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3월 15일 그리고 2024년 3월 15일. 정확히 33년의 서사를 쓴 대학로 소극장 ‘학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부른 가수 김민기가 설립한 곳이다. ‘배울 학(學) 밭 전(田)’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문화예술계 인재들의 못자리가 되어줬다. 한국 대중문화의 산실이었으며 역사적인 공간이었기에 학전의 폐관은 유독 안타깝다.
3월 15일 폐관 당일. 문을 닫은 학전 앞마당에는 쓸쓸함만이 감돌았다. 2주간 이어진 ‘학전, 어게인 콘서트’도 전날 종료된 상황으로, 장비와 물품 등은 어딘가로 바삐 옮겨지고 있었다.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바로 정리되다니, 너무나도 야속한 속도였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에 학전을 찾아오는 시민들도 종종 있었다. 학전 앞을 천천히 둘러보며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사이로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연출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교수인 김재엽이었다. 야외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학전에 온 터였다.
19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김재엽 연출가는 학전에 자주 놀러왔고, 문화예술인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학전과의 특별한 인연도 있었다. 그의 아내는 학전의 대표 아동극 ‘고추장 떡볶이’에 출연한 배우 이소영으로, 2월 24일 마지막 공연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김 연출가는 “학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연극인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로가 점점 상업화되어가는 와중에도 학전은 순수 창작 공연을 지향했다. 사람을 키워내는 예술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고,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이었다”고 말하며, 학전의 정신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가수 박학기는 본지에 “학전은 제게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떠나 음악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평소에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김민기 대표님을 뵈러 가끔 방문하면 큰 나무 그늘 아래 있는 것처럼 편안했고, 시골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며 아쉬움 가득한 소감을 전했다.
수많은 스타 배출한 학전
“모두 다 그저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지난 2월, ‘학전 블루 소극장이 2024년 3월 15일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밝히며 김민기 대표가 전한 인사다. 돈은 안 되지만 의미 있는 아동극 등의 공연을 이어가며 만성적인 재정난을 겪었던 학전. 여기에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고, 위암 진단을 받은 김민기 대표가 투병하면서 결국 폐관을 택했다.
지난 33년간 학전에서 기획·제작된 작품은 총 359개다. 학전을 대표하는 작품은 단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학전은 180석 규모밖에 되지 않는데, 이 작품은 1994년 초연한 이래 4257회 공연, 누적 관객 73만 명을 돌파했다.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한 배우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는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특히 학전에서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설경구는 이 작품에 캐스팅되면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에게 매우 의미 있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또 학전은 라이브 콘서트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다. 가수 고(故) 김광석은 이곳에서만 1000회 공연을 채웠다. 그래서 학전 앞에는 김광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노영심, 안치환, 동물원 등도 많은 공연을 펼쳤다. 주요 멤버였던 박학기는 “그때의 저는 나름 전성기였다. 학전 개관 멤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연을 많이 하면서 김민기 대표님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또한 대단한 영광이었다”고 회고했다.
학전 하면 아동극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독일 그립스 극단의 원작을 김민기 대표가 번안, 연출한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이 대표적이며, 순수 창작물도 많이 공연됐다. 김 대표는 돈을 더 벌 수도 있었으나 2008년 ‘지하철 1호선’ 공연을 돌연 중단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이 원했던 아동극 작업에 더욱 몰두했다. TV와 미디어 외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체험적·문화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졌던 터라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공연을 이어갔다.
김민기라는 존재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폐관 전날인 14일, 학전 소극장에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울려 퍼졌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이는 배우 황정민, 가수 박학기, 권진원, 노래를찾는사람들, 알리, 정동하.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의 마지막이자 학전의 33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학전 폐관 소식을 들은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뭉쳐서 연 공연이다. 가장 학전다운 방식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 위해서다.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20회의 릴레이 공연을 펼쳤고, 3000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티켓은 단숨에 매진됐으며, 수익금은 모두 학전에 기부됐다. 윤도현을 시작으로 김현철, 윤종신, 유리상자 등 가수와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이정은 등 배우들이 함께했다.
그렇다면 학전은 이제 어떻게 될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공연장으로 학전 공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내가 없으면 학전은 없다’는 김민기 대표의 뜻을 존중해 ‘학전’ 명칭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 어린이극 등 학전의 기존 사업은 유지한다. 공연장 내부 시설 개보수 등을 거쳐 7월 재개관할 예정이다.
33년의 추억을 남긴 학전은 영영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학전을 일군 김민기 대표는 우리 곁에 있다. 과거 대한민국이 힘든 시기에 노래로 빛이 되어준 그. 이제는 후배들의 응원을 받아 다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학전의 마무리에 쓰라며 1억 원 이상 기부한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김 대표에 대해 “조용하며 나서지 않고, 나서야 할 때는 묵묵히 책임만 감수하는 순수하고 맑은 시인”이라고 표현하며 존경심을 표한 바 있다. 조승우는 “선생님이 꼭 쾌차하셔서 같이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 말이 깊은 울림을 전한다. 박학기 역시 메시지를 남겼다.
“김민기 대표님은 그저 큰 산이고, 바다 같은 분이셨습니다. 더 이상의 수식어도 필요 없죠. 뻔히 손실 볼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어린이 연극과 뮤지컬을 해오면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 분입니다. 우리 문화예술인 모두 대표님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대표님의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드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1924년 파리 FIFA 총회’를 기점으로 월드컵 창설 100주년인 올해를 기념해 스포츠 평론가이자 해설가인 기영노 평론가가 신간 ‘월드컵 축구 100년 - 100번의 영광과 좌절의 순간들’을 출간했다. 이 책은 월드컵이 지닌 100년의 역사와 그 안에 담긴 빛나는 순간들, 전설적인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오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 대한 예측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시작된 제1회 월드컵부터, 2024년 현재까지 월드컵이 지나온 길을 조명한다. 월드컵 역사 속 빛난 선수들, 하늘의 별이 된 전설들부터 현재까지 활약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프란츠 베켄바워, 에우제비오, 요한 크루이프부터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킬리안 음바페, 손흥민에 이르기까지,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가슴 뛰며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지구촌을 하나로 만드는 월드컵의 힘과 매력을 집대성한 저서다. 지난 100년간 월드컵이 어떻게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영노 평론가는 ‘베이스볼 매거진’, ‘일요신문’, ‘민주일보’ 기자 출신으로, 1982년부터 스포츠 평론가로 활동해왔다.
