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을 결심하기 전, 원하는 마을을 미리 둘러보게 될 것이다. 이왕 방문을 계획했다면 휴가를 겸해 마을의 명소와 맛집도 두루 즐기고, 다양한 농촌 체험도 맛보기로 해보자. 마을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활용해 체험과 휴양 공간을 제공하는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라면 가능하다. 지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 귀촌·귀농의 성패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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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있고 애국가 가사에도 들어있지만 법적으로 나라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나라 최고훈장 명칭이 무궁화 대훈장, 국기의 깃봉은 무궁화 봉우리 모양 등 국화(國花)가 무궁화임을 전제하는 규정들은 다수 존재하는데도 나라꽃으로 지정받지 못한 이유를 자료를 통해 알아봤다.
무궁화를 국화로 법제화해야 한
처음에는 귀촌 목적이 아니었다. 꽃향기, 흙냄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텃밭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부부는 사랑에 빠지듯 덜컥 첫눈에 반해버린 땅과 마주했다. 부부는 신이 나서 매일 밤낮없이 찾아가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땅은 씨앗을 감싸 안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온몸으로 품었다. 텃밭은 꽤 큰 대지가 됐고, 이후 정자와 살 만한 집도
100년 만에 왔다는 최악의 폭서(爆暑)가 근 한 달간 우리 곁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뜨거운 불, 하나로도 모자라 두 개로 온 누리를 덥히고 있는 본격적인 염천지절(炎天之節)이다. 어릴 적 시골의 여름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한낮 더위를 피하고 저녁에는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환한 달빛을 양념으로 마당 밥을 먹곤 했다. 늦게까지 두런두런 서로의 이야
토박이는 여러 세대를 내려오면서 한 곳에 살아온 사람을 말한다. 요즘에는 도시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면 도시 토박이로 인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무작정 한 곳에서 오래 살기는 어렵다. 토박이가 되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관악구에서 산 지 35년이 훌쩍 넘었다. 인생의 절반이다. 이웃과 정을 나누며 고향처럼 느껴지는 아담한 곳이다. 뒷동산 체육공원
글 김민혜 동년기자(한국농어촌공사 창녕지사)
자연친화적이고, 느린 삶에 대한 도시민의 소망은 최근 TV 프로그램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설마 귀촌생활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보통 귀촌에 대한 의견을 부부에게 물으면, 여자 분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도 없고, 놀러갈 곳도 없는 산속 오지에서 어찌 살란 말이오?” 하
직장을 퇴직한 시니어 중 하는 일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남달리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바로 액티브 시니어다.
바쁘든 바쁘지 않든 그동안 살아온 인생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왕성한 에너지로 책을 쓰고 글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목적을 위해 내가 10년 전에 시작한 것이 ‘책과 글쓰기 학교’다. 2년
50여 년 전 가족을 따라 우연히 전라도 나주에 왔다가 한국 학자로 살게 된 베르너 사세(Werner Sasse·78) 전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월인천강지곡, 농가월령가, 동국세시기 등은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한국 고대 언어 연구를 위한 목록들이다. 서독인 최초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에서 한국학과를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직 후에는 아예 한
기온이 비현실적으로 올라가니 세상도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모든 사물이 흐느적거리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이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이 이해될 지경이다. 문득 카뮈가 겪었던 모로코의 더위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부극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렇게 얼굴을 찡그렸던 건 바로 그 황야의 불쾌지
다른 사람들은 멋 내기로 선글라스를 쓰는데, 필자는 건강을 위해서 쓴다. 안력이 약해서 눈이 아파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안경이 익숙지를 않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년 전, 눈에 백내장이 와서 안과에 간다는 지인을 따라나섰다가 우연히 눈 검사를 하게 되었다. 백내장인 지인은 수술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그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