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얼마나 울렸을까. 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이경숙씨 댁 맞나요?” “○○여고 나온 그분 맞으세요?” 익숙한 목소리. 뒤이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순간 30여 년 전 시간들이 확 몰려왔다. 그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서클에서 활동을 했다. 광화문 근처 4개 학교의 학생들 30여 명이 회원인 서클이었다. 필자가 처음 서클에 들어간 날이었다. 게임을 하다 걸려 벌칙으로 노래를 하게 되었다. 선뜻 나서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불쑥 일
사고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평소에 충분히 잔병치레를 했다고 봐주는 일은 없다. 부양하는 가족이 있어도 피해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강서 나누리병원에서 만난 이미정(李美正·54)씨도 그랬다. 연이어 시험에 들듯 시련이 다가왔지만, 그저 묵묵히 이겨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배정식(裵政植·41) 병원장을 만난 것은 자신과 주변 것들에 대해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준 선물 같은 보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그저 즐거운 일뿐이었다. 악몽 같은
부모란 자식이 아직도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낄 때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버텨 낸다. 도요새도 새끼를 공격하려고 하면 다리를 절며 천적을 유혹하여 새끼들이 안전하게 도망치게 한다. 어쩔 수 없는 타고난 본능이다. 아이들은 커가며 능력이 향상되지만 노인들은 하던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지켜주던 부모는 이제 지켜주어야 할 사람으로 역할이 바뀐다. 늙은 부모를 가치나 효용성으로 보면 형편없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옆에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가족에게 힘과 결속력을 주는 것이다. 부모나 자식 보다 서로 인간으로 역을 맡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멍해졌다. ‘예’ 자신 있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나 자신의 앞날에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책상위에 올려놓고 책 표지만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여러 사람한테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대개 먹먹하다고 답했다. 차마 그 책을 펼쳐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후 2주일이 흘렀다. 그제서 책을 펼쳐 보았다. 머리말을 보며 부모님이 언제 병이 들었는지. 간병한 적이 있었는지. 어린 시절의 나와 부모의 관계는 어땠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가 부모가 되니 ‘
세상이 각박해졌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상징적으로 하늘을 얘기한다. 사실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해야 하는 급급한 상황에 치이다 보면 하늘 한 번 올려다볼 틈 없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이다. 그런데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봐도 특별히 보이는 게 없다. 낮에는 태양이 눈부셔서 올려다보기 힘들고, 밤의 하늘은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과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그리고 별들을 흉내 낸 인조 조명들이 정작 별들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도시에 모여 살며 그 많은 밤하늘 가득한 별들을 추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별들은 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 눈앞에 다가왔고 유권자들을 위한 후보자 정보와 선거 안내문이 전체 유권자에게 우송되고 있다. 우송된 그 우편물이 개봉되지도 않은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모습을 더러 본다. 방송이나 유세 현장 또는 다른 정보망을 통하여 후보자를 잘 파악하고 있게 되어 유인물을 읽을 필요성이나 아예 관심이 없어서 그대로 버리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싶다. 유인물을 만들고 우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만은 않다. 귀중한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현장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 돈 얼마나 된다고?”라고 할 수도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부모로부터 향토장학금을 타 쓰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가 몹시 아파 시내에 있는 치과로 무조건 들어갔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치료실 의자에 앉은 필자의 치아 상태를 보더니 신경치료를 하고 순금으로 씌워야 오래 쓸 수 있다고 했다. 값이 어느 정도이든 치료를 당장 하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학생 신분이었던 필자는 시골집에 다녀와 비용을 드리면 안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문제는 시골을 다녀오려면 며칠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아니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중 현관 옆 우편함에 낯선 우편물이 들어 있어 “이게 뭐지?” 하며 뜯어봤더니 세상에, 생각지도 않았던 교통범칙금 고지서였다.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범칙금 액수였다. 3만원도 아니고 5만원도 아닌 무려 13만원이었다. 13만원짜리 교통범칙금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화가 끓어올랐다. 필자는 운전을 무척 조심스럽게 하는 편이다. 위반을 하며 운전했다는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어찌된 걸까?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는 생각
