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꼭 이맘때쯤 나는 항암 치료를 마쳤다. 갈비뼈를 다쳐 치료하던 중 우연히 난소암을 발견했다. 놀랍다기보다 덤덤했다. 내 나이 다섯 명 중에 한 명이 걸리는 암이라는데 ‘나라고 피해갈 수 있겠냐’하는 심정이었다. 종양을 발견하고 머지않아 난소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항암 치료까지 이어졌다.
항암 치료는 한번 치료받는데 2박 3일 걸린다. 병원 입원 첫날은 예방 차원에서 수액을 맞는다. 둘째 날에 정식 항암 주사를 맞고 셋째 날에 퇴원하는 방식이다. 주사 치료는 암 종류나 증상에 따라 보통 세, 네 번에서 열두 번까지 받는다. 나는 여섯 번이었다. 항암치료 한 회가 끝나고 3주는 지나야 그다음 번 치료를 할 수 있다. 항암 치료를 여섯 번 받으려면 120일, 넉 달이 걸린다는 얘기다. 나는 항암치료 넉 달을 꿋꿋하게 이겨냈다.
항암 치료 후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이 제일 충격이었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았더니 한 움큼이 빠졌다. 누웠다가 일어나면 온통 그 자리가 머리카락투성이였다. 기분도 상하고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아서 미장원에 가서 스님처럼 머리를 깨끗이 밀어 버렸다. 가벼운 모자를 두 개나 샀지만, 날씨는 더워지고 잘 쓰지 않았다.
빡빡머리로 살기 시작하고 며칠 지나니 그런대로 눈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눈썹도 빠지고 없었다. 한동안 눈썹 없는 모나리자처럼 살았다. 눈썹은 머리카락과 달리 적당히 그릴 수라도 있으니 참을 만했다.
얼마 지나 머리카락이 새로 났다. 머리가 근질근질(?)해서 만져보았더니 머리통이 까끌까끌했다. 새싹이 난 것 같았다.
눈썹을 보니 거기도 거뭇거뭇했다. 주사치료가 끝난 지 꼭 두 달 만이었다. 신기하기만 했다.
故 이윤기 씨가 번역한 세계적인 명작 <그리스인 죠르바>를 보면 '산다는 건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삶'이라는 말이 있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죄다 빠져 절망하고, 극복해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다 보니 머리카락이 새로 돋아났다. 산다는 것, 살아있는 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머리카락 아닌가. 지금 나는 그때부터 새로 난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지 않는다. 멋있는 은빛! 나만의 스타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