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고령화에 갈 곳 잃은 교통난민]제1부 인국절벽에 가로막힌 노인 이동권
제2부 전용 교통수단으로 활로 찾은 일본
제3부 첨단 기술과 공유경제, 미래 이동권의 키워드
일본에서는 운전자의 고령화, 인구 감소 등을 이유로 매년 1000km에 달하는 버스 노선이 사라진다. 지역 주민의 50% 이상이 65세 이상인 마을은 택시 회사조차 없는 곳도 있다. 이에 ‘온디맨드 교통’이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온디맨드(Ondemand) 교통은 수요 응답형, 승차 공유형 등으로도 불린다. 승차를 원하는 사용자가 전화를 걸어 원하는 목적지와 희망 시간대를 말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소로 태우러 간다. 권역을 정한 뒤 그 범위에 위치한 정류소를 필요에 따라 들르고 희망하는 탑승 시간대에 최대한 맞춘다는 점에서 버스나 택시와는 다르다. 또한 주변에서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고자 하는 요청이 들어오면 a, b, c 정류소를 거치며 여러 사람을 태운다는 점에서 택시의 합승과 비슷한 승차 공유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온디맨드 교통을 도입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마다 지역 택시·버스 사업자의 반발이 있지만, 버스 정류장이 멀어 외출을 못 하거나 면허 반납 후 장보기 등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에게는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온디맨드 교통만으로 고령자 이동권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면허 반납 후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이동 지원 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두 주자 초이소코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10여 개. 그중에서도 ‘AI 택시’로 불리며 온디맨드 교통 시장을 개척한 선두 주자는 초이소코(チョイソコ)다. 초이소코 서비스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아이신(アイシン)은 도요타 계열사로 엔진, 자동차 변속기, 내비게이션 등을 만들던 회사다. 버스 노선이 점차 없어지고, 마을버스 역할을 하던 커뮤니티 버스조차 노선을 줄이는 데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도 어려워 외출하지 못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신은 2019년 초이소코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기야마 진(杉山仁) 아이신 초이소코 서비스 기획실 실장은 “모처럼 교통을 이용해 외출한 고령자가 병원만 들르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쉽지 않을까 생각해, 밖으로 나가고 싶은 계기를 제공하자는 마음으로 기획했다”며 “지역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 고령자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도록 외출 촉진에 공헌하며, 민간 기업이 운영 주체가 돼 지역 스폰서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 이 세 가지로 지속 가능한 지역 대중교통 체계를 만들어가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초이소코는 아이신을 중심으로 지자체, 지역 교통 사업자, 지역 스폰서(사업자), 이용자가 함께 만들어간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투입해 서비스를 도입하고, 택시 회사 같은 교통 사업자가 차량과 운전자를 제공한다. 이용자에게는 평균 100~200엔의 이용료를 받기 때문에 병원, 슈퍼, 은행 등의 지역 사업자로부터 받는 협찬금으로 운영비용을 충당한다. 택시 회사는 잠재고객 유치, 고정수익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에리어 스폰서라고 불리는 사업자는 잠재적 고객인 이용자 대상 홍보 및 지역 내 이미지 향상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협찬 금액은 5000엔부터 10만 엔까지 다양한데, 금액에 따라 해당 사업장을 정류소로 지정하기도 한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보다 더 많은 지자체에서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 목표라는 초이소코는 2023년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9년 하나의 지자체로 시작한 초이소코 서비스는 2023년 기준 67개 지자체에 도입됐고, 약 18개 지역에서 2024~2025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스기야마 실장은 “온디맨드 교통은 정해진 길만 가는 버스와 같은 선이 아니라 면을 커버하는 개념”이라면서 “고령자의 자택에서 정류소까지 100~250m 이내로 설정해 외출을 더 쉽게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초이소코를 이용하려면 회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고령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과 우편 신청을 모두 받는다. 이용자의 80%가 우편 접수를 하는 편이라고. 예약해야 하는 교통이라는 특성상 콜센터가 필요한데, 아이신은 전국 지자체의 예약을 본사에서 직접 콜센터를 운영하며 관리한다.
