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7

[현장에서]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세상 밖으로 나온 치매 어르신들

입력 2026-09-17 15:33

치매극복의 날 기념 행사

서울시, 17·18일 ‘기억동행 박람회’ 개최

경도인지장애·초기 치매 당사자 직접 참여

▲17일 서울 종각역에 위치한 태양의 정원에 마련된 ‘기억동행 박람회’ 행사 현장. 서지희 기자 jhsseo@
▲17일 서울 종각역에 위치한 태양의 정원에 마련된 ‘기억동행 박람회’ 행사 현장. 서지희 기자 jhsseo@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여기 쿠폰에 도장 받아오셔야 해요.” “저쪽 부스는 체험해보셨어요? 한번 가보세요.”

17일 서울 종각역 태양의 정원에서 제19회 치매극복의 날을 기념한 ‘기억동행 박람회’가 열렸다. 실내 정원 곳곳에는 다양한 체험 부스가 자리했고, 방문객을 안내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광역치매센터와 25개 자치구치매안심센터가 주관한 이번 행사는 인지장애 당사자의 사회활동을 알리고, 치매가 있어도 시민들과 함께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서울시 관계자와 행사 참여자들은 ‘기억동행 박람회’라는 문구가 새겨진 보라색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보라색은 미국 알츠하이머협회의 상징색이다. 올해 처음 제작한 단체복은 행사장에 통일감을 더했다.

행사에는 치매 환자와 가족, 자치구 보건소 및 치매안심센터 직원, 유관기관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인지장애 당사자가 만든 작품을 전시하고 시민들이 치매 관련 기관과 지원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구로구치매안심센터 ‘온보듬합창단’의 무대. 서지희 기자 jhsseo@
▲구로구치매안심센터 ‘온보듬합창단’의 무대. 서지희 기자 jhsseo@
행사 첫날인 이날에는 개회식과 구로구치매안심센터 온보듬합창단의 응원 무대가 마련됐다. 온보듬합창단은 치매환자와 가족이 함께하는 합창단으로 음악치료선생님과 함께 작사·작곡을 하며 곡을 만들고 있다.

이날 행사장에는 치매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는 ‘다정다감 상담소’, 제철 식물로 화분을 꾸미는 ‘초록기억화원’, 낙법을 배우는 ‘넘어져도 괜찮소’, 운동과 게임을 접목한 ‘활·력·핑·퐁’ 등 다양한 부스가 마련됐다.

경도인지장애·치매 당사자와 가족이 글과 그림을 활용해 도서와 책갈피를 제작·출판하는 성북구 ‘기억서점’, 치매환자 가족과 경도인지장애·초로기 치매 당사자가 기억 굿즈를 직접 제작·포장하는 성동구 ‘기억잡화점’ 부스도 선보였다. 경도인지장애 당사자가 취약 치매가구의 빨래 지원과 안부 확인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의 또 다른 주민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 노원구 ‘빨래왔수다’ 부스도 눈길을 끌었다.

“인지장애 있어도 당당하게 사회로 나오세요”

▲행사장에 마련된 ‘기억다방’에서 일일 바리스타로 참여한 조영자(왼쪽) 씨와 최성실 씨. 서지희 기자 jhsseo@
▲행사장에 마련된 ‘기억다방’에서 일일 바리스타로 참여한 조영자(왼쪽) 씨와 최성실 씨. 서지희 기자 jhsseo@
“스탬프 다 찍고 오셔야 드릴 수 있어요.”

행사장에 마련된 ‘기억다방’에서는 최성실 씨(79)와 조영자 씨(84)가 일일 바리스타로 나서 방문객을 안내하고 커피와 주스를 건넸다. 두 사람은 경도인지장애를 겪고 있으며, 치매안심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행사가 열릴 때면 바리스타로 참여해 사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 씨는 활동에 참여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손을 계속 움직이는 과정이 인지 건강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하니까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손도 움직이잖아요. 직접 해보니 참여할 때와 하지 않을 때가 달라요.”

