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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시골집의 재탄생 ‘규암리자온길’
- 백제고도 부여에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백제 유적지 말고는 이렇다 할 관광 콘텐츠가 없어 아쉬웠다. 2년 전 규암면 규암리 자온로에 ‘자온길 프로젝트’라는 마을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 첫 단추가 독립서점 ‘책방세간’이었다. 호기심을 안고 찾아간 시골 책방은 꽤 신선했다. 지금 그 마을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다시 가봤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을 재생 프로젝트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백마강을 건너 규암리로 향했다. 시내에서 차로 고작 5분 정도 떨어진 마을인데 딴 세상인 듯 고요하다. 규암 나루터 인근 골목에서 ‘책방세간’을 다시 만났다. 2년 전 모습 그대로 있어주어 고마웠다. 시골에서 책방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책방 주인도 그런 사정을 잘 알 텐데, 이곳에 책방을 연 이유가 궁금했다. 자온길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하고 진행하는 박경아 씨는 “부여에 제대로 된 서점이 없어요. 규암리에 가장 필요한 문화공간이 책방이라고 생각했어요. 책방세간이 전통문화를 알리고,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그가 시골집에 책방을 차린 사연은 규암리의 전성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규암리는 해방 전후만 해도 200여 가구가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규암장터가 열리면서 규암나루터에 배가 무시로 드나들었다. 마을 거리에는 선술집과 여관이 즐비했다. 극장과 백화점도 있었다. 규암리의 전성기는 1968년 백제교가 놓이면서 막을 내렸다. 육상 교통이 발달하면서 나루터가 제구실을 못하게 됐다. 상권은 부여읍으로 옮겨갔고,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붐비던 장터 국밥집, 부여에 처음 세워진 극장, 양조장 등이 폐허가 되었다. 집주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도 늘어갔다. 약 20여 년 전 부여전통문화대학교 재학생이었던 박 대표가 규암리의 방치된 근대건축물들을 눈여겨본 것이 자온길 프로젝트의 바탕이 됐다. 자온길 프로젝트는 규암면의 버려진 공간들을 개조해 전통문화 예술마을로 꾸미는 마을재생사업이다. 빈집과 상가들이 차근차근 전통공예 작가의 작업실과 쇼룸, 로컬푸드 레스토랑, 카페, 책방, 한옥 스테이, 북 스테이 등의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구심점이 책방세간이다. 임 씨네 담배 가게가 책방이 된 사연 책방세간은 원래 ‘임 씨네 담배 가게’로 불렸다. 담배와 잡화를 팔던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다. 책방으로 개조할 때 외벽과 내부 구조물을 최대한 헐지 않았다. 천장 위에 숨어 있던 서까래와 내벽 속 나무 문을 찾아내 복원했다. 임 씨가 잡화를 팔던 공간은 책방세간의 메인 공간이 되었다. 담배를 팔던 옆 공간에는 책장과 테이블을 두었다. 책장은 사실 담배 진열장이다. 벽면에 은박 벽지를 발라 담배 속지를 표현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카운터는 지붕을 덮었던 함석판과 담배 가게의 금고로 꾸몄다. 임 씨 가족의 거주 공간은 카페로 개조했다. 벽장이 있는 작은 방에는 동화책과 전통 놀이 도구를 넣어 키즈존을 만들었다. 이 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벽장에 숨어 책을 읽는다. 책방세간만의 특징이라면 전통공예가 대중의 일상에 시나브로 스며들길 바라는 책방지기의 마음이 책방 구석구석에 표현돼 있다는 것이다. 공예·디자인 서적의 비중이 높으며, 책과 전통공예품을 함께 배치해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청자 잔에 말차라떼 주세요” 책방세간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전통공예품 숍 ‘편지’가 문을 열었다. 우체국이었다가 전파사로 사용됐던 건물을 고쳐 생활소품, 의류, 생활도자기 전시·판매장으로 사용한다. 도자기 판매장 유리창에 붙은 ‘전파사’ 글자가 그 흔적이다. 삼각 지붕을 얹은 회벽 건물은 단박에 적산가옥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규암리에는 일본이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여지소가 있었다. 일본인들이 수탈한 쌀을 규암나루터에서 배에 싣고 백마강을 건넜다고 한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편지’를 에워싼 아름드리 밤나무, 보리수나무, 향나무는 싱그럽게 자랐다. 카페 수월옥의 사연도 만만찮다. ‘빼어난 달’이란 뜻을 지닌 수월옥은 술과 음식을 팔던 요정이었다. 한 세대를 건너 카페 수월옥으로 다시 태어났다. 폐가와 다름없던 건물이 부여 핫 플레이스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을 주민들은 공사를 하다 만 것 같은 건물에 손님들이 많으니 신기해한다. 수월옥은 건물이 두 채인데 한 채는 내벽 콘크리트를 드러내 모던한 분위기를 살렸고, 한 채는 한옥 느낌을 살려 좌식으로 꾸몄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가구와 소품은 색동무늬 방석, 소반, 골무, 도자기 등의 전통공예품을 사용했다. 수월옥은 차 주문법도 독특하다. 선반에 놓인 청자, 백자, 진사, 분청사기 등의 찻잔을 고를 수 있다. “청자 잔에 말차라떼 주세요” 하고 주문하니 바리스타가 말차라떼 빛깔과 비슷한 청자 잔에 차를 내준다. 꽃봉오리 모양 청자 잔과 말차라떼의 조화가 찰떡궁합이다. 수월옥은 SNS 사진 맛집으로 소문났지만, 사실 차 맛집이었다. 활기를 되찾는 규암리 옛날 국밥집은 ‘웃집’이라는 이름의 독채 숙소가 되었다. 전통공예품 쇼룸과 숙소가 결합한 형태로 꾸며졌다. 한옥스테이 이안당은 일본식 건축 양식을 접목한 100년 된 근대 한옥이다. 옛 자온양조장 건물에 딸린 살림집으로,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이었다고 한다. 너른 마당에는 깊은 우물이 있고, 마당에서 양조장 굴뚝이 보인다. 주인이 사용했던 자개장, 경대, 항아리, 도자기 등의 세간살이가 세월을 안은 채 그대로 있다. 오래된 건물은 고쳐 사용하는 것보다 부수고 다시 짓는 게 수월하다고 한다. 박경아 씨에게 도시 재생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옛집을 허물고 똑같이 다시 짓는다고 해도 그 옛집이 아니잖아요. 세월을 재현할 수 있나요. 문화재를 똑같이 만들 수 없듯 옛집도 그런 것 같아요. 비록 문화재적 가치가 낮은 서민들의 근대 가옥이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 역사이니까요.” 자온로를 산책하며 옛것의 가치와 도시 재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도시 재생은 죽어가는 건물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생명을 이어주는 작업이 아닐까. 쇠락했던 규암리가 사람들의 온기로 다시 따듯해지길 기대해본다. ◇ 이색 명소 & 맛집 ◇ 궁남지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1400여 년 전인 백제 무왕 때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연못 둘레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중앙에 신선이 노니는 산을 형상한 섬을 만들어 왕궁의 정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궁남지는 무왕의 잉태지였다. 여름에는 연꽃이 가득 핀 풍경이 장관이며, 야간산책 명소로도 유명하다. 연못 중앙의 정자와 다리에 조명을 켜놓는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4시간 개방, 입장료 무료. 부여서고 책방세간 바로 옆에 있는 수공예품 편집숍이다. 책방처럼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부여서고’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동남아에서 수입한 라탄소품, 가방, 모자, 의류, 머플러, 도마, 문구, 조명 등의 생활 잡화와 천연염색 소품을 판다. 우리나라 작가가 만든 상품도 있다.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자온로 84 장원막국수 구드래나루터 근처에 있는 오래된 가게다. 허름한 시골집의 작은 방에 앉아 막국수를 먹노라면 할머니 댁에 놀러온 듯하다. 메뉴는 메밀막국수와 편육 두 가지뿐이다. 메밀막국수 면발은 조금 가늘고 쫄깃하다. 시원한 육수는 새콤달콤한 편이다. 돼지 목삼겹살로 만든 편육에 막국수를 감아 먹어보길 권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나루터로62번길 20, 11:00~17:00, 메밀막국수 7000원
