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박물관 강의, 신석기의 토기에 대해 강의를 하러 왔던 지산 선생이 떠오른다. 그를 보자마자 필자는 그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아주 좋은 기운이 내게로 밀려왔다. 수염을 기른 그는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선생님 옆에 있으니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 너무 행복한 마음이 드네요” 했더니 “네 그럴 수 있어요” 한다. 특별하지도 않은 대답인데도 필자를 들뜨게 했다. 오늘은 빗살무늬토기를 만드는 날. 지산 선생이 준비해온 사질 점토로 직경 1cm 정도로 기다랗게 흙을 빚어 마르지 않게 비닐로 덮어둔다. 신석기시대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고 있다. 며칠 후 대장암 검진 예정이다. 벌써 5년 차가 되었다. 암 확진 전과 후의 삶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벌써부터 검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매우 초조한 마음이다. 오늘 유난히 건강을 일깨워주고 먼저 가버린 ‘참 괜찮은 친구’가 그립다. 시골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낸 필자는 이 친구와 많이 친하게 지냈는데 고등학교를 서로 다른 곳으로 진학하면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야 함께 서울에서 동창 산악회에 참여하면서 자주 만났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6개월 전에 결심한대로 이번 5월 말에 오랜 세월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그동안 임기 연장에 대한 여러 유혹이 있었다. 일을 멈추는데 대해 불안 해 하는 아내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무엇보다도 35년이 넘도록 새벽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하던 패턴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을 많이 했다. 떠나기로 결심하고 6개월 동안 이 문제를 고심했다. 결론은 60 이후의 삶을 좀 더 느리게 살자는 것.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삶처럼 앞만 보고 뛰면서 살지 말고 옆도 바라보고 뒤도 바라보면서 느리게 걷듯 사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느리게 걷듯
흔치 않은 시사회 초대를 받았다. 작가주의 소형영화지만 칸이 사랑하는 다르덴 형제의 새 영화라 시작부터 가슴이 설렜다. 다르덴 형제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7번이나 오르고 2번의 수상을 거머쥔 그야말로 칸의 황제라 할만하다. 어느 해인가 다르덴 형제가 작품을 출품하지 않은 해에 수상한 감독은 그들이 출품하지 않은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대부분 사회 문제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집요할 만큼 물고 늘어진다. 그러다 보니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심심하다는 뜻이다.
인생 황혼기에 맞은 손님 감독 토마스 맥카시 주연 리차드 젠킨스, 히암 압바스 제작연도 2007년 상영시간 104분 20년째 코네티컷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년의 교수 월터 베일(리차드 젠킨스). 단조롭고 열의 없는 나날을 무기력하게 이어가던 월터는 논문 발표를 위해 뉴욕 출장을 갔다가,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자신의 아파트에서 불법 체류자인 타렉 칼릴(하즈 슬레이만)과 자이납(다나이 거라이라) 커플과 마주친다. 월터가 갈 곳 없는 젊은 커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자, 타렉은 감사의
지금도 그런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학교 다닐 때 군인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학창 시절에는 군인들이 엄청나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무조건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여고 시절 같은 반 급우들의 위문편지의 첫 제목은 똑같이 ‘군인 아저씨 보셔요’였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셔요’였다. 한 장이라도 써야 했기에 글이 안 써지는 아이들은 위와 같이 한 줄만 달랑 써놓고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곤 했다. 필자는 후다닥 쓰는 데 선수였다. 친구가 그러고 있으면 뭘 고민하냐면서 대신 써주기도
할머니가 주재하신 식사 모임 감독; 조지 틸만 주니어 주연; 바네사 윌리엄스, 이르마 피 홀 제작연도; 1997년 상영시간; 115분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영화로 가 빠질 수 없다. 할머니가 구심점이 된 삼대에 걸친 대가족 이야기.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가정의 평안을 유지시킨다는 할머니의 교훈은 진부할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딸들은 직업과 사랑, 자아실현을 위해 고분군투하고 손자에 의해 가정의 전통이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성이 맡아왔던 화해, 안정의 역할을 손녀가
애틋한 인연은 뭐니 뭐니 해도 남녀 간의 인연이다. 집안 조카뻘인 K는 초등학교 영양사이며 그만하면 남들에게 빠지지 않는 예쁜 미모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얌전하다 보니 서른 살이 되도록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해본 숙맥이었다. 결혼은 필연이고 숙명이라고 믿고 있는 육십이 훌쩍 넘은 K의 시골 부모는 애가 타들어갔다. 보다 못한 K의 부모가 필자에게 참한 신랑감을 중매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아마 도시의 큰 직장에서 근무하는 필자 주위에 좋은 신랑감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부탁을 받았을 때는 중매를 할 수 있
