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소득흐름이란?
“돈이 없는 사람은 이빨 빠진 늑대다.” 프랑스 속담이다. 이빨 빠진 늑대 앞에 놓인 현실은 굶주림과 죽음뿐이다. 일부일처제와 무리생활을 하는 늑대는 이동할 때 늙거나 병든 늑대를 앞세우고, 제일 뒤에는 가장 강한 늑대가 선다. 낙오와 적의 후면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런 늑대도 이빨이 빠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은 이빨이 빠지면 틀니나 임플란트를 심는다. 대체 이빨이 없더라도 미음과 영양제 등을 통해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다. 늑대와 사람의 차이다.
이빨은 멀쩡한데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떨까? 이빨 빠진 늑대처럼 며칠 만에 굶어죽지는 않더라도 굶주림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힘든 노후에 돈이 없으면 “늙음은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사람에게도 짐”이라는 에라스무스의 불길한 예언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라면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맘에 들진 않더라도 오복의 하나라는 이빨보다 돈이 더 낫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경제활동이 힘든 노후에 어떻게 돈을 마련하느냐다. 짐이 되지 않으려면 그동안 쌓아놓은 돈, 즉 자산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소득(income)이라 부른다. 쉽게 말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현금(cash)이다. 소득흐름과 현금흐름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흐름(stream)’이란 로또 당첨금 같은 거액의 일시적 소득이나 현금이 아니라 꾸준한 소득이나 현금을 뜻한다. 즉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현금흐름이 쭉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종류의 소득
그동안 쌓아온 돈, 즉 자산에서 안정적인 소득흐름을 만들어내려면 먼저 소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노후생활을 뒷받침하는 소득에는 근로소득·연금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임대소득·저작권료·목돈에서 일정액을 찾아 소득화하는 방법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근로소득·연금소득·이자소득·임대소득·목돈의 소득화 방법 등은 매달 일정한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반면에 배당소득과 저작권료는 분기 또는 연단위로 소득이 발생한다. 노후에도 매달 생활이 이어짐을 감안하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좋지만 분기 또는 연단위로 발생하는 소득도 아주 소중하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료는 적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액티브 시니어에게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액티브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들을 책으로 묶어내면 소중한 경험자산이 사회적으로 사장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 대박을 치면 금전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액티브 시니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또 하나 되짚어봐야 할 것은 소득흐름의 기간이다. 인간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싫든 좋든 삶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소득 역시 지속적으로 쭉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생활비가 나오는 종신연금과 사후 50년까지 보호되는 저작권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특출한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저자 저작권료 시효가 극히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금소득의 가치는 특별함을 더한다. 나머지 근로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임대소득·목돈의 소득화 방법 등은 해당 소득을 발생시키는 원천이 사라지면 당사자가 사망하기 전이라도 소멸되고 만다. 그렇다고 이들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노후의 삶에도 다양한 이벤트가 있고, 그중에는 돈의 지출을 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교적 풍부하고 비중이 절대적인 근로소득을 가지고 있는 현역 시절과 달리 그런 소득이 없는 노후에 다양한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소득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금소득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노후에 연금소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자산을 연금화해버리면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른바 유동성 문제에 직면해 자칫하다간 흑자도산하는 기업처럼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각 소득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표1] 참조).
안정적 소득흐름 창출하는 방법
노후에 안정적 소득흐름을 창출하고자 할 때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은 자산 규모와 연금소득의 수준이다. 이상적인 소득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자산이 없는 사람은 일정액 이상의 연금소득 확보에 초점을 둬야 한다. 최저생계비 정도는 연금소득으로 확보해야 한다. 생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최저생계비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구도자가 아닌 한 생계비 걱정에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생계비는 중위소득의 60%로 산출되는데 2017년의 경우 1인 가구는 99만1759원, 2인 가구는 168만8669원이다.
올해 62세인 A씨는 5년 전 은퇴해 2세 연하의 부인과 함께 나름 행복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출가한 두 자녀가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정도로 기반을 잡고 있어 자식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도 걱정이 있으니, 바로 연금이다. 그의 연금소득은 올해부터 받는 90만원 정도의 국민연금이 전부다. 그동안의 생활비는 57세 은퇴할 때 받은 3억원 정도의 퇴직급여를 은행에 넣어두고 빼내 쓰는 ‘목돈의 소득화’ 방법으로 조달했다. 매달 200만원을 사용한 결과 3억원이던 퇴직급여는 5년 만에 1억8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부터는 국민연금 90만원을 제외한 110만원을 퇴직급여에서 빼 쓰고 있다. 이런 추세로 계속 갈 경우 A씨의 퇴직급여는 정확히 13.6년 만에 고갈되고 만다. A씨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A씨에게 탈출구는 없을까? A씨의 국민연금은 2인 가구 최저생계비보다 약 80만원이 부족하고, 본인들의 생활비보다는 110만원이 모자란다. 서울에서 시가 7억원 정도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상담 끝에 주택연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부인의 나이(60세) 기준으로 7억원 아파트로 주택연금(종신지급, 정액형)에 가입하면 매월 약 147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최저생계비는 물론 본인들의 생활비보다 많은 연금소득이 만들어진다. A씨는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친 연금 총액 중 본인의 생활비를 초과하는 금액(37만원)을 저축하기로 했다. 10만원은 3년 뒤 해외여행을 목표로 조금이라도 금리가 높은 새마을금고 적금에 들고, 나머지 27만원은 비상자금 용도로 증권사 CMA에 가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자금 담당)을 활용하기 위해 책 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한편 강사와 학원사업 등으로 50억대 자산가 반열에 오른 B씨(65세)는 5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하지 않은 성인 자녀(30세) 한 명과 20억 정도의 빌라에서 생활비 걱정 없는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의 수입원은 국민연금 55만원, 이자수입 120만원, 20억대 상가 임대료 약 1000만원이다. 10억은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이런 그에게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지만 B씨는 요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경기 탓인지 임대료 수금이 잘 안 되고, 얼마 전부터 여자 친구가 생긴 아들이 결혼을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B씨는 아들 결혼자금으로 5억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B씨의 월 생활비는 약 1000만원이다. 임대료가 제때 걷히지 않는 달에는 적자를 보기도 한다. 앞으로 월 생활비를 20% 정도 줄일 생각인 B씨는 최소한 생활비 정도는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임대료 수금이 원활하지 못한 상가는 이번 기회에 처분할 계획이고, 거주하는 빌라는 나중에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B씨는 향후 월 생활비 800만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싶어 한다. 국민연금과 이자수입은 120만원 정도로 줄어들 것이므로 약 680만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결국 B씨는 둘째 아들 결혼자금 5억원을 제한 나머지 5억원은 비상자금으로 유지하되 수익성과 유동성을 고려해 예금과 펀드 등에 분산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가가 처분되면 그 돈의 반을 투자해 소형 아파트 몇 채를 구매해 임대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머지 반인 10억원은 즉시연금과 월지급식펀드를 활용해 소득흐름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기로 계획을 짰다. 이렇게 하면 B씨의 소득원은 아파트 월세, 국민연금, 즉시연금, 월지급식펀드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안정성·수익성·유동성을 함께 노릴 수 있게 된다.