- 2020-08-3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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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독자를 위한 9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퓰리처상 사진전 일정 10월 18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언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 사진전이 6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1942년부터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까지 총 134점의 수상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사진 부문에서 수상한 로이터통신 김경훈 기자의 작품도 공개된다. 제3전시실에서는 2014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 도중 사망한 여성 종군기자 안야 니드링하우스를 기념하는 특별전을 진행한다. 수상작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필름과 퓰리처상 주요 수상작을 미디어 아트로 구성한 영상 콘텐츠도 제공한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일정 9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진행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공모사업의 결과 보고전이다. 전시에 참여한 ‘강남버그’와 ‘SQC’는 디자이너, 건축가, 연구자로 구성된 팀으로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창작자들 간 협업을 지원하는 사업 취지에 따라 선발됐다. 이번 전시에서 강남버그는 ‘천하제일 뎃생대회’, ‘강남버스’ 등 강남의 과거와 현재를 표현한 작품으로 한국 사회의 쟁점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SQC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밀려난 종로3가 소수자를 ‘도시퀴어’라 명명하며 이들의 문제에 주목한다.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 일정 9월 27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신규 지정된 국보·보물을 공개한다. 국보 제151-1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을 비롯해 총 83건 196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를 지키다’, ‘예술을 펼치다’, ‘염원을 담다’ 등 총 3부로 구성돼 각각 기록유산과 예술품, 불교 문화재를 소개한다. 전시실 입구에서 보여주는 국보와 보물에 대한 전문가와 시민들의 인터뷰와 영상은 문화유산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전시장을 찾지 못하는 관람객을 위해서 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온라인 전시도 진행한다. ◇명상 Mindfulness 일정 9월 27일까지 장소 피크닉 ‘코로나블루’를 겪는 현대인들을 위한 맞춤형 전시. 명상이 주는 힘과 의미를 회화, 영상, 공간디자인 등 총 8점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설명한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대만 작가 차웨이 차이,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타츠오 등 실제로 수행을 실천하는 각 분야 예술인들이 전시에 참여한다. 동양적이고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나선형 구조의 설치작품 ‘느리게 걷기’, 공간 전체를 주황빛으로 연출한 작품 ‘공간’ 등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들을 곳곳에 배치해 관람객들이 작품보다는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 Stage ◇캣츠 일정 9월 9일~11월 8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트레버 넌 출연 조아나 암필, 앨리스 배트, 헤이든 바움 등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T.S. 엘리엇의 우화집이 원작이다. ‘젤리클 축제’에 모인 고양이들의 다양한 사연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초연 40주년을 기념해 세계적인 디바 ‘조아나 암필’, 한국인이 사랑하는 월드스타 ‘브래드 리틀’ 등 최고의 기량을 갖춘 배우들이 함께한다. 2017년 한국 뮤지컬 사상 최초 200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 진행되는 첫 공연이다. ◇킹키부츠 일정 11월 1일까지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연출 조광화 출연 이석훈, 박은태, 김지우 등 팝 가수 신디 로퍼가 작사·작곡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폐업 위기에 처한 구두공장을 살리기 위해 여장 남자용 부츠 판매에 뛰어든 두 남자의 도전기를 담았다. 1980년대 영국 W.J. 브룩스 공장의 실제 성공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마리퀴리 일정 9월 27일까지 장소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태형 출연 김소향, 옥주현, 김히어라 등 과학자 ‘마리퀴리’의 삶을 각색한 팩션 뮤지컬로 리튬 발견이라는 업적 뒤에 가려진 인간 마리퀴리의 고뇌를 밀도 있게 그렸다. 초연 당시 5인조였던 라이브 밴드를 7인조로 보강해 무대의 완성도를 높였다. ● Movie ◇오! 문희 개봉 9월 2일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정세교 출연 나문희, 이희준, 최원영, 박지영 등 평화로운 농촌마을, 뺑소니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 ‘문희’와 그의 아들 ‘두원’이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관록이 빛나는 나문희와 리얼리티 연기의 대가 이희준의 호흡이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특히 59년 연기 인생 최초로 액션에 도전한 나문희는 나무에 오르고 트랙터로 논두렁을 달리는 등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선보여 기대를 모은다. 정세교 감독이 나문희를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쓴 만큼 ‘문희’가 나문희의 ‘인생 캐릭터’로 새롭게 등극할지 주목된다. ◇카일라스 가는 길 개봉 9월 3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정형민 출연 이춘숙 80대 최고령 오지탐험가 이춘숙 씨의 ‘카일라스’ 순례 여정기를 담은 로드무비다. 자연을 거닐며 인생을 돌아보고 다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 씨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개봉 9월 예정 장르 액션 감독 매튜 본 출연 랄프 파인즈, 해리스 딕킨슨 등 킹스맨 시리즈의 프리퀄 영화로 베일에 싸여 있던 킹스맨의 기원을 밝힌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전쟁을 모의하는 폭군과 범죄자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 Book ◇나는 당신이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주홍 저·비타북스) 대한민국 치매 주치의 박주홍 박사가 치매 예방에 좋은 생활 루틴을 제안한다. 컴퓨터를 배우며 치매를 늦춘 할머니, 꾸준한 산책으로 기억력이 개선된 환자 등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뇌 활성화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8개 지압법과 31가지 부위별 뇌 강화 운동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소설여행 (김유정 저·나무나무)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렌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발리 등 소설 속 도시를 향해 떠난 작가의 에세이. 17곳의 여행지 소개와 더불어 소설의 의미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코로나가 시장을 바꾼다 (이준영 저·21세기북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공저자인 이준영 교수가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소비 트렌드를 7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홈코노미’, ‘로컬리즘’ 등 포스트코로나 시대 소비 지형을 조망한다.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 (빅터 프랭클 저·청아출판사)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1946년 오스트리아의 한 시민대학에서 했던 강연을 책으로 옮겼다. 고난 속에서도 삶에 대한 긍정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 2020-08-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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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시작하고 인생이 바뀌었어요“
