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필자가 철이 들 무렵부터 가정환경이 좀 어려운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삶속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겨왔던 것 같다. 인간다운 삶을 알기 위해 우선 “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할 것 같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막상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삶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경지는 가치의 성취인가, 소유의 경쟁인가, 쾌락의 충족인가? 이를 위해 우선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다. 1. 인간 존재의 탄생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의 최소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이민 가방을 챙겼다. 큰딸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동생과 아빠 곁인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고, 카이스트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필자의 허락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드디어 왔다 갔다 이산가족 생활 3년 만에 한국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물론 큰딸은 여전히 한국에 돌아와 남은 학기를 마쳐야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13시간의 지루한 비행시간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방학이 끝나
동생을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외가에 가는 어머니를 필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따르고 있다. 그때 필자는 7세 정도 였을까 아직 국민학교를 안 가는 나이였다. 외가에 가면 남의 집 문간방에 외할머니가 혼자 사시고 계셨는데 외할머니는 단아고 조용했다. 외가가 단칸방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이유는 필자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가 몇 번의 옥고를 치르면서 가정 형편은 몰락한 것이다. 외삼촌도 외할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 하다 어디선가 돌아갔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아들이 죽은 후 손녀 셋을 키우다 시집
오늘은 골프 유머 몇 가지로 시작해 본다. - 100 깰 때 필요한 3無 무욕(無慾), 무력(無力), 무념(無念) - 90 깰 때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3가지 벙커, 미들아이언, 마누라 - 80 깰 때 있어야 할 4가지 돈, 시간, 건강, 친구 - 70 깰 때 버려야 할 3가지 직장, 가정, 돈 - 골프 폼도 좋고 스코어도 좋으면 금상첨화 - 폼은 좋은데 스코어가 나쁘면 유명무실 - 폼은 안 좋은데 스코어가 좋으면 천만다행 - 폼도 안 좋고 스코어도 안 좋으면 설상가상 골프 사자성어 - 일취월장(一
부동산의 가치 판단과 관련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그 답을 알아보자. 첫 번째 질문이다. 경사가 있는 땅이 있다. 경사진 땅의 높은 곳을 ‘가’라고 하고 경사진 땅의 낮은 곳을 ‘나’라고 하자. 당신은 어디가 좋은 땅이라고 생각을 하나? 두 번째 질문이다. 커피숍이 있다. 그 가게 앞에 도로가 있다. 그 도로의 폭이 넓은 곳이 좋을까? 좁은 곳이 좋을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해 보는 것은 부동산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글 김정렬 부동산전문가 경사가 있는 땅, 어디가 비쌀까?
소문이 괴담으로 돌다 결국 사실이 됐다. 물때 끼고 씻기 불편했던 가습기 속에 물처럼 보이는 것 조금 넣었을 뿐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최근 옥시 사태로 화학제품 불매운동을 넘어 대체 제품에 관해 관심이 높은 요즘. 마트 안을 꽉 채운 화학제품에 기운 빠졌다면 여기 보이는 천연 제품에 눈 돌려 보라. 천연제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정유, 즉 에센셜 오일(Natural Essential Oil)을 사용하는 것이다. 식물의 종류에 따라 잎, 뿌리, 꽃, 줄기, 과피(과일껍질) 등을 증류하거나 압착하는 방식
얼마 전 여행으로 중국 상하이(上海)에 다녀왔다. 먹을 거리와 볼거리의 색다름에 취해서 이틀을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하이임시정부청사’에 들렀다. 일본에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일했던 곳이라는 피상적인 생각으로 건물 앞에 섰다.그러나 임시정부라 하기엔, 청사는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자그만 3층 건물로 들어서자 좁고 가파른 계단은 삐꺽 거리고 집무실, 부엌, 화장실, 놓인 소품들도 무척이나 소박해서 그 시절의 어려움을 말하는 듯 했다. 그 곳에서는 독립운동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민족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한