최근 유럽경제가 표면상 조용한 것 같다. 브렉시트로 인하여 법석을 떨던 이야기도 잊혀 가고 프랑스마저 플렉시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경제위기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검토해 보고 그 대안을 한 번 찾아본다. 유럽의 경제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왜 영국은 브렉시트라는 결정을 내려놓고 있는가? 과연 영국은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가? 아니면 후퇴하고 있는가? 그 진실은 무엇인가?
2010년 2월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야기된 유럽의 재정위기는 현재까지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국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1999년 출범한 유럽 통화동맹의 결성부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은 단일 공동시장을 형성하여 참여국가의 경제를 발전시키며 환율을 변동을 억제하여 안정적인 경제운용을 도모한다는 목표로 결성이 되었던 것이다. 1998년에는 통화동맹의 핵심인 유럽중앙은행(ECB)을 설립하기까지 이르렀다.
이후 유럽의 통화정책에 있어 독일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의 높은 신용도와 낮은 물가 상승률로 인하여 독일의 정책금리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이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럽통화동맹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독일 이외의 관련 국가가 지나친 경제성장률을 보인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를 총동원하여 성장을 할 수 있게 하는 잠재 성장률이라 하는데 이것이 실질 성장률을 초과하면 경제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플레이션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유럽의 부동산 가격은 호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10년 남유럽 국가들의 문제는 대부분 이와 같은 것들이었다.
참조로 유럽의 경제규모는 2014년 말 13.4조 달러 미국은 17.4조 달러와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공동체 내에서 자유시장이 형성되니 독일은 시장을 확대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즉 경기과열의 결과 PIGS 국가들은 물가폭등이 일어나고 재정적자를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질금리에 대하여 이해를 해야 한다. 실질금리란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을 말한다. 즉 은행이자가 3%라 하더라도 물가가 4%올랐다면 실질금리는 -1%가 된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므로 너도 나도 부동산을 사게 되게 된 것이다. 즉 2000년대 유럽 부동산 상승의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런 경기호황은 경상수지 적자를 누적시켜 결국에는 경상수지 악화로 유럽의 경제위기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경상수지 적자는 물가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의 약화로 수출 감소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으니 이제 우리나라 경제를 좀 더 깊이 알기위해서는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경제대국의 경제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대책을 수립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위 PIGS 국가라고 불리는 남부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는 막대한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으나 경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재 3가지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 (본안은 필자가 최근 읽어본
홍춘욱 박사의 '환율의 미래' 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혀둔다.) 첫째는 유로화를 버리고 다시 옛날 통화체제로 복귀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스의 경우 유로화를 폐기하고 과거 사용하던 드라크마화로 복귀하면 대규모 평가절하를 단행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일거에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도 더 많이 유치하게 되어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즉 시중은행이 부도날 경우에 대비하여 일거에 예금을 인출하여 은행을 바꾸거나 다른 은행계좌로 이체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아르헨티나도 비슷한 사태로 은행이 위기(뱅크런)에 처한 경우와 같은 문제가 있어 어려운 상황이다.2015년 유로 통화권 탈태 건이 이슈가 되자 비슷한 사태가 실제로 발생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물가와 임금, 그리고 부동산 가격을 충분히 떨어뜨려 경쟁력을 개선시키는 방법이 있다.
금리인상 권한은 유럽중앙은행에 있기 때문에 재정지출 삭감 외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재정지출의 감소 혹은 세금 인상을 통해 재정을 건전화시키는 것은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거나 성장률을 추락시켜 세수를 더욱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셋째로 마지막 선택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과도한 부채를 털어내고, 통화의 평가절하를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 유럽중앙은행은 이러한 방식으로 해결안을 찾으려하고 있다. 종전 필자가 언급한 미국이 1970년대 취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즉, 베트남 전쟁 등으로 수렁에 빠진 미국은 어마어마한 재정적자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빚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예를 들면 매년 100달러의 이자를 내는 장기채권의 경우 시장금리가 5% 인 경우 채권의 가치는 2,000달러이다.(100달러/0.05)그러나 금리가 10%로 올라가면 100달러/0.1=1,000달러로 채권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시장의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가 내려면 채권가격은 오른다. 즉 채권의 가치는 시장금리와 반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 예상되면 금리는 올라가고 이는 부채가치의 하락이 되는 것이다.하버드 대학 로고프 교수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파산상태에 처한 모든 국가가 20% 이상의 강력한 인플레이션을 통해 국가 부도의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과거 IMF 때 우리나라도 금리가 급상승하였고 인플레이션이 심한 상황에서 국가부도 대신 V자 상승을 유도한 것과 비슷한 국면이 있었다. 현재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많이 개선되고 있다. 요컨대 3가지 대안 중 유럽 중앙은행 총재는 3번째 안이 현재 세계적인 저유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로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순간 통화확대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고 유로화의 심판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향후 유럽경제의 흐름을 이러한 측면에서 지켜보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대응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친정엄마가 필자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 오셨다. 엄마와 필자는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같은 취미를 가졌다.
