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라이프] 늙었다는 편견을 테니스로 ‘빡’, 97세 한상원이 사는 법

기사입력 2014-06-18 18:11 기사수정 2014-06-18 18:11

▲97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테니스 코트를 이곳저곳을 누비는 한상원(97)씨. 양용비 기자 dragonfly@

가벼운 발놀림. 경쾌한 스트로크.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유니폼에 까만 선글라스를 낀 한 신사의 테니스 라켓 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모자 끝으로 살짝 삐져나온 백발과 선글라스 주위에 움푹 패인 주름을 보고 나서야 이 테니스 신사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얼굴에 퍼진 나이테는 족히 70~80대라고 써 있다. 테니스 코트를 쉬지 않고 누비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 판단에 더욱 확신이 든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테니스 신사’ 한상원 씨는 무려 97세.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해도 저렇게 활동할 수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야말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청춘이다. 곧게 펴진 허리, 더위에 아랑곳 하지 않는 패션 센스,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얼굴에서 전혀 90대의 흔적이라고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대외 단체 활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그다. 테니스와 대외 단체 활동은 그의 삶의 원동력이다.

테니스 인생 80년. 사실 그는 테니스계의 대부다. 테니스 동호회 청우회의 동료 김영근(84)씨는 그를 ‘테니스계의 보배’라고 치켜세웠다. 대한테니스협회 회장 2회 역임, 테니스 단장으로 국가대표팀 선수를 이끌고 아시안게임에도 3회나 나갔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하다.

▲테니스 동호회 청우회 회원들과 함께 한 한상원 씨(왼쪽에서 세번째). 양용비 기자 dragonfly@

◇“건강의 비결? 적극적인 단체 생활 그리고 테니스죠.”

조금의 헐떡임도 없다. 약 20분간의 테니스 시합 후 인터뷰가 진행 됐지만 힘들어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인터뷰 내내 귓속에 끼워진 금색 보청기만이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 수 있는 나이에 그는 코트에 당당하게 서 있다. 10~20세 이상 차이나는 후배들과의 테니스 시합에서는 이제 관록이 묻어난다.

“건강의 비결이요? 물론 테니스지. 그리고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대외활동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젊은 시절 몸 담았던 회사동료들 모임에 가거나 국제 키와니스 클럽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또 다른 제 건강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씨의 현재 삶에서 테니스 비중은 60%, 대외 단체 활동이 40%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운동하고, 웃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는 생활. 그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이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는 그의 활동량을 보면 정정하다는 말보다 활기가 넘쳐흐른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80년을 테니스와 함께 동고동락했기 때문인지 한씨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할 정도의 테니스 예찬론자다. 그의 몸이 말해주듯 시니어 건강에 있어 테니스가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테니스로 단련한 체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단체 활동도 못했을 것이라는 그다.

“나를 봐요. 어디 아픈 데가 없잖아. 상하전후좌우 모든 곳을 움직이니 이만한 전신 운동이 없죠. 아마 테니스를 안했으면 좋아하는 사람들도 못 만나고 침대에만 누워 있었을지도 모르지.”

건강의 비결은 습관에서도 나온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고, 적게 먹기. 이것은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그리고 또 하나. 틈만 나면 걷기다. 이것은 아직까지 그에게 철칙이다. 테니스와 걷기운동, 건설적인 친교활동. 그의 건강 비결은 특별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한상원 씨. 양용비 기자 dragonfly@

◇아직도 삶의 의지를 놓을 수 없는 이유

한씨는 10~20년 전까지만 해도 테니스를 치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지금은 다르다. 테니스 한게임을 하고 나면 몸에 피곤하다는 반응이 금세 온다. 그러나 한씨는 라켓을 놓을 수 없다. 테니스와 사회 활동이 삶의 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항상 밝은 웃음을 머금고 대답을 이어 나가던 그의 입에서 무서운 말이 흘러나왔다. 얼마 전 라켓을 놓고 삶의 의지를 놓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활동하는 단체의 일부 사람에게서 회의감을 느낄 만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늙었으면 이제 쉬는 게 좋지 않냐’는 말을 어린 후배들에게 들었어요. 그 때 정말 삶의 의지를 놓고 싶더라고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실망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힘이 돼 주는 후배들이 더 많기에 쉽게 삶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나에게 힘을 주는 후배들이 더욱 많은 덕이다.

“‘선생님이 목표에요. 그러니 120세까지 건강하셔야 돼요.’ 이렇게 예쁘게 말하는 후배를 두고 어떻게 삶을 내려놓겠어요. 이 친구들을 봐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오래 살아야지 뭐.”

고인 물은 썩는다. 액티브(Active) 청춘 한상원은 97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은 흐르는 물이다. 그가 행복한 청춘을 유지하는 비결. 그것은 흐르는 물과 같이 멈추지 않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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