린 듯 새파랗고 깨끗한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너무나도 멋지게 유영하고 있다.
가뭄의 걱정도 오늘만은 비켜두기로 하고 풍경을 즐겼다.
남편과 시동생, 동서는 각각 서너 대씩 낚싯대를 펼쳐 드리웠고 필자는 직접 하지는 않아도 그 모습을 보는 게 흐뭇했다.
드디어 하염없이 낚싯대의 찌만 바라보는 인내의 시간이 시작되었는데 펼친 지 두세 시간이 지나도록 입질이 없다.
뒤쪽 의자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던 필자는 누구라도 한 마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났다.
드디어 낚시꾼이라는 남편을 제치고 동서가 한 마리를 끌어올렸다.
날렵한 은빛의 물고기는 눈치라고 한다.
몇 시간만의 첫 수확이라고 모두들 즐거운 탄성을 질렀고 고기가 잡히는 걸 바라지 않던 나도 손뼉을 치며 축하해 주었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말처럼 이후에도 동서의 낚싯대에서만 연달아 세 마리가 올라왔다.
6시경 음식이 배달되고 이후로 저수지는 적막에 휩싸였다.
밤이 되었다. 전깃불 없이 바라보이는 까만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그러나 어릴 때 올려다보았던 밤하늘에서 쏟아질 듯 가득 찼던 별빛은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별님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음이 씁쓸하다.
밤늦게까지 꽤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누웠다 깨보니 아침이다.
밤새 잡은 어망에 담겼던 고기를 풀어주었는데 필자는 다시는 잡히지 말라고 속으로 빌어주었다.
필자 취미는 아니었지만, 이번 낚시여행으로 충분히 마음이 정화된 듯한 느낌이다.
우리 남편은 이미 은퇴했지만, 아직 현역에 계신 시동생과 동서도 낚시터의 하룻밤으로 휴식이 되었기를 바라며 신나는 다음 계획을 꿈꿔본다.
필자가 어린 시절 자주 찾던 절이 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사 절이다. 소풍을 늘 이곳으로 갔었다. 칠현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있다. 역사도 오래되고 제법 큰 절이다. 혜소국사와 일곱 명의 도적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일곱 명의 도적 중 한 명이 표주박으로 물을 먹으려 하자 황금표주박이 놓여 있었다. 몰래 표주박을 가져와 동료들 있는 곳으로 와서 보니 황금표주박은 온데간데 없고 일반 표주박만 남았다. 일곱 명의 도적이 차례로 가서 황금표주박을 가져와도 여전히 돌아오면 일반 표주박으로 변해 있었다. 도적들은 이것은 필시 혜소국사가 자신들을 시험하려 하는 것이라 여기고 혜소국사를 찾아가 죄를 뉘우치고 제자가 될 것을 간청하여 후에 훌륭한 불자들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어사 박문수 이야기도 전해진다. 박문수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 칠장사에 들르게 되었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나한전에 들러 나한님께 유과를 올리고 잠을 청하였는데 꿈결에 나한님이 나타나 과거시험 8문제 중 7문제를 가르쳐 주고 한 문제는 알아서 써내라 했다 한다. 다음날 부지런히 출발하여 과거 시험장에 도착하여 시제를 보니 전날 밤 나한님이 가르쳐 주신 7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어 깜짝 놀라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지금도 입시 철이 되면 칠장사 나한전에는 수험생을 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다.
또 하나 이야기는 궁예가 10세 때까지 활을 쏘며 어린 시절을 지냈다 한다. 아직도 그 활터가 있어 칠장사의 오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임꺽정이 머무르던 곳으로 TV 드라마 ‘임꺽정이 촬영되기도 했다.
높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칠장사를 기억하는 것은 필자에게 유년기의 추억이기도 하다. 소풍을 가면 빠지지 않는 것이 보물찾기였다.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바위틈이나 나뭇가지에 쪽지를 감추어 놓고 찿는 사람에게는 공책이나 사전 등 선물을 주었다. 큰 마당에서는 장기자랑도 펼쳐
져 노래자랑도 열리고 했다.
많은 추억이 서린 절이었지만 어린 내 마음속에 항상 남아 있던 것은 절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사천왕상의 위엄이다. 입구 양옆으로 4구가 있는데 갑옷을 입고 어떤 이는 긴 칼을 빼듯 하고 어떤 이는 비파를 타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얼마나 크던지 어린눈으로 올려다보면 마치 거인처럼 보였었다. 큰 발로는 악귀들을 발로 밟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도 참 이상했던 것은 그 사천왕상이 그렇게 무섭게는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커다란 모습과는 달리 전체적인 이미지는 왠지 모르게 친근하기도 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지금도 칠장사 절을 생각하면 사천왕상이 문득 떠오르게 된다. 절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생각하면 더 무섭고 위엄이 있어야 할 텐데 표정은 영 그렇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코믹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왠지 친근감이 든다. 외유내강이라고 그래도 악귀들은 잘 물리칠수 있으시려나?
