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만 3년1개월의 종지부를 찍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었으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농촌은 더욱 먹고살기가 어려워졌다. 필자는 휴전이 끝난 직후인 53년 8월 14일 경기 부천시 영종면 중산리 1385(현 인천 중구 중산동)에서 5남 3녀의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은 무용가 겸 명상 수행자 홍신자가 1993년에 낸 동명 에세이의 개정판이다. 당시 7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일본과 중국 등에도 번역되는 등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아방가르드 무용가로 잘 알려진 홍신자는 뉴욕에서 활동하던 중 돌연 인도로 떠나 수행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무용·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해온 그녀
첫번째 오남매가족사진, 1번 임산부필자 3번 40대의필자 4번 빛바랜 가족사진들 6번 두딸과 필자모습
카네이션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이 되면 유년 시절의 필자는 그리움 반 미움 반으로 시들어진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엄마를 그리다 잠이 들곤 했다. 어린 마음속에서 흘린 눈물은 차곡차곡 쌓여 강하고 모진 모성애를 잉태하기 시작했다.
눈물 속의
임이시어! 홍 경호! 홍 요셉! 형제님 이시어
오늘 이 화창한 초여름에, 따뜻한 체온을 함께 나눌 수 없는 먼 길로 영영 긴 작별을 해야만 하는 섭섭한 안타까움이, 쓰나미 해일처럼 우리 가슴 속을 덮어 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셨지만, 뿜어져 나오는 정기는 누구도 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강인함과 올곧은 모습은, 주위 세상을 이끌어 가기에도 충분하시었고
6월을 여는 아침, 또 한 청년의 어이없는 죽음소식이 전해졌다. 그 청년의 허름한 가방 속에 남겨진 끼니를 때우기 위한 컵라면 한 통이 온 세상 사람 가슴을 울린다. 그 어린 나이에 삶이 고달파서, 아니 너무 열심히 살아서 일찍 데려간 걸까? 남겨진 가족은 어쩌란 말인가. 또 추모가 일상이 되어 버린 현실이 슬프기 만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
여름휴가철이 돌아오면 대개는 낭만적인 일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건 하나가 툭 하고 마음에서 일어난다. 지금부터 43년 전 일이나 필자 ‘기억의 창고’에서는 조금도 스러지지 않은 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느라 학교생활은 늘 따분했다. 대학 캠퍼스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23년 전 필자 가족은 가까운 친지들과 사이판, 괌으로 3박 4일 휴가를 갔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이라 세 가족은 모두 웃고 떠들며 매 순간을 만끽했다. 그렇게 꿈 같은 3박 4일이 끝나고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시간에 맞춰 괌 국제공항으로 나갔다.
그런데 즐겁던 여행은 그때부터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연발한 것이다. 두 집 아빠들은 직장
30여 년 전 어느 해 7월 하순이었다. 오랜만에 동창 모임을 강에서 갖기로 했다. 서울 근교에도 놀기 좋은 강이 수두룩하지만 한 친구가 “한탄강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부득부득 우겨 할 수 없이 그리로 정했다. 서울 동대문 부근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는 여행사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먹거리는 10여 명이 각자 ‘주특기 요리’로 한 가지씩 준비키로
야심한 밤에 TV에서 영화를 하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 같았다. 처음엔 그 시간대에 열심히 재방되는 ‘애마부인’, ‘산딸기’, ‘뽕’ 같은 에로물 들 중 하나로 생각했었다. 옛날에 서갑숙이라는 탤런트가 동명의 에세이집을 내서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 제명을 차용한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때가 1999년이었고 서갑숙은 그 때문에 사실상 연예계 활동을 접어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그 폭염 열기가 계절을 초월해 최고조를 달린다. 이에 상응이라도 하듯 나라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곳곳에서 터지고 그 애도의 열기도 식을 줄을 모른다. 가습기 사건, 강남 묻지마 화장실 사건 등등.
희생의 아픔보다 더한 무기력을 채우기 위해 햇살 가득한 베란다 밖으로 세상을 내다보았다. 자연은 여전히 청아하고 맑은 계절의 기운을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