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이렇게 혼자 오래 살 줄 몰랐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 IT 벤처기업 경영자로 대박의 꿈을 향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속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성장의 기쁨을 누리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내 삶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형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학생들을 태우고 수학여행을 가던 배는 바다에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오랫동안 힘들었다. 그제야 주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령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내게, 자연스럽게 도시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혼자 오래 살 줄 몰랐어.”
한 어르신의 이 탄식이 머릿속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도시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노인을 위한 집은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주거 환경은 노년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혼자 살아야 하는 노년, 높은 주거비, 점점 단절되는 사회적 관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노년의 사회적 고립은 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이런 문제를 내 인생 후반의 새로운 과제로 결정했다.
‘공동체 주거’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
IT 벤처 경영자의 삶을 접고 공동체 주거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부동산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여겼지만,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은 결국 주거를 상품화하고 자본에 종속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거는 상품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 돼야 한다.
나는 시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적 접근 방식을 모색했다. 혈연 중심의 가족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협력적 방법으로 주거와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고령화, 베이비부머, 주거, 공동체, 공유경제를 키워드로 사회적 경제와 사회 혁신을 배우고 익혔다. 공동체 주택 추진 모임에 참여해 주택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주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결과 나는 ‘공동체 주거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서로의 여백을 채우는 10가구의 행복한 집짓기 끝에 나의 집이자 우리 집인 공동체 주택 ‘여백’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나는 소중하고 다정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함께 밥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며, 공동의 공간을 가꾸는 경험은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책 ‘쫌 앞서가는 가족’(2017)을 출간하기도 했다.
공동체 주거 활동가 10년
공동체 주거에 직접 살아보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했고, 기대 이상으로 삶의 질이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내 집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라는 개념을 확산하고 싶었다. 그래서 중장년 당사자들의 주거 전환 운동 단체,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우리는 ‘소그룹 공동체에 의한 협력적 주거’라는 새로운 주거 대안을 개발하며, 주거 공공성 확대와 공동체 회복을 실천해왔다.
이제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직에선 물러났지만, 나의 활동은 더욱 확장됐다. 시민 출자 청년 공유주택 터무늬있는집을 공급하는 터무늬제작소 소장, 청년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경기도 사회주택위원, 서울시 공동체 주택 전문위원, 신문 칼럼니스트 등. 다양한 직책과 역할로 함께 사는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나는 ‘공동체 주거 활동가’다.
이제는 고령자 주거복지 전문가로
올해로 공동체 주거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 이제는 본격적으로 고령자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서려 한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정부에서도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 정책을 발표하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주거는 실버타운과 요양원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 그러나 고령자에게 주거와 돌봄은 분리될 수 없다. 주거 및 요양 시설의 공급 확대 이전에 나이가 들어도 내 집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 다양한 형태의 고령자 주택이 필요하다. 고령자 주택은 폐쇄적인 시설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용자, 가족, 운영기관,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개방적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게 공동체가 살아 있는, 나이 들어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노인을 위한 ‘집’이 필요하다.
나는 고령자 주거복지 전문가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올해 방송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고령자 주택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 지난 10년의 활동은 앞으로 펼쳐갈 새로운 도전의 탄탄한 기반이 될 것이다.
새로운 삶을 위한 전환의 기술
5060 중장년 세대는 주된 일(자리)을 떠나 새로운 일과 삶을 준비해야 한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전환의 기술이 필요하다. 너무 급하거나 무리한 전환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진다. 내가 익힌 전환의 기술을 공유한다. 이 기술만 잘 익히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_자연인이다 지위와 역할로 대접받던 어제의 기억은 하루빨리 지우자. 그리고 당장 뭘 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부담도 내려놓자. 이제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꼭 잘하지 않아도 된다. 명함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자유를 누려보자.
#혼자서도_잘해요 자연인의 자유도 무조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림자 노동을 감당해왔던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루빨리 독립 생활자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일을 완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듯한 말만 하면 알아서 척척 해내는 훌륭한 직원들은 이제 내게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는 시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살림의 주체가 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절실한 생존의 기술이다. 사회혁신도 좋지만 스스로 1인분의 삶을 감당하는 자기혁신이 우선이다.
#관계_능력_강화 인맥에 매이지 말고 느슨한 연결의 관계망에 어울려보자. 혈연·지연·학연은 물론 다양한 명분의 끈으로 이어진 사람들, 이해관계가 앞서고 알게 모르게 경쟁과 서열이 작동하는 그 인맥들,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에게 신뢰와 충성을 증명해야 하기에 부담스럽고 피곤하다. 그나마도 현직에서 물러나면 상당수는 다시 보기 어색한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 이제 혈연·지연· 학연의 부담스런 인맥이 아닌 가치와 취향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느슨하고 자유로운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해보자. 이러한 커뮤니티는 관리가 필요한 부담스러운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나답게 그답게 우리답게 어울릴 때, 우리 삶은 더욱 아름답고 풍부해질 것이다.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슬세권 이웃은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N잡러 이제 과거와 같이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풀타임 잡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과 활동을 재구성하면 어떨까? 나를 위한 일, 공동체를 위한 일, 우리 사회를 위한 일, 그리고 돈 버는 일과 돈은 잘 못 벌어도 의미와 가치 있는 일. 이렇게 말이다. 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벌이는 좀 줄어도 의미 있는 존재로 나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걷기와_글쓰기 치유와 성찰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나름 치열하게 살았고 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느껴진다면 걷자.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옮겨보자. 마주하기 두려워 마음 깊숙이 꼭꼭 숨겨두고 차마 열어보지 못한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면, 과감히 열어 마주해보자. 우리는 모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의 스토리텔러다. 걷고 쓰다 보면 어느덧 유연하고 당당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오늘도 각자도생의 시대에 외로움의 습격에 맞서기 위해 ‘그 누구도 홀로 외롭지 않은, 더불어 사는 세상’의 꿈을 향해 나선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만화로 보는 시니어 뉴스] 노인일자리 115만 개 열린대요](https://img.etoday.co.kr/crop/85/60/226132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