경북 울진군 하면 한손을 허리 등쪽으로 올리고 또 한손은 머리 아래쪽으로 내렸을 때 등 뒤에서 닿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지리적 위치가 도시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문화 혜택을 거의 받지 못 하는 곳이 기도 하다. 그러나 넓고 깨끗한 바다와 해수욕장, 깊은 계곡과 병풍처럼 둘러싸인 높은 산, 전국에서 물 좋기로 유명한 온천, 바다에서 싱싱하게 잡히는 울진대게, 가을이면 소나무 밑에서 자라는 자연산 송이버섯, 지방색을 갖춘 지역축제 등 아직도 때묻지 않고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고 노후에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점점 셀프가구나 DIY 제품이 나오면서 집안가구나 인테리어 등을 내손으로 만들어 보자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하지만 혼자 배우기엔 매일 만들 것도 아닌데 공구도 사야하고, 재료도 구해야 되고 번거로운 건 사실이고 만들면 뿌듯하지만 필자가 그런 분들을 위해 목공예 배우는 곳을 소개시켜 드립니다.
이곳에서는 도시에서도 배우기 힘든 목공예 체험장을 남중학 소장 부부가 운영하는 유아 단체반, 초등 저학년반, 초등 고학년반, 자연생태공예 지도교사반, 이번에 새로 생긴 시니어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시니어반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적극적이라고 한다. 엑스포 공원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쿠아룸, 솔밭 산책로, 도자기 체험장 등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 해소와 휴식 공간 할용에도 안성 맞춤이다.
처음 입교하면 목재의 성질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데 목재는 나무에서 얻는 천연재료 이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고 각기 다르다고 한다. 바람, 양지, 음지, 토양, 입지, 강우, 나무 사이의 경쟁 등으로 인해서 각 나무는 색상, 밀도, 나뭇결의 형상, 생산 목재의 기능적 특징 등이 다르다고 한다. 목재를 이용해서 가구를 만들면 각 판재는 사용 공구를 통해서 각기 독특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의 생물학적 측면과 자라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를 이해 하려는 노력이 목공의 출발점이라 한다.
그리고 울진에서 목공자재로 유명한 것은 금강소나무라고 한다. 금강소나무의 특성은 생육조건이 좋지 않은 척박지나 암반지역에서 더디게 자라고 껍질은 박피로 병충해에 강하며 나이테가 일반소나무에 비해 3배 가량 촘촘하고 뒤틀림이 적고 송진의 함유량이 많아 강도가 높고 쉽게 썩지 않는다고 한다. 400년이 지난 조선시대 무덤에서 발견된 황장목관의 나이테가 그대로 보였고 600년이 넘은 봉정사 극락전이나 경복궁에 사용된 금강소나무를 다시 재활용 자재로 쓸 정도로 그 보존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러한 금강소나무가 금강송이다. 금강송의 가치는 탁월한 목재, 우수한 산림유전자원, 풍부한 산림문화자원으로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필자도 목공에 관심이 있어서 배워보기로 했는데 우선 안전수칙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후 수공구 및 전동공구 사용법을 설명들은 후 공구박스를 제작해보기로 했다. 목재를 자르는 방법, 다듬는 방법, 목재 핀으로 고정 하는 방법을 교육받은 것과 같이 시행 해본 결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조금 미흡하지만 멋진 작품이 탄생되어 신기하기만 하였고 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 향은 향수보다 좋은 냄새를 풍겼다. 목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기회가 있으면 이용해 보시기를 적극 추천한다.
독일에 한 소년이 있었다. 호메로스의 를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아이는 언젠가 신화 속 도시 트로이를 발견해낼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어른이 되어 러시아에서 사업으로 큰돈을 손에 쥔 소년은 어릴 적 꿈을 잊지 않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고고학을 공부했고, 그리스로 건너가 고대 유물 발굴에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터키 히사를르크 언덕에서 꿈에 그리던 고대도시 트로이 유적지를 발견한다. 그가 바로 고고학계에서 잘 알려진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竹山)에서 만난 윤민용(尹民鎔·79) 문화해설사의 이야기는 이 슐리만의 이야기와 묘하게 닮아 있다.글·사진 이준호기자 jhlee@etoday.co.kr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그가 자랐던 고향 죽산에는 유난히 다양한 모양을 한 돌이 많았다. 산과 들을 뛰놀던 유년시절 소년 윤민용은 이 돌들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지만 당최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커서 돌들의 유래를 알아내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0년이 훌쩍 넘어서야 겨우 알게 됐다. 그 소년이 봤던 돌들은 통일신라 때 축성돼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죽주산성(竹州山城)의 일부였고, 그의 고향 죽산은 ‘경기도의 경주’로 불릴 만큼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라는 것을.