콜센터에서는 AI를 활용한 자체 시스템을 활용한다. 이용자가 전화를 걸면 등록된 회원 정보가 자동으로 화면에 뜨고, 현재 이동 중인 초이소코 차량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각 차량의 최대 승차 인원은 8명으로, 운전자가 이용자를 태울 때마다 차량 내 태블릿을 통해 승하차 버튼을 누르면 현재 승차 가능 좌석을 파악할 수 있다. 시스템에 이용자가 원하는 목적지와 시간을 입력하면, 현재 가장 빨리 배차 가능한 노선이나 환승 노선을 알 수 있다.
스즈키 아유미(鈴木歩) 아이신 비즈니스프로모션부 부장은 “나가노현의 경우 산간 지역이기 때문에 끝에서 끝으로 가려면 1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권역을 11개로 나누어, 가고 싶은 곳에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노선을 찾아 환승할 수 있게 안내한다”면서 “택시와 달리 원하는 목적지에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동승자도 있기 때문에 시간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점, 원하는 탑승 시간대에서 어느 정도 시간 조정도 이뤄진다는 점을 이용자들도 해가 갈수록 이해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덕분에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는 이용자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콜센터 직원들은 동기부여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이연지 기자, 디자인=유영현)mini interview
취재 당일 초이소코 시승을 담당해준 운전자 오쿠무라(奥村) 씨. 오쿠무라 씨가 운전하는 초이소코 차량이 달리는 곳은 경사가 많아 걷기가 힘들고, 길이 좁아 버스도 지나갈 수 없는 곳이다.
“손님들에게 고마움의 선물을 많이 받아요. 여기, 달려 있는 장식도 직접 만들어주신 거예요. 차, 커피, 일본식 과자 등을 종종 주시기도 하죠. 아, 정말 곤란한 선물도 있는데요.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을 까서 주실 때면 정말 당황스러워요. 운전하면서는 먹을 수가 없거든요! 그래도 단골손님들에게 일상의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 도요아케시
도요아케시(豊明市)는 가장 성공적으로 온디맨드 교통을 정착시킨 모범 사례다. 국토교통성은 기준을 충족한 지자체에 한해 대중교통으로서 승차 공유 유료 서비스를 운영하도록 인정하는데, 최소 3년을 운영해야 하지만 도요아케시는 실증 2년 만에 성과를 인정받아 2021년 정식으로 서비스를 도입했다.
도요아케시가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 도입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고령자 외출 촉진’이다. 많은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 제공 회사 중 초이소코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에는 온디맨드 교통이라는 개념이 알려지지도 않은 데다 도요아케시가 첫 도입을 시도한 지자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지역 교통 사업자의 반발이 컸다. 도요아케시 기획정책과 하야카와 게이스케(早川圭介) 씨는 “2년 동안 철도·버스·택시 회사 관계자, 국토교통성 담당자, 학자 등으로 구성된 교통협회와 도요아케시, 초이소코 담당자가 세 달에 두 번 모여 이용 규칙을 협의해가며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정해진 초이소코 이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회 이용 금액은 200엔이며, 환승을 하거나 먼 거리를 가면 400엔이 나오기도 한다. 도요아케시 내 초이소코 정류소는 60곳 정도 있다. 일부 권역은 65세 이상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지만, 시청 등 공공시설에 해당하는 정류소까지만 갈 수 있다. 그곳에서 다른 목적지까지는 버스 등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연결한다. 2024년 3월 기준 이용자는 2293명, 약 80%가 70~80대다. 이용 목적은 의료 42.8%, 장보기 및 쇼핑 20.8%, 공공시설 이용 17%다. 온라인‧스마트폰 예약도 가능하지만 역시 전화 예약이 대부분이라고.