-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교육전문가 마크 프렌스키가 2001년 발표한 논문에서 사용한 말로,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하며 자란 세대를 뜻한다. 반면 디지털의 발달을 따라잡을 수 없는 기성세대를 '디지털 이주민'이라 부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주민의 억양을 완벽히 구사할 수 없는 이주민처럼 이들 또한 젊은 세대만큼 시니어들 또한 디지털에 익숙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요즘 시니어들은 디지털 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더 나아가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한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혼자 힘으로 구독자 1만여 명을 모으고 책까지 쓴 유튜브 요리 채널 ‘주코코맘의 미각’ 운영자 주미덕 씨(63)가 대표적인 예다. 한평생 자식과 손자의 뒷바라지를 하다 60대의 나이에 비로소 꿈을 펼치기 시작한 주 씨. ‘한국판 모지스 할머니’라 불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유튜브를 하기 전까지는 5살배기 손주들 돌보며 육아에 전념하고 살았어요. 그 전에 직장도 없었고요. 그러다 손주들이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서 낮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딸이 그동안 애들 기르느라 고생했는데 엄마도 유튜브 보지만 말고 한번 해보라며 슬쩍 권유를 하더라고요. 원래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고, 유튜브도 자주 봤거든요. 딸의 말에 용기를 얻고 요리 채널을 열었죠. Q. 촬영이나 편집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혼자 다 하고 있어요. 촬영하는 법은 작은 문화센터 다니면서 배웠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4회 정도 배우니 할 수 있겠더라고요.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2시간 만에도 배울 수 있대요. 촬영이랑 편집도 스마트폰 하나로만 해요. 편집은 '키네마스터'라는 앱을 사용하고 있고요. '브이로그' 같이 영상미가 중요한 콘텐츠는 좋은 카메라로 찍으면 더 좋겠지만, 장비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과 진정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Q. 수익을 얻기도 하셨는지요? 시작한 지 7개월 좀 넘었을 때부터 광고가 붙었어요. 구독자가 1000명쯤 됐을 때였죠. 광고 붙은 첫 달에 120만 원, 그다음 달에 140만 원 이렇게 들어오더라고요. 사실 수익이 주기적이진 않아요. 요즘은 그 정도도 안 들어오고요.(웃음) 그래도 이렇게 하다 보니 알게 된 건,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이 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 그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돈을 지불하면서 듣고 싶은 중요한 자원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Q. 유튜브 시작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인생이 바뀌었어요. 유튜브를 시작하니 유튜브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쓰게 됐고, 책을 쓰니까 강연 요청이 오더라고요. 그러면 강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또 찾아서 스피치 수업도 듣고, 파워포인트 만드는 법도 배웠죠. 그렇게 이것저것 하다 보니 교수님들부터 젊은 세대들까지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할머니들끼리 모여서 옆집, 윗집 흉보는 게 아니라 4차 산업이나 유튜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생에 활력이 생길 수밖에 없죠. 뒤늦게 학생이 되었다는 기분으로 살고 있어요. Q. 유튜브 이외에도 새로 배우고 계신 분야가 있는지요? 요즘은 집 밖에 나가기도 좀 그렇잖아요. 직접 강의를 들으러 다닐 수 없으니까 '줌'(온라인 화상 회의 플랫폼)으로 공부를 많이 해요. 줌에 스마트폰 활용법부터 마음 정리하는 법 등 여러 강의가 많아요. 얼마 전엔 온라인 마케팅 강의도 들었어요. 실력을 더 쌓고 좋은 기회가 오면 인터넷으로 요리를 판매해보고 싶어서요. 세상이 참 좋아졌어요.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에요. 남편도 요즘 인터넷으로 캘리그라피 배우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은가 봐요.(웃음) Q. 60대로서 또래 시니어에게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려요. 오늘이 내가 사는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나이 들었다고 못 할 거 없어요. 특히 전문직에 종사하셨던 분들은 은퇴 후 본인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 지식을 공유하면 더 잘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저도 옛날 같으면 눈도 아프고 여건도 안 돼서 못 했을 거예요. 근데 요즘은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잖아요. 여러모로 힘든 시기지만, 이 또한 지나갈 테니 모두 힘내서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 2020-08-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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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지하철 타고 '쓩쓩'
- 하늘길이 닫혔다. 매년 당연하게 떠났던 해외여행은 잠정 중단되어 여행 일상에 제동이 걸렸다. 방구석 세계 탐방을 몸풀기로 시작했다. ‘부루마블’ 보드게임에서 아무리 많은 도시에 호텔을 사도 없어지지 않는 현장감을 채우고 싶었다. 안전상 멀리 떠날 수 없어 선택한 여행지는 ‘서울’. 이 도시에 뿌리내린 다른 나라를 찾아 나섰다. 거미줄 망처럼 펼쳐진 지하철을 이용해, 술 빚는 여행작가가 추천하는 서울 속 세계 음식점을 탐방해보자. 사직동 그 가게 아는 작가 동생이 이곳에서 일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원활동가이며 ‘지기’라 불린다. 사직동 그 가게는 록빠(티베트 난민구호 단체, 티베트어로 ‘돕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이 공간은 지기들의 재능기부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사직동 그 가게. 구어체 느낌의 상호다. 사직공원을 돌아 들어오면 약간 외따로 떨어진 가게가 보인다. 오른편은 티베트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소품 가게이며, 왼쪽 붉은 벽돌 문으로 들어오면 카페와 식당이 보인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그 흔적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이 가게는 인도 짜이, 라씨 그리고 커리를 판매한다. 커리를 주문하는 손님들은 주로 새우커리와 치킨커리를 선호한다. 두부커리, 시금치커리 같은 비건 메뉴도 있다. 인도 전통의 맛을 최대한 재현할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아늑해 아지트에 머문 기분이 든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9길 18 지하철역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454m 영업시간 매일 12:00~20:00 (Last order 19:30) 이스탄불그릴 공덕역 인근 노후한 건물들이 헐리고 새로운 마천루가 세워졌다. 