그가 어릴 적 꿈에 먼 길을 돌아 도착하게 된 이유는 가난이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는 학비를 벌어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고향에서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한국일보를 배달했고, 졸업할 즈음에는 죽산지국장이 되어 있었다. 그때 그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신문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뜨게 됐고, 그의 타고난 웅변 실력은 세상이 그를 새 꿈에 다가가도록 종용했다. 정치였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하면서 그 꿈은 구체화되는 듯했지만, 5·16 군사정변을 만나 그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금배지 대신에 타워호텔의 총무부장 직함을 달았다. 롤링스톤스가 울려 퍼지던 1969년의 일이다. 타워호텔은 1961년 민간에 매각되기 전까지 군사정부의 외빈용 숙소로 사용되었던 만큼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던 곳이다. 남북적십자회담이 1972년에 시작돼 2년간 7차례 진행됐는데, 그 역사적 사건 실무의 중심에 그도 서 있었다. 그렇게 10년간 호텔리어로 생활했다. 다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화학장치주식회사에서 20년간 근무 한 뒤 정년을 앞두고서였다.
“당시 퇴직 이후 계획을 세우기 위해 고향을 자주 찾다 보니 칠장사(七長寺)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칠장사의 다양한 유물들을 호기심에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유년시절 꿈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2001년 안성시에서 문화관광해설사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본격적인 교육을 받고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문화해설사로서의 활동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새로 했죠. 관련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 같은 곳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습니다. 문화해설사는 단순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읊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죠. 해설의 흥미와 사실감을 살리려고 정확한 역사 속 날짜와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뒤따라야 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간혹 스마트폰으로 내 해설을 확인하는 짓궂은 친구들도 있고,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하는 전문가들도 만나는데, 해설을 듣고 나서 칭찬을 많이 해주십니다.”
그가 문화관광해설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두 가지다. 역사적 근거를 통해 주류 사학(史學)과 향토사학(鄕土史學)의 올바른 접점을 찾는 것과 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다. 그런 노력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 중 대표적인 게 조선 최고의 어사로 손꼽히는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 이야기다.
“칠장사에는 박문수가 세 번째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다가 이곳에 들러 나한전에 기도를 드린 덕분에 장원급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구전설화로 전해 내려와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산에서부터 안성까지 자료가 될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고, 결국 천안 입장면에서 생가로 추정되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수사를 하듯 박문수의 호 기은(耆隱)이 그의 고향인 천안시 북구 입장면 기로리(耆老里)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하고, 여러 사료 확인을 통해 그의 몽중등과시 중 마지막 구절에 있는 (대나무)피리 적(笛)으로 알려져 있던 글자가 풀피리 적(笛)이라는 사실을 밝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이렇게 2년간 시간의 파편을 수집하고 확인하기를 거듭했고, 결국 어사 박문수의 장원급제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완성할 수 있었다. 고령 박(朴)씨 대종회로부터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안성시에서는 이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어사 박문수 전국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그가 완성한 박문수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는 어머니의 간청을 흘려듣기 힘들었다. 선비로서 절에 기도를 올리는 것이 마뜩잖았지만, 세 번째 과거시험 도전이었기 때문에 거절할 면목도 없었다. 하루를 꼬박 걸어 도착한 칠장사 나한전에서 그는 유과를 공양하며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 이날 밤 박문수는 꿈속에서 부처님을 만난다. 부처님은 시험에 나올 시제 7행을 알려주면서 나머지 행은 스스로 완성해야 하며 신중하지 못하면 시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성균관 과장(科場)에서 박문수가 완성한 시가 몽중등과시다. 그는 이 시로 병과 진사과에 장원급제했다.
최근에 이 시구는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칠장사로 복사본을 얻으러 오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실제로 그를 만난 당일은 2016학년도 공립 중등교사 임용고시가 있던 날이었는데, 나한전은 기도를 올리는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시의 효험 덕분인지 윤민용씨의 손주는 캐나다왕립사관학교에, 외손주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
중년의 꿈을 완성하기 위한 또 다른 꿈은 그간 조사하고 연구한 자료와 그의 이야기를 엮어 도록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주변에 무료로 나눠주고 싶습니다”며 “사람들의 관심을 높여 역사를 소중히 하는 마음을 키우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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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그러다 새 꿈이 현실이 되고, 천직이 되면서 어릴 적 꿈은 꿈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
중년이 되고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고향을 자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고향의 많은 문화재들을 다시 보게 됐고, 문화재들을 통해 다시 꿈꿀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꿈 vs 중년의 꿈?