하야카와 씨는 “온디맨드 교통만으로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면허 반납을 위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요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전했다.
아카사카 교헤이(赤坂京平) 도요아케시 기획정책과 계장은 “초이소코 도입이 정말 고령자의 외출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업 효과를 산출해봐야 할 것 같다. 현재 2대를 운영하고 있는데, 평균 이용자가 1.5명이어서 2명까지 승합률을 높이고 싶다. 또한 커뮤니티 버스의 1인당 수송 비용이 493엔인데, 초이소코는 1593엔으로 3배 정도 높아 비용 절감 방안도 필요하다”면서도 “이웃 마을로 가는 버스도 아침과 저녁 두 번뿐이고, 커뮤니티 버스도 점차 줄고 있어 슈퍼나 공공시설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도요아케시도 80세 이상을 대상으로 택시 승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온디맨드 교통 방식이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주민과 함께 히타치시
이바라키현 히타치시(日立市)는 고령자의 이동권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노 아카네(狩野茜) 히타치시 도시건설부 도시정책과 주사는 “면허 반납 시 이동을 돕기 위해 고령복지과에서는 교통카드 1만 엔권을 80세 이상이면 1000엔, 70~79세는 4000엔에 살 수 있도록 할인 제도를 시행한다. 고령자라면 택시도 기본요금인 740엔권 10장을 나눠준다. 또 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잘못 눌렀을 때 막아주는 급발진 제어장치를 부착하면 1만 엔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가네자와학구 지역 모빌리티’(金沢学区地域モビリティ)라는 온디맨드 교통을 운영하고 있다. 2021~2022년 시범사업을 거친 뒤 2023년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히타치시의 지역 모빌리티 역시 지역 교통 사업자와 경쟁하지 않기 위해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한다. 4개 권역이 나뉘어 있으며, 권역별로 20~60개의 정류소가 있다. 이용 연령을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65세 이상 이용객이 대부분이다. 역시 회원 등록 후 전화 예약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초이소코의 콜센터 같은 역할을 가네자와학구 커뮤니티센터에서 맡고 있다. 센터 직원은 지역 주민으로 소정의 급여를 받으며 자원봉사 개념으로 센터 업무도 보고 지역 모빌리티 예약 접수도 맡고 있다. 운전사 역시 지역 주민이 담당하고 있다.
2021년 508명이었던 이용자는 2022년 2213명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3229명이 됐다. 처음에는 커뮤니티센터에 가려고 지역 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쇼핑‧병원 등을 목적으로 이용하는 비율도 늘었다. 가노 주사는 “현재 2대를 운영 중인데, 가네자와학구 외에 운영 지역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택시 사업자의 영업을 압박하는 상황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긴 하다”면서 “향후 승차 공유(라이드 셰어) 등에 대한 정부 정책 동향을 살피면서 제도를 이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히타치시에 온디맨드 교통이 정식 도입될 수 있었던 건 커뮤니티센터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주민들에게 이런 정책이 있다는 걸 적극 홍보했다고. 오소노에 요시에이(小薗江義英) 히타치시 총무부 교통방범과 계장은 “시에서 이런 사업을 하고 싶어도, 지역에서 열심히 도와주는 주체가 없다면 활성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커뮤니티센터를 중심으로 온디맨드 교통이 자리 잡은 건 히타치시의 특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령자 이동권을 돕는 여러 정책 중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묻자 “병행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노 주사는 “운전면허 반납 시 제공하는 혜택 제도는 사고를 줄이고 안전 운전을 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온디맨드 교통은 이동이 어려운 분의 이동을 돕는 것으로 두 사업의 목적이 다르다”면서 “이동을 보조해주는 수단이 없다면 면허 반납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각 제도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 취재 일본 초이소코(チョイソコ) 본사, 도요아케시(豊明市) 시청, 히타치시(日立市) 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