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깔끔이

기사입력 2017-11-09 16:19 기사수정 2017-11-09 16:19

어렸을 때 동네 친구끼리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그룹은 아니지만, 만나는 김에 한 명 더 참석한다는 것이다. 동네 친구와는 사촌지간이다. 중학교 동창이기도 해서 모르는 사이는 아니다. 지나치게 깔끔을 떨어 ‘깔끔이’라고 부르는 친구이다.

장소를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터미널 안에는 깔끔한 음식점들이 많지만, 식성에도 안 맞고 비싼데다가 음식점이 많아 찾기 어려워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 상가 지하에 있는 한 음식점을 추천했다. 신세계 백화점 맞은편이다. 전철 출구로 나와서 길만 건너면 된다. 그런데 허름한 음식점이라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위치가 안 나왔다. 그러니 출구 번호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모이는 사람들은 필자가 추천하는 음식점이 어디쯤인지는 대강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한 친구가 출구번호가 6번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래서 전철에서 내려 6번 출구를 찾아가는데 지하 터미널 상가를 거의 다 돌다 시피해서 겨우 찾았다. 그런데 나가보니 6번 출구는 아파트만 있고 주변에 음식점이 없었다. 출구번호를 잘 못 알려준 것이었다.

일단 가장 가까운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필자가 추천했던 음식점은 거기서 또 한 참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하에 원래 추천했던 메뉴인 동태찌개를 파는 음식점이 있었다. 그러나 깔끔이가 동태찌개는 먹고 나면 냄새가 나니까 돈까스를 먹자는 것이었다. 노인이 되면 그렇지 않아도 냄새가 나는데 음식 냄새까지 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모인 김에 노인 냄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술 종류를 정해야 하는데 역시 깔끔이가 제동을 걸고 나왔다. 필자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추천하니 막걸리는 먹고 나면 냄새 나서 안 되고 맥주나 마시자는 것이었다. 이쯤에서 필자가 폭발했다. 막걸리를 고집한 것이다.

냄새를 풍긴다는 것은 물론 민폐이다. 전철 초기에는 술을 마시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고 해서 택시를 탄 적이 많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모였던 사람들이 대부분 전철역까지 가서 헤어지기 때문이다. 혼자 택시 탄다고 유난을 떠는 것도 보기 흉하다. 택시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어르신 카드가 있어 전철은 공짜인데 굳이 택시를 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술을 자주 마시지만, 매번 전철을 타고 귀가한다. 늦은 저녁 시간이면 술 한 잔 걸친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우리 냄새이다. 너무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다 보면 불편해서 못 산다. 우리 식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깔끔을 떨자면 김치도 먹지 말아야 한다. 해외에 나갔다가 국적기를 타면 입구에서 마늘과 김치 냄새가 진동한다. 그것이 우리 냄새인 것이다. 탑승 전 양치질을 했더라도 몸에서 나는 냄새이다.

그래서 뮌헨에 단 하나 있는 한국 음식점은 마늘을 안 쓰는 조건으로 임차 계약을 했다고 한다. 건물 주인이 마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늘을 안 쓴 한국 음식이 맛이 있을 리 없다. 유일한 한국 음식점이라 거기 가지 다른 한국 음식점이 생기면 그 집에 갈 이유가 없다. 옛날만큼 김치를 많이 먹지는 않지만, 굳이 냄새 난다고 김치를 안 먹을 수는 없다. 한국인은 한국인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전철 안의 술 냄새가 싫다면 취객이 많은 늦은 시간을 피해 다니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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