어릴 적 꿈이 막연한 희망이었다면, 중년 이후 새롭게 품은 꿈은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 꿈이 호기심에서 비롯됐다면, 중년의 꿈은 베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꿈을 이루기까지 어려웠던 점?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기 위해 향토 사학을 공부하는 과정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료를 뒤지고 현장을 오가는 것이 즐거웠지만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슨 색?
구체적인 색보다는 밝다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굳이 색을 고르라면 태양빛과 같은 주황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꿈은 인생에 희망을 주는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꿈을 이루고 난 뒤 좋은 점?
늘 긍정적인 태도와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잔병치레도 사라졌습니다.
도시의 시간은 늘 빠르게 흐른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빠르고 지나는 차들도 빠르다. 어깨를 툭툭 부딪치며 추월해가는 사람을 붙들고 “뭐가 그리 바쁘세요?”라고 물으면 “무엇이든 빠르게 일하고, 빠르게 말하는 것이 도시에서의 예의범절이라우”라는 젊은이들의 차가운 훈계가 대답으로 돌아온다. 숨 막히는 도심을 떠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만석꾼 청송 심씨 고택은 느릿느릿 걸어가려고 길손을 여유롭게 맞아주는 곳이다.
글 임도현 프리랜서 veritas11@empas.com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덕천마을을 지키고 있는 청송 심씨의 송소고택. 거창하게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경주 최부자와 더불어 조선시대 으뜸가는 만석꾼인 청송 심씨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세도가로 이름을 날렸다는 청송 심씨. 누대의 세도가를 마주하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건 사실이다. ‘삐거덕’ 하고 조심스럽게 솟을대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서자 길손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삽살개 검둥이다. 태어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어미만한 풍채로 엉금엉금 걸어와 꼬리를 흔들며 길손을 반기는 모습이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을 것 같다. 저만치서 인기척을 듣고 찰방공파 11대손이자 송소고택의 주인장 심재오 씨가 마중을 나온다.
“주말에 주왕산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 올 10월까지는 주말 예약이 꽉 차 있습니다. 하지만 주중에는 한산하기 때문에 시간에 구애 받지 않은 자영업이나 전문직 손님들이 부부동반으로 오시거나 혼자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로 가득 차 왁자지껄한 고택의 모습은 왠지 상상하기 싫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애써 찾아와 고택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고 싶은 여행객들이라면 반드시 주말을 피해 이곳을 찾는 것이 좋다. 손님 하나 없는 넓은 고택에서 주인 행세도 해보고 귀여운 검둥이의 애교를 혼자서 독차지하려면 한산한 주중이 제격이다.
심 씨 땅을 밟지 않고는 뒷간도 못 간다고?
“고을의 부자는 대개 천석꾼입니다. 옛날 청송 심씨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는 황해도와 개성까지 전부 청송 심씨 땅이었어요. 사정이 이러하니 심 씨의 땅을 밟지 않고는 뒷간도 못 간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죠.”
집안의 위세를 설명하는 심재오 선생의 어조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옛날 경주의 최부자는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의 원칙을 세우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으니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청송 심씨 역시 최부잣집에 밀리지 않는다.
“일제시대 의병 군자금이 죄다 청송 심씨로부터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놓고 군자금을 줬다간 총독부로부터 고초를 겪어야 했으니 음성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가문은 송호택 증조부님께서 국채보상운동 청송지부장과 도산서원 원장을 지내시면서 일정시대 독립운동을 주도하셨습니다.”
오래된 집, 오래된 탁자, 오래된 문갑. 송소고택이 박물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과 손님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저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던 길손을 송소고택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기운이 옛날로 끌고 들어간다.
“송소고택은 만석꾼 심처대 할아버지의 7대손인 송소 심호택 할아버지가 지은 집이에요. 재산이 불고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자 본래 선대가 터를 잡고 있던 지금의 성주봉 아래 덕천마을로 되돌아와 더 큰 집을 짓고 사신 거죠. 아들 넷을 둔 송소 심호택 할아버지는 맏이네 99칸의 송소고택을 짓는 데 13년, 나머지 세 아들에게 각각 30칸 규모의 집 세 채를 짓는 데 7년이 걸렸어요. 여기에 첩의 아들이 분가해 살 수 있도록 25칸의 집을 짓기까지 모두 21년 동안 214칸의 집을 지어 물려주셨지요.”
