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필자의 부모는 할머니 집에 필자와 남동생만 남겨둔 채 동생들을 데리고 직장 근처로 이사 가 살았다. 필자는 7형제의 맏딸이다. 우리까지 데려가면 박봉에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떼어놓고 간 것이다. 부모와 어린 동생들이 떠난 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다행히 친구 명희가 있어 학교 공부가 끝나면 그 집에 가서 놀았다. 서로 시간이 어긋날 때는 혼자 마루 끝에 앉아 책을 읽곤 했다. 명희 아버지는 우리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집에 동화책이 가득했다. 명희네 집은 필자에게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는 장
새벽에 차 시동을 걸었다. 한탄강이 흐르는 전곡 원불교 교당을 찾아가는 길. 가는 내내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거대한 독수리들이 검은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생소하고 두려웠다. 논길을 지나고 작은 마을의 고불고불한 길을 빠져나와 언덕을 넘으니 옅은 안개 속에 아담한 교당이 나타났다. 필자는 경주 인근 산골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서울 제기동으로 이사 왔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 4학년이 되어 또 이사를 했으므로 친구와 사
요즘 젊은 애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들도 결혼 이후 10년이 되어가도록 저축을 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외벌이이긴 하지만 지출이 월급보다 많은 그야말로 마통 인생인 것이다. 처음에 마통 액수가 많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걸 알았다. 아들 말에 의하면 요즘 젊은 애들은 자녀는 없어도 마통 없이는 못 산다고 한다. 우리 젊을 때는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조금씩 저축을 해서 집도 늘리고 그랬는데 요즘 젊은 애들은 저축은 꿈도 못 꾸고 거의 매달 마통으로 지낸다는
닭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냄비에 넣고 감자, 양파, 당근 등을 양념장과 버무려 자박하게 끓여 먹는 닭볶음탕. 졸이면 졸일수록 맛있어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잘 발라낸 닭고기를 국물에 촉촉하게 적신 다음 입으로 가져가면 밥 한 공기는 거뜬하다. 종로 골목에서 닭볶음탕으로 5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림’을 소개한다. 종로3가역에서 10여 분 걸으면 세운상가 옆으로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오래된 밥집과 여관들을 지나다 보면 ‘계림 닭도리탕 원조’라고 써진 간판을 찾을 수 있다. 동대문에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이제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01 순삭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뜻으로 순간 삭제의 줄임말이다. 인터넷 게임에서 유래한 말로 게임 시작과 동시에 캐릭터가 죽었을 때 ‘순삭 당했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주말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주말 순삭’, 분명 치킨을 시켰는데 흔
종활(終活, 슈카쓰)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 활동을 뜻하는 일본 사회의 신조어다. 보통 일본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공채 시기에 맞춰 취직활동(就職活動)에 노력하는 것을 슈카쓰(就活)라고 줄여 부르는 것에 빗댄 것. 발음까지 같다.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기업 면접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처럼 죽음이 머지않은 시니어도 그만큼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종활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일본에서 종활이란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
1983년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면서 공휴일이었다. 그날 필자가 다니던 직장 내 처녀·총각들은 근교 유원지로 야유회를 갔다. 이름하여 ‘총처회’. 준비한 몇 가지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즐기고, 예약해서 맞춰놓은 점심도 둘러앉아 맛나게 먹었다. ‘총처회’ 발기인이면서 주동자 격인 필자는 그들보다 한두 살 위이다 보니 모든 행사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중 58년생 개띠 남녀 동갑내기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개판’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따로 어울렸다. 직장 건물 3층엔 기술직 남자 직원들이 근무했다. 2층엔 사무직
인아야 앞으로는 나를 '코델리어'하고 불러줘. 알았지." "알았어 엄마. 내가 엄마의 다이애나가 되어 줄게" 몇 달 전 나와 우리 딸의 대화 내용이다. 우리는 둘 다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고 있다. 나는 소설세대이고 딸애는 만화세대이다. 일본작가가 그린 빨강머리 앤의 그림들은 소녀들의 취향에 딱 맞기에 나와 우리 딸을 그 그림 속에 퐁당 빠트렸다. 소설 '빨강머리 앤' 은 캐나다의 몽고메리 여사 작품이다. '빨강머리 앤'은 고아이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씩씩한 소녀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인 '앤'이 아무래도 너무 평범해서 마음에