엄마 집에 케이블방송을 설치한 후 요즘 우리는 좋은 영화 찾아보기에 열중하고 있다.
각각 다른 장르의 수많은 영화 중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내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서 엄마랑 필자는 리모컨을 들고 계속 영화 제목을 돌리고 있다.
엄마는 한국영화는 보지 않으신다. 알고 보니 언젠가부터 귀가 나빠져서 자막이 나오는 외국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이유를 알고 나니 쓸쓸하고 가슴이 아팠다.
엄마는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신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이나 서양의 왕실 이야기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엄마의 설명을 듣는 건 재미있고 영화에 대한 이해가 잘 되는 장점이 있다.
오늘은 많은 영화 중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선택했다.
필자가 아는 ‘앙투아네트’는 그저 프랑스 왕실에 시집온 철없는 왕비가 극심한 사치를 부리다 혁명군에 의해 기요틴으로 사형당했다는 정도였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못 알려진 내용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대 배경으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왕녀인 어린 앙투아네트는 동맹을 위해 정략결혼으로 어린 나이에 프랑스에 홀로 오게 된다.
할아버지 루이 14세는 나라를 잘 통치하고 있었지만, 왕실이나 귀족의 머리 모양과 의상에서 화려한 허영의 극치를 보여 주었는데 여인 의상 한 벌이면 서 너 명의 옷을 만들고도 남았을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앙투아네트 역의 배우가 인상이 좋고 연기를 잘해서인지 그렇게 사치만 일삼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역사가에 의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두 가지 설이 있다.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어머니의 엄명을 받고 정략으로 어린 나이에 혼자 프랑스에 도착한 그녀가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지 상상이 된다.
더구나 적국으로부터 온 왕녀라는 이유로 귀족들의 차가운 눈초리는 그녀를 더욱 움츠리게 했을 것이다.
예쁘고 고운 심성의 그녀는 잘 어울려보려고 노력하지만, 권위적인 프랑스 귀족들과 친해지기는 어려운 듯 보였다.
남편이 된 루이 16세는 앙투아네트에게 그저 예의를 지키며 대했고 사랑하지 않는 듯 거들떠보지 않았다.
사실 7년 동안 그들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허영에 눈을 돌린 것이라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르게 내려오고 있다.
역사는 성공한 사람의 편에서 이루어진다고 앙투아네트가 사형을 당했기 때문에 그녀의 좋은 점이 가려지고 루머가 이어졌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로 프랑스 국민이 배가 고파 살 수 없다 했을 때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그렇게 말했다면 철없고 나쁜 사람이지만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다는 문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그녀가 사치를 즐긴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다른 나라로 시집왔는데 남편은 모른 척하니 주변 귀족들과 어울려 사치 향락에 빠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너무나 가난하고 배고픔에 허덕이는데 왕실은 큰돈을 물 쓰듯 하며 향락에 빠져있으니 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스캔들로 유명한 목걸이 사건이 있다.
앙투아네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추기경이 그녀에게 선물하려고 엄청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샀다. 그러나 약간의 돈만 지급했을 뿐 외상으로 사서 궁궐에 자주 드나들던 백작 부인에게 왕비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중간에 이 백작 부인이 다른 나라로 빼돌려 팔아먹었다고 한다.
보석상은 추기경이 나머지 돈을 주지 않자 왕비에게 직접 청구서를 보냈는데 목걸이를 본 적도 없던 왕비가 백작 부인을 잡아들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간수를 매수해 백작 부인이 도망을 가버리자 국민들은 앙투아네트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은 평소 심한 사치를 한다고 알고 있어 그녀를 믿지 않은 것이니 앙투아네트는 참으로 억울한 왕비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적자가 된 것은 왕실의 사치 허영뿐 아니라 영국과 전쟁하고 있는 미국을 돕느라 국고를 탕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도 그 당시 프랑스에서 만들어 준 것이다.
결국, 혁명군에 의해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감옥에서 처형 소식을 듣고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백발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슬픈 마음이 든다.
영화는 감옥에 들어가 괴로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정책적으로 여리고 순수했던 한 여인이 루머와 스캔들에 휩싸여 쓸쓸하고 무서운 종말을 맞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모습이 진짜 앙투아네트였을까? 정치의 희생양이 된 거라면 너무 불쌍하고 30대 후반의 나이로 단두대에서 죽은 그녀가 매우 안타깝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엄마와의 토론은 계속 이어졌는데 화려한 궁중 모습과 귀족 여인들의 패션을 감상해 본 것도 영화 보는 재미와 즐거움 중 하나였다.
케이블 TV에는 수많은 영화가 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어쩌다 보석 같은 좋은 영화도 발견할 수 있으니 한가한 시간엔 영화 한 편 찾아보는 호사를 누려 봐도 좋을 듯하다.