송소고택은 4형제의 집 모두 대문채, 큰사랑채, 작은 사랑채, 인채, 별당과 조경을 갖춘 거대한 규모의 대궐이었다. 하지만 전란과 정치적 소요를 겪으며 송소고택을 제외한 대부분의 집이 안타깝게도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수백 년 전 선조들의 생활방식이 그대로 투영된 전통가옥이기에 여관이나 모텔과 달리 불편한 점이 바로 화장실이다.
“전립선이나 요실금으로 고생하시는 중장년층 손님들을 위해 재미삼아 사용해보시라고 요강을 드려요. 송소고택을 찾아오시는 중·장년층은 평소 전통가옥에 관심이 있는경우 재래식 화장실 같은 불편함을 감수하시는 반면, 아무런 정보 없이 재미삼아 들르신 분들은 밤을 버티지 못하고 퇴실하시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저희 집이 체통을 심히 따지는 종택은 아니지만 나름 전통을 지닌 가옥이에요.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오시기 전 사료를 찾아 공부를 한 후 송소고택을 찾아주시면 한옥에서 하룻밤 묵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실 수 있습니다.”
새색시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송정고택
송소고택 주인장의 당부에 이곳을 찾아갈까, 말까 고민이 든다면 독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선택이 남아 있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송정고택이다. 송소고택과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쪽문을 통해 왕래할 수 있는 송정고택은 심호택 선생이 차남 심상광 선생에게 지어준 것으로 현재 심재오 선생의 육촌 여동생 심증옥 여사와 남편 정진철씨 부부가 기거하며 손님들을 맞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어요. 결혼해 분가를 하고 서울에서 살다가 4년 전에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와 은퇴생활을 하고 있어요. 거의 40년 동안 집이 비워져 있었던 터라 손볼 곳이 많았는데 말끔히 수리를 해서 예쁘게 다시 태어날 수 있었어요.”
방 한쪽 벽면에는 의친왕의 친필이 새겨진 현판이 눈에 띈다. 마루 한편에 펴놓은 좌식상은 500년 된 나무로 만들었으며, 집 곳곳을 지키고 있는 두꺼비상은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더 이상 채굴이 금지된 귀한 꽃돌로 만들어졌다. 객실 벽면에 세워져 있는 화조도 병풍은 족히 100년은 되어 보이며, 재떨이와 곰방대 꽃병 등 선친들이 사용했을 법한 물건 하나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주인장 부부가 도둑 걱정에 잠을 편히 잘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송정고택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며칠 집을 비우느라 문을 잠가놓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곧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은퇴 후 살 곳을 찾기 위해 춘천, 영월, 안성 등 전국을 돌아다녀봤지만 청송만큼 여유롭고 인심 좋은 곳이 없더라고요. 혼자 여행하시는 저희 또래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여기 집을 내놓은 곳이 있나요?’ 하고 매번 물으실 정도니 처음 찾은 분들의 소감이 이곳에 정착해 사는 저희들의 느낌과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혼자서 찾아온 여행길, 손님을 맞는 부부의 즐거운 모습에 울적했던 마음은 이내 사그라든다. 십수 년간 켜켜이 묵은 때마냥 쌓인 도시생활의 염증을 이곳에서 단번에 치유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언제든지 혼자서 느릿느릿 찾아갈 수 있는 곳을 알게 됐으니 행복의 단서 하나만은 제대로 주머니에 챙겨온 듯하다.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해움미술관(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33)이 개관기념 기획초대전 ‘오래된 始作-교동, 수원예술을 품다’를 선보인다.
이 전시는 지난해 9월 오픈한 해움미술관이 ‘수원시 최초 사설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마련한 대규모 기획전이다. 수원을 비롯해 안성, 안산, 오산, 화성, 평택, 용인 등 도내 곳곳에서 활동 중인 작가 76명이 참여한다.
대규모 기획전답게 전시는 오는 5월 25일까지 1부(3월 21일~4월 23일)와 2부(4월 25일~5월 25일)로 나뉘어 각각 열린다.
1부 전시에는 강난영, 강상중, 권용택, 기노철, 김교선, 김미경, 김주영, 김학두, 남부희, 박근희, 박봉순, 박성현, 박영복, 박요아, 박용국, 서해창, 성하영, 신현옥, 안병덕, 영 희, 오태식, 오혜련, 유계희, 윤정년, 이강자, 이동숙, 이석기, 이선열, 이연미, 임하영, 조진식, 주종수, 지옥진, 최영철, 탁신문, 한순주, 홍낙기, 홍형표 작가까지 총 38명이 참여한다.
