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2. 27 (토)

새해 ‘웰다잉’ 준비는 ‘웰빙’의 시작

기사입력 2021-01-04 15:29:52기사수정 2021-01-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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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라이프③] 인생 정리

일본의 에세이스트 이노우에 가즈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50대부터 덧셈과 뺄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빼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나갈 때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빼고, 잘 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인생에 필요한 여러 정리법을 3회에 걸쳐 안내한다. ‘비움 라이프’의 마지막 글에서는 죽음을 성찰하고 삶을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한다. 8세기 인도의 고승 파트마삼바바는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죽음을 준비 한다”고 말했고, 19세기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풍조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모양이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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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한 죽음을 위해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양준석 연구원은 인간이 죽음을 기피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봤다. 세상과의 단절로 사람들에게 잊힐 것이라는 불안, 알 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 등이다. 양 연구원은 “죽음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때로는 한계를 직면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며 “죽음을 사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해 계획을 세울 때도 당장 3일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그 기간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을 상상해보면 허황된 다짐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며 “같은 이유로 새해에 유언장을 쓰고 한 해의 마지막에 다시 읽어보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와 같은 주장은 ‘웰다잉’(Well-Dying)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맞이하고, 인식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웰다잉 관련 시장 규모가 해외에 비해 크지 않다. 그러나 2020년 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 고령 인구로 진입하면서 관련 담론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여생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살고 싶다면, 죽음마저도 ‘액티브’하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새해를 맞아 지나온 삶을 톺아보고, 생의 마지막 서류들을 준비해보는 것이 ‘좋은 죽음’의 출발점이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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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서명하기

웰다잉은 연명의료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됐다.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에 대해 자녀들이 연명 치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병원에서 거부해 소송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김 할머니의 존엄사를 허용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고,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19세 성인은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두는 서류다. 작성을 하려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 방문해 본인 확인을 받아야 한다. 등록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서 찾으면 된다. 비용은 무료다. 만일 기관에서 비용을 요구한다면 보건복지부 지정 기관이 아닐 가능성이 있으므로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작성된 서류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며, 작성자는 언제나 이를 열람할 수 있다. 이미 작성한 경우라도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활용 방법은 환자의 의사 능력에 따라 나뉜다. 의사 능력이 있다면 담당 의사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서 서류를 조회하고, 환자에게 서류상의 내용이 현시점에도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라면,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하고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자는 8만 명 남짓이었지만, 2020년 11월 기준 총 74만 명으로 9배 가까이 늘었다. 그중 80% 이상이 고령층이다. 아직 전체 인구 대비 등록률은 미미한 편이지만, 초고령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만큼 앞으로 더욱 대중화할 것으로 보인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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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준비하는 작은 장례식

죽음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면서 장례식을 자발적으로 준비해 간소화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망자를 기리고 애도하는 자리가 유족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장례식장 문화를 보면 상을 당해도 슬퍼할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쁘다. 식장을 알아보고, 부고(訃告) 소식을 알리고, 조문객을 맞이하다 보면 식이 끝난다. 실제로 2015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1가구당 장례 평균 비용은 1300만 원 정도이며, 이 중 식장과 음식 접대비에 드는 비용이 80%에 달했다. 이와 같은 ‘보여주기식 의례’는 부모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면 불효라고 여긴 조선시대 유교적 풍토의 영향이 크다.

이에 소박하지만 진정성이 담긴 장례를 원하는 이들은 ‘사전장례의향서’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사전장례의향서란 원하는 장례 의식과 절차를 미리 적어놓는 일종의 유언장이다. 부고 범위, 장례 형식, 부의금 및 조화, 음식 대접, 염습·수의·관 선택 여부, 시신 처리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가 임종 직전 생명 연장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전장례의향서는 죽은 뒤 떠나는 방식을 정해놓는 서류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의 사전장례의향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장수행복노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캠페인을 처음으로 시작한 이광영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공동 대표는 “과거에는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염을 하고 수의를 입혔지만, 요즘에는 영안실에서 시신을 안치하고 화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가의 관이나 수의는 큰 의미가 없다”며 “장례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 역시 자식들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 절차를 최대한 생략하고 산에다 뿌린 다음 내 생일에 식사나 한 끼 하라고 일러두었다”며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고장이 나면 버리듯 때가 되면 육체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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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는 순간까지 유언과 같은 삶을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큼,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이의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언장을 써두는 것이 좋다. 유언장은 가족 간의 ‘상속 분쟁’을 방지함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법 제1060조에 따르면 유언은 민법에서 정한 방식에 의해서만 행해져야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양식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유언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신이 남긴 유언장으로 가족 간 잡음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써야 한다.

유언은 크게 자필증서, 녹음, 공증증서, 비밀증서 등 5가지로 나뉜다. 그중 가장 많이 쓰이는 유언 방식은 자필증서다. 자필증서는 말 그대로 본인이 직접 종이에 작성하는 유언이다. 본인의 의지가 담겨 있더라도 타인이 대신 썼거나, 컴퓨터로 작성한 유언은 인정받지 못한다.

유언장에는 이름, 날짜, 주소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강원남 소장은 “어르신들이 유언장 쓸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주소를 적지 않는 것”이라며 “아파트 동과 호수까지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유언장에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유언의 법적 효력 여부를 두고 다툼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쓴 유언장이라도, 자신의 삶이 유언과 닮아 있지 않다면 가족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족들이 유언의 내용을 지키길 원한다면 타인의 모범이 되고, 유언의 내용에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강 소장은 “본인이 베풀지 않고 살았는데, ‘나누며 살라’는 말을 남기면 자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생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설령 유언장이 없어도 자식들은 그 모습을 본받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언장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유언장과 일치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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