미국의 예금 금리가 올랐고 우리나라도 예금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은 최저 금리다. 금리를 낮추어 경기 부양을 시도했지만 경제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망해야 할 기업은 망해야 한다. 낮은 생산성과 적자 기업을 낮은 금리로 겨우 기업 목숨을 부지하다가 결국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더 크게 망했다. 낮은 금리로 빚을 내어 부동산을 사고 빚을 내어 창업에 뛰어들다보니 가계부채는 1.000조를 훌쩍 넘어섰다. 앞으로 금리가 인상되면 줄도산이 우려되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
금리 인하의 역습으로 근로 소득 없이 알량한 퇴직금에서 나오는 이자 소득만으로 생활하는 노인의 삶은 더욱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1억 원의 즉시연금 이자가 반 토막이 되어 30만 원 대에서 17만 원 대로 주저앉았다. 은행 이자를 받아도 세금 15.4%를 제하면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친다. 일본에서는 마이너스 금리라고 겁을 주고 우리나라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으라고 한다. 이제는 저축의 시대가 아니고 투자의 시대라고 한다. 투자의 위험은 스스로 감수해야 하고 그 위험을 직시하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경제 공부를 하라고 하지만 노인들에게 이제 와서 경제 공부를 하라는 것은 소수의 노인에게만 해당될 뿐 대부분 노인으로서는 감당 못할 소리다. 부동산이나 증권투자도 위험부담이 높아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노인은 금리가 낮아지면 소비를 증가하기 보다는 낮은 이자만큼 허리띠를 더 졸라 맬 뿐이다. 낮은 금리가 소비를 진작시킬 것이라는 이론은 노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금리가 낮다보니 불빛을 찾는 불나방 모양 한 푼이라도 이자를 더 준다는 곳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보니 자식들이나 친척들이 사업을 해서 더 많은 이자를 주겠다고 빌려가서는 뒤는 내 몰라라하는 똥배짱에 속절없이 당한다. 어찌 동방예의지국에 영수증 없이 돈을 빌려준 자식과 송사를 벌린단 말인가. 부동산 임대 수입이 최고라며 상가 구입을 꼬드겨 막상구입하면 임차인을 못 찾아 빈 상가에 관리비만 물어주고 있다. 기획부동산은 노인의 돈을 요리하기 쉬운 먹잇감으로 보고 밤낮으로 하이에나처럼 덤빈다. 새로운 유망산업이라고 투자만 하면 놀고 이익금을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피 같은 돈을 날리고 눈물짓는 노인들의 사연을 들을 때 마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가난한 노인들이 가난하게 된 원인 중에 자기 돈을 허망하게 날린 사람이 많다. 은행금리가 낮아지면 노인의 돈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하다 허망하게 날린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의 노인 빈곤 국가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 율은 45.1%로 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보다 3배 이상 높고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라고 한다. 자식들을 위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해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열심히 살아온 노인세대가 왜 가난에 시달리는지 근원을 파악해야 함에도 그 근원은 외면하고 현 실태만 파악해서 극빈자로 취급해주고 일정액을 지원해 주는 것으로 정부는 할일 다 했다고 손을 놓는다.노인들이 갖고 있는 돈을 보호해 주지 않으면 이들은 금방 극빈자 대열에 합류한다. 극빈자가 된 후 쌀을 주네 지원금을 주네 하지 말고 극빈자로 떨어지는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인이 갖고 있는 돈을 보호해 주기위해서도 65세 이상 노인의 비과세 예금 한도를 대폭 높여야 한다.
가난하게 사는 노인을 전수 조사하여 왜 가난의 나락에 떨어졌는가를 파악하고 이를 교훈삼아 후배세대들이 똑 같은 수순을 밟지 않도록 계도해야 한다.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이고 노인이 가난하게 된 원인을 알아야 탁상 대책이 아닌 실질적 구체적 대책이 마련된다. 젊어서 열심히 일한 노인이 왜 지하실 단칸방에서 가난과 질병과 고독과 싸워야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빈곤층의 노인을 지원하는 제도는 있지만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전의 예방책이 없음을 개탄한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엄마 배속에서 탯줄을 달고 나온다. 탯줄은 아기의 생명줄이자 엄마와 이어지는 인연 줄이다. 부모와의 인연 줄에 따라 인생의 운명이 달라진다. 귀하디귀한 왕족으로 태어나면 호의호식하지만 무지렁이 줄을 잡고 태어나면 살아가기에 고달프다. 돈은 살아가는 밥줄인데 재벌그룹의 자식들은 몇 천억의 유산을 받지만 서민의 자식은 적자라는 붉은 줄 위에서 춤을 춰야 산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핀다거나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돈줄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외국에 원정출산도 미리 좋은 줄을 잡아주려는 힘 있는 부모의 빽 줄이다. 유아원 때부터 줄을 잘 서야 출세한다. 좋은 유아원이나 좋은 어린이집에 배정받아 다니려면 미리 그 동네에 가서 살아야한다. 집값이 비싼 이유 중 하나가 학군이고 학군은 다른 말로 줄 좋은 동네다. 아무리 좋은 줄 동네에 살아도 줄 보는 눈이 없으면 헛방이다. 좋은 줄을 잘 골라서 남들보다 빨리 앞줄에 서야 한다. 세상을 편하게 살려면 줄을 보는 눈이 있어야하고 실천하는 힘줄이 있어야 한다.
노숙자 공짜 밥줄도 늦게 가면 밥줄이 끊어지고 헛고생 줄서기다. 일찍부터 줄을 서야 한다. 동네 경노잔치에 12시부터 밥 주는데 10시부터 줄을 서야 얻어먹는다. 노래도 불러주고 밥값 내는 사람이 일장 연설을 한다. 누가 와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는 노인들에게 알량한 밥 준다고 지겹도록 줄을 세운다. 밥 준 사람은 함께 찍은 사진과 실적이 필요할 뿐이어서 사진을 찍은 후는 바쁘다는 핑계로 줄행랑을 친다. 생명줄이 곧 밥줄이니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면 밥줄이 끊어진다.
