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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이야기] 반려동물 사랑한다면 동물등록부터 하자
- 반려동물등록제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의 복지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5227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했다. 연간 4000마리 넘는 반려동물이 거리에서 버려지거나 주인을 잃고 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반려동물등록제에 대해서 알아본다. 자료제공 웹진 동물등록제 2014년 1월 1일부터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은 전국 시·군·구청에 반드시 동물등록을 해야 한다. 단, 동물등록 업무를 대행하는 사람을 지정할 수 없는 읍·면 및 도서(島嶼) 지역은 제외되며 반려견을 등록하지 않을 경우 4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현재는 반려견만 해당된다. 최근 고양이도 동물등록제 대상으로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검토 중이다. 동물등록 방법 01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개체 삽입 02 외장형 무선식별장치 부착 03 등록인식표 부착 동물등록은 왜 해야 하나요? 산책 중 혹은 집에서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쉽게 찾고, 유기동물로 인한 질병 및 전염병 예방 및 유기·유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동물등록제를 마쳤다면, 반려동물을 잃어버렸을 때 동물보호관리시스템(www.animal.go.kr)의 동물등록정보를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유기견 보호소에는 하루에 약 300마리의 유기견들이 들어온다. 각 보호소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22일 안에 주인을 못 찾은 유기견은 대부분 안락사시킨다. 개와 함께 외출할 때는 반려인의 성명, 전화번호, 동물등록번호가 표시된 인식표를 착용시켜야 한다. 반려동물 인식장치의 종류 01 내장형 무선식별장치 마이크로칩은 안전할까? 동물등록제에 사용되는 마이크로칩(RFID, 무선전자개체식별장치)은 체내 이물 반응이 없는 재질로 코팅된 쌀알 크기의 동물용 의료기기다. 동물용 의료기기 기준규격에 맞는 제품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 기준규격, 국제규격에 적합한 제품만 사용하고 있다. 강아지 목덜미 부위에 내장형 마이크로칩을 삽입하면, 리더기로 바코드 등록번호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애완견이 유기되었을 때, 이 칩을 확인해서 소유주에게 통보한다. 가격은 4만원대로 제법 고가다. 02 외장형 무선식별장치-목걸이형 외장형 무선식별장치란, 펜던트 같은 목걸이형으로 강아지 목에 걸어주는 장치다. 상시 목에 착용시켜도 되고, 산책 갈 때 목줄이나 리드 줄에 걸어도 된다. 단점이라면, 유기되었을 때 누군가 외장형 목걸이를 떼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내장형을 추천한다. 2만원에 제작이 가능하며 많은 사람이 등록하는 방법이다. 03 등록인식표 부착-강아지 이름표 마지막 방법은 등록인식표를 강아지 목에 걸어주는 것이다. 반려동물등록제 방법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아볼 수 있는 등록인식표를 목걸이 형태로 부착시키면 된다. 보호자가 가지고 있는 일반 강아지 목걸이에 각인하거나 스티커를 붙인다. 이름, 전화번호 등과 같은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는다. ※ 2008년에 시작된 반려동물 등록은 2014년부터 의무화되었으며, 2015년 말 기준 총 97만9000마리가 등록되었다. 동물 등록비용 할인 대상 01 전액 감면 •장애인복지법 제40조에 따른 장애인 보조견을 등록하는 경우 •유기견을 입양 또는 기증받아 등록하는 경우 02 50% 감면 •무선식별장치(내장형)가 장착된 동물을 등록하는 경우 •무선식별장치를 훼손 또는 분실해 재등록하는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수급자가 등록하는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한 동물을 등록하는 경우 •3마리 이상 등록하는 경우(3마리째부터 적용) 반려견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고 싶어요 반려견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고 싶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아 목줄을 채우고 산책을 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을 배려해 서울시에서는 반려견이 목줄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강아지 전용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강아지 전용 놀이터는 서울에 거주하지 않아도 동물등록을 마친 반려견이라면 반려인과 함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세 곳 모두 중·소형견과 대형견의 놀이공간이 구별되어 있으며, 편의를 위해 음수대와 배변장소, 휴식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 2016-12-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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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아이들의 마지막 산타클로스
-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딸 둘을 키웠는데 3년 터울이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으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엔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끼리도 서로 선물을 나누며 감사와 사랑을 확인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인디언 핑크 스웨이드 천을 잘라서 손바느질로 고리가 달린 버선을 두 개 만들었다. 버선엔 각자의 이름을 흰 실로 수놓고 테두리 마감 스테치도 한 땀 한 땀 공을 들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한 달 전쯤부터 이층 침대에 걸어두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투거나 양보나 배려가 부족할 때는 크리스마스에 올 산타할아버지를 불러내 긴장을 시키곤 했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해마다 필자가 몰래 넣어주는 선물을 기다렸다. 그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이들은 평소 갖고 싶은 물건 이름을 적어서 버선 속에 넣으면 산타할아버지가 보시고 선물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기대에 가득 차 삐뚤빼뚤 글씨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필자는 아이들 몰래 메모지를 꺼내 보곤 혼자 나가서 선물을 사고 포장도 했다. 