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은퇴지로 삼고 살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10년이 훅 가버렸다.
은퇴 후의 남은 생을 의탁할 곳을 찾는 일은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인데도 필자는 너무 쉽게 즉흥적이고 감상적인 모티브로 결정했다고 주변에서 걱정한다. 그러나 이 경솔한 선택의 결과는 대박이다. 1992년 몸 쌩쌩한 어머니의 90회 생일을 자녀들만 모여 조촐한 파티로 치렀
좁고 불편한 비행기 좌석에 앉아 비몽사몽간에 몇 시간을 버티었을까? 몸도 뒤틀리고 다리도 저리고….그렇게 고통의 몇 시간이 흐르고 나니 창문틈으로 말간 빛이 흘러들어왔다. 비행기 안에서 쪽창문을 열고 내다본 바깥세상은 어렴풋 켜켜이 쌓인 만년설 위를 지나가는 듯 한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구름이라는 것을 인지하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
나름대로 큰 사업을 했던 남편은 다행히도 낯선 이민생활에 잘 적응을 해 나갔다. 그러나 빈손으로 무작정 시도한 모험이었기에 헤쳐나가야 할 과정은 험난하고 어두운 터널의 연속이었다.
한 달에 통틀어 1350달러 수입으로는 집세 900달러 내고 나면 생활하기가 빠듯하다며 잡(일거리)하나를 더 해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흐트러져 남은 일들 수습하기도 바쁜 덕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놈)가 말해주듯이 조기 퇴직하는 사람은 많은데 퇴직 후 일자리가 없어서 시니어들의 앞길이 막막하다. 기자는 농업에 뜻이 있는 시니어라면 황후의 꽃으로 불리는 칠자화를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충남 서산시 고북면 용암리 서산아로니아랜드를 방문하였다.
며느리는 아기를 맞이하는 첫 작업으로 아기 방을 꾸몄다. 첫 아기가 성별이 중요하지 않았겠지만 아기를 모실 방을 꾸미기 위하여 성별을 알아야만 했다. 탄생 전의 아기 성별이야 식은 죽 먹기 의술이다. 아기궁의 주인은 왕자였고 아기방은 은은한 푸른색의 세상이 되었다. 천장에는 하늘의 별이 반짝인다. 요람의 모서리에는 늠름한 장군의 천리마가 아기를 호위할 모양
소녀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은 대구시 삼덕동이었다. 그곳 삼덕동의 중앙초등학교에서 4학년까지 다니다가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와서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교동초등학교로 전학하던 그때가 소녀에게는 서울 사람의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삼덕동 소녀의 집에는 동네에서 제일 큰 마당이 있었고 여름에는 그 마당 한가득 형형색색의 이름 모를 꽃이 피고 졌
1964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경제기획관, 경제기획국장, 재무부 차관보, 재무부 차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해 살아온 이형구(李炯九·76) 전 노동부 장관. 대개 한 분야에서 탄탄대로 삶을 산 이들은 자기계발서나 자서전을 쓰곤 하지만, 그는 그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일생의 사명감을 가지고 쓴
필자는 남편과 한 달에 한 번 실갱이하는 날이 있다. 바로 머리 깎는 날이다.
남편은 그날이 오면 지루하게 앉아 있을 접이 식 조그만 의자, 싹싹 갈아 보관한 날렵한 가위, 미국에서 사온 100V짜리 전기 바리 깡, 주섬주섬 주어 모은 각양각색 못 생긴 빗들, 한국의 220V에 끼우려면 다운 트렌스까지 좁아 터진 목욕탕 변기뚜껑 위에 늘어놓는다. 총 출동
1998년 8월 남편은 왕복 비행기 표 1장과 이민 가방에 달랑 옷가지 몇 벌을 담아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다. 6개월에 걸쳐 필자가 설득시키고 단행한 1차 이민이었다. 온 나라에 경제 위기와 그 도미노 현상으로 가정이 휘청거려 별다른 대책이 없어 무조건 단행한 모험이었다.
온 살림에 빨간 딱지가 붙고 집은 경매로 날아갔다. 게다가 여기저기 쏟아지는 빨간
국가 경제에서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는 분야가 제조업이다. 그런데 최근 조선업의 구조조정 등 제조업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에 인천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은 지난 8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쉐라톤인천호텔에서 아침포럼으로 '기로에 선 한국의 제조업'이란 주제로 산업연구원 주현 부원장의 강연회를 열었다.
주 부원장은 “한국이 2015년 GDP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