좋은 줄을 잡았다고 성공을 자신해서도 안 된다. 성공 길을 가려면 줄의 본류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가끔씩 줄을 흔들어본다. 떨어지면 그냥 나락이다. 남들이 다 서있는 줄이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민주주의 줄이고 정답일 확률은 높다. 그러나 그 줄은 그냥 백성 줄이다. 줄은 굵다고 튼튼하고 좋은 것이 아니다. 짚으로 엮은 새끼줄은 굵기가 반에 반도 못한 나일론 줄한테 번번이 나동그라진다. 군에서도 길게 이어진 줄은 제대할 때까지 걸어 다녀야 하는 보병 줄이다. 알맞게 싹둑 잘라지는 줄이 특과병 줄이다. 특과병 줄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신으로부터 선택된 일부만 어찌 알고 용케 서있는 줄이다.
세상을 하직할 때는 세상의 인연 줄을 놓으면 끝이다. 천하 없는 장사도 돈 많은 재벌도 무소불위의 권력자도 때가 되면 세상의 인연 줄을 놓아야한다. 링거 줄 주렁주렁 매달고 아등바등 버티어 봤자 조물주 눈에는 찰나를 더 버티려는 거미줄에 매달린 아침이슬에 불과하다. 생명줄을 놓아야 할 때는 웃으며 놓아야 웰다잉이다.
줄은 씨줄과 날줄이 있다. 이 두 줄이 합쳐져서 인생이라는 천이된다. 씨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줄이지만 날줄은 스스로 노력해서 지혜와 덕을 쌓고 주위 좋은 사람들과 연대해서 만드는 후천적 줄이다. 씨줄이 좀 연약해도 날줄이 튼튼하면 좋은 천을 만들 수 있다. 좋은 천은 추위를 막는 옷감도 되고 이불도 된다. 행복을 감싸는 보자기도 만들 수 있다.
남의 생각에 움직이는 끄나풀 줄이 되지 말고 소나 개의 목줄처럼 강한 자에 끌려 다니지도 말자. 병들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목숨 줄이 되고 좋은 소식 전해주는 전화 줄이 되고 어둠을 밝혀주는 전깃줄로 살자. 매일 아침이면 줄을 서서 전철을 타고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지만 줄은 살아 있는 자에게만 있는 특권이다. 줄이 곧 인생이다.
글 박원식 소설가
항구에 닻을 내린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러자고 배를 만든 게 아니다. 항해에 나선 배라야 배답다. 거친 파랑을 헤치고, 멀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배는 인생을 닮았다. 모험이나 도발이 없는 삶이란 수족관처럼 진부하지 않던가.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살았던 이기순(52)씨가 남편 이병철(57)씨의 손을 잡아끌어 시골로 들어간 건 모험적 항진이었다. 하지만 애석하다. 이기순씨의 시골살이는 암초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대해를 표류 중이다. 취재 섭외를 위해 통화를 할 때, 이기순씨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겸사(謙辭)였다.
“남들은 그럴싸하게 바라보지만, 사실 속사정은 그게 아니에요. 아마도 저희 부부의 현실은 실패 사례로 더 어울릴 거예요. 그냥 차나 한 잔 드시고 간다는 기분으로 오세요.”
이기순씨는 오랫동안 암벽 등반을 즐겼다. 휴일이면 쪼르르 산으로 달려가 잔나비처럼 바위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추락사고를 당해 온몸에 부상을 입었다.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진통제를 달고 산다. 이 불행한 사고는 용케도 시골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며 건강을 돋우자는 착상을 했던 거다. 그즈음 중소기업 상무이사였던 남편 이기철씨는 명퇴의 강박감에 시달리며 전전긍긍 활로를 모색하던 중이었다. 이 역시 도시 탈출의 배경이 되었다. 말하자면 부부가 의기투합했던 것. 까짓것, 우리 시골로 가서 새로 시작합시다! 이기순씨가 앞장서 선창을 했다. 그래그래, 그러세! 남편이 후렴을 읊으며 선선히 뒤를 받쳤다. 그게 4년 전의 일이었다지.
시골 살림을 결단하며 꿈꾸고 그린 게 많았을 게다. 우선은 볕이 잘 드는 남향 터를 잡아야 할 테고, 폼 나게 수려한 전원주택을 지어야 하고, 철따라 꽃이 피어 요요하게 속삭일 정원을 꾸며야 하며, 달빛과 별빛이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밤에 부부 둘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만한 정자를 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생활이라는 게 흔히 돈이라는 요물의 농간에 휘둘리게 마련인데, 이들 부부도 자금이 넉넉하질 않아 두통을 앓았다. 그래서 소득을 흐벅지게 올릴 수 있는 방책을 찾았다. 그 결과로 시작한 게 오이농사였다. 이들이 사는 천안시 병천면은 오이의 최대 주산지. 재배 기술도, 유통 루트도 탄탄한 지역이다. 부부는 2000평에 달하는 농지에 오이를 재배하는 것으로 시골생활의 시동을 걸었다. 농토는 임대를 했다. 그 위에 설치된 시설 하우스는 매입을 했다. 거창한 시발이었다. ‘가브리엘 농장’이라는 팻말도 새겨 걸었다. 하지만 업무에 바쁜 행운의 여신은 그들에게 사소한 윙크조차 보내주질 않았다. 첫해는 물론 둘째 해, 셋째 해까지 내리 실패를 보고 말았다. 이기순씨의 얘기를 들어볼까.