그리곤 커다란 장바구니에 숨겨 집으로 돌아온 후 살짝 안방 장롱에 숨겼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엔 기대에 들떠 잠도 자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자다가도 부스럭 소리만 나면 혹시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나 하고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날 늦게 귀가한 남편이 현관 벨을 누르자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비어 있는 버선 속을 보며 거의 울상이 되어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이 착하지 않아 선물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본 남편이 기발한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이미 일어났으니 선물을 넣을 기회는 놓쳤고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남편은 버선 속에 몰래 메모지를 넣었다. 아빠가 썼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왼손으로 쓴 글씨의 메모지였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다. 거실 두 번째 서랍장을 보아라.’ 아이들은 울다가 깜짝 놀랐다. 흥분한 아이들은 거실로 도토리처럼 굴러갔다. ‘흐음, 잘 찾았구나! 착한 아이들아.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아라.’ 아이들은 피아노 뚜껑을 열려고 또 뛰었다. ‘이것도 잘 찾았구나! 이번엔 세탁기를 열어보아라.’ 아이들은 다용도실로 뛰었다. 그리곤 환성을 터뜨렸다. 세탁기 속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 보따리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다소곳이 들고 거실로 돌아온 아이들 얼굴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음 날 학교와 유치원에서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치 커다란 비밀이라도 알게 된 듯 울먹이며 내게 안겼다. “엄마, 아이들이 그러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없대요. 맞아요?” 지난 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던 행복했던 순간을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모두 그런 할아버지는 없다고 해서 자기만 있다고 우겼다는 것이다. 순간 당황한 필자는 고민하다가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절망하며 슬퍼했다. 그 후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은 사라졌지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누던 따스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용돈을 모아 조몰락거리며 서로의 선물을 준비했다. 서로에게 산타가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동화 속 마지막 산타할아버지는 떠났지만 그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이브는 영원히 아이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 2016-12-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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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 속 고독보다는 혼자의 외로움이 낫다
- 뒤늦게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었다. 의대 입학을 준비하던 사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의대에 진학한다 해도 6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하루는 남자가 한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6년 후면 난 마흔네 살이 돼! 너무 늦지 않을까?” “늦는다고? 의대를 다니지 않는다 해도 6년이 지나면 자넨 결국 마흔네 살이 될 텐데?” 남자는 친구의 대답을 듣는 순간 망설임 없이 학교로 달려가 입학 서류를 냈다. 이 글을 읽으며 필자의 소심함을 질책했다. 무엇을 하든 안 하든 시간은 흐를 것이다. 나이도 먹어갈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지 말고 당장 해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서였다. 인문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먼저 삶을 경험한 사람들의 통찰과 지혜를 엿보기로 했다. 지식은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삶의 지혜와 통찰은 사색과 경험에 의해서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 , 등의 고전을 읽으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성경 속의 많은 비유를 통해 인간의 속성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자 필자의 생각이 조금씩 변했다. 자신보다는 언제나 주변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살았던 무거운 삶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영혼이 편안해지면서 행복한 일을 하며 살고 싶은 욕구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도 찾았다. 서울 도성 길도 걸어보고 차츰 먼 곳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도 시도해봤다. 길을 걸으며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자연의 소리도 들려왔다. 바람소리와 어우러진 청명한 새소리, 나뭇잎들끼리 서로 몸 비비는 소리를 들으면 너무 행복했다. 길가의 작은 꽃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쫓기듯 살아왔던 시간들은 이제 온전히 필자의 것으로 다가왔다. 자연 속에서 생각해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모두 마음속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길을 걸으며 아프고 괴로웠던 시간과 기억들을 하나씩 내다버렸다. 필자는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두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과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가며 죽기까지 지속하길 바란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 같은 감동을 받을 줄 아는 사람,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결혼식에 온 많은 하객들이 혼주의 명망을 과시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혼주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군중 속의 고독과 같다. 혼자만의 외로움보다 더 심각한 외로움이다. 한두 사람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주고 그들에게서 필자도 진한 사랑을 느끼고 싶다. 헛된 것들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고 내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이웃을 진정으로 돌보며 기뻐하는 것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땀을 흘리며 걷고 나면 얼굴색이 달라진다. 그것이 진짜 얼굴이다.