연기, 축구, 결혼. 안혜경(45)의 사랑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다.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열정,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멤버로 축구에 대한 진심은 최고조다. 지난해 결혼으로 편안함과 안정감 또한 얻었다. 일과 가정의 균형 속 충만해진 사랑은 인생의 봄날을 깨웠다.
일반적으로 20대는 찬란한 청춘, 30대는 성숙해지는 시기, 40대는 안정기에 접어든다고 말한다. 안혜경 역시 이런 생각을 가졌는지, 자신의 인생에 ‘40’이라는 숫자가 성큼 다가오자 생각에 잠겼다. 상상 속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어렸을 때는 40대가 되면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비싼 차를 몰고, 큰 집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남편과 애들이 있고, 저녁에는 다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상상도 했죠. 그런데 실상은 내가 꿈꿔왔던 모습이 아니고,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39세에서 40세로 넘어가는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죠. 그래서 12월 말에 해외여행을 가서 일주일 정도 있었어요. 마흔이 되기 싫어서 일종의 도피를 했어요.”
그렇게 두려움에 떨었는데, 막상 40대의 삶을 산 안혜경은 왠지 모르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우울한 40대를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고, 마침내 안정을 찾았다. “뭔가에 도전하는 것도 재밌고, 매년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저를 발견하면 행복하고 기뻐요. 인생의 모토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입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은 한 해를 보내야죠.”
기상캐스터에서 배우로
배우로 활동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안혜경에게는 지금도 종종 ‘기상캐스터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는 “지금도 제가 연기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 속상할 때도 있지만 더 열심히 해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혜경은 2001년 MBC 기상캐스터로 데뷔했다. 그는 기상캐스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날씨에 맞는 의상을 입고 예보를 전해 생동감을 더했고, 결과적으로 날씨 예보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날씨를 소개하면서 시청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내 옷차림만 보고도 시청자들이 날씨를 알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기상캐스터는 보도국 소속이에요. 당시에는 무조건 단발머리에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그걸 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국장님한테 혼나면서도 아침 뉴스 생방송 때 도전 해봤죠. 정말 더운 날에는 민소매 옷을 입었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썼어요. 바람 불면 스카프를 두르고 ‘오늘 추워요’라고 알려드렸죠. 날씨 예보가 재밌으니까 시청률이 정말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좋아져서 더욱 즐겁게 일했습니다.”
기상캐스터로서의 삶은 천직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단절이 되는 선배들을 보면서 오래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마침 당시 드라마 카메오 출연으로 연기의 맛을 알아가던 참이었던 그는 제일 잘나가던 순간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배우 데뷔작은 2006년 MBC 드라마 ‘진짜 진짜 좋아해’다. 이후로도 연기 활동을 꾸준히 했지만 배우로서 온전히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했다.
“기상캐스터를 그만두니까 저의 타이틀이 되게 애매해지더라고요. 2010년쯤이었을 거예요. 비행기 탈 때 입국신고서에 직업을 쓰잖아요. 뭐라고 써야 할 지 모르겠어서 고민했죠. 배우로서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한 것 같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날도 그냥 ‘스튜던트’(Student, 학생)라고 써냈어요. 그리고 (이)효리한테 고민을 털어놓았죠. ‘입국신고서에 직업을 뭐라고 쓰냐’고 물어보니, 단번에 ‘나? 슈퍼스타’라는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도 당당하게 배우라고 쓰게 됐습니다.”
친구의 조언과 함께 안혜경은 연극 무대에 서면서 배우로서 자신감을 찾았다. 그는 2014년 극단 ‘웃어’를 창립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3월 3일까지는 연극 ‘정동진’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의 무대와 연극에 대한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실제로 안혜경의 연기를 본 관객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고. 이렇게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그는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아무도 저를 불러주지 않을 때, 스스로 ‘왜 이렇게 쓸모없지’라고 느낄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 친구들과 뭉쳐서 극단을 만들게 됐고, 연기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제가 삶에서 놓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연극이에요. 무대에 서면 매번 치유를 받아요. 연극은 매번 같은 연기가 나올 수 없다는 게 매력이에요. 그래서 배우로서 감정의 완급 조절 방법을 터득하게 됐고, 관객과 소통하면서 희열을 많이 느꼈습니다.”
‘골 때리는 그녀들’로 커진 축구애(愛)
2019년 안혜경이 보여준 행보는 다소 의외였다. SBS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이하 ‘불청’)에 최연소 새 친구로 합류한 것. ‘불청’은 중년 싱글들의 친구 찾기 예능 프로인데, 당시 마흔을 갓 넘긴 그의 출연은 신선했다. 안혜경 스스로도 ‘벌써 중년이 됐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불청’ 출연은 40대가 되고 제일 잘한 결정이 됐다.
“방송 활동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던 때에 출연 제의가 들어왔어요. 학창 시절 열광했던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다니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솔직히 프로그램 성격상 너무 어린게 아닌가 싶어 출연을 잠시 고민하기는 했어요. 결국 편한 마음으로 놀다 오자는 생각에 촬영하러 갔는데, 언니 오빠들과 노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제가 고정이 되어 있었던 거죠. 하하.”
‘불청’ 촬영이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심심한데 축구나 해볼까?’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박선영을 촬영장으로 긴급 호출한 여성 출연자들은 제작진과 5:5 축구 대결을 펼쳤다. 당시 지어진 축구팀 이름이 바로 ‘불나방’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불나방’의 멤버였던 안혜경은 ‘골때녀’의 원년 멤버로 하차나 출전정지 없이 현재까지 3년 넘게 출연하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의 산증인이다. 팀에서는 골키퍼를 맡고 있으며, 온몸을 내던지는 철벽 수비를 펼친다.