1부에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최고령 서양화가 김학두(92) 화백부터 한국 화단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홍형표, 조진식 등의 중견작가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다채로운 작품들로 구성돼 시대를 뛰어 넘은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2부 전시에는 권성택, 김석환, 김성배, 김수철, 김영섭, 김수직, 김희곤, 남기성, 류연복, 박경선, 박준모, 박태균, 서길호, 송태화, 안재홍, 오시수, 오점균, 우무길, 이득현, 이영길, 이오연, 이윤기, 이윤숙, 이윤엽, 이주영,조용상, 이해균, 임종길, 장혜홍, 차진환, 초 이, 최세경, 최승일, 최필규, 최현식, 한 다, 허병훈, 황보경 작가 총 38명이 같이 한다.
이 같은 초호화 명품 화가들의 총출동만으로도 전시의 스케일을 짐작케 한다. 참여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수원의 행정ㆍ문화ㆍ예술의 1번지인 교동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황옥남 해움미술관 관장은 “해움미술관은 옛 모습을 간직한 구 도심권에 위치하고 있지만 작은 문화예술의 보급소로서 교동 지역의 화려했던 옛 영광을 재현하고 복원해 가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려 한다”며 “아울러 수원과 경기도 지역의 예술인들에게 예술의 힘을 배양하는 의미있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무료. 1부 오프닝 3월 21일 오후 6시30분/2부 오프닝 4월 25일 오후 6시30분. 문의 (031)252-9194
경기일보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브라보마이라이프’ 시니어기자단 1기로 선발된 강애수님이 보내온 글을 싣습니다.
두 남매를 둔 강애수님은 목원대 기악과 출신으로, 결혼하기 전부터 음악학원을 5년 정도 운영했는데 연년생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바람에 학원운영을 접어야만 했던 경력단절 여성중 한 분이십니다. 큰 딸은 카드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고 둘째 아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첫 취업에 실패의 고배를 마신 터라 보듬으며 다음을 위해 힘찬 파이팅을 보내고 있다고 하십니다.
강애수님은 작은아이 대학입학과 동시에 컴퓨터를 배운 후 우연한 기회에 이마트모니터와 자문위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를 하며 글을 쓰고 모니터링을 하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글을 쓴다거나 감성적인 모습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감을 얻었고 활동범위를 넓혀 가고 있습니다.
"넓혀 갈수록 나약하기만 했던 제가 얼마나 성숙했고 생각의 폭도 넓어졌는지 스스로도 놀랐답니다"
현재 고양시 여성-복지참여위원, 양성평등교육진흥원통신원, 서울톡톡기자, 금융감독원 이용자 리포터,안행부 생활공감모니터, 경기도 민원모니터 등 너무나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현재 활동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저는 왕 언니로 통하고 있다고 하네요. 아들딸과 같은 청소년들과 활동하는 곳이 많다보니 성실함과 책임감은 기본이었다고 합니다.
브라보마이라이프 시니어기자단 모집 사고가 나간후 얼마되지 않아 곧바고 응모 지원서를 보내올 정도로 열정이 뜨거우신 분입니다.
본인 소개서 중 한 문장을 소개해드립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해 왔고 자칭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테일한 기사도 쓰고 싶고 시니어로서 더 큰 도약을 하고 싶습니다."
빠름~~빠름~~
온통 빠르게 달리는 초스피드시대.
브레이크 없이 달리던 사람들이 요즘 과거의 흔적을 들쳐보며 선조들의 지혜에서 새로운
삶의 지혜를 깨우치려하고 있습니다.
더 새로운 것~~~
더 창의적인 것에 대한 해답을 옛 것에서 찾아보는 지혜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옛 것을 바르게 익히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 스스로 스승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겠지요.
저는 ‘브라보마이라이프’(www.bravo-mylife.co.kr. m.bravo-mylife.co.kr) 시니어 기자이지만 병무청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이기도합니다.
청춘예찬 어머니기자들은 다들 군에 다녀온 자녀나 군 생활 중에 있는 자녀를 둔 분들이 대상이라
모두 시니어에 속합니다.
이런 자격을 갖춘 어머니기자들이 국군장병들에게 무슨 음식을 해 주면 좋을지?
군 가산점에 대해 찬성하는지? 설문조사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고즈넉한 역사의 현장인 서오릉에서 하면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제가 적극 추천을 했답니다.
ㅎㅎㅎㅎ 시대의 변화를 읽고 있었기에. 역사는 행동하는 자들이 변화시킨다는 사실을요.
지금 생각해 보니 안성맞춤이 안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네요.
불특정 다수에게 설문조사라~~~새로운 도전이라서 어머니들끼리 만반의 준비를 했답니다.
판넬과 스티커, 필기도구 등...
저는 제일 잘 하는 일이 바쁜척!!! 이다 보니 시간 안에 도착을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총총한 발걸음으로 노래까지 룰루랄라 부르면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면서 서오릉으로 갔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도 비행기를 탄 느낌으로 달려갔답니다.
