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찾은 고령자 이동권 묘안, ‘자율주행’이 보여주는 미래

기사입력 2024-11-04 08:12 기사수정 2024-11-04 15:44

美 웨이모 로보택시 등 자율주행 선도… “영향력 더 커질 것”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

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어도비스톡)
(어도비스톡)

광활한 면적의 미국은 자동차 없이는 이동이 어렵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운전자가 고령화되어가는 가운데, 미국 각 주에서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 감소와 독립성 유지를 위해 운전면허 갱신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시행하는 캘리포니아주는 선진 사례로 꼽힌다. 더불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는 로보택시 상용화로 자율주행차 선도 도시로 통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고령자의 이동에 도움이 되는지 미국 현지에서 답을 찾아봤다.

미국 교통부 연방고속도로관리국(Federal Highway Administration, FHW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의 70세 이상 인구는 약 39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3400만 명이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됐다. 더불어 70세 이상 고령층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5626명으로 지난 10년 간 연평균 증가율은 3.2%였다. 사망자 중 차량 탑승자와 보행자는 각각 71%, 18%에 해당했다. 그러한 가운데 미국 인구조사국은 2030년 70세 이상 고령 인구가 약 5300만 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고령 운전자로 인한 잠재적 교통사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DMV 외관(문혜진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DMV 외관(문혜진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DMV에서 한 시니어가 면허 갱신 필기시험을 보고 있다.(문혜진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DMV에서 한 시니어가 면허 갱신 필기시험을 보고 있다.(문혜진 기자)

자동차 의존도 높은 미국

미국은 각 주마다 기준에 따라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판단해 면허 갱신 여부를 결정한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70세 이상 운전자는 5년마다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기존에는 필기시험과 시력검사를 받아야 했으나, 최근 캘리포니아 차량국(DMV)은 필기시험 면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시력검사를 받고 최신 사진을 제출해야 하므로 여전히 DMV 사무실 방문이 필요하다.

또한 미국에서는 의사의 소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사는 운전자의 건강상태가 운전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운전 금지 권고를 내리거나, 교통 당국 및 경찰에 보고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특정 의학적 소견을 가지고 있는 운전자에게 야간 운전 제한, 특정 범위 내 운전 등의 조건부 면허를 발급한다. 70세 이상이 발급받는 경우가 많다. 조건부 운전 면허 제도는 고령화사회의 대안으로 거론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DMV에서는 70대 이상 시니어들이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줄을 잇는 풍경을 낯설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만난 79세의 J.R.누에게 씨는 “60년 가까이 운전했는데 아직도 운전하는 게 즐겁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운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고령층은 나이보다 건강상태에 따라 운전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운전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63세의 콜리 굿맨 씨는 5년 전부터 운전을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시별·개인별 상황에 따라 운전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미국 도심지 외곽은 면적이 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 샌프란시스코만 해도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첨단기술 집약지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만 서남부 지역을 말하며, 교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자동차 연구원의 북미 R&D 사무소도 실리콘밸리 내에 있는데, 그곳에 있는 두 소장은 자동차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광주광역시 소속 공무원으로 현재 해외 근무 중인 유희웅 광주 실리콘밸리사무소장은 “한국에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여기 산호세에서는 차량이 없으면 이동이 제약된다. 한국 농어촌 지역과 비슷한 상황으로 자동차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운전자 고령화가 걱정되는 이유는 교통사고 위험 때문인데,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고 있어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장성준 북미사무소장 역시 고령자의 이동에 자율주행차가 도움이 된다고 공감했다. 장성준 소장은 “자율주행차의 첨단 운전 보조 시스템(ADAS)은 고령 운전자의 안전 운전을 돕는다”며 “특히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AEB)과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LKAS)은 교통사고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자율 주행 버스, 로보택시 등 공공 교통수단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그는 “정식 운행 중인 서울 심야 자율주행 버스는 시간대와 구간이 정해져 있다. 이처럼 대상 설정을 잘해야 하는데,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나 사람을 위한 교통수단이 먼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궁극적으로 노약자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희웅 광주 실리콘밸리 사무소장(좌), 장성준 한국자동차연구원 북미사무소장(문혜진 기자 )
▲유희웅 광주 실리콘밸리 사무소장(좌), 장성준 한국자동차연구원 북미사무소장(문혜진 기자 )

자율주행 고도화보다 중요한 것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은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이미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됐다. 구글의 자회사 웨이모(Waymo)의 로보택시가 레벨4 단계에 속한다. 로보택시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에서 운행되고 있다. 지난 8월 웨이모의 발표에 따르면, 매주 10만 대의 로보택시가 운행 중이다.