토요일 아침에 회원들과 테니스 시합을 하면서 운동은 물론 덕담과 웃음이 오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여성회원들이 가벼운 먹을거리도 갖고 오니까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석이조 (一石二鳥)가 아니라 일석 오조 정도는 된다. 이런 날 아침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문자 한통이 날아들었다. 예전에 함께 운동하던 K씨가 자신의 아내가 이침에 사망했다는 비보다. K씨는 55년생이니 아직 60대 중반이 못되었고 그의 아내는 이제 겨우 60대 초반나이에 들어섰다.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 가보니 K씨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반쯤 넋이 나가
새해가 밝았다. 오늘도 그냥 추운 겨울의 어떤 하루에 불과하건만, 왠지 이날은 특별한 듯해 보인다. 그래서 너도나도 깊은 밤 추위를 무릅쓰고 산에 오르거나 동해 바다로 몰려들어 새벽에 돋는 해를 바라보곤 한다. 날이 밝으면 만나는 이들에게 덕담을 주고받으며 마치 상이라도 받은 얼굴로 미소가 가득하다. 아마도 이날은 특별한 음식도 먹으리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인간은 온갖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 붙이는 행위를 통해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왔으며,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고 문명을 건설했다. 그것
동물이 어미를 기억하는 방법은 냄새일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냄새. 가장 원초적인 냄새. 엄마의 냄새는 향기와 그리움, 그리고 평화로 일치되곤 한다. 가장 안전하고 따스하며 부드러운 느낌. 친구를 그렇게 기억해낸다면 과장으로 들릴까. 어렸을 때는 예쁜 친구가 좋았다. 좋은 냄새가 나고 예쁜 옷을 입은 아이가 좋은 친구라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말이 잘 통하고 재미있는 친구가 끌렸다. 종일 같이 놀고도 헤어지기 싫어 서로의 집을 오가던 친구가 좋았다. 대학 시절에는 철학과 주관이 분명한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뭔가 배울
30년 동안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다. 원래 7커플이 모였으나 지금은 4커플만 모인다. 죽은 사람도 있고 이민 간 사람, 스스로 탈퇴한 사람도 있다. 그동안 국내 여행은 몇 번 다녀 왔다. 각 집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보니 거칠 것 없이 친하다. 송년 모임을 하다 보니 또 단체 해외여행 얘기가 나왔다. 그동안 수없이 해외여행 얘기가 나왔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 적금을 붓기도 했지만, 때가 되면 한 팀이 못 갈 사정이 생겼다며 빠지면서 없던 얘기가 되곤 했던 것이다. 이번 연말모임에서도 또 해외여행 얘기가 나왔다. 멀
2018년 새해 아침이 밝아왔다. 며칠 전부터 신년 첫해의 일출을 보러 어디로 갈까 고심을 했다. 작년에는 첫 날 해맞이를 고향의 백운산 정상으로 올랐는데, 불행하게도 구름이 많이 끼어 떠오르는 해를 볼 수는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일출의 장관은 바다에서 불쑥 솟구치는 역동적인 해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여러곳을 생각해 보았지만 올 해는 그냥 송파구 집근처에 있는 올림픽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해맞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송파구 해맞이 행사는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망월 봉에서 해마다 열린다. 망월봉은 ‘달맞이 봉’이라는 뜻의 언덕으로,
58개띠들이 하면 유행이 된다. 폭발적인 우리 사회 인구증가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58년생들은 사회 변화와 유행을 주도한, 지금으로 치면 ‘완판남’·‘완판녀’로 부를 수 있는 세대다. 그들의 문화적 파괴력은 굉장했다. 여러 분야 중 특히 여행과 관련한 58개띠들의 문화주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빈궁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의 혜택을 보기 시작한 이들은 다양한 여행을 경험해나갔다. 1978년. 58개띠들이 만 스무 살이 되던 해. 당시 8월 17일자 경향신문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린다. ‘바캉스 파장 … ‘고
이번 호에는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가 되어주신 중·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윤정모 소설가님께서 써주셨습니다. 정선우 선생님, 새해입니다. 새 수첩에 지인들의 연락처를 옮겨 적다가 어느 이름 앞에서 손길을 멈춥니다. 선생님 성함과 흡사한 이름입니다. 단지 흡사할 뿐인데도 선생님에 대한 생각들이 가슴속에서 회오리칩니다. 그리움이 아닙니다. 마음에 새겨두지 못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은혜도 몰랐던 제 양심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중학교 때 담임으로였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