“파일럿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PD님께서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예능이기 때문에, 절대 연습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그래서 정말 연습을 하나도 안 하고, 그야말로 예능을 찍었죠. 그게 시청률이 대박나면서 정규 프로그램이 된 거예요. 지금은 더 이상 예능이 아니죠. 과거에는 축구를 아무것도 모른 채 즐겼는데, 지금은 축구에 대한 마음이 커져서 더 진심을 쏟고 있습니다. 요즘은 개인 훈련 포함해서 축구 연습을 일주일에 3~4번 하는데, 그게 최소일 때 스케줄이에요. 시즌 때는 오전에 축구 연습하고, 공연하고, 다시 축구하고, 그렇게 매일 축구에 매진해 삽니다. 축구는 선수 모두가 잘해야 하거든요. 함께 연습하면서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안혜경은 ‘골때녀’를 ‘전환점이 된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바뀐 계기가 됐다.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알아보는 분들도 많아졌고,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늘었다”면서도 “저는 ‘골때녀’에 출연하는 66명의 여성 중 한 명일 뿐이다. 프로그램 자체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골때녀’는 40~50대 남성들이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를 연예인이 아니라 정말 ‘골때녀’의 선수로 알아보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선수로 안 불러주시면 ‘내가 실력이 좀 떨어졌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골때녀’를 통해 여성 축구가 활성화되고 저변이 확대되어서 굉장히 기분 좋아요. 남성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하고 커서는 조기 축구를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여성들도 어릴 때부터 축구를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결혼 후 느끼는 사랑의 안정감
안혜경은 지난해 9월 송요훈 촬영감독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tvN ‘빈센조’,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등을 촬영한 감독이다. 4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웨딩마치를 울린 안혜경은 송요훈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에 대해 적령기란 없으며, 좋은 사람이 있다면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청’ 언니 오빠들이 싱글로 살면서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어요. 결혼을 굳이 해야 할까? 꼭 필요할까? 생각했어요. 결혼은 그냥 사람의 인연인 거죠. 그 전에는 연애하면서 결혼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남편을 만나면서는 같이 살면 어떨지, 무엇을 함께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처음으로 미래를 꿈꿔본 사람입니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현재의 저는 솔로일 수도 있겠죠.”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지금도 안혜경은 지인들에게 무조건 결혼을 추천하진 않는다. 결혼은 자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어 행복한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를 좀 더 가꾸고 남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 것 같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제 주변에도 싱글인 친구들이 많아요. 돌아온 친구들도 있고, 일이 먼저여서 결혼을 미룬 친구들도 있죠. 결혼을 안 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요. 자기 자신한테 마이너스인 것 같아요. 자신을 예뻐해주고, 자신감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결혼하니 좋은 점도 많지만, 현실적인 단점도 있어요. 저는 싱글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에요.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도 말해요. 그중에 자신한테 맞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거죠.”
안혜경이 느끼는 결혼 후 가장 큰 장점은 일상에서 안정감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제 혼밥을 안 해도 되고, 더욱이 남편이 요리도 잘하고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써서 양질의 식사를 하게 되어 좋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도가 높아지니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안혜경. 인생의 시간을 함께 쓸 동반자가 생기니 시너지가 난다고 느낀다.
“남편이 최근 저한테 ‘나야? 축구야?’라고 장난스레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럼 당신은 나야? 촬영이야?’라고 받아쳤죠. 이렇게 장난도 치고 유머 코드가 맞는 상대가 생겼다는 게 참 좋아요. 제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거든요. 동물하고만 소통하는 삶을 살았어요. 내 울타리 안에 사람이 들어왔는데 기존부터 함께 있었던 것처럼 내 삶에 흡수되어 살아가는 게 믿기지 않아요. 사랑은 형태도 다양하고 느껴지는 감정도 다양하잖아요. 저는 사랑의 설렘보다도 사랑을 하면 평온하고 안정된 느낌이 든다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언제나 청춘, 오늘도 젊음을 향해 질주하는 정찬(53)에게 썩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연예계 대표 라이더’로 통하는 그는 바이크 라이딩뿐만 아니라 스킨스쿠버 다이빙, 사격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긴다. 이것이 젊음의 비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마음속에서 꽃핀 철학이 몸과 마음 모두 단단한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정찬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작품 운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이 꼭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시기가 묘하게 맞물렸다. 간간이 작품 활동을 했지만 주요 배역을 연기한 것은 2019년 KBS 2TV 일일드라마 ‘왼손잡이 아내’가 마지막이다. 일이 없는 괴로움과 상실감은 너무나 컸다. 과거 ‘한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불리며 청춘스타로 인기를 끈 시절도 있었으니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터. 그럼에도 그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열심히 다잡았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선물처럼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달 첫 방송된 KBS 2TV 일일드라마 ‘피도 눈물도 없이’다. 청룡의 기운을 받아 활동 기지개를 편 그는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운 좋게도 데뷔 이후 계속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한 해에 세 작품을 한 적도 있었죠. 그래서 지난 고비의 시간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염을 예로 들어 설명해볼게요. 끙끙거리면서 배앓이를 하는 그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아픔이라는 고비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픔의 감정에 휩싸이고 우울해집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다른 탈출구를 찾고, 공부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찾은 마음이 건강해지는 답은 감정 기복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죠. 모든 것은 나한테서 시작되거든요. 지금 죽을 것 같은 상황도 결국 내 판단일 뿐이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가지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정찬은 다양한 아웃도어 취미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이것이 건강하게 천천히 늙어가는 ‘슬로 에이징’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취미 생활이나 운동을 하다 보면 감정의 기복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그의 유별난 취미 생활이 알려진 것은 2018년 국내 최초 실탄 예능 ‘방탄조끼단’을 통해 ‘밀덕’(밀리터리 덕후)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면서다. 알고 보니 그의 밀덕 역사는 길었다. 1995년부터 BB건(BB탄 총)으로 즐기는 레저 스포츠인 에어소프트 게임을 즐겼다고.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강사로 활동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아웃도어 취미 생활도 ‘질주’
“드라마 데뷔작인 1995년 MBC ‘TV 시티’에서 스턴트맨 영태 역을 맡았어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안 배웠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서 촬영을 위해 배우게 된 거죠. 그런데 그 매력에 빠져들었고, 2002년에는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이후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취득해서 계속 활동했어요. 저에게 수업을 받은 연예인 제자도 몇 명 있습니다. 저는 바다라는 존재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번 휴지기 때도 다이빙 여행을 다녔는데요. 덕분에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정찬의 대표적인 취미는 바이크 라이딩이라고 할 수 있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오토바이 업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인 수준이다. 정찬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OB찬_일기’를 통해 라이더로서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오토바이 리뷰를 하거나 오토바이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재밌게 전해준다. 여기에 더해 이번 달에는 유튜브 채널 ‘임볼든’에서 그가 MC를 맡은 라이더 관련 토크쇼 콘텐츠‘정찬의 술레바퀴’가 공개된다.