자영 업장들이 서서히 건물 1층을 채웠다. 이스탄불그릴(Istanbul grilll)은 터줏대감 가게 중 하나다. 터키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는 터키식 양갈비 그릴이 주요 메뉴다. 이스탄불그릴 사장님은 한국어에 능통하다. 벽면에는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사장님의 캡처 사진이 붙어 있다. 보통 두 명이 오면, 가장 무난한 메뉴가 이스탄불그릴(2인분)이다. 터키 빵+오늘의 수프+메인메뉴(그릴)로 취향에 맞게 6가지 종류로 세팅돼 있다. 식후에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152 지하철역 5·6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공덕역 1번 출구에서 312m 영업시간 매일 11:00~15:00, 17:00~22:00, 주말 11:00~22:00 (명절 휴무) 레스쁘아 뒤 이부 지갑을 잃어버렸다. 함께 있던 친구는 내 행적을 물으며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도로 옆 우거진 쥐똥나무 속을 뒤지더니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다. 그 답례는 레스쁘아 뒤 이부(L'Espoir du Hibou)에서 이뤄졌다. 레스쁘아 뒤 이부는 청담동 속 작은 프랑스를 연상케 한다. 임기학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12년 차 프랑스 정통 레스토랑이다. 그는 뉴욕 미슐랭 레스토랑인 다니엘(Daniel)에서 근무한 이후 이곳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미슐랭 2020 가이드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높은 인지도만큼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오면 볕 좋은 오후, 테라스에 앉아 유유자적 프렌치 요리와 와인을 즐기기에 탁월한 공간이 나타난다. 5만 원에 제공되는 런치 메뉴는 애피타이저부터 본 요리까지 순서대로 맛볼 수 있다. 하우스 스페셜 메뉴인 ‘오리 다리 콩피’는 이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다. 콩피는 염장한 오리를 기름에 넣어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삶은 뒤 굽는 프랑스 정통 조리 방식이다. 그밖에 킹크랩과 엔다이브샐러드, 양파수프, 광어파스타, 에스카르고(달팽이요리)를 추천한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2길 33 지하철역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에서 456m 영업시간 매일 12:00~15:00, 18:00~22:00 (명절 휴무) 파르투내 색이 바랜 만국기가 펄럭인다. 여기는 동대문과 맞닿은 광희동. 만국기 아래 터를 잡은 몽골인들. 몽골타운 옆에는 중앙아시아 거리가 있다.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기점으로 접경 지역에 있는 나라의 동포들이 이곳에 모여 살면서 상점을 형성했다. 여기는 ‘서울의 실크로드’다. 그 중심에는 파르투내(Restaurant Fortune)가 있다. ‘Fortune’는 러시아어로 ‘파르투내’이고, 영어로는 ‘포춘’이라 명명한다. 우즈베키스탄 남편과 러시아 아내가 9년째 운영 중이며, 건물 1층은 케이크 등을 판매하는 카페, 2층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본격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다. 얼마 전, 맞은편에 식품 마트를 새로 오픈해 총 3개의 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지인과 우리나라 손님 모두에게 인지도가 높다. 메뉴 책은 두껍고 무거워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수프, 샤슬릭, 차가 기본 조합이다. 샤슬릭은 양, 닭, 소고기를 구운 러시아식 꼬치 요리인데, 평소 우리가 흔히 아는 꼬치보다 3배 정도 크다. 우즈베키스탄식 누들수프인 라그만은 기름진 우육면과 비슷한 식감이다. 감자샐러드 속에 당근과 비트 그리고 청어가 들어 있는 독특한 청어샐러드도 있다. 러시아 맥주 발티카와의 페어링이 무난하나, 러시아산 보드카에 도전해보자. 후식으로는 꿀 케이크인 메도빅과 러시아 차를 권해본다.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 154 지하철역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6번 출구에서 121m 영업시간 매일 10:00~23:00, 일요일 09:00~22:00 (첫째, 셋째 주 월요일 휴무) 페트라 페트라(PETRA)는 서울 지부 중동 음식 순례지 중 0순위로 꼽힌다. 한국에서 중동 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대표 야서 가나옘은 순수 요르단 출신이다. 폭넓은 중동 음식 중 동지중해 부근의 레반트(Levant) 지역 음식을 선보인다. 특히 대부분의 재료를 요르단에서 공수해온다. 음식점 내부 문양만 봐도 이슬람 사원 속 어딘가에 온 듯하다. 페트라는 할랄 의식을 치른 고기로만 요리하는 할랄 레스토랑이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의 메뉴도 있다. 병아리콩을 삶아 각종 채소와 섞어 동그랗게 튀긴 팔라펠이 대표 메뉴이며 홈머스, 타볼리샐러드, 캅사, 쿠스쿠스 등 요르단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40길 33 지하철역 6호선 녹사평역 1번 출구에서 181m 영업시간 매일 11:00~22:00 울프하운드 펍(Pub)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준말로 ‘공공장소’란 뜻이며, 맥주의 동력으로 이야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펍이 유래한 영국뿐만 아니라 그 옆 나라 아일랜드에도 아이리시 펍이 성행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만 해도 1000개에 가까운 펍이 존재한다. 아일랜드 문호인 제임스 조이스가 “펍을 피해 더블린을 걷는다는 건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서울에 현지 아이리시 펍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 있다. 바로 울프하운드(The Wolfhound) 펍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외국인(특히 영어권 국가) 손님 비율이 높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중요한 아일랜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형 모니터 앞에 모여 맥주를 들고 응원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대표 맥주인 기네스와 크림 에일 맥주 킬케니를 생맥주로 주문할 수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달콤하면서 매콤한 치킨윙과 피시앤칩스다.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지하철역 6호선 이태원역 4번 출구에서 95m 영업시간 매일 16:00~02:00 하노이102 성수동 주택가에 붉은 벽돌로 된 2층 주택 앞에서 머뭇거렸다.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흰색 바탕 족자에 세피아 톤으로 그려진, 베트남 여성으로 추정되는 그림만이 이 건물의 힌트였다(현재는 이 그림 아래 한글로 상호가 새겨짐).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특유의 베트남 쌀국수 향이 코끝을 자극하면서 의문이 해소됐다. 하노이102(Hanoi102)는 근처에 위치한 ‘할머니의 레시피’를 운영하는 대표가 베트남을 콘셉트로 오픈한 레스토랑이다. 대표는 약 7년 동안 하노이에서 생활하면서 하노이 가정식을 섭렵했다. 가구, 테이블 등 작은 소품까지 베트남에서 공수해와 레스토랑을 꾸몄다고 한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나라다. 그래서일까. 레스토랑 내부는 프랑스 느낌이 물씬 난다. 같이 온 친구들과 소품의 디테일을 감상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는 쌀국수, 철판 분짜, 쌈에 싸 먹을 수 있는 튀긴 만두 넴 등이 있다. 느끼함 없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맛이 떨어졌다. 식후에도 인증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로 내부 디자인에 감탄했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6길 18 지하철역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에서 356m 영업시간 매일 11:30~22:00, 18:00~22:00 (Last order 15:00, 21:00, 화요일 휴무)