- 2016-11-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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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위하는 게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다
- 필자가 잘하면 세상살이가 다 잘될 줄 알았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필자가 모범을 보이고 반듯하게 살아가면 저절로 식구들이 따라오고 가정은 화목하고 만사는 형통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필자가 정한 룰(rule)대로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필자만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입을 닫아버린 아내와 반항하는 아이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젊었을 때는 몰랐다. 그러던 중 필자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후배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후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다가 큰 결심을 하고 야간 대학원에 진학했다.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공부해 박사학위도 받고 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전직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었다. 야간에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로도 뛰었다. 후배이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진정 존경스러웠다. 당연히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멋진 남편이자 자랑스러운 아빠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아빠를 보고 자라는 자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 또한 상위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배 부인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풀이 죽어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들은 눈만 뜨면 공부만 하는 아버지 모습에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아내도 남편이 가족들과 외식 한 번 하지 않고 놀러가지도 않으면서 언제나 공부하는 모습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남편이 존경스럽다가도 어느 날은 답답해서 책을 불살라버리고 싶은 충동도 든다고 했다. 뛰어난 선수는 훌륭한 코치가 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나는 해냈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 하고 선수를 질책해서 선수들이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를 본받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했다. 결국 아이들은 밖으로 나돌았고 아내는 중간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늘 노심초사했다. 후배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 자식의 마음을 못 읽었고 아내의 마음도 얻지 못했다. 결국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한 가장이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다. 가정이 화목하려면 가장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짐승들의 수컷은 씨만 뿌리지 새끼는 돌보지 않는다. 원래 좋은 아버지란 없다. 좋은 남편이 좋은 아버지다. 자식에게 잘하려 하지 말고 아내에게 잘하라는 말이 있다. 아내도 따지고 보면 남이다. 남에게 존경받으려면 남을 섬겨야 한다. ‘크려거든 남을 섬겨라(慾爲大者 當爲人役)’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아내로부터 존경받고 대접받으려면 아내를 먼저 섬겨야 한다. 필자는 아내를 섬기기 위해 세 가지에 주안점을 두고 실천하고 있다. 이것이 가정의 화목은 물론 필자도 돌보고 있다. 첫째, 아내를 항시 앞에 내세운다.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라 해도 식성은 각자 다르다. 필자와 딸은 바닷고기인 회를 좋아하지만 아내와 아들은 소고기 같은 육지 고기를 좋아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또 달라진다. 외식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메뉴를 통일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필자가 가장이고 돈을 내니까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는다. 필자는 무조건 아내를 앞세운다. 아버지의 권위로 자식들에게 한마디 한다. “너희들은 젊다. 앞으로 좋은 것 먹을 기회는 많다.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으로 음식을 정하자.” 필자를 따르라고 했으면 독재 운운하며 뒷말이 나왔을 테지만 아내를 앞세우니 뒷말이 없다. 그러면 아내는 미소 지으며 필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택한다. 명분과 권위는 아내가 가졌지만 실리는 필자가 챙기는 것이다. 이렇게 아내의 권위를 세워주면 아내는 필자의 배려에 화답하듯 “아버지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하자”며 이번에는 필자의 권위를 세워주려고 애쓴다. 둘째, 아내의 돈 씀씀이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아내는 집에 새 그릇이 넘치는데도 백화점 쇼핑 중에 예쁜 그릇을 발견하면 사고 싶어 안달한다. 예전 같으면 ‘NO'라고 단호하게 말했겠지만 지금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이왕에 샀다면 잘 샀다고 오히려 칭찬을 해준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선물로 주라고 조언만 한다. 좋은 물건을 갖고 싶어 하고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여자들의 본능이다. 아내는 쇼핑 중독자는 아니다. 자기 딴에는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하고 구입하는 것인 만큼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고 상책이다. 필자가 못 사게 한다면 아내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남편에게 들키고 야단맞을까봐 숨기고 가계부를 조작할지도 모른다. 가족 구성원이 비밀이 많으면 가정은 불안해진다. 지키는 사람 열 명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럴 바에야 아내에게 사고 싶으면 사라고 한다. 셋째,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 부부간의 충돌은 대부분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말하고 싶은 여자와 듣지 않는 남자가 있다. “여보 이 옷 입고 갈까, 저 옷 입고 갈까?” 아내는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하고서도 필자의 의견을 묻는다. 이럴 때는 눈치를 봐가며 맞장구만 쳐주면 된다. 솔직히 내 눈에는 그 옷이 그 옷이다. 학교 동창회 다녀와서는 필자가 모르는 친구들 이야기를 재잘거린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을 왜 필자에게 하는지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참고 들어준다. 아내가 하는 말 중간 중간에 추임새만 넣어주면 만사 오케이다. 아내가 콧노래를 부르고 말이 많아진 날은 기분이 좋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나이 들어 두 식구만 사는 집에 한 사람이 기분 좋으면 나머지 사람의 기분도 따라서 좋아진다.