“바이크 라이딩 취미는 30대 중반부터 갖게 됐어요. 이제는 대중들도 취미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존중해주고 좋게 봐주신다고 느낍니다. 물론 위험한 취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바이크를 탈 때는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착용해야 합니다. 크게 한 번 사고를 당한 적이 있지만, 안전 장비를 하고 있었던 덕에 가벼운 찰과상에 그쳤죠.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재는 스쿠터 한 대를 갖고 있는데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거나, 병원에 갈 때 아이들을 스쿠터 뒤에 태우죠. 아이들 스스로 스쿠터 탈 때는 헬멧을 꼭 써야 하고, 반소매 옷은 안 된다는 걸 알고 딱 준비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줄 때도 안전교육을 철저히 했어요. 아이들이 안전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취미 생활과 그의 작품 속 캐릭터는 정반대 지점에 있다. 도회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실장·사장 등 고위 엘리트 캐릭터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방영 중인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도 YJ그룹 회장 윤이철 역을 맡고 있다. 액션 연기를 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는 언젠가 한풀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작품 속에서 제복을 입어본 적이 아예 없습니다.(웃음) 당연히 액션물도 좋고, 장르물에도 출연하고 싶어요. 업계에서는 제가 소비된 이미지가 있으니, 계속 그 이미지로 저를 불러주신다고 생각해요. 이번 ‘피도 눈물도 없이’도 회장님 역할이니까 그동안과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티스트이고 허당스러운 캐릭터라는 거예요. 작가님께서 ‘젊었을 때 반짝이던 미남 배우가 와서 철없이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캐스팅됐다고 하더라고요. 오랜만의 작품 출연에 신나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악역 전문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 ‘퀸’, ‘오만과 편견’ 등에서 악역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카타르시스가 있더라고요. 이제 중년으로서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법은 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도 50대에 액션 영화에 도전했고, 60세가 넘어서 전성기를 맞았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늦깎이 아빠의 버킷리스트
정찬은 또 하나의 슬로 에이징 방법으로 ‘늦은 육아’를 꼽았다. 42세에 아빠가 됐다는 그는 “첫딸은 열 살이고 둘째인 아들은 아홉 살이다. 친구들의 자녀는 벌써 성인이다”라면서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인지 젊게 사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2015년 이혼한 정찬은 올해 8년 차 ‘싱글대디’다. 방송과 SNS에서 보이는 아버지로서 그는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 같은 모습이다.
“싱글대디로서 부족한 부분은 많겠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덕분이죠. 친구들이 아빠가 되면서 많이 변했다고 그래요. 저 스스로도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낍니다. 평소에 저는 아이들하고 장난도 잘 치지만,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분명하게 짚어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부모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감정이란 괴물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싱글대디에 대해 사람들은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정찬은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그리워한 적도 있겠지만, 내색을 많이 안 한 것 같다. 주말마다 엄마를 자주 만나고 있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혼 생각이 없다면서 “지금처럼 취미를 즐기면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일상이 행복하다. 연애 생각도 딱히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육아가 또 다르고 힘들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건 그때 일이고,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을 즐기는 정찬. 최근에는 드론 강사 자격증, 무인 헬리콥터 교관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럼에도 아직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가 남았다. 첫 번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것, 두 번째는 손자·손녀를 품에 안아보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우선적으로 소화해야 할 역할을 ‘배우’와 ‘아빠’라고 꼽은 사람답다.
“당장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수상한 이력도 없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손자·손녀를 안아보는 게 더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적령기가 늦춰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애들은 결혼을 늦게 하겠죠. 결혼을 안 할 수도 있고요. 더욱이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안 낳을 가능성도 있죠. 제가 언제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지만, 아프면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요. 오토바이 타고,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정찬은 인생 모토를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은 제2의 탄생이다’라고 표현했다. 잘 늙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하는 것도 거론된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법이다. 이를 몸소 입증한 정찬은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40~60대는 자신에 대해 심오하게 사색하고 고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사람들과 다툴 때 ‘내가 왜 그럴까’라고 원인을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죠.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천천히 건강하게 나이 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나를 사랑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죠. 죽음이라는 제2의 탄생이 다가올 때까지 한 발짝씩 계속 걸어갈 겁니다.”
스타 강사 김창옥 교수가 최근 알츠하이머병 의심 진단을 받았다. 50대 젊은 나이에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터라 더욱 대중을 놀라게 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알츠하이머병은 치매가 아니다.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궁금증을 박기형 가천대학교 길병원 신경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치매란 기억, 언어, 판단력 등의 인지 기능이 감소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전체 치매 환자의 60~70% 정도가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즉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이상 단백질(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뇌 질환을 말한다. 병이 진행되면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치매로 발전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대부분 65세 이후에 발병한다. 이 경우 만발성(노년기)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부른다. 65세 미만에서 발병할 경우 조발성(초로기)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한다. 초기부터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은 기억력 감퇴다. 병이 진행되면서 추상적 사고, 문제 해결, 적절한 결정 및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저하된다. 그 외에 성격 변화, 초조 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공격성 증가, 수면 장애 등의 정신 행동 증상이 흔히 동반된다.
알츠하이머병은 한국인 10대 사망 원인 중 7위에 올랐으며, 2021년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5.6명으로 조사됐다. 치료가 어려운 질환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 예방과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Q. 알츠하이머병은 왜 어르신한테 특히 많이 나타나는 건가요?
A. 일반적으로 50세가 넘어가면서 뇌 안에 병리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우리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끈적끈적해지면서 엉켜 쌓이게 됩니다. 이것이 세포 독성을 만들고, 세포 내에 있는 구조물을 망가뜨립니다. 그 대표적인 구조물이 타우 단백질인데, 그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뇌가 쭈그러들고 위축됩니다. 그러면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인지 기능 가운데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Q. 건망증은 알츠하이머병의 전조 증상인가요?
A.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물건을 어디에 놓고 까먹는다든지, 약속을 깜빡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건망증은 몸이 피곤하다든지 혹은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건망증은 알츠하이머병의 전조 증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누군가 옆에서 ‘이런 약속 있었잖아’라고 알려줘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억하고자 하는 일이 우리의 뇌 안에 ‘등록’되고 ‘저장’되는 과정을 통해서 필요할 때 ‘인출’하는 능력이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기억이 ‘등록’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본인이 새롭게 경험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Q. 어떤 상황일 때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의심하는 것이 좋을까요?
A.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초기 치매 증상이 보이는 분들은 그 사실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망증 또는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분들은 본인의 기억력이나 인지가 예전과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인 반면, 알츠하이머병으로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는 분들은 ‘병식’이 없으므로 본인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병원에 오시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오시는 편입니다. 진짜 중요한 약속을 본인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할 때 경도인지장애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경도인지장애라고 해서 다 치매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경도인지장애의 30% 이상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원인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알츠하이머병의 신약 개발 소식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의약품이 있나요?