“농사라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어요. 안간힘을 다해 노력해도 매년 결과는 참담했어요. 기술력 부족으로 생산량이 저조해 낭패를 보기도 했고, 풍작일 경우에도 가격폭락으로 적자가 크게 났어요. 칼자루를 쥔 중도매인들의 횡포에 당하기도 했고요. 갖고 있던 돈을 모두 까먹었고, 빚이 늘어 파산지경에 몰렸어요. 그래도 쌀독에 쌀은 떨어지진 않았어요(웃음). 예산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친정엄마가 쌀을 보내주셔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게 원예농업이죠. 미리 사전 교육을 받진 않았나요? 남의 농장에서 일단 실력을 길렀다거나….”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뛰어들다시피 했어요. 일단 일을 저지르자, 뭐 잘되겠지, 하는 기분으로.”
“저런! 환상적인 귀농이었던 거예요?”
“다분히 그런 면이 있었죠. 귀촌이나 귀농을 하려는 분들에게 요즘 제가 강조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낭만적인 생각으로 시골에 들어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산이 좋다고 무작정 산골로 가고, 바다가 좋다고 해변으로 귀촌하는 식의 출발은 극히 위험해서죠. 사실 저희 부부가 단순한 환상으로 귀농을 할 만큼의 바보들은 아니에요. 충분치는 않았을망정 나름대로 사전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런데도 그게 농촌 현실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변수와 악재들이 들이닥치더라고요.”
“차라리 초기에 발을 빼는 게 현명했을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었기에 포기 같은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어요. 내년엔 좋아지겠지, 차차 타산을 맞출 수 있겠지, 그런 희망으로 더욱 공을 들이고 땀을 쏟았어요. 농사에 어느 정도 물정이 트이면서 우환 중에도 희망이 솟구치곤 했죠. 내 손길을 통해 건강하게 잘 커가는 작물들을 바라보는 경이로움도 견딜 수 있는 힘이었어요. 폭염에 시들시들 말라가는 오이를 볼 때는, 마치 어린 자식이 병상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것 같아 너무도 괴로웠지만, 그런 경험조차 농사에 애착을 갖게 하는 긍정적 체험이었어요. 정작 후회는 다른 문제에서 왔어요. 마을 원주민들과 어울리는 일이 참 힘들었거든요. 이른바 텃세라는 것 말예요. 이곳은 남편의 고향이지만 한동안 이방인 취급을 받았어요.”
마을 원주민들의 텃세를 견뎌내는 일이 농사보다 더 어려워
전통적으로 유목사회와 달리 농경사회 구성원들은 내 땅, 내 영토에 대한 질긴 집착을 가지고 살아왔다. 공동체 의식도 발달했다. 외지인들이 끼어드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여기에서 ‘텃세’ 문제가 야기되지만, 토박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전원생활자들의 무신경하고 비사교적인 위세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무례를 범하지만 않으면 텃세에 걸려들 일이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기순씨 내외가 겪은 텃세는 워낙 자심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시골 인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항간의 논평을 몸으로 직접 체험해 확인한 모양이다. 삶이라는 생존의 들판치고 어딘들 전장(戰場) 아닌 곳이 있을까. 코피 터지는 경쟁의 난리 블루스, 그게 세태이지 않던가. 이기순씨는 시골의 텃세라는 걸, 허공에 미만한 공기처럼, 세상살이에 당연히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기본 조건으로 치부하기로 한 것 같다.
“차라리 마을을 떠날까, 그런 궁리를 할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에 부대꼈지만 그냥 감수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원주민들과 저희의 정서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로 살갑게 어울려 지내는 게 힘들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흙이나 작물들은 텃세를 부리는 법이 없죠?”
“저나 남편이나 농사라는 건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흙이 지닌 생명력과 식물들의 정직한 성장에 곧바로 매료됐어요. 아아, 흙 냄새, 작물들의 숨결은 또 얼마나 좋은지…. 해마다 농사에 연패를 해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땅을 상대로 한 농사라는 게 신성한 직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이상해요. 당신은 지난해 천안시가 선정한 우수농민이지만 사실은 곤경에 처했다는 거!”
“농촌의 현실을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흔해요. 수억대 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이 매스컴에 등장하지만, 매출과 실소득은 크게 다르죠. 저희도 연간 매출이 1억쯤 되지만 갖가지 투자비용을 제하면 오히려 적자가 나더라고요. 적자가 해마다 거듭되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고, 이런 식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예요.”
“어이하나?”
“혹독한 공부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좌절도 많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어느덧 단련이 되고 나름의 내공도 생긴 거 같아요. 이젠 비로소 길이 보여요. 저비용 고효율 농업으로 가야 하는데, 대안이 보이고 있어요. 일단은 작물을 다양화할 예정이에요.”
기죽을 게 뭐람, 괜찮아, 괜찮다구!
이기순씨 내외는 오이 하우스 안에서 산다. 7평짜리 컨테이너에서 살림을 한다. 이 옹색한 정경을 목도한 친정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이 쯧쯧 혀를 차지만, 그녀는 이마저도 오히려 복되지 아니한가, 하는 투로 담담하다. 애당초 근사한 집을 짓기 위해 대지 150평을 장만해두었으나 빚잔치 통에 순간에 날아갔다. 그 바람에 컨테이너에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이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을 냉큼 받아들이기를 이미 오래전에 했다. 싱긋 웃는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시라.
“‘난 말이야, 2000평 정원에 7평짜리 원룸에 살아. 이 정도면 나쁜 건 아니지 않니?’ 제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그래요. 남들에겐 철딱서니 없는 허세처럼 들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컨테이너에 산다고 해서 기죽을 게 뭐람. 괜찮아, 괜찮다구! 그렇게 제가 저에게 들려주며 용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요. 지금의 형편에서 방바닥에 등 붙이고 부부가 함께 따뜻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도 큰 다행 아니겠어요?”