- 2016-11-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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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곁살이를 통한 ‘나 가꿈 나무’
- 필자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지만 8세부터는 경기도 수원에서…” 자랐다.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대답이 나와버린다. 그럼 한결같이 “수원이 제2의 고향이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필자는 그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낯선 서울생활에 조금씩 적응했고 직장생활과 결혼생활도 서울에서 시작했다. 작은아이를 결혼시키고 나서 단출한 필자만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홀가분함이란! 몇 달을 편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다 보니, 수원에 혼자 계시는 친정어머니가 자꾸 눈에 밟혀오기 시작했다. 더하기 빼기 열심히 해가며 고민을 했다. 팔십 중반이 넘으셨으니 혼자 생활을 하실 수 있는 기운이 있으셔도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만한 연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필자를 괴롭혔다. 조심스럽게 옆에서 살겠다는 얘기를 꺼내자 예상했던 대로 절대 걱정 말라 하신다. 그러나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자꾸 넘어지고 다치셔서 필자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감기도 자주 들고 고혈압도 염려가 되었다. 어느 여름, 며칠을 누워 일어나지 못하며 지내시는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의논을 했고 드디어 어머니 곁살이를 하기 위해 수원으로 이사했다. 모녀 관계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보다 더 어렵다는 주위의 말들을 무시하고 약간의 짐을 싸서 이사했다. 친정어머니 곁살이를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 다짐한 것들을 되새겼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필자의 마음 판에 적어놓고 되풀이해서 읽으며 수양하듯 지냈다. 어머니와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서로 익숙하고 믿는 구석이 따로 있었지만 필자가 결혼해서 따로 떨어져 사는 동안 몸에 밴 또 다른 가족문화가 있었다. 그걸 서로가 배려하고 이해해가며 극복해야 했다. 그래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집과 고집의 범벅은 정말 맛이 없었다. 내 맛과 네 맛의 상이한 맛들이 늘 독이었다. 툭하면 입을 닫아버리는 어머니의 고집에 필자는 모든 것을 어머니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을 바꿨다. 이제부터 무조건 웃는 거다! 그리고 잘 관찰하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나니 필자가 보였다. 거기에는 어머니처럼 나이 들어가고 있는 필자가 있었다. 멋진 발견이었다. 필자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근사한 필자만의 브라보 시니어로서의 발돋움을 위해, 친정어머니를 아주 좋은 모델로 삼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되지, 이렇게 실천하면 이웃들이 즐거워하겠네, 이런 말투와 행동은 버리자 등등.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연습을 했다. 어머니와 갈등이 있어도 고운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또 서로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친정어머니를 내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이웃 어르신 대하듯 행동했다. 모녀지간이라는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에서 벗어나 조금은 감정을 덜어내고 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어머니 곁살이를 통해 일반적인 관념의 틀에서 빠져나오자 아름다운 시니어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고 행복이 오리라는 확신도 섰다. 그러다 보니 비로소 필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유도 생겨났다. 이제 필자는 모든 면에서 골고루 멋지게 커져가는 가꿈 나무를 심게 되었다. 어머니의 곁살이는 ‘나 가꿈 나무’의 영양분으로 최고다!