*자율주행 기술 5단계 : 레벨0-비자동화, 레벨1-운전 보조, 레벨2-부분 자동화, 레벨3-조건부 자동화, 레벨4-고도 자동화, 레벨5-완전 자동화

테슬라 역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FSD(Full Self Driving)는 레벨2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연구·개발 중이다.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 ‘사이버캡’을 최근 공개하기도 했다. 운전자와 페달이 없는 차량으로,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이버캡은 레이더, 라이더가 있는 웨이모와 달리 오직 카메라로 승부를 본 점이 특징이다. 카메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AI를 학습시켜 자율주행하는 원리다.

한국은 상용화 관점에서 레벨2.5에서 3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상황이다. 장성준 소장은 한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특수성이 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지역이 광범위하지 않고, V2X(차량·사물 간 통신), 인프라 등이 잘 구축되어 있다”면서 “결국 경제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쪽으로 시장이 열릴 것이고, 그쪽으로 기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한국도 레벨4 수준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성준 소장은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차는 이동의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면서도,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특히 개인 차량의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 소장은 “자율주행차의 레벨을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라며 “AI와 머신러닝을 활용해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하고, 실증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사회적 합의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웨이모 이모저모

▲웨이모사의 로보택시 자율주행 기록(문혜진 기자 )
▲웨이모사의 로보택시 자율주행 기록(문혜진 기자 )

웨이모 직접 타보니… 안전 운전 돋보여

샌프란시스코 시내에는 웨이모 원(이하 웨이모) 로보택시 250대가 365일 24시간 돌아다닌다. 9월 23일 유니언 스퀘어에서 샌프란시스코 DMV로 이동하기 위해 앱 ‘웨이모 원’(Waymo One)을 통해 택시를 호출했다. 기다리는 동안 “로보택시가 싫다”고 말하는 시민을 마주했다. 자동차 반대주의 단체 세이프 스트리트 리벨(Safe Street Rebel)은 웨이모 보닛 위에 콘을 올려 주행을 멈추는 시위를 펼친다던데, 시민들의 찬반 의견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웨이모는 호출 후 5분도 안 돼 모습을 드러냈다. 앱에서 열림(Unlock)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렸으며, 모든 인원이 안전벨트를 맨 후 주행을 시작했다. 운전자가 없는 가운데 핸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웨이모는 속도와 차선 등을 잘 지키며 안전 운행을 했다. 간혹 브레이크를 밟을 때 덜컹거리기도 했으나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큰 화면으로 이동 노선, 도착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했다. 총 주행거리는 2.61마일(약 4.2㎞), 16분간 탑승했으며, 요금은 16.19달러(약 2만 2000원)였다. 총평을 해보자면 깔끔한 모범 택시를 탄 기분이었다.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우버기사 달튼(좌), 파라마르스 씨(문혜진 기자)
▲우버기사 달튼(좌), 파라마르스 씨(문혜진 기자)

우버택시 기사 “웨이모 영향력 커질 것”

웨이모의 등장부터 공유경제 플랫폼인 우버택시와의 경쟁 분위기가 형성됐다. 상생을 택한 웨이모는 2025년 우버 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우버 기사들은 웨이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달튼 씨(Dalton, 45)는 “웨이모 때문에 운전 시 영향을 받는 것은 없다. 승객이 줄었는지도 잘 모르겠다”면서 “다만 향후에는 고속도로 운행도 할 텐데, 그때는 얘기가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사 파라마르스 씨(Faramarz, 66)는 우연히도 웨이모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과거 웨이모는 야생마처럼 너무 빨리 가거나 너무 느리게 움직였다. 매주 개선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잘 운행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편 그는 앞으로 웨이모가 더 발전하면 일자리 감소를 촉발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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