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틀면 예외 없이 먹는 방송이 나온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제작되는 연예 프로그램의 거의 절반 이상이 이른바 ‘먹방’이 아닐까 느껴질 정도다. 왜 이리도 갑자기 방송사들이 ‘먹방’에 사활을 걸게 되었으며, 또한 시청자들은 왜 먹는 방송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먹방’이 늘면서 숱한 ‘먹방’ 스타가 배출되기도 했다. 옛날에는 음식점 주방장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셰프’라는 근사한 이름을 달고 등장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연복, 최현석, 오세득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스타가 되어 TV프로 섭외 1순위가 됐다.
이는 전문적 교육을 받은 셰프들만의 일이 아니다. 대중음식점을 운영하는 백종원 씨는 ‘집밥’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웬만한 연예인은 저리 가라는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심지어 요리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배우, 가수들까지 가세해 잘생긴 얼굴에 요리까지 잘하는 ‘반칙(?)’을 일삼고 있다.
과거에는 한낮이나 심야시간대에 그것도 상업 방송이 아닌 채널에서 아줌마 요리사가 나와 재미보다는 정보 전달을 주목적으로 건조하게 방송되던 요리 프로그램의 이러한 진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갑자기 우리 사회가 먹는 문제에 골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은 우리가 먹고살 만해지니 웰빙이라든가 고급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먹방이 늘어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의 견해는 다른 것 같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먹방이 급격히 늘어난 시점이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1990년대였단다.
그러니까 먹방의 범람은 희망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경제가 퇴조하는 데 따른 증상의 하나라는 말이다. 현재 우리의 경제는 점차 가라앉고 있으며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있다. 먹방 프로그램을 보며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기분은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주변에서 심정적으로 공유했던 중산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해마다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하고 가족 단위의 외식을 즐기던 문화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패밀리 레스토랑이 자취를 감추고 가족 단위 패키지여행도 줄어들었다.
다시 말하면 먹방의 범람은 역설적으로 해외여행 못 가고, 좋은 음식 먹을 형편이 못 되는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해방구로 작용하는 셈이다. 오늘도 에릭이 조심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삼시세끼’를 보며 감탄하고 즐거워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형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슬며시 일본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이 유행하는지 넘겨다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남편이 요리가 유행인 틈을 타 용감하게 우리 집 요리를 거들게 된 것은 흐뭇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