어머니기자들 리허설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나 잘 하시는지!!!
서오릉 관람객들 어찌나 적극적으로 설문에 응하시던지요.
그분들의 모습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군에 보내며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군시절 계란후라이가 먹고 싶었다는 분이 계셨죠. 하여 계란후라이 무한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순간 짭쪼름 하면서 땡글땡글한 계란 장조림 생각이 어찌 나던지 입맛까지 다셨답니다.
한 어머니께서는~~~
인스턴트는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바로 눈가가 촉촉해 지더라구요. 눈가에 맺히는 눈물에서
진정성이 느껴졌고 그 진정성은 어떤 웅변보다도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군대간 아들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어머니 마음 이해하고도 남지요.
오죽하겠습니까? 저도 경험자랍니다.
설문에 참여하신 분들은 짧은 멘트 하나 남기고 갔을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과 같은 소통으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개선을 요구한다면
국군장병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는 지속적으로 개발될 것입니다.
여론의 힘은 정말 대단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되지 않을까요?
딸 밖에 없어 군에 보낸 자식이 없다 하시면서도 군 가산점을 주어야 한다며 스티커를 붙여 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군대에 보낼 자식이 없어도 군 복무자에게는 일정 부분의 혜택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공감하였습니다.
군 복무자에 대한 가산점 부여가 평등권을 침해한 위헌으로 판결을 받아 가산점이 폐지되었지만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목숨으로 국권을 사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에게 사회의 복귀를 도와야함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문에서도 군 가산점 제도에 공감하며 거의 몰표를 받은 점으로 보아 국군장병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제도는 군 가산점인 것 같습니다.
긍정적 변화와 발전은 늘 문제의 노출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데 꼭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노출된 문제를 공식화하여 법과 제도를 세우기도 하는가 하면 오랜 관행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역사의 발전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지요?
오늘처럼 이렇게 소통을 통해 가까운 답을 찾고 또 찾아서 가다보면 말입니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찰만 존재할 뿐이죠.
50을 넘긴 어머님기자들이지만 똘똘 뭉친 기자정신으로 현장을 통해 수확도 푸짐하고 자질을 충분히 보여 주셨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도 혼자보다는 지위고하를 떠나 옆의 누군가와 협력해서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고 서로 역할을 나누어 하다 보면 더 좋고 많은 컨텐츠를 창출해 낼 수 있음을 깨닫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고등학교를 끝으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무식이 탄로났다는 것.
역사를 보는 눈을 좀 키우려면 역사와 소통을 해야겠어요.
오늘 받은 영향이 정말 크네요.
최근 들어 국내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면서 개발호재가 많은 지역이 부동산 투자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개발 사업 진척 속도에 따라 시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인 상승곡선을 타기 전인 올해 상반기를 주택 매수의 적기가 될 수 있다며 개발호재가 많은 지역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박상언 유엔알 컨설팅 대표는 “부동산 시장 회복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봄 이사철 주택 거래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집값과 전셋값 상승 폭도 조금씩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하지만 부동산 시장 불안 심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대기업 이전 등 개발호재가 있는 지역을 노리는 것이 안전하게 향후 아파트 시세차익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주택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 21일 국민은행의 아파트 매매 및 전세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1월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달보다 0.06% 상승했다. 수도권 지역의 1월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것은 2011년 1월(0.15%)이후 3년만으로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청약 광풍의 진앙지 중 하나인 판교신도시가 시선을 끈다.
판교 개발호재의 핵심인 테크노밸리에는 국내 대표게임 업체들을 비롯해 정보기술(IT)을 비롯해 바이오ㆍ인터넷 콘텐츠 등과 관련된 700여개 기업이 들어서 있고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 수만 3만8000여명 이른다. 업계에서는 2015년이면 1000여개 기업에 임직원 수가 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판교신도시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는 지난 1월말 기준 2116만원으로 2012년 말에 비해 80만원 정도 증가했다. 지난해 인기를 끈 강남권 위례신도시의 3.3㎡당 평균 분양가가 1600만~1800만원 선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
판교신도시처럼 개발호재가 풍부한 지역으로는 송도국제도시가 대표적이다. 실제 올들어 세계 1위 보안업체인 다국적기업 ‘ADT 캡스’ 수도권광역본부가 송도 센트로드에 입주했다. 지난해 8월 송도에 콜센터를 설립한 효성ITX는 현재 40여명인 인력을 올해 안에 150여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1200여 명의 직원이 있는 포스코엔지니어링은 3월, 국내 최대 무역업체인 대우인터내셔널은 9월에 각각 송도로 본사를 이전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사옥 이전을 위해 최근 312m, 68층으로 국내 최고층인 동북아무역타워(NEATT)를 매입했다.