A.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 ‘레카네맙’을 승인했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아밀로이드라는 뇌 단백질을 제거하는 치료제입니다. 병을 완전히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진행을 늦출 수는 있습니다. 초기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가 약물 치료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5년 정도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아밀로이드 병리를 가지고 있지만 증상은 전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약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약제가 개발되면 미리 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알츠하이머병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실 알츠하이머병 자체로 사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인지 기능이 없어지는 것부터 시작해 결국에는 뇌 조직이 파괴돼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힘들어집니다. 또 증상이 심해지면 이상행동을 보이고 시설로 많이 가게 됩니다. 그러면 많이 누워 있게 되고 외부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질환에 쉽게 노출됩니다. 결국에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 대해 알려주세요.
A. ‘MIND’(마인드)라고 불리는 식단을 추천합니다. 지중해 식단과 심장병 환자를 위한 DASH 다이어트법을 통합한 것으로 견과류, 채소, 베리 종류를 많이 먹으라는 식이요법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음식이 짜고 맵기 때문에 염분 섭취를 줄이는 식사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염분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을 유발하며,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입니다. 운동은 당연히 해야 하고, 술과 담배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뇌를 활성화해줘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인지 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 D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바깥 활동을 늘려 햇볕을 쬐는 것도 좋겠습니다.
[도움말 박기형 가천대학교 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기획이사)]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청룡의 해’이다. 푸른 용의 기운을 받은 용띠 스타들이 펼칠 활약이 기대를 모은다. 40대 이상 스타를 중심으로 2024년 행보를 알아봤다.
1976년생 용띠 | 용띠 클럽·지성·유지태, 열일 행보
1976년생 연예인 : 권상우, 김민준, 김선영, 김종국, 문정희, 박선영, 박정현, 백지영, 송승헌, 송종호, 안정환, 엄기준, 오지호, 유선, 유지태, 장혁, 조진웅, 정상훈, 차태현, 최원영, 홍경민, 홍경인 등(ㄱㄴㄷ 순)
용띠 스타하면, 연예계 사조직 ‘용띠 클럽’을 빼놓을 수 없다. 1976년생 연예인 모임으로 김종국, 장혁, 차태현이 대표적인 스타이다. 이들은 올해도 활발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먼저, 능력자 김종국은 SBS ‘런닝맨’, ‘미운 우리 새끼’,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출연을 이어간다. 구독자 295만 명을 넘은 유튜브 채널 ‘GYM JONG KOOK’ 운영 또한 활발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고 있는 장혁은 올해 초 배우 최초로 포카앨범(포토카드 형태의 앨범)을 발매한다. 앨범 안에는 음악 대신 장혁이 기획, 연출, 액션 디자인까지 도맡은 느와르 시퀀스가 담긴다. 아이돌이 아닌 배우가 포카앨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례적인 일로 장혁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차태현은 현재 방영 중인 tvN 예능 프로그램 ‘어쩌다 사장3’로 시청자들과 1월 말까지 만난다. 이후 tvN 새 예능 프로그램 ‘아파트404’로 다시 안방 문을 두드린다. ‘아파트404’는 그와 함께 유재석, 오나라, 양세찬, 블랙핑크 제니, 이정하까지 6명의 입주민이 아파트를 배경으로 기상천외한 일들의 실제를 추적하는 시공간 초월 실화 추리극이다.
2017년 SBS 연기대상에 빛나는 지성은 오랜만에 SBS 드라마로 돌아온다.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커넥션’으로 누군가에 의해 마약에 강제로 중독된 마약 팀 에이스 형사가 친구의 죽음을 단서로 20년간 이어진 변질된 우정, 그 커넥션의 전말을 밝혀내는 심리 범죄수사 스릴러다. 지성은 마약 팀 에이스 형사 역을 연기하며, 사회부 기자 역을 맡은 전미도와 호흡을 맞춘다.
지난해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비질란테’를 통해 호연을 펼친 유지태는 티빙 오리지널 ‘빌런즈’에 출연하며 연기 변신을 꾀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범죄계의 소시오패스 역을 맡았다. 더욱이 유지태는 지난해 건국대학교 영상영화과 전임교수로 임명된바, 올해 보여줄 행보에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1964년생|용띠 한석규·허준호·남경주, 거물의 존재감
1964년생 연예인 : 견미리, 김도균, 길해연, 남경주, 박상민, 박해미, 배종옥, 손범수, 안내상, 윤다훈, 이병준, 이선희, 한석규, 허준호 등(ㄱㄴㄷ 순)
한석규는 최근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제)’ 출연 소식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그가 MBC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지난 1995년 '호텔' 이후 29년 만이다. 한석규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파일러이자 이동딸을 혼자 키우는 아빠 연기를 펼친다.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를 추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에 출연했던 허준호는 올해도 넷플릭스 드라마로 시청자와 만난다. 최근 그는 영화 ‘노량’ 인터뷰에서 “‘광장’ 캐릭터를 위해 6~7개월에 걸쳐 20kg을 감량했다”고 밝혔던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이목이 집중된다.
뮤지컬 배우 남경주는 뮤지컬 ‘컴프롬 어웨이’로 관객과 만나고 있으며, 2월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9·11 테러 당시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극으로 관람객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1세대 뮤지컬 배우’로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올해도 열일 행보를 펼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안성기는 1952년생 용띠 스타이다. 2022년 혈액암 투병 소식을 전했던 그는 최근 항암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소식을 전해 연기 활동에 기대가 모아진다. 양희은, 이덕화, 이계인, 임하룡, 배연정 등도 동갑내기 스타다.
미간에 힘을 주고, 목을 긁는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원조 록스타’ 김정민(55)의 창법이다. 유머러스하게 따라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가수로서 가창력이 뛰어나면 당연히 좋겠죠. 그런데 색깔 있는 사람도 오래 기억된다고 생각합니다. 독특함으로 오랜 시간 생존한 것 같아요.”
“저 옛날 사람 맞는걸요. 하하하.” 어느덧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을 맞이한다. 1995년 ‘슬픈 언약식’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긴 김정민은 ‘옛날 사람’이라는 표현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2021년 MBC ‘놀면 뭐하니?’를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MSG워너비’ 활동 당시 그는 ‘옛날 사람’으로 불리는 동시에 많은 20·30의 MZ세대 팬을 얻었다. 김정민은 젊은 팬들이 자신을 촌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바라본다고 느낀다.
“제 노래가 요즘 스타일과는 다르니까 옛날 스타일일 수 있죠. 젊은 팬들이 클래식함, 독특함으로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또 과거 노래 가사는 지금과 달리 극단적인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당시 홍콩 누아르 영화를 봐도 마지막에 주인공은 상대를 구해놓고 죽는 경우가 많았죠. 개인적으로 저는 그 시절의 감성을 좋아하는데, 젊은 팬들도 그런 것 같아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한번 노래 들어보니까 좋다’면서 저의 다른 노래들도 찾아 들어주시더라고요.”