- 2016-11-2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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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터리 문장과 말 그리고 신조어
-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정말 혼잡하여 마치 전투를 치르는 기분으로 타고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출입문 위에 걸려 있는 Seoul Metro의 표어가 필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말입니다.” 군대에서나 가끔 쓰이는 표현으로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형식으로, 도대체 멀리 있다는 말인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인지 문장 자체로만 보아서는 얼른 분간되지 않는다. 필자가 우리말 실력이 부족하고 새로운 감각이 없어서 그런가? 하는 의아심이 생긴다. 공사의 공익광고가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냥 지나쳤는데, 며칠 후에 본 또 다른 표어도 비슷한 형태였다. “먼저 내리고 나중에 타기, 안전을 위한 상식이지 말입니다.” 이 문장도 ‘상식입니다’ 하고 마치면 될 텐데 왜 굳이 ‘상식이지 말입니다.’라고 표현했는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근자에 와서 우리말을 제멋대로 사용하고, 쟁점이 되는 국정교과서 개정 문제에서도 우리의 역사를 너무 소홀히 취급한다는 느낌을 숨길 수 없다. 우리가 모두 다 함께 우리말과 역사를 제대로 사용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과 요즈음 젊은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신조어와 그 풀이를 나열해 본다: <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 > 가드 올려: ‘맞을 준비해라’또는 ‘아파도 참아라’의 의미. ‘이 앙다물어라’ 또는 ‘이 꽉 깨물어’ 등에 해당하는 형용사. 개~ : 정말 또는 완전이란 뜻이다. 예를 들면, 개 좋음, 개 꿀(정말 재밌다), 개 이득 등 검은 머리 외국인: 핏줄만 한국인, 외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을 말한다. 개인 톡(갠 톡): ‘개인끼리 하는 게임판’을 뜻한다. 귀요미: 형용사 ‘귀엽다’라는 의미이다. 종종 명사로 ‘귀여운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귀차니즘: ‘귀찮다’라는 동사와 ~nism 이라는 접미사의 합성명사. 만사가 귀찮을 경우에 쓰이며, 귀차니즘에 빠진 사람을 귀차니스트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글설리: 글쓴이를 설레게하는 리플(답글), 설리로 줄여 쓰기도 한다. 김 여사: 운전을 잘못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써 여성운전자가 도로에서 쩔쩔매거나 황당한 사고를 냈을 때 쓰는 호칭이다. 깨알 같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깨알 같은 재미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데서 유래하였으며, 규모는 작으나 그 영향과 반응은 훨씬 큰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는 뜻. 눈치가 없는 사람을 표현하는 멘트(발언). ㄴ ㄴ: 영어 ‘NO'를 두 개 합친 ’NO, NO'(노노)의 초성으로 ‘아니다‘라는 뜻 노답: NO+답 즉, 답이 없는 답답한 사람이나 짜증 나는 문제 등을 지칭한다. 노잼: NO+재미, 재미가 없다는 의미. 눈팅: 눈으로 채팅의 줄임말. 다른 사람의 대화 글을 읽기만 하고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추천이나 리플 등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냥 가는 행위. 느금마: ‘너희 엄마’가 변형된 단어, 상대방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말 (너의 엄마 →너거 엄마 →느그 엄마 → 느금마) 대인배: 소인배의 반대말로 그릇이 크고 아량이 넓으며 신중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은 사람을 의미 마초맨: 남자다운 남자를 뜻하거나, 대마초(마약)를 한 사람을 뜻하기도 함. 반품 남,반품 녀: 결혼했다가 이혼한 남자와 여자를 뜻함. 배사: 배경 사진 볍신: 병신이라는 단어를 순화시켜 쓰고 싶을 때 사용. 빡돌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것을 이르는 말. 빼박캔트: ‘빼도 박도 못한다’의 의미로 빼도 박도+CAN'T의 합성어.빼박으로 줄여서 쓰기도 함. 뿜다: ‘빵 터지다 ‘와 같이 웃음이 입 밖으로 크게 뿜어져 나오는 현상. 므흣하다: 흐뭇한 기분을 표현할 때 쓰이던 말이나, 점차 야한 사진을 볼 때의 기분을 표현. 이러한 신조어나 약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는지 우리가 모두 깊이 생각해보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지혜를 모아야 되겠다는 마음이다.
