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강신영, 김종억 동년기자와 내가 백두산 트레킹 팀(총 33명)에 합류했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발상지. 또 개국의 터전으로 숭배되어온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어떤 결의에 찬 출발이라기보다 막연히 뿌리를 보고 싶었다. 또 더 나이를 먹으면 백두산에 오르기 힘들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일찌감치 4박 5일의 여행 일정표를 받았지만 비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는 최근 불과 몇 년 동안 우후죽순처럼 중국음식점이 늘어났다. 중국어가 어우러진 간판들을 보면 마치 중국인 거리가 형성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동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짜장면, 짬뽕 등 한국인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팔지만 이러한 중국음식점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중국음식을 판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서울근교지역만 하더라도 대림역
‘문화유산’이란 인류가 창조한 유·무형의 역사적인 조형물과 자연적인 문명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에 관심을 두고, 세계 속에서 빛나는 것들은 무엇인지 알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퇴직 후 향토문화해설사와 전통문화지도사로 활동하며 그동안 노트에 끼적여둔 ‘우리 문화’에 대한 것 몇 가지를 공유해본다.
택견과 아리랑
지난 6월 30일(현지시각),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의 산사(山寺) 7곳이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열세 번째 유네스코 세계 유산을 갖게 되었으니 7곳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다.
당초 통도사와
소풍 때만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와 함께 김밥을 말았다.
김밥 가게가 생겼을 때 ‘과연 이게 팔려?’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소풍날 아침이면 너도나도 김밥집으로 향한다. 흔하디흔한, 빠르고 간편한 먹거리 김밥. 일상 속에서 쉽게 집어 들던 김밥에 형형색색 특별함을 더해 세계 속에 화려한 모습으로 선보인 이가 있다. 바로 ‘김밥 셰프’로 불리는 김락훈(
지금은 베트남이 친숙한 이름이지만 예전에는 월남으로 통칭되었고, 특히 월남전으로 상기되는 우리에게 있어선 ‘베트콩’과 미국 영화 ‘람보’가 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1964년 9월을 시작으로 건군 이후 최초로 해외에 우리 국군이 파병됐다.
주월사 부대를 필두로 맹호, 백마, 청룡, 비둘기, 십자성,
조선 제21대 왕 영조가 효성이 지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는 7세 남짓 어린 나이에 무수리로 입궁했다. 그 후 숙종에게 성은을 입기까지 15년 동안 궐내에서 온갖 천한 일을 도맡아 하며 힘들게 살았다. 어머니가 침방 나인 시절에 세누비가 가장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조는 평생 누비옷을 걸치지 않았다고 한다.
기록에
국제결혼의 시작은 국제결혼 회사와의 상담부터 시작된다. 남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제적 능력, 어떤 여자를 원하는가 등을 고려한 상담을 통해 맞는 여성을 고르는 것이다. 국제결혼 회사는 서로의 프로필을 인터넷에 올리고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오면 서로 영상 통화를 하게 한다. 그리고 베트남으로 가 맞선을 본다. 둘이 오케이 하면 신부는 그날 산부인과에 가서
“퇴직 전 교직에 있을 때부터 한국어 강사를 하고 싶었어요.”
현재 다양한 기관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 중인 이상용(李相庸·64) 씨는 평생 초등학교 교단에서 활동해온 교사 출신. 40여 년간을 넘게 학교에서 근무하다 2015년 8월 정년퇴직했다.
원래 영어를 전공한 데다, 학교 내에서 교감과 교장 등 중책을 맡으면서 다양한 다문화가정을 경험했다. 자
2011년의 일이다. 간송미술관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기나긴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풍속인물화대전’에서 공개하는 조선시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1813)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는데 특히 ‘미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