- 2020-08-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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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초처럼, 고생인지도 모르고 그저 살아왔어요"
- “바쁘니까 행복한 게 많이 없어졌어요.” 지금 트로트 열풍에 휩싸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가수 진성(61)에게 행복에 관해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수십 년에 걸친 오랜 무명생활 끝에 ‘태클을 걸지마’, ‘보릿고개’, ‘안동역에서’ 등으로 육십이 넘어 전성기를 맞이한 그는 요즘 방송가의 가장 뜨거운 블루칩이다. 그런 그가 “행복한 게 많이 사라졌다”는 말을 한다. 거친 쇼비즈니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고민처럼, 혹은 그 누구보다 격렬한 인생 후반전을 치르는 이의 깨달음처럼 들려왔다. 진성의 목소리로 삶과 노래, 그리고 다짐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40년 동안 가수로 지내면서 히트곡 하나 내기 위해서 부단히 달려왔잖아요? 히트곡이 나오는 그 순간이 불행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인터뷰를 하며 진성은 세상살이는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해야 한다는 걸 모르고 지내왔다고 고백했다. 개인의 상상을 초월한 곳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에고이스트로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관계를 제대로 못했다”는 진성의 고백 뒤에는 그만의 깊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1960년생인 그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기구함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이 가정불화로 집을 나간 후 고아가 됐다. 겨우 세 살 때였다. 할머니가 계시긴 했지만 중풍으로 얼마 못 살고 돌아가셨기에 그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열한 살 때 부모님이 극적으로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됐지만, 차라리 안 만나느니만 못한 관계였다. 결국 가족들은 다시 헤어졌다.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야간업소에서 서빙을 하고 노래도 하는 거친 인생살이를 시작한다. 그러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삶의 고단함은 이후 30여 년간 계속될 길고 긴 무명가수 생활의 출발이기도 했다. 2012년이 돼서야 ‘안동역에서’가 히트를 치고 안동역에 비석이 세워질 정도로 대성공을 했지만 그의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혈액암과 심장판막증 진단을 받았다. 진성은 성공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고된 투병 생활에 들어가야 했다. 그의 지나온 삶을 보면, 헤어진 부모에 대해,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불운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자라지 않으면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가 스스로 칭한 ‘에고이스트’란 거친 세상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야 했던 어떤 보호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동역에서’가 히트를 친 후 많은 사람이 그의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자 그 보호막이 문제가 되었다. 맨주먹으로 이룬 성공 “체력적으로도 사람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오해를 많이 샀어요. 소개를 받아도 사람들을 관리해본 적이 없어요. 명함을 하나 받고 한두 달 전화 안 하면 상대가 저를 건방지다 생각하겠죠. 그런데 저는 그 사람과 가는 길이 달라요. 그게 제 아집이었지. 앞으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 체력이 안 되니까.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선생님이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제 생활 자체로도 힘들다’고 말해주죠.” 진성의 ‘아집’에는 또 다른 근거가 있다. 지금의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그는 수십 년 동안 오롯이 혼자서 싸우고 극복했다. 사람들을 동원하거나 지인들을 통해 노래해온 사람이 아니다. 민초처럼,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남아 성공했다는 자존심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무명생활이 너무 길어서 고생을 해도 ‘이게 고생인가?’ 하며 무심히 살았어요. 그게 제일 큰 장점이죠. 덕분에 트로트 막차를 타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좌절감에 술도 많이 먹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면서 인생을 허투루 살았다면 종착역에 아름답게 내리지 못했을 거예요. 다른 사람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전한 사고방식도 도움이 됐다고 봐요.” 모든 아름다움은 겸손에서 나온다 인터뷰 중에 진성은 거듭 뒤를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의 최전성기인 지금 그가 보이는 이러한 조심스러움은 그 누구보다도 삶의 질곡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들렸다. “모든 아름다움은 겸손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언제부턴가 저는 돌다리 두드리며 건너듯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살았어요. 즐거움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즐겁게 살기 위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잘 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스로 뿌린 것들을 잘 가꿔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기고요.” 갑작스럽게 성공한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소위 ‘졸부 의식’을 그는 철저히 경계한다. 그래서 사람들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성격이 다 다르고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상대를 먼저 배려하기보다는 내 기준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니 안 맞을 때가 있어요. 대중들과 함께하는 연예인은 이런 태도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을 파악할 줄 아는 혜안이 있어야 하고, 마음도 자주 비워야겠죠.” 부부관계는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져야 나이가 들어도 인간관계가 여전히 서투르다고 말하는 진성이 가장 아끼는 이는 그의 곁에 있는 아내다. 오십이 돼서야 아내와 공식적인 부부가 됐다. 그는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했다. “아내는 저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것들이 있고 그것 때문에 집에 와서 괴로워할 때가 있죠. 그런 모습을 안 보이려고 해도 저도 모르게 내색을 하곤 했죠. 그래도 다 받아주는 아내를 보며 스스로 이겨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팠을 때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아내가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아내를 생각하면 그냥 고마워요.” 그에게 있어 아내는 이제 믿음의 대상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말하는 부부관계의 해법도 믿음에 있었다. “요즘은 옛날보다 이혼율이 높잖아요. 사랑이 바탕에 깔려야겠지만, 50대가 넘어가면 정열적인 사랑은 퇴색하죠. 그래서 성공적인 부부관계란 서로에 대한 믿음을 얼마나 쌓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젊을 때는 함부로 말했어도 나이가 들면 그런 버릇을 지양하고 상대를 아낄 줄 아는 마음도 생겨야 하지 않을까요? 뜨거운 사랑은 아니어도 배려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020-08-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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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교육 이제는 정규 교과목에 넣어야