- 2016-11-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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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LTURE Interview]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지휘자 휴고 구티에레즈가 선사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
- 소년 아카펠라 합창단인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선정하는 최정예 솔리스트를 비롯한 알토, 테너, 베이스로 구성된 24명의 소년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 휴고 구티에레즈(Hugo Gutierrez)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한국에 방문한 소감 한국에 올 때마다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투어 때마다 늘 재미있고 값진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깊은 역사와 전통, 명성을 쌓아온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고유의 목적인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져주시는 관객들에게 노래를 통해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 공연만을 위해 특별히 고려한 점 한국 공연을 위한 레퍼토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솔리스트들만 별도로 집중 훈련을 하였고, 변성기를 맞은 단원의 목소리와 성대 훈련을 위해 매일 단원들의 자세를 살피고 파트별 연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앙코르곡들도 함께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로 부르기 때문에 단원들이 발음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어려운 점이 있지만, 많은 한국 관객들이 기대를 안고 공연장을 찾아주시기 때문에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신경 쓴 레퍼토리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곡인 마이클 잭슨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입니다. 또 뮤지컬 중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도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 구성했습니다. 뮤지컬 합창곡으로 각 파트별 단원들의 웅장하고 뚜렷한 음색과 하모니를 감상할 기회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년합창단을 이끌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 단원들과 세계 투어를 다니면서 음악을 통해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알리고, 서로 소통하면서 함께 호흡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주는 관객들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아티스트로서 큰 보람입니다. 아이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어린 단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엄격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대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려서부터 소년합창단으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공연하기 때문에, 엄격한 교육과 함께 끊임없는 대화와 배려, 이해와 관용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투어를 다니면서 합창단원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늘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휘자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연을 본 관객이 얻을 수 있는 메시지 우리 합창단은 110년 전부터 노래를 통해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알려왔습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단원들이 그 역사를 이어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난민 문제와 테러, 전쟁 등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아픔이나 경제적, 환경적인 문제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마음의 여유와 위안, 더 나아가 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을 돌아보고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 휴고 구티에레즈(Hugo Gutierrez) 10년간 프랑스 낭트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플랑타즈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12년 오툉대성당합창단에서 오르가니스트와 지휘를 맡았다. 2014년 7월부터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 공연 소개 일정·장소 12월 11일 용인 포은아트홀, 12월 17~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외 12월 8~16일 서울, 성주, 부산, 울주, 김포 순회공연
- 2016-11-2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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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L 칼럼] 아무도 모르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 인간은 언제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해온 것일까요? 나라는 존재는 상대가 없으면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개념인지도 모릅니다. 그 상대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성찰함으로써 나의 독자성, 개별성을 알게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 시조에 재미있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 지은지 몰라 무명씨 작으로 돼 있습니다. “내라 내라 하니, 내라 하니 내 뉘런고/내 내면 낸 줄을 내 모르랴/내라서 낸 줄을 내 모르니 낸동 만동 하여라.” 이 시조에는 ‘내’가 아홉 번, ‘낸’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언어유희 같기도 한 말을 통해 자아에 대한 탐구의 진지성을 알게 해줍니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이 의문이 무명씨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우리 옛시조에 이렇게 자아를 탐구한 작품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다행스럽습니다. 수직적 질서와 순종적 윤리 덕목에 의해 유지되던 왕조시대에는 나에 대한 자각, 개인의 자유와 독자성에 대한 인식이 계발될 수 없었습니다. 두드러지는 개별적 자아는 장려되기는커녕 오히려 모진 수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표암 강세황(1713∼1791)의 69세 때 자화상(1782년)에는 이런 화제(畵題)가 씌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머리에 오사모를 쓰고 야인의 옷을 입었네. 이것으로 알 수 있지. 마음은 산림에 있지만 이름은 조정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 스스로 낙을 찾아 즐길 따름일 뿐.” 표암의 모습은 갓 쓰고 자전거를 타거나 트레이닝복 차림에 베레모를 쓴 격입니다. 자화상이 이렇게 특이한 이유는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산림에 은거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는 집안이 몰락해 초야에 묻혀 살면서 서화로 이름을 날리다 60세가 넘어 영조의 배려로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명문가 출신이 벼슬 욕심이 없을 리 없었지만 막상 벼슬살이를 해보니 다시 산림이 그리워진 것입니다. 한 화면을 통해 드러난 두 마음은 이율배반이나 이중성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인간감정의 발로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상(1910~1937)의 시 ‘거울’은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다, 거울 속의 나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왼손잡이다,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지만 또 꽤 닮았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다” 등의 말이 이어집니다. 이런 현대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옛글에서도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쉬 볼 수 있습니다. 