‘독립운동가’하면 총칼로 맞서 싸우거나 옥고를 치른 인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김란사는 유관순 열사의 스승으로 3.1운동을 태동시킨 주역이었다. 고종의 통역관이자 독립의 숨은 공로자였으나 그의 후손조차 활약을 뒤늦게 알 만큼 잊혀왔다. 성차별이 극심했던 조선 말기에 여성해방을 논하고 실천한 여인 김란사는 누구일까? 1872년(고종9년) 평양 출생으로 남편의 성 ‘하’를 따르고 난사(Nancy)는 이화학당 입학 후 지은 영어 이름이다. 하란사는 외교관 남편을 통해 일찍부터 신문물을 접했고, 기혼자는 안 된다던 이화학당의 문을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모두 한 번 쯤 꿈꾸는 것 중 하나가 전원생활이다.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 소리에 눈 뜨고, 지나는 바람이 건네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계절이 그린 그림에 취하고 …. 그래서 필자도 경치가 좋은 양평에 깨 밭을 사서 깨가 쏟아지게 농가주택을 지었다. 집을 설계하며 어디에 무엇을 둘까, 신바람 나는 고민으로 행복했다. 무슨 나무를 심을까, 화단은 어떻게 가꿀까, 채마밭엔 무엇을 심을까? 밭 가운데 지하수가 나오게 해서 채마밭에서 자란 열무와 배추 오이를 따서 바로 씻어
글 신광철 시인, 작가 나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나에게 자유를 주어라. 내 안에는 많은 길과 많은 말과 많은 단어들이 있다.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목표에 익숙해져 있다. 목표가 없는 삶은 산 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을 방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인생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무엇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거머쥐기 위해서, 또는 지배하기 위해서일까. 인생에 목표를 두고 달려왔던 것들을 나열해 보면 단순하다. 대부분 돈 권력 명예 그리고 사랑과 성이 중요한 목표였
글 유장휴 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 전략명함 코디네이터 디지털 자원봉사란? 주변을 보면 자원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 많다. 가까운 지인들만 봐도 복지관, 양로원 혹은 자원봉사 센터에 가서 일손을 돕는다. 자원봉사를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두 번 나가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뜻에서 시작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내가 원하는 활동이 아니라서라는 등 이런저런 핑계거리가 생기고 결국 그만두게 된다. 자원봉사는 거창하게 시작하면 지속하기가 어렵다. 작지만 가볍게 그리
조선은 1883년 미국 공사 푸트(Lucius H. Foote)가 조선에 부임한 데 대한 답례사절로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했다. 그런데 정사(正使) 민영익(閔泳翊)은 미국 체스터(Arthur Chester) 대통령에게 큰절을 하여 미국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국서를 전하면서 양국의 우호, 교역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조선정부에 대한 중국의 압력이 더욱 심해지면서 조선은 대외적으로 독립을 천명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미국에 외교사절 파견을 검토한다. 알렌의 일기에 의하면 “미국이 조선에 왜 이토록 무관심하냐?”고 고종이 묻자 알렌
한동안 TV 드라마 가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더니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데 놀랐다. 드라마가 끝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일본 여인들의 감성을 적시고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떠나 더 유명해지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 한 가지 낯선 현상이 있다. 바로 아토피란 질병인데, 심하면 온몸을 뒤덮으면서 정상적인 생활마저 어렵게 하는 이 질병을 40대 이상의 세대는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만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언제인가부터 이 질병이 떡하니 풍토병처럼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자들은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 衛生假說)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이 이론은 ‘미생물 공생체 결핍 이론’ 또는 ‘잃어버린 친구 이론’이라고도 불린다. 한마디로 어렸을 때, 흙바닥에서 놀면
이윤택은 부산일보 편집부 기자로 6년 6개월을 일했다. 등단 시인에 평론도 쓰며 안정적인 삶을 살던 그는 굳이 연극을 하겠다며 1986년 사표를 냈다. “앞으로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들을 예측해봤을 때 인간은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고 대중 속에서 고립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스템의 노예가 되고 말이죠. 특히 80년 대 중반부터 언론의 분위기가 삼당통합을 위해 여야가 야합을 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어요. 여야가 없고 신념 체계도 없고, 과거의 적이 동지가 되고 이런 혼탁한 시대에 기자라든지 문필가 이런 것이 위선적이고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