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1

‘많이’ 말고 ‘알맞게’ 먹는 시대

입력 2026-06-01 06:00

[여름철 스마트한 약 사용법] 약으로 건강하게 여름나기

▲AI 생성
▲AI 생성

여름은 몸이 쉽게 무너지는 계절이다. 땀으로 수분이 빠져나가고, 입맛이 떨어지며, 수면의 질도 낮아진다. 특히 노인이나 심혈관질환·당뇨병·뇌졸중 등 기저질환을 앓는 환자가 매일 복용하는 약은 여름이라는 계절과 만나면 ‘복약 환경’ 자체가 달라진다. 평소 먹던 약이 탈수와 만나 예상보다 강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잘못 보관한 약은 효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 보양식까지 더하면 몸은 복잡한 조합 속에 놓인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이 챙겨 먹는것이 아니라, 지금 먹고 있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 몸에 맞게 조절하는 일이다.


당신이 ‘약’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약’을 너무 좁게 정의한다는 데 있다. 보통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만 약이라고 여기지만, 몸 안에서 다른 물질과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이 사실상 ‘약’의 범주에 든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에 따르면 처방의약품은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에 쓰는 약으로, 복용 용량과 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일반의약품(OTC)은 처방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계열 소염진통제, 소화제, 항히스타민 감기약 등이다. ‘처방 없이 산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먹어도 된다’는 뜻이 아님에도 많은 이가 이를 음식처럼 여긴다.

건강기능식품은 오메가3, 루테인, 마그네슘, 비타민 D, 홍삼, 밀크시슬, 글루코사민 등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을 받은 제품이지만 일부는 처방약과 병용할 때 심각한 상호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허가 사항에 따르면 오메가3는 혈액응고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항혈전제(아스피린, 와파린)와 함께 복용하면 출혈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암로디핀 등 칼슘채널차단제를 복용하는 경우 복용 1시간 전부터 복용 후 2시간 이내에는 자몽과 자몽주스를 먹지 말라고 명시하고 있다. 자몽·석류에 들어 있는 성분이 약을 분해하는 간 효소(CYP3A4)의 활동을 억제해 혈압약의 혈중 농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이기 때문이다.

전통 약재나 보양식인 쑥차·오가피·두충차 등은 ‘자연에서 온 것’이라 식품과 비슷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논문에 따르면 일부 한약재 성분이 처방약과 같은 간 효소를 공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복용 중인 처방약이 있다면 한약재·보양식을 추가하기 전에 약사와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도 여름을 탄다

더위는 단순히 불쾌한 것만이 아니다. 몸의 생리적 환경을 바꾸고, 그 변화는 약이 작동하는 방식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의약품안전나라 홈페이지에 따르면 “탈수가 혈중 약물 농도를 높인다. 땀을 많이 흘리면 혈액 속 수분이 줄어들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약물의 농도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고 밝혔다. 평소에는 괜찮던 용량이 여름에는 과용량처럼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고혈압약 안전 사용 정보에 따르면 이뇨제 성분이 든 혈압약은 탈수와 저혈압 위험을 동시에 높인다. 어지럼증과 낙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뇨약은 저혈당의 복병이 된다. 대한당뇨병학회는 더위로 식사량이 줄고 수분 섭취가 불규칙해지면 저혈당 위험이 커진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식은땀·떨림 같은 저혈당 증상을 단순히 ‘더위 먹은 증상’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점이다. 치료 시점을 놓칠 수 있는 혼동이다.

붙이는 약도 예외가 아니다. 패치형 진통제나 호르몬 패치는 피부 온도가 올라가면 흡수 속도가 빨라져 혈중 농도가 예상보다 높아질 수 있다. 땀이 많이 나는 부위나 직사광선이 닿는 곳은 피해야 한다. 환자안전약물관리본부는 “갑상선호르몬제는 보관도 복용도 예민하다”면서 열·습도·햇빛에 의해 효능이 저하되며, 잘못 보관한 약을 이미 효능을 잃은 상태에서 복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경고했다.