그렇다고 과거 감성에 취해 있고 고집한다는 뜻은 아니다. 요즘 스타일은 수용하면서 자신의 독특함을 지켜나가고 있다. 무엇이 됐든 오랜 세월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숨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제가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는 아니에요. 그냥 음색이 독특한 가수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게 많아서 지금도 노래 연습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 성대도 나이가 들면 늙고 목소리가 변화하기 때문에 매일 노래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운전할 때 차에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합니다. 나만의 공간이니까 내가 뭘 하더라도 아무런 제약이 없죠. 지방에 일이 있어 두 시간 운전해야 한다고 하면, 두 시간 내내 MR을 틀어놓고 노래 연습을 하는 거죠.”
팬과 함께한 ‘영원’
김정민은 11월 17일 고(故) 최진영의 ‘영원’(1999년)을 리메이크한 곡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원곡의 감성에 김정민의 색깔을 입혀 색다른 곡으로 재탄생했다. 사실 김정민과 ‘영원’은 인연이 깊다. 원래 이 곡은 김정민에게 갈 예정이었는데, 데모를 들은 최진영이 너무 마음에 들어해 그의 노래가 됐다. 그리고 ‘영원’은 리메이크되어 24년 만에 세상 밖에 다시 나왔다.
“(최)진영 씨와 같은 사무실에 있었어요. 술도 자주 마셨고 여행도 다닐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어요. 진영 씨가 하늘나라로 간 뒤로는 그 충격에 ‘영원’을 못 부르겠더라고요. 한 10년이 지나니까 감정이 조금 무뎌졌는지 부를 수 있었죠. MSG워너비 하면서 블라인드 오디션 때도 ‘영원’을 불렀는데, 음원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용기 내서 진영 씨를 잊지 말자는 마음으로 리메이크곡을 내게 된 거예요. 원곡의 완성도가 워낙 높아서 어설플까 봐 고민이 깊었어요. 편곡도 10번 이상 갈아엎었고, 준비하는 데만 1년이 걸렸습니다.”
‘잘해도 본전’이라고 생각했지만 김정민이 ‘영원’ 발매를 용기 내 강행한 데는 이유가 있다. 팬들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이다. 기념 영상의 감독, 촬영, 편집 모두 팬이 맡았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할 정도니, 김정민의 ‘팬 사랑’은 말 다 했다. 연예계에서도 익히 유명하다. 추억을 공유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동반자인 팬들에게 그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중·고등학생 팬들이 저를 보겠다고 방송국 앞에서 늦게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밥은 먹었나’, ‘집은 잘 들어갔나’ 걱정이 됐죠. 한번은 추운 겨울날에도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20명에게 짜장면을 사준 적이 있어요. 그랬던 친구들인데, 이제는 자녀들이 성인이 됐죠. 이제 팬들과 여동생, 남동생 같은 사이가 된 것 같아서 좋아요. 팬은 ‘또 다른 김정민’이라고 생각합니다. 팬들이 저를 만들어줬고 지켜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기러기 아빠의 부성애
그는 최근 친구에게 “정민아,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죽음’을 생각하게 되기에 대화 도중 자연스럽게 나온 이야기였다고 한다. 김정민은 ‘아직은 죽을 수 없다’는 답을 했다. 일본 아이돌 출신 타니 루미코와 2006년 결혼해, 슬하에 세 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아빠로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한테 그 질문을 듣고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막내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막내가 성인이 되어 뭘 하는지는 보고 죽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막내가 결혼하는 모습까지 보고 싶지만, 그건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의 부성애는 실로 대단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세 아들에 관한 답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버킷리스트를 물었을 때도 “아이들이 운동을 계속해서 어느 팀의 선수가 된다면, 그 팀의 응원가를 헌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수 아빠로서 재능기부인 셈이다. 아이들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김정민은 최근 ‘기러기 아빠’가 됐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큰아들은 광주FC U18 소속으로 축구를 하고 있어서 광주에 있고요. 둘째 아들, 셋째 아들은 엄마와 함께 일본으로 갔습니다. 둘째는 축구를 하다가 쉬고 있고, 셋째는 일본에서 축구를 시작했어요. 기러기 아빠를 제 인생에서 그려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두 달밖에 안 됐는데도 쉽지 않다고 느껴요. 아내와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기러기 아빠가 된 후, 홀로 살고 계신 어머님을 더욱 자주 찾아뵙는다고 한다. 일주일에 2~3번은 방문한다는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도 물론 보고 싶어 하지만, 사실 아들이나 딸을 보고 싶어 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께 이에 대해 여쭤보니 ‘네 아들은 삼 형제지만, 내 아들은 너잖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데 되게 뭉클했고, 그 이후 자주 찾아뵈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자신감 충만한 중년의 내일
김정민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면 세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반면 50대 중반의 그는 연예계 대표 동안 스타답게 방부제 미모를 과시한다. 이런 반응에 김정민은 “사실 주름도 늘어나고 많이 늙었다”면서도 “젊은 시절의 몸무게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관리 비결을 밝혔다. 그만의 철칙은 ‘플러스 마이너스 3kg 넘지 않기’다.
“10kg 이상 갑자기 확 쪘다고 생각해보세요. 살을 빼도 피부가 늘어나니까 성형외과에 가야 할 테고, 돈이 더 들죠. 평소 ‘3kg 관리’를 습관화하면 돈도 안 들고 건강도 유지하고, 좋은 점이 많습니다. 저는 매일 운동을 병행해요. 오늘 아침에도 실내 자전거 40분 타고 왔습니다. 제가 하도 많이 타서 저희 집 실내 자전거는 한 다섯 번은 바꾼 것 같아요. 하하.”
이처럼 건강관리가 최고의 노후 준비라고 생각한다. 특히 막내가 대학교 갈 때까지 10년 정도 남았다면서 그때까지는 건강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자신이 건강해야 일하고 자산도 축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노후에는 한 번쯤 일본 시골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사실 제가 서울 마포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아이들이 제가 졸업한 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벌써 반백 년을 살았네요. 나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거기가 시골이라서 공기도 좋은데, 없는 게 없더라고요. 아이들은 걸어서 학교를 다니고, 대형 쇼핑센터도 인근에 있어요.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거기서 지낼 거라고 해야지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됐네요.”