자화상에 마음을 부치기도 하고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하거나 죽음을 앞두고 삶을 차분히 정리하기도 합니다. 참된 나를 찾는 모습은 자만(自挽) 자명(自銘) 자전(自傳) 자지(自誌) 자찬(自讚) 등 다양한 문체를 통해 드러납니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살다 간 선비 홍길주(1786~1841)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도 그런 글입니다. “나는 자네와 일심동체일세”라고 말을 걸기 시작한 이 글은 자신의 독서 경향을 질타하고 경계하면서 반성을 촉구하더니 “내가 자네와 함께 도에 나아갈 수 있다면 아주 큰 행운이겠네”라고 말합니다. 요즘 말로 쉽게 이야기하면 청언소품(淸言小品), 즉 짧고 감성적인 에세이만 즐겨 읽으려 하는 자신에게 “그러지 말고 사서삼경 등 고전으로 돌아가라”고 일깨우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교훈적이고 딱딱한 고전만 읽을 수 있겠습니까? 밥도 먹고 군것질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지요. 그런데 홍길주가 살던 시대는 청언소품이 크게 유행해 글쓰기 방식마저 달라지는 바람에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으로 지식인들을 윽박지르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자기분열과 갈등의 문장, 남들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밝히는 글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다기보다 딱하고 안타까운 글입니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 김광규의 시 ‘나’의 전문을 읽어봅니다. “살펴보면 나는/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나의 아들의 아버지고/나의 형의 동생이고/나의 동생의 형이고/나의 아내의 남편이고/나의 누이의 오빠고/나의 아저씨의 조카고/나의 조카의 아저씨고/나의 선생의 제자고/나의 제자의 선생이고/나의 나라의 납세자고/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나의 친구의 친구고/나의 적의 적이고/나의 의사의 환자고/나의 단골술집의 손님이고/나의 개의 주인이고/나의 집의 가장이다.//그렇다면 나는/아들이고/아버지고/동생이고/형이고/남편이고/오빠고/조카고/아저씨고/제자고/선생이고/납세자고/예비군이고/친구고/적이고/환자고/손님이고/주인이고/가장이지/오직 하나뿐인/나는 아니다//과연/아무도 모르고 있는/나는/무엇인가/그리고/지금 여기 있는/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나는 무수히 많고, 모순되기도 하고, 다 아는 것 같아도 아무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더욱이 이걸 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고, 이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인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경험하며 삽니다. “차가운 진실보다는 따뜻한 기만이 낫다”는 말도 갈등을 느끼게 합니다. 제도와 규율 때문이든 체면과 위신 때문이든 자신을 절대적으로 속이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나의 화해 또는 통일이며 나와 남의 조화입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남과 함께 어울리되 같지 않지만 소인은 남과 같은데 어울리지 못한다”는 논어의 말도 이런 조화를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이 말이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文質彬彬 然後君子(문질빈빈 연후군자), “겉과 속이 함께 빛나야 군자”는 나 자신의 조화와 균형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나는 남이 아는 나와 다르고, 내가 아는 남은 남이 아는 남과도 다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는 참 어렵습니다. 자기보다 큰 적은 없다고 합니다. 중국 송 나라 때의 보제(普濟)선사는 “나 말고 누가 나를 괴롭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도 나, 나를 망치는 것도 나입니다. 그러니 자기부터 이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논어에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라”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나옵니다. 노자 도덕경 33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로울 뿐이지만 자신을 아는 자라야 명철하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센 데 불과하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라야 진정한 강자이다.”[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아는 것은 상대적 분별이지만 스스로를 아는 것은 절대적 자각입니다. 바로 이 절대적 자각을 탐색하고 궁구하는 것이 인류역사이며 사상사의 발전이 아니겠습니까? 한 해가 바뀌는 시점에는 누구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지나온 일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삶을 위한 다짐에는 ‘자지자명(自知者明)’의 가르침이 절실합니다. 그런 자지자명의 반성으로 이제 ‘BML 칼럼’을 접으려 합니다. 2년 동안 서투르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길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해묵은 손때’를 떠나보내려 합니다. >> 임철순(任喆淳)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 2016-11-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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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변호사의 법률 가이드] 가정 포기남도 이혼 청구할 수 있나?
- 사례> A는 B와 1968년 초부터 동거하다가 1971년 12월 15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 둘 사이에 자녀 C를 두었다. A는 B와 서울에서 혼인생활을 하던 중 1981년경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곳으로 이주하여 B 및 C와 함께 생활하다가 1987년경 스리랑카로 이주하여 건설업체 생산업체 등을 운영하였다. A는 1995년 3월경 여자 문제로 부부싸움을 한 후 집을 나가 연락을 끊고 스리랑카에서 알고 지내던 노르웨이 여성과 스웨덴에서 동거를 시작하였다. B는 A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자 1995년 6월경 A가 운영하던 사업체들을 정리한 후 귀국하였다. 그 후 A는 귀국하였으나 B의 연락을 피하였고, 2006년경 노르웨이 여성이 사망할 때까지 스리랑카에서 동거하며 생활하였다. A와 B는 A가 최초 가출한 이후 자녀 C의 결혼식장 등에서 잠깐 만났을 뿐 거의 왕래를 하지 않고 16년 넘게 서로 떨어져 별개로 생활을 영위해왔다. A는 자녀 C가 결혼할 때 상당한 돈을 지원하였다. B는 귀국한 이후 시댁 식구들과 연락하거나 시댁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투병 중인 시아버지를 문병하거나 시아버지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도 없었으며, 자녀 C도 거의 왕래가 없었다. B는 A와 혼인생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고, 혼인생활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한 상태다. A는 B를 상대로 이혼청구를 하였다. A의 이혼 청구는 인용될까.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민법의 기본적인 태도이나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 위의 사례에서는 장기간의 별거 및 혼인 파탄에 관하여는 다른 여자와 장기간 동거한 A에게 주된 책임이 있으나 자녀에 대해서는 최대한 배려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B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A가 가출하여 다른 여자와 동거하였지만, B가 시댁과 따로 생활하면서 B는 물론 자녀 C의 시댁과의 유대관계도 사실상 단절되었다. 또한 B가 그 유대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거나 A로 하여금 가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갈등원인을 제거하고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위와 같이 혼인 실체가 완전히 해소되는 과정에서 피고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에 대한 인용 가능성을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양태·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의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하여야 한다. 위 사례의 경우 대법원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A의 이혼 청구는 인용된다.
