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케어러 돕자 팔 걷는 일본… 한국 ‘대상 파악’부터 과제

입력 2026-02-20 07:00

도움 요청 못하는 아이들 겨냥 연결·교육 강화… 민관 지원 사업 확산

(AI 생성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일본에서 영케어러(가족돌봄 아동·청소년·청년)를 돕는 지원이 ‘기관 중심’에서 ‘생활 전체’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지자체와 민간 연구기관, 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나눠 비대면 상담부터 가족 지원, 식사 지원, 교육·인식 확산까지 연결하는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시도는 ‘집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당사자를 겨냥한 비대면 지원이다. 센다이를 거점으로 한 돌봄·지원 상담창구 ‘소요기’는 영케어러와 경제적 학대 피해자처럼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상담과 긴급 지원 전달을 결합한 모델을 시험하겠다고 밝혔다. 상담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아바타 방식으로 진행하며, 지원금은 중간 절차를 최소화해 당사자 스마트폰으로 바로 전달하는 방식을 구상 중이다.

사이타마현 이루마시는 지난 13일 영케어러 지원 방식을 바꾸겠다며 ‘가족 통째 휴식 지원’ 등 3가지 새 정책을 2026년도 예산안에 담아 시의회 상정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시는 도움이 필요해도 드러나지 않는 영케어러가 많고, 확인된 뒤에도 가족과 떨어지기 싫어 지원을 거부하거나 지원 내용이 맞지 않아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복지 체계와 주민 정보를 연계한 자료 체계를 만들고 대상을 단계별로 관리해 누락을 줄이겠다고 했다. 가족이 함께 쉬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돌봄 부담이 가장 쉽게 쏠리는 지점인 ‘식사’ 분야에서는 직접적인 식품 지원이 시작됐다. 안도 스포츠·식문화 진흥재단은 지난달 19일 영케어러를 대상으로 한 식품 지원 사업을 새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영케어러의 약 70%가 장보기, 식사 보조, 뒷정리 등 식사와 관련된 돌봄을 맡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식품 지원을 통해 생활 부담을 덜고 아이들이 자신만의 시간과 학습할 기회를 확보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지원 규모는 전체 약 1만 식(간식 일부 포함)이며, 월 1회 1인당 4식과 간식을 세대 인원수에 맞춰 3개월간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인식 확산을 위한 노력도 동시에 추진 중이다. 학연홀딩스는 1월 29일 ‘영케어러인 너가 혼자 고민하지 않기 위한 책’을 발간했다. 출판사 측은 후생노동성 조사 결과 초등학교 6학년의 6.5%가 어떤 형태로든 가족 돌봄을 하고 있다며, 2024년 6월 관련 법 개정으로 영케어러가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노력 대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책은 초·중학생이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 안내서로, 도덕·사회 수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구성했으며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내 지역에 어떤 지원이 있는지’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지원으로 이어지는 안내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참여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일라이 릴리는 지난 19일 민간 기관 시상에서 ‘영케어러 연계 프로젝트’로 평가받았다고 밝혔다. 영케어러 아동·청년 곁에서 지원단체와 행정, 의료기관 등을 연결해 지원이 끊기지 않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돌보는 사람’ 자체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워크앤드케어밸런스 연구소는 지난달 20일 회원제 온라인 서비스를 개편하고 기업·지자체·개인 참여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요양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가구가 전체의 11.4%(약 635만 가구)에 이른다는 통계를 제시하면서, 돌봄 제공자 지원은 단순한 부담 완화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영케어러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커지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규모 파악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지난달 연구보고서를 통해 국내 영케어러 규모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고 관계 부처 역시 관련 통계와 현황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아동·청소년 인구의 약 5% 이상이 영케어러일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국내에 적용하면 2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제시했다.

일본의 최근 영케어러 지원은 낮은 연령으로 인해 제도권 진입이 어려운 현실을 전제로 ‘발굴과 연결’, ‘생활 부담 완화’, ‘교육과 인식 확산’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 역시 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말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식해, 현장에서 발견하고 안전하게 연결하며 생활 부담을 덜어주는 설계를 얼마나 촘촘히 만들 수 있을지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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