김정민은 중년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자신감을 찾았다고 말한다. 가창 실력이 늘어서도, 외모가 멋있어져서도 아니다. 스스로 마음이 충만해지고 내실을 갖췄다고 느낀다. 그가 지금껏 쏟아부은 노력과 부단한 채찍질이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저는 나름 신조어 같은 것이 있어요. 바로 ‘오늘 하루도 나나 잘하자!’입니다. 톱니바퀴를 보면 한쪽이 돌아가면 반대쪽 바퀴도 돌아가잖아요. 그것처럼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고 남 탓하지 않으면서 내가 할 일을 잘하면, 이 세상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뮤지컬 ‘맘마미아’를 공연했는데, 무대에 오르기 전에 매일 그 말을 다짐처럼 했죠. 그랬더니 다른 배우들도 공연할 때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연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기억에 계속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나의 작은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적당히 햇볕 좋았던 지난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과 토요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은 유난히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경연 아닌 축제로 펼쳐진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에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여기는 어떤 부스예요?”
“스탬프 찍어주나요?”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 비즈로드 한켠에 자리 잡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찾은 이들의 질문이다. 매거진을 살펴보고 살가운 눈인사를 건넨 이들은 리플릿(전단)을 들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지역 명소를 그린 작품을 구경하고, 지역 특산물로 공예품을 만들고, 파크골프와 실버마불(야외 보드게임)을 체험하고, 공연 무대에 오르고, 또 공연을 객석에서 응원했다. 체험·전시, 공연, 포럼까지 전국 어르신 문화예술을 제대로 즐긴 시니어 2만 2126명(부스 참여 인원 포함)은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경쟁 빼고 재미 더하고
어르신의 대표 축제 ‘실버문화페스티벌’이 10월 27일부터 이틀간 치러졌다.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으로 2015년부터 시작된 ‘실버문화페스티벌’은 8년 동안 총 2203팀, 14만 2387명이 참여해 주체적인 실버 세대의 문화예술 활동을 알렸다.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은 ‘실버 두잇: 꿈을 잇다! 문화를 잇다! 세대를 잇다!’라는 주제로 펼쳐졌다. 4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실버문화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기존 경연 대회 형식에서 벗어나 지역별로 다양한 어르신 문화예술 활동 성과를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했다.
경쟁을 뺀 현장은 공기부터 달랐다.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27일부터 이틀간 참여자 5000여 명 모두가 축제를 즐겼다고 했다. “그동안 경연에 지나치게 경도된 경향이 있었어요. 성적에 매몰되고 상을 못 받으면 실망하고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축제였어요.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습니다.”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 참가팀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그동안 ‘잘하는 팀’을 선발했다면 올해는 ‘해당 지역 문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팀’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렇게 ‘샤이니스타한마당’이라 불린 무대에서 양일간 전국 16개 시·도 대표 어르신 단체가 무용, 패션쇼, 연극, 음악 등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준우승 팀 ‘소리울’과 ‘다움’의 세대공감 오프닝 공연을 시작으로 각 지역 어르신 단체의 공연이 이어졌고, 트로트 가수 김수찬의 축하 공연,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우승 팀 ‘연제춤사랑’의 부채춤 공연까지 풍성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대표성을 가진 각 지역 활동을 볼 수 있는 장이었다고 돌아봤다. “강원도 팀은 평창아라리로 무대를 꾸몄고, 전남 팀은 호남좌도농악을 선보였습니다. 경북 팀은 삼국유사 향가와 민요를 불렀어요. 제주도 팀은 감물 염색한 옷을 입고 패션쇼를 했고요. 이전까진 각자 무대 준비에 바빴는데 이번엔 다른 지역 무대도 즐길 수 있었어요. 경쟁하지 않으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진정한 축제의 주인공으로
무대 밖은 한층 더 자유로웠다. ‘문화교류한마당’에서는 전국 각지 어르신이 직접 참여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전시·체험·이벤트 부스 60여 개가 이틀간 쉴 새 없이 손님을 맞았다. 산책 나온 인근 주민부터 여의도 2030 직장인, 주변 어린이집 교사와 원생까지 폭넓은 세대가 부스에 관심을 보였다. 단연 주인공은 시니어였다. 그들은 부스 운영과 참여 주체로 축제를 만끽했다. 한 70대 어르신의 말이다. “축제의 구경꾼이 아닌 주인공이 된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앞으로도 실버 세대를 위한 더 많은 축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참여자가 주체가 된 축제였다고 평했다. “기존에는 만들어진 축제에 어르신들이 참여했다면, 이번에는 축제를 직접 만든 것 같다”고 말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온 이도 참여자로 왔다가 주인공이 되어 돌아간다며 활짝 웃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네요. 내 또래들이 다양하게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실버 세대의 문화예술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는 것도 정말 보람되고, 이런 활동을 하는 스스로에게도 괜히 뿌듯해지네요. 기분이 좋습니다!”
‘더 클래식 500’은 국내 실버타운 중 보증금이 최고가로 유명하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방송에서 ‘드림 타운’이라고 평가한 이후 인기가 치솟았다. 입주 대기 기간은 평균 2년. 그곳만의 차별화된 매력은 무엇일까.
◇건대입구역, 지리적 특장점
‘더 클래식 500’은 학교법인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다. 지하철 건대입구역의 ‘스타시티’ 상업지구 내 위치한다. 시니어는 무엇보다 의료 서비스가 중요한데, 더 클래식 500 입주 회원은 건국대학교병원 진료 시 필요한 행정지원 서비스 및 최적화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건국대학교병원 헬스케어센터와 연계한 건강검진 서비스와 스포츠의학센터를 통해 과학적이고 차별화된 운동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더 클래식 500 측은 “높은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접근성 및 편리성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강북뿐 아니라 강남까지 빠르게 이동 가능한 건대입구역에 위치해 가족 및 지인과의 편리하고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하다. 또한 반경 200m 안에서 대학병원, 백화점, 영화관 및 다양한 생활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 높지만 서비스는 ‘고품격’
더 클래식 500은 지상 50층과 40층의 A, B 두 개 동 초고층 건물로, 고품격 호텔식 주거 서비스와 헬스케어를 제공한다. 특히 2300㎡ 규모의 최고급 피트니스 클럽과 스파, 골프존 등의 부대시설은 실제 입주자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만큼 비싼 실버타운이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보증금이 9억 원이나 되지만, 입주 대기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더 클래식 500 측은 “선호하는 층과 방향, 조망권을 갖춘 해당 세대의 공실 여부에 따라 입주대기 신청부터 실제 입주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달라진다. 1년에서 3년까지 소요될 수 있으나 평균 소요 기간은 2년이다”라고 설명했다.