"엄마, 오늘 집에 있어?" "응,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거야." "지금 엄마 보러 가려고 하는데…." “왜 무슨 일이 있니?” 난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주영이한테 휴가 받았어." 식전 댓바람에 받은 아들 전화에 화가 났다. 며느리가 얼마나 잡도리를 했으면 휴가라는 말을 할까. ‘우리 아들 마음대로 나다니지도 못하게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래 와라” 하고 대답은 했지만 머리가 뒤숭숭했다. 아들은 전화도 잘 안하고 자주 오지도 않는 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두 시간 후 다시 전화가 왔
부활하신 예수님이 처음 만난 사람은 누구일까? 베드로나 야곱이나 비중 있는 제자들이 아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다. 그녀에게 처음 나타나신 이유가 있다. 남자들은 입이 무거워 설명도 잘 못하고 여기저기 말을 옮기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여자가 선택된 것이다. 특히 여성들 앞에서 절대 알리지 말라 하면 얘기는 더 빠른 날개를 달고 날아간다. 하느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누가 선악과를 따먹었느냐고 묻자 아담은 이브가 따서 주었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고자질인 셈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이
요즘 연일 뉴스를 통해 북한의 군사 도발적 언행과 핵 실험이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면 너무나 무섭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정책기자단에 4월 26일 경기도 포천에서 한미 연합 훈련을 한다는 공지가 떴을 때 꼭 참석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방부는 2017년 4월, 강한 국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적 도발 시 강력한 응징, 격멸 능력을 시현하기 위해 한미 연합 및 합동훈련인 ‘2017 통합화력격멸훈련’을 시행했다. ‘통합화력격멸훈련’이란 한미 및 육·공군의 합동
는 '아들러 심리학'으로 열풍을 일으킨 일본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쓴 책이다. 그는 20대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간병했고 50대에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꽤 오래 간병했다. 본인도 50세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한때 아버지의 간병을 받았다. 이 책은 아버지의 간병 기록이다. 간병은 힘든 일이다. 간병인은 꽤 많은 보수를 받지만 워낙 일이 힘들다 보니 간병인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남을 간병하는 일은 그나마 형식적으로 할 일만 하면 된다. 그러나 가족일 경우 특별한
몸이 아플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다. 건강은 약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운동,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좋은 먹거리란 무엇일까? 사포닌이 많이 함유된 인삼이 좋은 것일까? 비타민 C가 많은 사과가 좋은 것일까? 비타민 C가 많이 들어간 사과가 좋은 거라면 굳이 비싼 사과를 사 먹을 필요가 없다. 합성 비타민 C로 만들어진 가루나 알약을 먹으면 된다. 생명vs인공=담(淡)vs부담(不淡) 2013년 12월 하버드대 공공보건대학원 연구
새벽 댓바람에 그곳에 닿으려면 밤새도록 달려야 한다. 자정 무렵 서울을 출발한 버스가 그곳에 도착해 우리를 어둠 속에 내려놓았을 때는 새벽 5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버스에서 내려 세량지까지 걸어갈 때 코끝에 스치는 새벽 공기는 마치 박하 향기 같았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산길을 걷다 보니 어둠이 서서히 풀렸다. 멀리 저수지가 보이자 일행은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은 산하의 아름다움에서 나온 감탄사가 아니었다. 멀리 보이는 저수지 언덕 위에 수백 명의 사진 애호가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인파라고 해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인연도 있고 더 오래 만나지 못해 그립고 아쉬운 인연도 있다. 인간관계를 의지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리라. 인연은 구름처럼 마음 한구석을 지나간 그림자요, 물 위에 떠가는 꽃 이파리다. 만나고 싶어도 이승에서는 못 만나는 친구도 있고 인연이 되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는 지인도 있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 Y는 미소년이었다. 곱상한 외모에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외모는 거의 스타급이었다. 필자는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