일본 오사카는 새로 카지노 단지를 만들어 연간 6조원의 수입을 올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대기업들이 도쿄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파친코 산업 매출이 부진하고 장래 올림픽과 국제 박람회, 그리고 중국 관광객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연간 7만 명의 고용효과까지 생긴다고 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자료를 인용한 신문보도에 의하면, 카지노 시장의 규모가 도박의 도시 마카오는 2015년 기준 289억달러, 라스베이거스가 63억달러, 싱가포르가 48억달러, 한국은 24억달러 규모라고 한다. 마카오에도 가봤는데 그야말로 카지노
몇 년 만에 도봉산 Y계곡 산행을 위하여 도봉산역에 내렸다. 단장을 끝낸 역사가 새롭다. 80년만의 7월 무더위가 미리 왔다는 기상특보가 있는 날이다. 포장도로에 들어서자 땀이 쏟아진다. 걸음을 재촉하여 광윤사를 지나서 계곡에 들어섰다. 어린 아이처럼 싱그러운 연녹색 물결이 뒤덮고 있다. 큰 바위를 지붕 삼은 만월암이 앙증스럽다. 며칠 전 석탄일 행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만월암을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 나무계단이 나온다. 숨이 턱밑까지 차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 별 어려움 느끼지 않고 오르던 곳이다. 세월이 무심
사랑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중요한 건 누구나 공감한다. 연인이거나 혈육이거나 부모 자식 간이거나 당연히 사랑하는 대상이다. 조금씩 다른 느낌이 있을 뿐이다. 라는 책을 펼치며 대뜸 제목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필자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부모의 사랑 여부를 따져보거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 의문을 갖는 일은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니어 세대에서는 말이다. 혹시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린아이들이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
아름다운 동반자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주연; 조안 우드워드, 폴 뉴먼 제작연도; 1990년 상영시간; 126분 명망 있는 변호사 월터 브리지(폴 뉴먼)는 한여름에도 조끼와 넥타이를 갖춘 정장 차림을 고집하고, 행진곡풍 음악만 들으며, 극장에 가면 잠을 자고, 태풍이 시속 75마일로 불어와 모두 지하실로 대피하는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풀코스 정식을 마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젊은 여성과 재혼한, 자유분방한 정신과 의사 친구 알렉스 사우어(사이먼 캘로우)는 성적 농담을 받
누에박물관을 돌아본 후 격포해수욕장이 있는 바닷가로 갔다. 바로 옆에는 채석강이 있다. 층층이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바위는 여전했다. 40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곳이다. 풍경은 여전한데 그리운 아버지는 옆에 없어 가슴이 아려왔다. 그 당시 아버지는 지금의 필자 나이보다도 어렸다. 필자가 어느새 그때 아버지의 나이를 훨씬 넘어 손주들을 둔 할머니가 되어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과 함께 격세지감이 들었다. 바닷가는 하늘과 맞닿은 바다의 수평선이 눈부시게 푸르고 깨끗해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구분
유채꽃은 제주도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부안의 유채꽃밭도 아주 볼 만했다. 샛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눈부신 풍경을 이루었다. 몇 년 전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돈을 내야 한다는 팻말이 있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곳 부안 유채꽃밭은 포근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 속에서 필자도 꽃이 된 양 마음껏 셔터를 눌러 멋진 유채꽃밭 사진을 얻었다. 유채꽃 만발한 부안 마실길인 수성당은 재미있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수성당은 딸 여덟 명을 낳아 일곱 명 딸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주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드디어 황금연휴라 불리는 눈부신 아름다운 계절 5월의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시니어인 필자는 하루하루가 그냥 휴일이라 할 수 있지만, 직장인인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유익하게 보내고 싶은 휴가기간일 것이다. 4월 말의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해서 5월 4일 하루만 휴가를 낸다면 무려 9일간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아들은 4일 휴가를 내지 못해 징검다리로 쉬게 되었다. 이렇게 긴 연휴를 어찌 보낼까 의논하다가 1일부터 2박 3일은 필자와 가족여행을 하고 회사 근무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충남 계룡이 고향인 며느리와 손주들은 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