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한 지 십년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자료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서 블로그에 저장해 두었다. 내 사진과 개인자료/ 나의 글/ 가족 이야기/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건축 프로젝트 자료/ 포럼활동 자료/ 사진과 짧은 이야기/... 오늘까지 블로그에 저장해 둔 글과 사진 항목 수가 총 1,582개다. 과거 아나로그 사진은 스캔을 받거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저장한다. 그 결과 필자의 어린 시절 흑백사진도 모두 디지털 사진으로 바뀌어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의 성적표와 졸업장, 그림 사생대회에 나가서 받은 상
시니어 기관 워크숍에 참여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시니어들 모임은 물론 어떤 단체이든 오래 활발한 활동을 하려면 기금이 마련되어 진행비가 있을 때 좀 더 모임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예상되는 지출 비용보다 회비를 더 많이 걷어 모아뒀다가 1년에 한두 번 큰 행사를 할 때 사용하곤 한다. 어떤 모임에서는 일일찻집을 하거나 경매 행사 등을 통해 기본 진행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야유회 때 기부금을 받는 경우도 많다. 오랜 기간 회비를 모으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에 제안서를 넣어 비용을 제공받아 단체 성격에 맞게 사용하
웅장하게 펼쳐진 겹겹의 산속에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어른거렸다. 미국에서 돌아와 자리 잡은 곳이 태릉과 멀지 않은 퇴계원이었다. 복잡한 도심과는 거리가 먼듯하고 경기도가 시작되는 서울의 끝자락이다. 여기저기 뚫려있는 도로와 교통량이 그나마 적고 어딘가 모르게 미국의 정서가 남아있는 듯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더구나 공기가 맑고 쾌청해서 바로 옆 서울과는 비교가 되는 곳이었다. 아파트 앞에는 용암천이라는 개울이 흐르고 조금 멀리 시야에는 웅장하게 드리워진 불암산의 자태가 지난날의 추억들을 불러일으켜 잠자던 동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회사에서 매월 하루 오전시간에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사무실 주변 청소를 한다. 기업의 사회봉사활동 차원이다. 근무시간에 하는 일이므로 엄격히 말한다면 회사가 임금을 주고 시키는 일이다. 예전에는 자발적이라는 이름으로 근무시간 전에 출근하여 이런 봉사활동을 했는데 이제는 개인의 인권이 신장되고 민주화가 많이 되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이런 유사하고 잡다한 일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명령조로 시켰다. 학생들이나 직장인에게도 ‘저축의 달’이나 ‘불조심강조기간’이라는 리본도 달게 하고 표어, 포스타를 상금을 내걸고 만들게 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선물과 뇌물사이에 갈등을 많이 겪었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라는 말도 유행 했었고 그래도 근절이 되지 않자 속칭 ‘김영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사람이 동물과 달리 잘 살기위해 인간관계라는 특수한 관계를 맺으면서 선물과 뇌물은 명맥을 이어왔다. 선물은 인간관계의 윤활유로서 정을 나타내므로 지나치지 않다면 부모자식 사이에도 있어야 한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만주 벌판으로 찾아갔다. 독립 운동가는 이렇게 멀리 찾아온 처음 보는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반갑고
최근 고궁과 같은 사적을 방문하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역사적 배경을 곁들여 문화재를 설명하는 문화해설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전하는 ‘이야기꾼’에서 역사적 사건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역사 선생님’으로서, 때론 유적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의 열정을 보여주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화해설사에 대한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그 매력에 빠지는 것만큼 문화해설사가 될 수 있는 방법도 쉬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문화해설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직업이
달력에 빨간 글자로 적힌 쉬는 날들이 많으면 사람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놀 수 있으니까요. 자칫 질식할 것 같았는데 ‘숨통이 트인다’는 사람도 있으니 그 좋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정말 누구나 그렇게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사로운 것이긴 합니다만 저는 젊었을 때부터 명절을 포함한 쉬는 날이 두려웠습니다. 현실적으로 잘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돈도, 시간도,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긴장도 그랬습니다. 게다가 후유증마저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쳇바퀴 돌듯하는 일상이