“왜 아니겠어요? 참새는 옷 한 벌 입은 게 없이 나뭇가지 한 줌을 움켜쥐고 엄동의 밤을 무사히 지내죠. 최소한의 의식주만으로도 기꺼이 견딘다는 건 일종의 절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에 살 땐 제가 돈을 펑펑 썼어요. 해외여행이며 쇼핑이며,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해봤어요. 그래서 지금의 어려운 형편에 정신까지 약해지진 않아요. 남편 역시 강인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끄떡없어요. 돈 때문에 허둥지둥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안쓰럽지만, 우리 부지런히 뛰어 멋지게 농장을 살려내자고 등 두들겨 격려하죠. 남편은 원래 영어와 일본어를 잘하는데요, 요즘도 잠들기 전에 꼭 외국어 공부를 해요. 나중에 외국인들이 우리 농장에 견학 올 것을 대비해서죠.”
“산에서 당한 사고로 온몸을 다쳤다 했죠? 지금은 매우 건강해보여요. 그건 귀농 덕분일까요?”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땐 걸음새조차 나사 풀린 바퀴처럼 휘청거렸어요. 그러다가 농사일에 매달리는 사이 건강이 크게 좋아졌죠. 농사를 노동이 아니라 운동으로 여긴 덕분이겠죠. 정신은 더욱 건강하게 깨어난 것 같아요. 경제 면에서는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감성이나 정서는 더 밝고 풍부하게 성숙하는 기분? 그런 걸 느껴요. 하우스 안의 작물들, 바깥으로 펼쳐지는 자연 풍경이 자주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요. 저의 어릴 적 꿈은 문학이었답니다. 요즘도 좋은 글을 찾아 읽거나, 뭔가 느낌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장을 꺼내 글을 써요. 주로 시골생활에 관한 단상이지만, 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죠. 이 역시 귀농이 준 행복이라 여겨요. 이쯤이면 괜찮게 사는 거 아녜요(웃음)?”
“사람이 농사를 통해 작물을 기르지만, 동시에 농사가 사람을 키우기도 하는 거예요?”
“당연하지 않겠어요? 흔히들 돈에 사로잡혀 살지만, 남에게 돈 빌리지 않을 정도만 되면 잘사는 것일 테고, 더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만족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텐데, 저는 농사에 만족해요. 흙에 뜨거운 애정을 느껴요. 비록 아직은 고전하고 있지만,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크는 나무가 있겠어요?”
가시밭길을 거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꽃길이 있나? 파도를 타넘지 않고서 바다를 건널 수 있던가? 이기순이라는 이름의 선박은 암초를 만나 표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잠정적인 조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손성동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ssdks@naver.com
전 세계적으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기준은 65세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1988년 도입 당시에는 60세였다가 1998년 연금개혁조치로 2013년부터 5년마다 1세씩 높아져 2033년에는 65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1952년생까지는 현행대로 60세에 받을 수 있지만 1953~1956년생은 61세부터, 1957~1960년생은 62세부터, 1961~1964년생은 63세부터, 1965~1968년생은 64세부터, 1969년생 이후는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서구의 복지 선진국들도 65세에 지급하던 국민연금을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을 고려해 2~3년 뒤로 늦추고 있는 추세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왜 65세로 정해진 걸까? 세계 최초로 국민연금이 도입된 나라는 독일이다. 1889년 비스마르크가 처음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70세였다. 당시 독일의 평균수명이 46세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주 운 좋은 사람만 혜택을 받는 불합리한 제도였다. 평균수명이 80세인 오늘날에 비스마르크 시대의 연금 개시 연령을 적용하면 104세가 되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보편적 복지제도로서의 가치가 매우 약한 제도였던 셈이다. 사회주의자 탄압이라는 채찍에 대한 당근책치고는 너무나 말라비틀어진 당근이었던 것이다. 이런 비판이 지속적으로 일자 1916년, 수급 연령을 65세로 낮추었고 이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는 기준 역시 이 제도에서 유래됐다.
여기까지는 팩트, 즉 논픽션이다. 독일에서 처음 국민연금 수급 연령을 70세로 정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상상력, 즉 픽션이 필요하다. 비스마르크는 처음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정할 때 왜 70세로 했을까? 잘 알려진 대로 유럽은 크리스천 대륙이다. 이는 곧 성경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성경 시편 90장 10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일생이 70이고, 혹시 힘이 남아 더 살아봤자 80인데, 그저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며 그것도 금세 지나가니 우리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성경에 ‘우리의 일생이 70이고 좀 더 살아봤자 80’이라고 했으니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70세로 정한 타당성은 이미 확보한 셈이 된다. 그러나 시편의 내용처럼 수급 개시 연령을 70세로 정하면 너무 인색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65세로 낮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천지만물을 창조할 때 하느님이 인간에게 70년의 생명을 부여한 근거는 무엇일까? 이제는 진짜 창작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독일의 유명한 형제 동화작가의 작품인 에는 ‘수명’이라는 동화가 나온다. 이 동화에서 그림 형제는 인간의 수명이 70세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풀어낸다(내용을 약간 변형시켰다).
세상을 창조한 뒤 하느님이 피조물들에게 수명을 정해주기로 하자 나귀가 먼저 왔다. 하느님이 나귀에게 30년을 주겠다고 하니 나귀가 펄쩍 뛰며 말한다. “아이구, 하느님. 너무 길어요. 저의 고달픈 삶을 생각해보세요.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등에다 무거운 짐을 실어 날라야 하고, 또 곡식자루도 방앗간으로 날라야 해요. 그 덕분에 사람들은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지만, 제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정신 차리고 기운을 내라는 욕설과 발길질뿐인걸요. 그러니 제 수명을 줄여주세요.”
