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진료실까지”… 미국 달리는 고령자 맞춤 대중교통

기사입력 2024-11-06 08:36 기사수정 2024-11-06 08:36

교통 개선으로 삶의 질 높여… “시스템 뒷받침돼야 면허 반납 힘 얻어”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

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내 도로의 모습(문혜진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내 도로의 모습(문혜진 기자)

고령자의 이동권 개선을 위해서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편리함을 얘기하기에 앞서 사회복지 차원의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운전이 불가능해진 고령자의 이동을 어떻게 돕고 있을까. 캘리포니아주 현지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미국 시민들은 운전을 못 하게 되면 곧 삶의 질이 저하된다고 생각한다. 교외 지역이나 농어촌 지역의 경우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해 운전을 하지 않고는 이동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미국에서 운전은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은혜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국인은 일반적으로 16~18세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자신의 차량을 운전한다. 미국 사회에서 운전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운전을 못 한다는 것은 사회적 장애를 갖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진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육체적·인지적·정신적 등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해 의사로부터 운전 금지 권고를 받은 이는 면허를 반납해야 한다. 고령화에 따라 그런 상황에 직면한 경우 대부분 가족·이웃 등의 도움을 받거나,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교통 서비스를 이용한다. 미국에서는 1974년 노인복지법에 교통 부분이 추가되면서 고령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에 근거해 연방 정부에서는 재정을 확보해 주 정부로 배분한다. 각 주 정부에서는 다시 각 시와 카운티로 자금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각 지역에서는 지역적 특성과 수요에 맞게 교통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라시다 카마라 CCTA 매니저(좌)와 트레이시 머레이 EHSD 이사(문혜진 기자)
▲라시다 카마라 CCTA 매니저(좌)와 트레이시 머레이 EHSD 이사(문혜진 기자)

문에서 문까지, 美 교통 서비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 동부에 위치한 콘트라코스타 카운티(Contra Costa County)는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6%를 차지하며, 2030년에는 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사회 서비스 기관인 EHSD(Employment & Human Services)의 노인 및 성인 장애인 부서에서는 고령화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고령자의 이동권과 관련해 콘트라코스타 교통국(Contra Costa Transportation Authority, CCTA)과 함께 방안을 모색 중이다. EHSD에서 교통 시스템 계획을 제시하고, CCTA에서는 자금을 마련하는 식이다.

시 또는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노약자를 위한 대표적인 교통 시스템으로 ‘준교통수단’(Paratransit)을 얘기할 수 있다. 고정된 경로나 시간표 없이 개별화된 탑승을 제공하는 차량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수요응답형 교통체계와 개념이 비슷하다. 노약자를 위한 콜택시·콜버스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준교통수단이 노약자의 편의성 부분에서 한 단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도어 투 도어(문에서 문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병원·쇼핑·사회 활동 등을 돕는다.

고령자라 할지라도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지역마다 자격 조건이 상이한데, 보통 소득이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결정된다. 이용료는 서비스에 따라 다르게 책정하며, 저소득층에게는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콘트라코스타 카운티에서도 다양한 준교통수단 시스템을 운영한다.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차로 이동을 돕는 서비스도 있다.

라시다 카마라 CCTA 접근성 및 형평성 프로그램 매니저는 “노약자에게는 도어 투 도어 서비스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병원을 예로 들면 병원 입구 앞이 아닌 진료실 앞까지 데려다주고, 진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다시 데려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도어 투 도어 서비스가 가능한 차량의 경우 운전자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탑승하는 이에게는 담당 운전자를 배치하는데,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과정에서 노약자들이 불안함을 떨쳐내고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은혜 교수는 미국의 준교통수단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한다면,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방 중소도시나 외곽 지역에 유용할 것이라고 짚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노약자 전용 교통 서비스나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이 교수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자정까지 버스·지하철·택시 같은 교통수단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미국보다 교통 시스템적인 부분에서 우수하다고 느낀다”면서 “시스템의 장점이 구현될 수 있도록 어르신이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발판과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콘트라코스타 카운티 노약자 교통 시스템

(EHSD)
(EHSD)

◇자원봉사자 승차 서비스

CCTA는 비영리 기관인 모빌리티 매터스(Mobility Matters)와 협력해 자원봉사자 도어 투 도어 승차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령자는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매년 100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데, 지원 자격은 개인 차량이 있고 운전 경력이 우수한 25~75세다. 자원봉사자는 다음 주 승차 예약 목록을 확인하고, 그중 자신이 가능한 시간에 지원하면 된다. 보통 병원·쇼핑 등의 용무를 돕기 때문에 1회에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승차 요금은 물론 청구하지 않는다.

(CCTA)
(CCTA)

◇준교통수단(Paratransit)

호출형 교통 서비스인 준교통수단 시스템은 시 또는 카운티의 자격 요건 승인 절차를 거쳐야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 당일 이용은 안 되며, 최소 하루 전에 전화 또는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콘트라코스타 카운티에서는 카운티 커넥션 링크, 웨스트캣(WestCAT), 트리 델타 등의 업체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업체들은 CCTA와 협력해 저소득층 요금 공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최대 10회의 무료 승차권을 제공한다.

고령자 의견 수용 중요해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노약자 교통 시스템에도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되는 추세다. 콘트라코스타 카운티의 로스무어 은퇴자 마을에서는 자율주행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마르티네즈에서는 병원 동행 밴을 제공한다. 이러한 모델은 국내외를 넘어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 이은혜 교수는 “인건비와 운영비 절감을 통해 예산 효율성을 높이고 서비스 질 증진에 투자할 수 있기에, 지역사회에서 자율주행 교통수단을 도입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기술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를 위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자율주행 기술의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카마라 매니저 역시 무엇보다 수요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사람을 중심으로 한 교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명 한명 특수한 상황에 놓인 노약자를 찾아내고, 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레이시 머레이 EHSD 이사는 “고령자에게 이동권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단순히 이동 수단 제공을 넘어, 고령자와 사회를 연결해 그들의 건강 및 삶의 질 증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업무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대중교통 시스템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지만, 고령자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특히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이은혜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교통 서비스 제공 또는 정책 논의에 앞서 사회가 고령자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고령화에 따라 고령 운전자의 증가는 어쩌면 당연한데, 고령 운전자가 무조건적으로 교통사고를 많이 범한다는 인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은혜 교수는 “운전은 생활 습관, 삶의 양식과 직결된다. 70대 운전자를 예로 들면, 그는 평균적으로 인생의 60%가량인 40년간 운전했을 것이다. 현재도 운전을 지속하기에 무리가 없는데, 갑자기 운전을 그만두라고 하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고령 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 제도의 참여율이 낮은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고집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동권 문제를 인간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고령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 고령층을 직접 참여시켜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라고 제안했다.

▲EHSD는 콘트라코스타 카운티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사회 서비스 기관이다.(문혜진 기자 )
▲EHSD는 콘트라코스타 카운티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사회 서비스 기관이다.(문혜진 기자 )

[도움말 이은혜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트레이시 머레이 EHSD 노인 및 성인 장애인 부서 이사, 라시다 카마라 CCTA 접근성 및 형평성 부서 프로그램 매니저]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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