제1공장 건립을 마친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총 2조1000억원을 투자해 송도에 제조 프랜트와 연구개발(R&D)센터를 짓고 있다. 동아제약은 바이오산업클러스터를 앰코테크놀로지는 글로벌 R&D센터를 조성 중이다. 한진그룹은 오는 2018년까지 인하대병원 글로벌종합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한다.
대기업 입주외에도 연세대와 뉴욕주립대, 조지메이슨대, 켄트대 등 유수의 국내외 대학이 들어선다는 점도 부동산 시장엔 호재다.
유입인구도 꾸준히 증가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2만3000여명에 불과했던 송도국제신도시의 인구는 올해 1월 말 7만3000여명을 넘어서면서 5년 동안 약 3배 넘게 증가했다. 인구가 늘면서 전셋값이 상승해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도 최근 60%를 넘어섰다.
송도 중에서도 이미 입주가 끝난 지역(1~3공구)보다 개발 호재가 많은 신흥주거지역(5·7공구)이 상대적으로 더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 분양 물량이 주목받고 있다.
대우건설은 5공구 RC-2 블록에 ‘송도 에듀포레 푸르지오’를 분양중이다. 59~105㎡(이하 전용면적 기준), 지하1~지상41층, 8개동, 총 1406가구 규모다. 중소형(84㎡ 이하)이 1284가구인 91.3%로 송도에서는 드문 중소형 위주의 단지로 꼽힌다.
분양가는 3.3㎡당 평균 1180만원 대이며 중도금 전액 무이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오는 2016년 9월 입주 예정이다. 견본주택은 연수구 송도동 8-2번지에 있다.
롯데건설과 대우건설은 7공구에서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함께 들어서는 복합단지 ‘송도캠퍼스타운’을 분양중이다. 오피스텔인 ‘송도 캠퍼스타운 스카이’는 47층 2개동에 1835실이 들어선다. 26~34㎡의 소형 위주로 구성돼 있다. 기분양한 ‘송도캠퍼스타운 아파트’는 지하3~지상55층 6개 동에 59~101㎡ 1230가구로 구성됐으며 현재 저층 일부가 남아있다.
평택 부동산시장도 개발호재가 풍부해 기대감이 높은 곳이다. 평택은 삼성전자 고덕 산업단지 조성(2015년 준공예정), 주한미군기지 이전(2016년), LG전자 부품공장 조성(2017년 준공예정), 수서발 KTX 평택 지제역 개통(2015년 예정), 신세계복합쇼핑몰(2016년 완공 예정) 등 굵직한 개발호재로 주택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KTX 신평택역이 개통되면 수서역까지 약 22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미분양 물량도 빠르게 소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평택 지역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10월 2151가구에서 12월 말 1343가구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신규 분양도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분양한 대림산업 ‘e편한세상 평택’은 5개월 만에 분양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건설이 지난해 9월 분양한 ‘평택용이 금호어울림’도 2215가구의 대단지임에도 60% 이상 계약이 된 상태다. ‘‘평택 용이 금호어울림’은 67~113㎡로 구성되며 수요자의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 세대가 전체의 97%를 웃돈다. 분양가는 기준층 기준 760만원부터다. 같은 지역의 5년전 분양가보다도 저렴하다.
올해에도 신규 분양이 이어진다. 현대건설·대우건설·GS건설을 비롯한 8개 건설사가 모두 9828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대부분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중소형으로 구성된다.
현대건설은 안중읍에 ‘평택 송담 힐스테이트’를 오는 4월 분양한다. 59~84㎡ 952가구 규모다. 우미건설과 반도건설도 평택시 소사벌지구에 4월 ‘평택소사벌 우미린’과 ‘평택 반도유보라 2차’를 각각 분양한다.
‘평택소사벌 우미린’은 84㎡ 단일 주택형으로 총 870가구이며 ‘평택 반도유보라 2차’ 는 74~85㎡ 630가구로 구성된다.
대우건설은 용죽지구에 ‘평택 용죽 푸르지오’ 761가구를 11월에 공급할 예정이다. 역시 중소형인 60~84㎡로 설계했다. GS건설은 12월에 동삭동에서 ‘평택 칠원동삭 자이’를 공급한다. 59~84㎡ 1095가구에 이른다.
롯데건설은 경기 안성시 대덕면 신령리에서 ´안성 롯데캐슬´을 분양중이다. 지하 2층~지상 20층, 30개동, 전용면적 59~84㎡, 총 2320가구로 구성된다. 전용 84㎡의 평균분양가는 2억3000만원대로 구입할 수 있다. 단지 앞의 38번 국도로 안성평택중심권역까지 10분이면 이동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