-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서 사망한 '천안아동학대사건'과 4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창녕아동학대사건'은 국민들로부터 “부모가 자식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공분을 샀다. 최근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생후 3개월 된 아들이 운다고 유아용 손수건을 말아 입에 넣고 방치해 아기가 사망했다. 재판부는 “누구보다도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는 친부가 단순히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손수건을 집어넣은 채 방치한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단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이런 행위를 했다면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아이 아버지인 20대 남성은 7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대에 7년 형기라면 젊은 시절은 다 가고 만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 옛날 대가족 사회에서는 아기 양육을 도와줄 할머니 할아버지나 고모 삼촌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핵가족 사회에서는 오직 부모밖에 없다.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이 부모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준비나 아이를 양육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다 보니 축복받고 자라야 할 아기가 귀찮은 존재, 천덕꾸러기가 된다. 아이가 사랑받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성인이 되면 또 다른 불행의 싹이 된다. 자기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이지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아기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 집에 가보면 책상 위에 육아에 관한 책들이 꽤 있다. 젊은 부부들이 육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육아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학교 교육을 받을 때부터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하나둘 익힌다면 어떨까. 젊을 때 한 공부라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영유아기는 신체, 인지, 언어, 정서, 사회 등 발달의 모든 영역에서 급격한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는 민감한 시기다. 생애 최초의 교사인 부모의 양육 태도와 가치관은 아이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은 절대적이며 일생 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모두 밝혀졌다. 영유아기 때 부모가 알고 있어야 할 육아 상식은 한둘이 아니라 결코 만만치 않다. 사회적으로도 아이를 학대하거나 문제를 야기한 부모를 색출해 처벌하는 것만을 능사로 해서는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다. 결혼과 육아 문제를 결혼 전에 충분히 학습해 육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이해하고 물심양면으로 성숙한 사람이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남학생들에게도 육아교육을 받게 한다면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와 대화할 줄 아는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을 통해 좋은 부모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국가에서 출산장려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 건전한 부모교육이 추가되어야 한다. 지금도 지자체별로 부모교육 강좌가 있기는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간이 짧고 대상 인원도 너무 적다. 학교에서 부모교육을 정규 강좌로 편성해 실시할 때가 되었다.
- 2020-07-3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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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가 경험한 주식 이야기
- 주식 앱을 설치하고 돈이 일한다는 의미를 알았다. 주식의 생리를 알기 위해 이리저리 호가창을 보다가 실감했다고나 할까. 엄밀히 말하면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할 뿐이지만 그 숫자가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니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이를테면 요망한 숫자다. 어쨌든 저 혼자 참 열심히도 일한다. 그렇다고 모든 숫자가 바쁜 건 아니다. 어떤 숫자는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숨 고르기 하듯 헐떡대다 다시 달음박질치기도 하고 또 어떤 숫자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넘듯이 아주 힘겹게 한 칸 한 칸 오르기도 한다. 제 자리에 멈춰 있는 숫자도 있다. 행여 그 종목을 한 주 보유하고 있으면 어서 올라가라고 슬쩍 손을 당겨주고 싶다. 멈춰 있는 숫자는 그래도 낫다. 아예 내려가는 숫자도 있다. 마치 산 정상을 밟고 뿌듯하게 하산하듯 절대 올려다보지 않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숫자도 있다. 그런 종목이 하나 있으면 괜히 서운하다. 아직 크게 투자하지 않아서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숫자가 그저 재미있지만 보고 있으면 크게 손실 보는 사람도 있겠구나 싶다. 요즘은 일부러 주식 관련 글을 찾아 읽는다. 영상을 볼 때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내가 주식에 관심을 가지니 세상 모든 사람이 주식을 하는 것 같다. 그동안 눈에 안 보인 게 신기할 지경이다. 투기만 아니면 좋은 점도 있다. 경제에 대한 지식이 쌓인다. 그뿐인가. 이 회사는 무엇을 만드는 곳인지, 왜 이 회사의 주가가 오르는지 혹은 떨어지는지, 상한가는 왜 나오는지 바닥을 치는 이유는 뭔지 다양한 것들을 알 수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의 우량주를 하나씩 매수해 적금이라 생각하고 그냥 묻어두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주식 초보는 매매일지를 쓰는 것도 좋다고 한다. 언제 어떤 종목을 얼마에 매수해서 얼마에 매도했는지, 손익은 얼마였는지, 손절을 했으면 그 이유는 뭔지 메모해두면 다음 매매 때 참고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새로운 용어도 알았다. 단타 매매라는 것인데 하루에 사고파는 것이란다. 발 빠른 젊은 층에서 단기 수익을 바라고 하는 방법으로 투기성 매매로 알려져 있다. 요 며칠 호가창을 보면서 터득한 것도 있다. 숫자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는 구경만 해야 한다. 나 같은 초보가 고점인 줄도 모르고 매수하는 순간 바로 하락세로 돌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물려 있다가 깡통 차기 십상이다. 실제로 시장가로 한 주 샀다가 바로 손실을 보기도 했다. 연습 매수라 다행이지 큰일 날 뻔했다. 숫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원칙을 세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재미있고 안전하게 오래 할 수 있다. 더 늘어나겠지만 지금까지 세운 원칙은 이렇다. 1. 여유 있는 자금으로 할 것 2. 매수, 매도 적정가를 정해둘 것 3. 매매일지를 기록할 것