- 2016-11-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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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싱글 PART7-2] 초고령사회와 독신 노년의 연애
- 이규현(교육학 박사, 행정학 박사) 인간은 올 때도 혼자 왔고 갈 때도 홀로 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은 혼자 살 수 없는 가냘프고 나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남자를 만들어놓고 홀로 있는 것이 보기에도 안 좋고 불안해서 남자를 재운 뒤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서 여자를 만들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남자로 만들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라고 하시지 않고 여자를 만들어 남녀가 서로 도우며 의지하고 살아가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남녀의 성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성끼리는 신이 바라는 종족 번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고 또 인간은 성적인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위대한 사랑과 배려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라는 이름으로 둘이 만나 살다 보면 어느 한쪽이 먼저 작별을 고하게 돼 있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한쪽 배우자가 떠나고 나면 남은 한 사람은 밀려오는 고독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고독감은 고령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일생 동안 느끼며 사는 것이지만 특히 고령자가 되었을 때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외톨이가 되었을 때 깊은 고독을 느낍니다. 배우자가 살아 있을 때도 고독은 있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큰 고독을 느끼는 것입니다. 식사를 같이할 사람, 잠을 같이 잘 사람이 없으면 인생은 혼자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노년이 되면 상실의 시기, 소멸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령이 되어도 상실이나 소멸이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생리적 욕구입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고 성적 욕구가 생기면 해소하고 싶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올 경우는 그것을 충족시키고 싶은 의사를 표명하지만 성적 욕구는 어느 누구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사회가 더 두드러집니다.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성적 표현이 고령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천박한 범주에 속합니다. 물론 서양사회에서도 과거에는 종교와 문화에 따라 엄격한 때가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는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성은 종교적인 면에서만 봐서는 안 되고 인간 중심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고 변화입니다. 성은 신이 인간에게 만인평등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침해하거나 박탈할 수 없는 천부적 권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령이 되었다고 제한하거나 규제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똑같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노인의 성을 빼고 노후를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노인의 기쁨, 만족의 가능성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쉬고 있는 생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인간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살아 있는 한 가슴 속에서 성적 욕구가 꿈틀거리는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섹스를 통한 황홀감은 인간이 느끼는 오감 중 가장 강력한 쾌감입니다. 흔히 인간을 ‘성적 인간’이라고 합니다. ‘성적 인간’이란 따뜻한 감정으로 이성과 접촉하고, 이성과 성적 교류가 가능한 인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따뜻함은 삶을 위한 마그마(magma)로서 젊은 시절엔 이성을 희구하고, 친구를 희구하며, 노후가 되어도 이성에 대한 따뜻한 눈길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성기 결합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으로 상대와 마음과 감정의 교류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긴요한 것입니다. 상대와의 농밀한 마음의 교류, 그것이 있음으로써 섹스를 하는 것이 극상(極上)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교류가 없는 섹스는 단순한 점막(粘膜) 마찰에 불과한 것입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All is well that ends well).’ 셰익스피어가 한 말입니다. 과거의 삶이 아무리 고달팠든 화려했든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인간은 항상 현재가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고독은 죽음 다음으로 두렵다고 합니다. 고독은 수명을 평균 8년이나 단축시킨다고 합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며 사랑의 향기가 없는 인생은 꽃이 없는 사막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며,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홀로 사는 이 세상에 내가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때, 인간은 허무해지고, 고독해지고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서산마루에 걸려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이제 곧 지겠지 한탄만 하지 말고 저 아름다운 태양처럼 나도 인생 말년을 멋지게 장식하겠다고 도전하십시오. 멀리 보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은 70m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섹스는 만병통치약이며 최고의 보약입니다. 모든 시니어들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이규현 현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객원교수이며 저자다. 용인대학교 사회교육원장,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 2016-11-18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