허비되기 쉬운 건 청춘만은 아니다. 황혼의 나날도 허비되기 쉽다. 손에 쥔 게 많고 사교를 다채롭게 누리더라도, 남몰래 허망하고 외로운 게 도시생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에 들어온 지식, 가슴에 채워진 지혜의 수효가 많아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은하계를 덧없이 떠도는 한 점 먼지이지 않던가.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어둠속을 부유하는 먼지의 신세를 면하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별이 되기 위해, 타성에 젖은 삶을 바꾸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우두령(해발 650m)
검찰은 내로라할 재벌 총수를 구속하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죄의 유무는 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모든 법의 판결 과정이 그러하듯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유죄가 되든 무죄로 풀려나든지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상상 이상이다. 따라서 신중히 처리하여 올바른 판결을 해야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구속의 적법성 여부나 판결 자체 여하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든 측면에서 위기를 맞
우리는 행복해지려 산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도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행복해진다. 행복했던 기억, 경험, 방법을 모르면 행복도 배워야 한다. 행복은 순간의 만족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닐지. 봄이 되어 경쟁적으로 이곳저곳에서 피는 꽃을 본다. 허리를 굽혀 가까이 들여다봐야 눈에 들어오는 야생화에서부터 뒤로 자빠질 듯 몸을 젖혀야 보이는 꽃나무까지 만상이 합창하는 봄이다. 함부로 찾아온 봄 필자는 단지 내에서 자주 산책을 한다. 야간에도 조명을 잘해놓아 꽃들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매일매
‘인구절벽’이 우리 경제를 조여오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저출산으로 한국전쟁 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베이비붐 세대를 이어 경제를 주도할 ‘생산인구’가 부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출산율은 1.25명에서 1.17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처럼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듦으로써 정부의 세금 자원도 줄어 세금으로 이뤄지는 복지정책이 어렵게 되었다. 통계가 아니어도 저출산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가,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났음에도 결혼할 생각조차 않는 총각, 처녀들이 많다. 결혼 적령기가 지난 딸을
6성급 크루즈 선이 인천 항구에 들어왔는데 인천에 볼 것이 없어 승객들이 내리지 않는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나마 이 크루즈 선은 한국에서 인천이 유일한 항구란다. 동남아 관광객을 부른다면서 명동에 할랄 식당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기사도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인천 시장들은 무엇을 했는지, 관광공사는 무엇을 한 건지 한심한 일이다. 관계자들이 현장 답사라며 뻔질나게 외국을 다녔으면 우리에게 적용시켜야 하는 것이 있었어야 한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관광객들이 급감한 지금이 우리 관광 인프라를 점검하고 확충할 때다. 인천은
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사는 쌍둥이 손주들과 아침마다 학교에 같이 간다. 엊그제 입학한 것처럼 생각되는데 어느새 2학년이 되었다. 새봄을 맞아 학교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아침걷기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고구려 기병들의 말발굽 먼지처럼 운동장이 온통 뿌옇다.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한 수요일, 손주들이 걷는 날이다. 여느 때처럼 쌍둥이가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동안 아이들의 책가방, 신발주머니와 과제물 가방을 한아름 들고 교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학년이세요?” 어느 아이가 물었다.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절정을 막 끝낸 꽃나무 줄기마다 꽃들이 시들해져 있다. 탐스럽게 피어나 눈부시던 때의 환호가 하루하루 멀어져가는 시간이다. 언제부터인가 비바람에 꽃잎을 떨어뜨리고 점차 허전해지는 꽃나무에게로 마음이 간다. 꽉 찬 충만함의 도도함에서 비워내고 덜어낸 모습에서 편안함이 보인다. 조금은 빈틈이 보여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한 구석도 있구나 할 때 어쩐지 더 사람다워 보일 때처럼. 온 누리에 봄볕을 쏴아~ 뿌리며 달큰한 꽃향기와 보드라운 꽃잎을 흩날리더니, 이젠 다 털어버리자 가볍게 훌훌 날려버리자 하며 봄바람에 몸을 맡기며 비워내는
친구가 밥이나 먹자고 전화를 걸어 왔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필자는 청첩장을 챙겨들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모바일 청첩장을 이미 보낸 터라 따로 종이 청첩장을 챙기지 않아도 됐지만 얼굴을 대면해서 직접 건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친구는 딸의 결혼에 적당한 덕담을 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결혼식에 참석해 못해 미리 준비했다는 봉투는 꽤 두툼했다. 왜 못 오냐는 필자의 말에 친구는 “토요일에 강남에서 하는 결혼식은 너무 복잡해서 힘들어” 라는 뜻밖의 말을 했다. 40년 이상 이어온 우정을 생각한다면,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