- 2020-07-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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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이황과 14대 후손 이육사
- 안동 도산서원을 방문한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안동 시내에서 35번 국도에 올라 도산서원 이정표를 따라 달린다. 도로 오른쪽으로 낙동강 줄기를 이루는 안동호를 끼고 돌다 보면 마치 물 위를 달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안동호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가르며 마치 신선 물놀이하듯 안개 낀 안동호를 따라 도산서원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갔다. 비가 오는 날은 문화재를 방문하기 좋은 날이다. 평소 왁자지껄한 소음 없이 호젓하게 거닐며 옛 역사를 음미하며 앞으로의 발걸음을 다잡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광버스 한 대 없다. 오늘의 방문은 무척 만족스러울 듯하다. 입구로 들어가는 길도 오가는 이 없이 고즈넉하게 우리를 맞았다. 지금에야 이렇게 길이 넓었지 퇴계 이황 선생에게 수학하던 서생들은 좁다란 오솔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렇게 학문에 정진했을 모습을 생각하니 참 편한 세상에 산다는 미안함이 든다. 도산서원 입구 오른쪽 강 건너에 작은 정자가 보인다. 안동호로 흐르는 물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정자다. 섬이라 하기에는 작지만 달리 뭐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이 정자가 잘 보이는 곳에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는데 시사단(試士壇)이라 불린다. 1792년 음력 3월에 정조가 도산서원에서 치른 과거시험을 기념해 단을 쌓고 전각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당시 과거에 응시한 이가 너무 많아 장소를 도산서원으로 하지 못하고 그 아래 낙동강 모래강변에서 시험을 치렀다는데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만 3632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늘날 공무원 시험에 너도나도 몰빵하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시사단으로 가려면 서원 앞 강가로 내려가 나룻배로 건너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배를 운행한다는데 비가 내리는 평일이라 그런지 배는 있는데 사공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서원만 보고 가야 할 듯하다. 소수서원이 평지에 세워졌다면 도산서원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어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차례로 건물들이 놓여 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동쪽은 퇴계 이황 선생이 직접 건축해 학생들을 공부시키던 서당이다. 그 옆 싸리문은 아직도 보존돼 있다. 이황 선생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매일 이 싸리문을 밀치고 마루에 올랐을 것이다. 이 문은 유정문으로 불리는데 ‘그윽한 곳에서 수도하는 사람은 바르고 길할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부쩍 서원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서원의 핵심 공간이라 할 강학당인 전교당이 현재 보수 중이라 진입이 금지돼 있다. 전교당 현판은 선조의 명령으로 한석봉이 직접 썼다는데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도산서원을 느긋하게 살펴보고 나왔지만 사실 오늘 방문의 주요 목적지는 인근에 위치한 이육사 문학관이다. 도산서원 주차장으로 나오면 퇴계 종택과 이육사 문학관 가는 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육사 본명은 이원록이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아래는 두산백과가 이육사를 설명해놓은 글이다. “육사(陸史). 본명 원록(源祿).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 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 사관학교에 입학,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때의 수인번호가 264. 이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3년 귀국, 육사란 이름으로 시 ‘황혼’(黃昏)을 신조선(新朝鮮)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썼다. 또한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시 ‘청포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인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이육사가 죽은 후, 1년 뒤에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었다. 그 후, 1946년 신석초를 비롯한 문학인들에 의해 유고시집 ‘육사 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고, 1968년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에 육사 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다.“ 이육사가 이황 선생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배웠던가? 선생의 독립운동 여정을 자세하게 배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로지 떠오르는 것은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되는 ‘청포도’라는 시 구절뿐이다. 도산서원 주차장에서 빗줄기가 휘몰아쳐 잠시 고민을 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고는 문학관을 향해 차를 몰았다. 경북 안동에 위치한 이육사 문학관은 산속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2층 건물이다. 잠깐 돌아보고 오자 했던 계획은 어둑해져서야 끝이 났다. 문을 닫을 때까지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머물렀다. 우리 일행은, 격렬했지만 여리고 순수했던 이육사의 삶의 흔적을 느끼고 그가 남긴 작품들을 돌아보며 마치 질풍노도의 시대를 보냈던 20대 초반으로 다시 돌아간 듯 흥분하고 목메면서 이육사의 삶을 하나하나 경험했다. 이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이옥비 할머니(80)가 기억하는 아버지 이육사의 모습은 어땠을까? 헤어질 때 3세에 불과했으니 기억이 없는 게 당연할 텐데 어떤 한 순간이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아버지를 기억한단다. 1943년 아버지가 구속돼 베이징으로 압송되던 날이었다. 포승줄에 두 손이 묶이고 용수(죄수의 얼굴을 볼 수 없게 싸리나무로 만든 둥근 통)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푹 가린 아버지가 건넨 마지막 말, "아버지 다녀오마." 올 초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에서 안동 이육사 문학관을 찾아 이옥비 할머니를 인터뷰한 영상이 있다. 유튜브에 이 영상이 남아 있어 가끔 들어가서 본다. 문학관에서 선생의 유품들을 돌아보자니 유일한 혈육이었던 딸아이를 용수 속에서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졌을 아픔이 전해진다. 문학관은 선생의 작품들을 연대기별로 정리하고 전시해놓았지만 작품 활동보다 더 치열했을 독립운동에 대한 기술도 잘돼 있다. 특히 이육사 선생이 당했던 처참했던 고문 현장과 피로 얼룩진 도포, 감옥 수감 도구들도 전시돼 있어 악랄하고 광폭했던 일본 경찰의 만행을 느낄 수 있었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육사의 작품들은 시와 평론, 시나리오까지 다채롭게 정리돼 있다. 마지막까지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이육사. 그를 청포도의 시인으로만 기억해왔던 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안동으로 달려가 그의 문학관을 방문해봐야 한다. 연대기로 서술돼 있는 각종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며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목이 메어오는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될 터이니.
