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하얗게 쌓였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닌 길은 눈이 녹고 얼어 미끄럽다. 이웃 할머니 한 분이 길을 걷는다. 미끄러운 길인데 할머니 발걸음은 가볍다. 뒤를 따르던 필자는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할머니는 여전히 잘 걸어 간다. 미끄러운 길인데 어떻게 저렇게 잘 걸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여쭤보았다. “할머니! 미끄러운데 그렇게 잘 걸어가세요?” 씽긋 웃더니 왼쪽 발을 들어 신발 바닥을 보여준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할머니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털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신발 바닥을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신발이 골프화였다. 골프화 바닥엔 잔디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징을 박아 두었다. 골프화가 눈길을 미끄럽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신발로 용도 변경한 셈이다. 겨울철에 쓰지 않고 신발장에 보관해둔 골프화의 쓰임새를 새로운 곳에서 찾은 삶의 지혜다.
그 이후로 필자도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골프화를 미끄럼방지 신발로 신곤 한다. 모양새도 예쁘고 방수 처리가 돼 있어 눈이 녹아 길이 젖어 있는 경우에도 편리하다. 골프를 하는 사람은 대체로 두서너 켤레의 골프화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겨울 미끄럼 방지 신발로 신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일반 의류와도 잘 어울린다. 골프화의 용도변경이다. 카멜레온이 환경에 따라 보호색으로 바꾸는 현상도 같은 의미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동물이 진화함도 환경변화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고 용도변경의 하나가 아닐까? 환경이 급변하는 오늘날에 있어서 용도변경은 절실한지 모른다.
사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런 격언을 교훈으로 들으며 성장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환경변화 대응의 필요성을 누누이 들어왔으나 실천에 옮기는 데는 무뎠다.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는 속성을 가졌기에 자기 변신을 꺼려한다. 익숙해진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영광에 오래 머물기를 좋아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인생 1막과 2막의 환경과 삶의 목적이 같을 수 없다, 전반 생이 사회적 성공에 치중한 삶이었다면 인생 2막은 자기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찾는 자아실현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는 시기다. 골프화의 용도변경처럼 인생 2막의 환경과 목적에 맞는 삶으로의 자기 변신, 용도변경의 필요성을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