최 씨는 가족과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인지장애·치매 당사자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이 더 많은 사랑을 주고 곁에서 도와준다면 인지장애나 치매가 있는 분들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조 씨는 집에 머물기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집에만 있으면 자꾸 고민이 생기고 좌절감도 느낄 수 있어요. 치매가 있어도 밖으로 나와 활동해야 해요.”

최 씨는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도 전했다. “경도인지장애가 있다고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더 사랑하고, 당당하게 사회로 나와 활동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엔 숨겼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워요”

▲성수동 기억잡화점’에 참여해 방문객들에게 굿즈를 설명하고 있는 강숙희 씨. 서지희 기자 jhsseo@. 서지희 기자 jhsseo@
▲성수동 기억잡화점’에 참여해 방문객들에게 굿즈를 설명하고 있는 강숙희 씨. 서지희 기자 jhsseo@. 서지희 기자 jhsseo@
“말주변이 없는데 어떡하죠?(웃음)”

‘성수동 기억잡화점’ 부스에서 수제 퀼트 작품을 설명하던 강숙희 씨(1947년생)는 온화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았다.

성동구는 치매 환자와 가족, 경도인지장애 및 초기 치매 대상자가 지역사회 안에서 생산 활동에 참여하도록 돕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치매 환자 가족이 참여하는 ‘마음한코 공방’,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이 참여하는 ‘기억연구소’, 초로기 치매 어르신이 참여하는 ‘초록상사’ 등 3개 계열사를 운영 중이다.

이 사업은 ‘2026년 인지장애 대상자 및 가족의 일상 누림을 위한 우수 프로그램 공모사업’에서 대상을 받았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를 겪는 당사자와 가족의 생산 활동을 지원하고 치매 친화 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선 점을 인정받았다.

강 씨는 매주 목요일 치매안심센터로 출근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노인을 받아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가면 제 책상도 있고 선생님도 계세요. 정말 자상하게 가르쳐주세요. 목요일만 되면 즐거워요.”

처음부터 센터 방문을 편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치매안심센터에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 자신을 치매 환자로 생각할까 봐 선뜻 말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문화센터에 다닌다고 하는데 저는 치매안심센터에 나간다고 말하기가 싫더라고요.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소액이지만 활동에 따른 보상도 받으며 일하는 즐거움과 자신감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센터에 다니는 것을 숨겼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워요. 여기 나오면 활동도 많이 하고 배우지 못했던 것도 배울 수 있어요. 선생님들이 잘해주시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요.”

“치매 있어도 할 수 있는 일 많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윤세희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사무국장. 서지희 기자 jhsseo@
▲윤세희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사무국장. 서지희 기자 jhsseo@
“치매가 있어도 여전히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윤세희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사무국장은 ‘기억동행 박람회’의 취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서울시가 치매극복의 날 행사를 이틀간 박람회 형식으로 운영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많은 인원이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행사를 넘어, 인지장애 당사자가 일정 시간 역할을 맡아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당사자들이 무리하지 않고 활동을 마치는 것이었다. 건강 상태나 개인 사정에 따라 행사 직전에 참여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를 진행하는) 이틀 동안 참가자분들이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각자가 기분 좋게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윤 국장은 인지장애 당사자의 사회활동에 대해 치매안심센터뿐만 아니라 사회적기업과 지역 내 기관·단체가 이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지 기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실수가 생길 수 있지만, 곁에서 기다려주고 보완하면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실수를 조금 더 할 수도 있고 잠깐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어느 정도 뒷받침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요. 걱정하거나 이상하게 여기기보다 그분들이 가진 가능성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치매 환자와 가족이 질환을 숨기거나 스스로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혼자 계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치매 환자와 가족들도 ‘이런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일도 할 수 있다’고 마음껏 표현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셨으면 해요. 저희는 충분히 그분들과 함께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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