- 2020-07-2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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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담는 집’
-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동네 책방을 되살려낸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책 산업에 종사했던 전문가들이 은퇴를 앞두고 인생 2막을 설계하며 자연스럽게 “책방이나 내볼까?” 했던 말들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말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 우리 동네 책방들을 찾아 소개한다. 블로그에 소개된 사진만 언뜻 보면 강원도 깊은 산속 같다. 어라? 주소를 보니 용인이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약 45분), 양지에서 하차한 후, 택시를 이용(10여 분)하니 금세 도착이다. 낚시꾼들에게 유명한 용담저수지 건너편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만 벗어나도 이렇게 깊은 숲을 만날 수 있다. ‘생각을 담는 집’의 주인장은 임후남 씨다. 오랫동안 잡지의 인터뷰어로 이름을 떨쳤던 기자 겸 작가다. 2008년부터 1인 출판사 ‘생각을 담는 집’을 운영하다 2018년 용인 원삼면에서 동네 책방을 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카페에서 커피도 내리고 차도 우려낸다. 북스테이를 이용하는 투숙객들에게 조식을 근사하게 차려내는 호텔리어 역할까지 1인 5역을 해낸다. 어떻게 산속에서 책방을 열 생각을 했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됐는데 아무 일 안 하고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입버릇처럼 은퇴 후에는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시골에서 매일 의미 없이 사는 건 체질상 맞지 않았다. 일도 하고 시골생활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북카페를 해보자”는 의견에 서로 동의했다. 결정을 한 뒤에는 사방팔방으로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니느라 고생했다. 열망이 강해서였는지 우리가 딱 원하는 공간을 찾게 됐다. 이 집은 원래의 건축주가 황토벽돌로 지은 4층 건물이다. 그런데 우리 가족만 사용하기에는 방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세상과 단절돼 핸드폰도 끄고 TV도 안 보고 책 읽으며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북스테이까지 운영하게 됐다. 마침 그 무렵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 근교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거나 휴식을 취하는 트렌드가 생겨나면서 북캉스(책+바캉스) 혹은 북스테이(책+숙박)란 말이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해 더 힘을 얻었다.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족의 행복도가 높아진 게 무엇보다 만족스럽다.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신간서적 소개를 담당할 만큼 책을 좋아하고 누구보다 많이 읽었다. 저쪽 서가에는 그동안 내가 읽어온 3000여 권의 책들이 있다. 북카페를 하면서 서재까지 갖게 된 셈이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손님들 중에 내 손때가 묻은 책들을 펼쳐 읽으면서 감개무량해하는 이도 많다. 어느 날은 책 속에 붙여놨던 포스트잇이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지? 다양하다. 자녀와 함께 오는 젊은 부부가 많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맘껏 책을 고르고 구입한 후 산속 의자에 앉아 해거름을 보며 독서를 한다. 잠깐 책을 놓고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밤에는 반딧불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젊은 엄마들의 만족도가 높다. 최근에는 노부부가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 내가 ‘시골책방입니다’란 책을 얼마 전에 출간했는데 그 책을 보고 이곳이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책방지기 추천으로 문화 분야의 책 10여 권을 구입하고 방에 올라가시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재미있게 잘 읽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곤 또 10여 권을 구입했다. 이럴 때 제일 힘이 나고 보람을 느낀다. 내가 추천한 책을 읽고 인정하는 거니까…. 이런 게 동네책방의 매력 아닐까 싶다. 이 책방만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동네 책방을 찾는 분들은 정말 책을 좋아하고 문화 관련 모임에도 열성적이다. 그러다 보니 찾아오시는 분들의 수준이 매우 높다. 그분들이 만족할 만한 책을 추천한다는 것이 내게는 새로운 도전 같다. 그래서 책도 더 열심히 많이 읽는다. 신간을 추천하기도 하고 내 인생의 책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동네 책방을 즐겨 찾는 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책방지기의 북큐레이션이 아닐까 싶다.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는 작가와의 대화다. 그림책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참석하는 분이 많다. 시 창작교실, 에세이 창작반, 책과 함께하는 서점 음악회 등 소소하게 준비한 프로그램도 있다. 북클럽 회원들에게 초청장도 보내고 홍보도 한다. 참, 얼마 전엔 모닥불 피워놓고 모닥불 시낭송회를 했는데 호응이 좋았다. 생각보다 어린 자녀들이 더 집중하면서 참여하더라. 부모, 자녀들 모두 만족해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 나 이 말 꼭 하고 싶다. 나이 들어 할머니가 돼도 우리 책방에 오면 신간을 추천해줄 수 있는 그런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 늙어서도 책을 놓지 않고 꾸준히 책과 함께 지내는 삶이 최고의 행복 아닐까 싶다.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동네 책방인 것 같다. 돋보기 쓴 할머니가 권해주는 신간… 뭔가 그림이 멋있지 않나?
- 2020-07-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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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맞는 아이들, 이웃과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 9세 여자아이가 친모와 의붓아버지의 천인공노할 폭행에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건 탈출을 했다. 다행히 구조의 손길이 닿아 안전한 곳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불쌍한 아이에 대한 동정심과 부모를 처벌하라는 분노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아이를 왜 그렇게 학대했는지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겠지만 그들도 사람인데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단편적인 언론보도를 인용하면 친엄마가 투병 중이고 최근에 이사를 왔다고 한다. 아이는 큰아버지 집이라고 부른 위탁가정에 맡겨진 전력도 있다. 거기에 올망졸망 어린 세 동생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일 수도 있다. 이웃과 사회가 좀 더 이 가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린 세 동생은 이번 사건으로 보육원에 맡겨졌다고 한다. 부모가 구속되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어른의 생각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내가 아는 6세 p양의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년의 암 투병기간이 있었다. 어머니가 죽자 아이는 오히려 생기발랄해졌다.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 소녀는 장기간 병치레를 하던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이 아이에게도 적용될까? 어머니는 고통 때문에 아이에게 투정을 부렸다. 아버지가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을 나가면 아이 혼자 엄마의 투정을 다 받았다. 물 떠오라, 수건 가져오라, 팔다리 주물러라 등등 이런저런 잔심부름에 아이는 지쳐갔다.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엄마 옆에 붙어서 말 잘 듣는 아이로만 생각했다. "어린 것이 기특하기도 하지, 이런저런 잔심부름도 아주 잘하네 효녀 났어!" 하고 칭찬만 했지 아이의 속마음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다. 엄마를 도와줘야한다는 생각과 또래들과 놀고 싶은 생각이 뒤엉켜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돈 벌러 나가고 누워 있는 엄마는 동생 돌보는 일까지 시킨다. 6세 아이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밖에 나가 놀고 싶은 본능을 감출 수 없다. 지치면 동생을 때리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고 반행도 한다. 이럴 때 부모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매를 든다. 하지만 매의 효과는 일순간이다. 놀고 싶은 아이를 원천적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 아이는 새로운 거짓말을 찾고 부모는 체벌의 강도를 점점 높여간다. 아이는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아원에서 아빠의 직업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아이가 “우리 아빠는요, 나쁜 사람을 잡는 경찰관이에요” 하고 말했을 때 선생님이 “아빠가 참 훌륭한 사람이네” 하고 칭찬하면 그다음 아이도 자기 아빠가 경찰관이라고 말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도, 거짓말을 해도, 때려선 안 된다. 꽃으로도 때려선 안 된다.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왜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이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으면 부모는 생존에 열중할 수밖에 없다. 아빠는 일하러 나가고 그 와중에 엄마가 덜컥 병이라도 생기면 큰아이는 병수발과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이럴 때 할머니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이면 사회에서라도 보살펴줄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 2020-06-17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