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필자의 별명은 디파인(define) 성이었다. 명확한 의사결정을 좋아하고 모호한 태도는 싫어한다 해서 지인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때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들고 뿌듯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롱의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별명 값을 하듯 필자는 토론을 할 때 흥분을 잘하고 침을 튀겨가며 자기주장을 펴는 사람이었다. 이른바 쌈닭이었던 것이다. 첫 직장을 다닐 때도 그랬다. 회의를 하면 팀 상사가 필자를 향해 “○○씨, 더 할 얘기 없어요?” 하며 회의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도 불편하게 건의할 일이 있으면
어느날 거실에 앉아 과일을 깎으며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결혼 사기에 관련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결혼할 때 남자가 거짓 약속을 남발했는데 여자가 그 약속을 믿고 결혼했다가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사기’로 고소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판사의 판결이 기가 막혔다.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 거짓 약속을 했더라도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사기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혼 후에는 약속을 안 지켜도 된다는 말인가?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걸 알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인생이 달
언제부턴가 TV를 틀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젊은 댄스 보컬 그룹들이 자주 보였다. 바로 10대 스타 ‘아이돌’이다. 이제 단순한 인기를 넘어 우상화되고 있는 아이돌의 팬들은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아이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H.O.T.’부터 최근 방송을 통해 국민투표로 뽑힌 ‘Wanna One(워너원)’까지 아이돌 팬덤 문화 변천사를 들여다보자. 아이돌 1세대, 은행 앞에 줄서던 여고생들 지금은 은행 업무도 모바일로 간편하게
늙음 뒤엔 결국 병과 죽음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의 애환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살아갈 길은 있다는 뉴스는 비 오듯 쏟아진다. 비곗살처럼 둔하게 누적되는 나이테에 서린, 쓸모 있는 경험과 요령을 살려 잘 부릴 경우, 회춘과 안락을 구가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삶의 후반전, 그 인생 2막을 열어 내딛는 발걸음의 방향에 달려 있다. 이 풍진 세상의 사이즈는 간장종지 같은 게 아니고 바다처럼 크넓다. 타성과 습성에 안주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전혀 새로운 삶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화가인 엄정순(57) 디렉터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이 화두였다. 보이는 것 이면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이해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답답함. 엄 디렉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 그 밖의 세상에 있는 진실과 본질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그 생각이 ‘눈을 쓰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탐험으로 이어졌고 ‘우리들의 눈’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시각예술을 하는 작가로서 안 보이는 세계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과의 미술 작업
사실 정원사는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직업은 아니다. 좁은 주거 지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국내 대도시의 특성상 대다수의 한국인은 정원이 없는 주거 형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사다리에 올라 큰 나무의 모양을 전정가위로 다듬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떠오르는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에서도 작은 정원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공원이나 화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원사는 최근 주목받는 직업이 되고 있다. 콘크리트 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도심 속에 언제부턴가 공원이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
여름이 한창인 8월이다. 아무리 덥다 해도 반려견과의 산책은 필수! 반려견과 가볍게 동네를 거니는 것도 좋지만 반려견 놀이터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목줄 없이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는 너른 공간은 물론 다양한 편의시설이 준비돼 있다. 반려견과 갈 곳이 없어 망설였던 이들에게 좋은 곳이 바로 반려견 놀이터다. 자료 제공 반려동물이야기 반려견 놀이터는 전국적으로 13개가 있다. 서울에 3개, 경기도 8개, 전북·울산 각 1개 등이다. 부산 등 지자체들도 반려견 놀이터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시는 2013
‘출판장인’으로 불리며 40년 넘게 ‘책’의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확대해온 한길사 김언호(金彦鎬·72) 대표. 지난해 자신의 이름으로 낸 에는 그가 세계 곳곳을 탐방하며 체감한 서점의 역량과 책의 존귀함이 담겨 있다. “서점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숲이며, 정신의 유토피아”라고 이야기하는 그를 한길사의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만났다. 지난 4월 서울 중구 순화동에 문을 연 ‘순화동천(巡和洞天)’. 1970년대 한길사가 잠시 머물렀던 순화동의 인연과, 노장사상의 이상향을 뜻하는 ‘
이사한 아들네 집에 가보니 전에 살던 집에서는 못 보았던 어항이 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귀여운 손녀가 조그마한 손으로 필자를 어항 앞으로 이끌며 “할머니, 아빠가 물고기 사왔어요, 예쁘죠?” 하며 자랑이다. 하긴 우리 아들은 늘 강아지나 금붕어 등을 키워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혼 전에는 필자가 반대했고 결혼 후에는 마누라가 싫다고 해서 이루지 못했다. 남편이나 아들이나 마누라의 입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아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평소 며느리가 큰 집으로 옮기면 물고기를 길러도 좋다고 했단다. 이번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트레비네는 조용한 강변 마을이다. 레오타르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트레비슈니차 강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소도시. 오스만 시대의 아치형 다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마을을 잇는다. 고요한 소읍은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든다. 강물 속으로 마을 풍치가 풍덩 빠져 반영되어 흔들거리면 긴 여행자의 묵은 시름이 사르르 치유된다. 모스타르에서 트레비네까지 첩첩산중 길고 긴 여행 한여름, 크로아티아는 지긋지긋했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로 도망쳤
요즘이 휴가철이긴 한가보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니 확실히 느껴진다. ‘다들 어디 가려고 이렇게들 나온 걸까?’ 했지만 우리처럼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여행 시작의 들뜬 기분은 필자를 설레게 한다. 참 오랜만에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땐 여름, 겨울 꼭 휴가를 갔는데 한동안 휴가 여행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텐트에 물놀이 기구, 밥해 먹을 도구, 식료품을 가득 싣고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정말 즐거웠다. 요즘에야 어딜 가든 잠잘 곳을 예약하고 떠나지만, 예전엔 가다가
공무원 시험 열풍이다. 시험은 거의 고시 수준이다.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그나마 안정된 직업으로 인기가 높은 것이다. 공무원은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즉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국민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공무원이 많았다. 하위직, 고위직 가리지 않고 민원인인 국민 위에 군림하는 공무원이 많았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선거기간 동안 가장 선량한 얼굴로 포장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악수하고 친한 척한다. 피해서 지
일본의 군함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섬이 군함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거대한 군함처럼 삼엄한 느낌을 준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의 역사 현장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고 했을 때 이곳 군함도가 하시마 탄광과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군함도에 조선인 800여 명이 끌려가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건으로 우리 정부 측은 조선인의 강제 노역 사실을 명시하라고 했
인간은 강약의 차이가 있긴 해도 옳고 그름을 떠나 상처를 받으면 대체적으로 언사가 거칠어진다. 그리고 차분한 상태가 되면 자신이 화가 났던 일을 다시 생각하며 후회를 한다. “조금만 더 참을걸~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한다. 필자 역시 그런 일이 있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필자가 느긋해 보이고 화를 전혀 낼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들 한다. 맞다. 가능한 한 참는다. 그래서 남보다 속앓이를 더 많이 한다. 그러다가 천성적으로 급한 성격이 한쪽에 도사리고 있다가 자존심이 다치기라도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과거에 필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사회생활을 하다가 7년 만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 대학을 가려고 하자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대학 교수가 얼마나 너를 가르칠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네가 크게 배울 것이 없을 것 같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지나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당시 필자가 5남매의 장남으로서 동생들 학업을 지원하면서 생활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말씀은 학문보다는 인격에 대한 표현이었던 것 같다. 필자가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