◇액티브 시니어 문화 교류의 장
더 클래식 500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60세부터 8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액티브 시니어가 거주하고 있다. 직업군 역시 기업인, 전문직, 학자, 법률가 등 다양하며,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다. 액티브 시니어답게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더 클래식 500은 이와 같은 입주자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시설과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외부 나들이 행사, 음악회, 패밀리 파티 등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또한 스포츠·예술 관련 동호회를 운영해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한다.
지난해 ‘주접에 나이 제한이 있냐?’고 되묻는 발칙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 이름도 방정맞은 ‘주접이 풍년’이다. 시니어 팬덤을 ‘주접단’으로 명명한 프로그램은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며 아예 ‘팬심 자랑대회’를 열였다. 숨어 있는 사연을 듣고 덕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 토크 버라이어티는 스물세 번의 주접 이후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주접이 풍년’ 연출자를 만나 목격담을 들었다.
처음에는 다들 쭈뼛쭈뼛한다고 했다. KBS라는 이름이 부담스럽고, 스무 명 정도 되는 젊은 작가들이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르고 질문을 해대는 것도 낯설어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고 말이다. 이때 편은지 ‘주접이 풍년’ 메인 PD가 분위기를 깨는 마법의 주문은 의외로 간단하다. “OOO(좋아하는 스타) 좋아하시죠?”
“응원하는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면 돌변해요. ‘OOO에 대해서는 내가 전문가야’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요. 낯선 팬덤 문화에 반문이라도 하면 ‘PD가 그런 것도 몰라요?’ 하고 핀잔을 주기도 하시죠. 나중엔 ‘아, 지금 투표할 시간이 돼서 잠깐만요!’ 하면서 팬덤 활동까지 다 하세요.(웃음)”
‘주접단’의 세 가지 특징
시니어 팬이라고 하면 자녀의 ‘효도 티케팅’으로 어렵게 콘서트 한 번 가고, 공연이 끝나면 밖에서 자녀와 만나 “어땠어? 재밌었어? 그렇게 좋아? 하하하” 하며 행복하게 귀가하는 풍경을 그리기 쉽지만, 편은지 PD가 만난 팬들은 사실 그 이상이다. 전국에서 선별해 모집한 ‘주접단’은 그야말로 시니어 팬덤의 핵심부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구매력이다. “규모가 달라요. 운영하는 가게를 덕질하는 아티스트로 도배하는 건 흔하죠.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으세요.”
‘주접단’은 포용의 폭도 남다르다. 일부 K팝 팬덤의 경우 스타의 잘못이나 실수에 보이콧을 선언하고 응원봉을 끄는 단체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시니어 팬덤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정말 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아요. 아들·딸이 실수했다고 내치지 않는 것처럼 시니어 팬덤은 조금 더 품으시죠. 한번은 제작진이 한 스타의 논란을 물은 적이 있는데 바로 날을 세우시더라고요. 강하게 보호하려는 마음을 느꼈어요.”
세 번째 특징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바로 과몰입이다. ‘덕후 마음은 덕후가 안다’고 외치는 자칭 ‘빠순이’ 편은지 PD지만 시니어 팬덤은 몰입도가 때론 과할 정도라고 한다. 그가 들려준 두 사연은 이렇다.
“김호중 씨 팬인 자매가 있어요. ‘김호중 떴다’ 하면 두 분이 보라색(김호중 팬덤 상징색) 옷을 입고 밤이면 밤마다 나가시죠. 김호중 씨 관계되는 일이면 다 가는 거예요. 김호중 씨와 인연 있는 PD님 모친상에도 가셨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동생 남편분께서 너무 화가 나서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처형께도 ‘손절’ 문자를 보낸 거죠. ‘이제 우리 집에 오지 마소’라고요. 근데 나중에 자매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대요. ‘김호중 생각하니까 없던 힘도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또 한 분은 울면서 이야기하셨어요. 아버님이 위독해서 입원을 하셨는데, 그 와중에 ‘미스터트롯’ 문자 투표하는 날이라 울면서 아버님 휴대폰으로 투표를 하셨다고요. ‘내가 단단히 미쳤구나’ 생각하면서도 표를 던지셨대요. 후회는 안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과몰입을 보는 PD의 시선
시니어 팬덤의 과몰입 현상은 객관성이 결여된 비논리적인 팬덤 문화라고 비난받기도 한다. 편은지 PD는 ‘주접단’의 과몰입을 이해해보려는 듯 나름의 짐작을 전했다.
“기본적으로 팬은 객관적일 수 없어요. 이건 깔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시니어 팬덤은 보고 끝나는 수동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해야 해요. 투표를 하면서 이미 내 행동이 개입되죠. 개입된 일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일은 몰입도가 달라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살아오다가 내가 표를 준 사람이 순위권에 들고 스타가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K팝 팬들도 ‘내가 스타 만들었어’, ‘소속사 기둥 하나 내가 세웠어’라고 말하기도 해요. 내가 키운 스타라고 생각하면 계속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편은지 PD는 시선을 팬덤이 가지는 의미로 돌렸다. ‘주접단’을 만나며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와 작가들은 인터뷰 대상자와 함께 참 많이 울고 웃었고, 무던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인터뷰 대상자보다 더 많이 운 것 같아요. 약 없이는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송가인 씨 팬이 되고 송가인 씨 노래 가사를 나무에 새기면서 일상을 회복했다는 팬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러고 보면 ‘주접단’은 굉장히 주체적으로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팬덤이 가지는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편은지 PD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스타들의 반응이다. 넉넉지 않은 제작비 탓에 변변찮은 출연료를 지불하고 읍소하듯 모신 출연진은 하나같이 촬영 종료 뒤 감사 인사하기 바빴다. “사실 ‘주접이 풍년’은 스타 입장에서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사소한 행동 하나에 상처받을 수 있는 수많은 팬을 일일이 헤아려야 하는 굉장히 껄끄러운 촬영장일 수 있거든요. 촬영 시간이 짧지도 않고요. 그런데 스타들이 진심으로 좋아했어요.”
1회를 장식한 가수 송가인은 작가진의 자녀 돌잔치 참석을 즉석 약속해 소속사 대표가 진땀을 흘릴 정도였고, 데뷔 60년이 가까워오는 가수 남진은 제작진에게 따로 식사 대접까지 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주접’이 뭐냐…”는 말 속에 막이 오른 편은지 PD의 입봉작은 가수 남진의 극찬(?) 속에 막을 내렸다. “여기 PD가 대그빡(머리의 사투리)이 돌아가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