▲AI 생성
▲AI 생성

지금 한국은 약 과잉 시대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10종류 이상의 약을 60일 이상 복용하는 만성질환자는 171만 7239명으로, 2020년(112만 5744명) 대비 52.5% 증가했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138만 4209명으로 80.6%를 차지한다. 연도별로 보면 매년 10만~15만 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국제 비교를 하면 더 선명해진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75세 이상 환자 중 5개 이상의 약물을 만성적으로 처방받는 비율은 64.2%로, OECD 평균(50.1%)을 14%포인트 이상 웃돈다(2021년 기준). 한국은 이 지표에서 OECD 최상위권이다.

결과도 명확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입원 위험이 18%, 사망 위험이 25%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약이 많을수록 몸이 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OECD 보건통계 2025’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8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내과·정형외과·안과·피부과를 따로 다니며 각각의 처방을 받는다. 주치의 제도가 없으니 한 사람이 전체 복용 약물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 각 병원의 처방은 그 자체로는 옳지만, 합쳐놓으면 위험해지는 조합이 생긴다. 여기에 건강기능식품까지 더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다제약물 복용자가 된다.

이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처방약, 약국에서 산 약, 건강기능식품, 한약까지 종이에 전부 적어 단골 약국에 가져가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8년부터 지역 자문 약사와 공단 직원이 가정을 방문해 약물 중복과 부작용을 점검해주는 서비스를 전국 105개 시·군·구에서 운영 중이다. 신청은 가까운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 할 수 있다.


중장년이 특히 조심해야 할 습관

중장년 이후의 복약은 단순히 ‘약을 잘 챙겨 먹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복용해 익숙해진 약일수록 방심이 시작된다. 몸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고 스스로 용량을 줄이거나, 주변 사람의 경험을 따라 영양제를 추가하고, 남은 약을 아깝다는 이유로 보관해두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특히 혈압이 좋아졌다고 약을 스스로 끊어서는 안 된다. 혈압약을 갑자기 중단하면 반동 효과로 혈압이 급격히 오르며 뇌졸중·심근경색 위험이 높아진다.

그뿐 아니라 남은 약을 가족과 나눠 먹는 것도 금물이다. 처방약은 개인의 체중, 신장 기능, 다른 복용 약물을 고려해 용량이 정해진다. 같은 병명이라도 처방이 다른 이유가 있다. 항혈전제·항응고제를 복용 중이라면 오메가3·홍삼·마늘 추출물·은행잎 추출물 같은 새 영양제를 먹기 전에 반드시 약사 또는 의사에게 상호작용을 먼저 확인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즉시 약국에 반납한다. 특히 여름이 지난 뒤에는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보관한 약의 성분 변질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지금 복용 중인 처방약, 영양제 등을 포함한 모든 약은 이름, 용량, 복용 시간을 한 장의 종이에 적어 지갑에 넣어두자. 응급실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가 바로 이것이고, 약국 상담을 할 때도 이 한 장이 가장 빠른 안전장치가 된다.

여름은 약을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계절이 아니다. 이미 먹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고, 올바르게 보관하고, 꼭 필요한 것만 먹는 계절이다.

▲그래픽=유영현 기자 redeye112@ㆍAI_생성
▲그래픽=유영현 기자 redeye112@ㆍAI_생성


복용 시 지켜야 할 것들

이뇨제 계열 혈압약 이뇨제 계열 혈압약을 복용 중이라면, 폭염 속에서 수분 섭취를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늘려야 한다. 단, 신장 기능이 좋지 않거나 수분 제한 처방을 받은 경우에는 반드시 담당 의사와 상의한다.

또한, 이뇨제 성분이 든 혈압약은 오후 6시 이후에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야간 빈뇨를 줄이기 위해서다. 복용 시간을 잊었더라도, 다음 복용 시간이 가까우면 그냥 넘기고 정해진 시간에 한 번만 복용한다. 한 번 빠뜨렸다고 두 배로 먹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처방 없이 살 수 있어 가볍게 여기지만, 일일 최대 복용량(성인 4000㎎, 노인은 더 적게)을 넘기면 간 손상이 올 수 있다. 복합 감기약 안에도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 있으므로, 두 가지 이상의 해열진통제를 겹쳐 먹는 상황을 조심해야 한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이부프로펜(NSAIDs)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는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고 물을 적게 마신 상태에서 복용하면 신장 손상 위험이 커진다.

참고자료=대한약사회, 식품의약품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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