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담당자로 인재개발 15년, 그리고 인사 업무를 7년간 맡으며 기업 인재교육 분야의 최고전문가로서 활동했던 윤경로(尹景老·62) 전 듀폰 부사장.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인적자원개발)와 HRM(Human Resource Management·인적자원관리) 분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그의 현재 직함은 사단법인 글로벌인재경영원 원장이다. 경영원의 목표는 학생들과 비즈니스인들의 글로벌 역량을 단시간 내에 최적화시키는 것. 자신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장기로 두 번째 인생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그는 “사실 좀 쉬고 싶었다”라고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윤경로 원장이 사단법인 글로벌인재경영원을 만든 목적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당연히 ‘좋은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가 만들고 싶은 좋은 인재의 차원은 기존의 인재상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기준이 글로벌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다.
“우리 땐 해외로 여행도 잘 못 갔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일상이 됐죠.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글로벌 역량이 과거 세대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과 인도 등 새롭게 떠오르는 나라의 인재들이 우리나라 인재들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는 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되레 그런 경쟁자들이 없었던 우리 세대보다 글로벌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예요.”
우리나라 인재의 역량 저하 현상 … 심각한 문제다
윤 원장의 말에서는 내내 변화하는 현실에 관한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위기의식에는 확실한 근거 또한 있었다. 그가 듀폰에 있을 때, 사내 핵심인재를 선발하게 되면 예전에는 한국인들이 핵심인재 범주에 상당수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렇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신 인재가 글로벌 기업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 현상이 듀폰만 그런 건가 싶어서 IBM이나 GE에도 물어봤어요.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더군요. 심지어 더 심각하다고 할 정도로.”
흔히 한국은 천연 자원이 없는 대신 인적 자원의 우수성으로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다는 신화가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신화가 추락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윤 원장은 이미 글로벌 기업에서는 일반화된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글로벌 인재를 본격적으로 육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글로벌인재경영원을 사단법인으로 만든 이유도 대학생 때부터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표로 대학교 등에 프로그램 제공을 위해서다.
“우리나라 인재들은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영어에서 밀리고, 다양성에 대한 경험과 수용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일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인도는 글로벌 CEO 다수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학교까지 인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에서 CEO로 올라간 거죠.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에요.”
국내 인재들의 글로벌 경쟁력, 정확하게 평가하고 토론해보자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인재들의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평가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도 기업에서는 해외로 사원을 보낸다고 할 때 어학 교육 정도만 해서 보내는 경우들도 많아요.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기업의 고민입니다. 앞으로는 기업들이나 생활의 글로벌화가 더 진전되는 게 당연한 흐름이기에 그에 맞추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LG전자 프랑스 법인에서 일했던 에릭 쉬르데주 전 LG전자 프랑스 법인 대표는 <그들은 미쳤다, 한국인들!>이라는 책을 냈다. 책에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겪은 과중한 업무와 전시행정, 승진 차별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윤 원장은 저자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성공해야 좋은 인재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원장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아 중소기업에 글로벌 역량을 제공하는 방안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윤 원장이 듀폰에서 은퇴한 지는 2년여가 되어오고 있다. 듀폰에서 22년을 인재들의 육성과 발굴에 바쳤다. 그런 윤 원장이 은퇴 전에 생각했던 게 젊은 직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듀폰 내에서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바깥에서 만들게 된 것이 글로벌인재경영원이다. 그가 은퇴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젊은 인재들을 키우고 싶었던 것이니 그 희망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 미래지향적인 사고, 적극적인 의지가 글로벌 인재가 갖춰야 할 자질이에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법
1953년생인 윤 원장에게선 나이를 잊은 활력이 느껴진다. 그에게 즐겁게 살기 위한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지를 물어봤다.
“자신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좀 겸손해져서 내려놔야 해요. 그러면 새롭게 배울 수가 있어요. 요즘 뭔가를 배울 기회는 많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꿈이 없어졌어요. 제 2의 인생은 어떤 꿈을 갖고 경영해야 합니다. 저는 새로운 것을 가지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윤 원장은 현재 인간개발연구원, 세계미래포럼, 백강포럼에 출석하는 중이다. 그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강연만 하는 포럼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능성과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의사소통의 기술인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의 최고 전문가였기에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자신이 포럼을 한다면 토의와 참여 형식이 주가 되는 형식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이라면 심적으로 여유가 생긴 겁니다. 듀폰에 있을 때는 낮에 일하고 밤에도 일해야 했어요. 글로벌기업이라 시차에 따른 업무들이 야간에도 발생했거든요. 그리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윤 원장은 항상 사람들이 뭔가 생산적이고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인재 전문가다운 성향을 드러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꿈이 없으면 지루해져요
나이가 들면서 중요해지는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다. 나이가 들어 남편이 은퇴하고 나면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하여 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되레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많다.
“저는 터득했죠(웃음). 공동관심사를 가지는 겁니다. 아직은 둘 다 일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그리고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지루해지는 이유도 꿈이 없어서입니다. 가급적 부부가 함께 꿈을 찾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죠.”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존중에 대한 이야기다. 인터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람을 대하는 전문가로서 윤 원장의 기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묵직한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