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어려운 골프 코스가 좋은가? 쉬운 코스가 좋은가? 쉬운 코스가 좋다고? 그렇다면 즐겁게 치는 것이 목표인 행복한 골퍼다. 부럽다. 에이, 좀 어려워야지 너무 쉬우면 맛이 안 난다고? 이런 독자라면 ‘골프는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골퍼임에 틀림없다. 기량도 상당할 테고.
뱁새 김용준 프로, 너는 어떠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나는 두 얼굴이다.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어려워야 제맛이라고 말하긴 한다. 그런데 어려운 코스에서 고전하고 나면 맥이 풀린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좌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조금 쉬운 코스에서 어쩌다가 언더파라도 칠라치면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변별력이 높은 난코스에서는 맥도 못 춘 주제에 말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에게만 살짝 털어놓자면 나도 어려운 듯하면서도 쉬운 코스가 좋다.
느닷없이 웬 코스 난이도 타령이냐고? 바로 멋진 골프장과 그 골프장을 만든 사람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것이다.
어려운 골프장 특징이 뭘까? 퍼팅 그린에 굴곡이 심하다고? 그렇다. 감자 칩처럼 구겨진 그린이 주는 압박감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기껏 레귤러 온(예를 들어 파4라면 두 번 만에 온그린하는 것)을 하고도 쓰리 퍼팅을 한다면? 어쩌다 한 번 그랬다면 머쓱하게 넘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번번이 그런다면 욕이 절로 나온다. 창피하지만 나도 별수 없다.
난이도 높은 코스의 또 다른 특징은 뭘까? 그렇다. 러프가 깊다. 일단 러프에 들어가면 탈출하기가 만만치 않다. 멀쩡하게 볼이 떨어지는 자리를 보고 찾으러 나섰는데 로스트 볼(찾지 못한 볼을 말한다)이 나면 어떨까? 속으론 고소해하는 동반자도 안타까운 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코스를 따라 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다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코스다. 슬라이스나 훅이 나서 페어웨이를 벗어날라치면 어김없이 한 타 이상 까먹을 수밖에 없다. 그 밖에 벙커가 많거나 깊거나 페어웨이 폭이 좁거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아주 심한 코스도 어렵다.
멋진 코스란 이런 어려움을 곳곳에 담은 곳을 말한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는 골프장은 정반대다. 무슨 소리냐고? 바로 퍼팅 그린에 굴곡도 없고 거친 러프도 없고 코스에 나무도 없다. 이른바 ‘3무(無) 코스’다. 그런 코스가 어떻게 멋진 코스냐고? 왕초보를 위한 파3라면 모를까 정규 홀 중에 그런 곳이 어디 있냐고? 있다. 그것도 한적한 시골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미국 뉴욕주 엔디코트에 있는 엔조이골프클럽(En-joei Golf Club)이다. 이 골프장은 1927년에 문을 열었다. 설립자가 혹시 골프 실력이 형편없어서 자기 기량에 맞게 지은 것 아니냐고? 아니면 재원이 모자라서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최대한 단순하게 설계한 것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엔조이골프클럽을 만든 조지 조던은 당시 상당히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신발 공장을 운영했다. 엔디코트 슈 컴퍼니가 바로 그 회사다.
조지 조던은 골프를 매우 사랑했으며 당연히 실력도 뛰어났다. 아차! 그러고 보니 골프를 사랑해도 실력은 부족한 골퍼도 당연히 있다. 사과한다. 하여튼 조지 조던은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골프를 자기 회사 노동자들이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당시는 고무로 만든 볼(발라타 볼)이 세상에 막 나와 골프가 부흥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그래도 여전히 골프 용품과 그린피는 비쌌다.
조지 조던은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골프장을 열었다. 그 코스가 바로 엔조이골프클럽이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그린피를 25센트밖에 받지 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18홀에 1만~2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그래도 여전히 부담을 느끼는 노동자들을 위해 골프백도 75센트에 팔았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프는 여전히 ‘부담’스런 운동이었다. 골프 클럽이야 큰맘 먹고 한 번 사면 오래 쓴다고 치자. 여차하면 잃어버리는 골프 볼 값은 만만치 않았다. 발라타 볼이 나오면서 러버 코어 볼(rubber core ball, 고무 코어에 고무줄을 칭칭 감고 그 위에 구타페르카 재로 커버를 씌운 볼)을 대체해 볼 값이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부담이 됐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엔조인골프클럽 창시자 조지 조던은 코스 디자인에 세심함을 담았다. 골프 볼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코스를 만든 것이다. 러프를 없애고 나무도 심지 않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퍼팅 그린을 쉽게 만든 게 볼 안 잃어버리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날카로운 독자다. 그렇다. 조지 조던은 볼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경을 썼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라운드할 수 있도록 더 쉽게 만들었다고 한다.
골프장 이름에도 그의 철학이 배어 있다. 엔조이골프클럽의 ‘En-Joei’는 ‘즐기다’라는 뜻을 지닌 영어 ‘enjoy’에서 따온 것이 틀림없다. 상표등록을 위해 변형하기만 했을 뿐. 이런 코스이지만 1998년에는 리모델링을 했다. 시대의 변화를 영원히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었겠는가? 그러면서 퍼팅 그린에 언듈레이션도 주고 나무도 제법 많이 심었다. 러프도 기르기 시작했고. 그래도 엔조이골프클럽이야말로 진정한 퍼블릭 코스의 원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코스를 만든 조지 조던의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골퍼의 그것이라고.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