하느님은 나귀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18년을 빼주었다. 모든 피조물들에게 30년의 수명을 주기로 한 하느님의 계획이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말았다. 다음엔 개가 찾아왔다. 다소 근엄한 목소리로 하느님이 개에게 물었다. “넌 얼마나 살고 싶으냐? 나귀는 30년이 길다고 했다만, 너에게는 적당한 것 같은데.” “하느님은 그러길 바라세요? 제가 그렇게 많이 달려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제 다리는 그만한 거리를 견뎌낼 힘이 없어요. 게다가 짖지도 못하고 물어뜯을 이빨도 없어진 다음에는 이 구석 저 구석을 옮겨 다니며 불평 속에서 살아야 해요.” 개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하느님이 당초 생각한 개의 수명에서 12년을 빼주었다.
개가 나가자 원숭이가 들어왔다. 피조물들의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한 하느님이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원숭이에게 말했다. “너는 분명히 30년을 살고 싶어 할 거야, 안 그래? 너는 개나 나귀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즐겁게 사니까.” 사태의 준엄함을 파악한 원숭이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휴 하느님, 그렇게 보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재수좋은 날조차 늘 빈 밥그릇 바닥을 핥는걸요. 사람들은 내게 늘 재미있는 장난과 우스운 표정을 기대해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게 사과 한 쪼가리 던져줄 뿐인데, 그나마도 시어서 먹을 수 없는 것뿐이죠. 내 기쁜 얼굴 뒤에는 슬픔이 감춰져 있다고요. 난 그런 일들을 30년이나 견뎌내긴 싫어요.”
원숭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하느님이 자비를 베풀어 원숭이의 수명에서 10년을 빼주었다. 드디어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즐거워 보였고, 건강했고, 활기에 차 있었다.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하며 하느님이 말했다. “네 수명은 30년이야, 충분하겠지?” 당황한 인간이 약간 볼멘소리로 하느님과 협상을 했다. “너무 짧아요! 생각을 해보세요. 집을 지어서 불을 지피고, 제가 심은 나무가 자라 꽃이 되고 열매가 맺어 이제 막 인생을 즐기려 할 때, 그때 죽어야 하다니요! 오, 하느님, 제게 좀 더 시간을 주세요.” 나귀, 개, 원숭이와는 반대의 제안에 다소 당황한 하느님이 그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귀가 반납했던 수명인 18년을 사람에게 주었다. “그래도 충분치 않아요.” 할 수 없이 개의 수명이었던 12년도 주었다. “아직도 너무 적어요.” 끝도 없는 인간의 욕심에 뿔이 난 하느님이 단호하게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원숭이의 10년까지 더 주지. 그 이상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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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인간의 수명은 70년이 되었다. 하지만 70년 속에는 인간의 원래 수명 30년에다 나귀와 개, 원숭이가 반납한 수명 40년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숙명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림 형제는 인간의 숙명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한다.
“처음 30년은 사람 자신의 수명으로, 참으로 빨리 지나가버립니다. 이 기간에는 건강하고 즐거우며,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며 사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고 오는 18년은 나귀의 수명이었던 기간으로, 하나의 짐이 들어지면 그다음 짐이 얹히는 식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곡식을 실어 날라야 하지만 그의 충성스런 봉사의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발길질뿐입니다. 그러고 나서 오는 개의 수명이었던 12년은 물어뜯을 이빨도 없이 구석에 앉아 불평만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원숭이의 10년이 그의 삶을 마무리 짓지요. 그때 사람의 머리는 아주 물렁물렁해져서 바보가 됩니다. 하는 짓마다 어리석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지요.” -
그림 형제의 해석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 70년은 하느님에게 떼를 써가며 얻어낸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그림 형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의 수명은 끝없이 연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이미 150세 인간을 상상하고 있으며 평균수명 120세의 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낙관론도 있다. 인간수명의 한계는 115세이며 이미 그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70세로 하느냐 65세로 하느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진시황제가 하늘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차라리 2000년 뒤에 평범한 노동자로 태어날걸” 하면서 통곡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적으로 늘어난 수명을 질적 수준이 받쳐주지 못하면 허망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으로부터 애걸복걸하며 늘린 수명,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늘어난 수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면 그동안의 노고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 수명 연장에 대한 욕심의 반만이라도 연금에 쏟아 부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림 형제가 비유적으로 표현한 인생의 막장만 길어질 뿐이다.
늘어난 수명을 제대로 누리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을 대폭 올려주면 된다. 그러나 이는 너무 근시안적인 방법이다. 낮은 출산율과 점점 길어지는 수명을 생각할 때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살다 갈 세상이 아니지 않는가. 길게 봐야 한다. 나이 들면 자연스레 노안이 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왜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은 잘 안 보일까? 이제는 눈앞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멀리 보며 살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당장 내 연금통장에 들어올 돈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큰 대가가 따른다. 바로 사회적 기회비용이다. 누군가는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주로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는 젊은이들이다. 일인당 연금액이 증가하고, 연금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면 젊은이들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젊은이들은 아이를 덜 낳고 소비를 줄이고, 그 결과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힘을 얻게 된다.
다행히도 요즘 노후를 자식에게 맡기겠다는 노인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가정의 문을 넘어 광장으로 나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내 자식에서 누군가의 자식으로 옮겨가는 순간 굳은 의지에 균열이 생긴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약점이다. 이 틈바구니를 정치권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렇게 하여 노후의 주 서식지가 사유지에서 공유지로 바뀌면 ‘공유지의 비극’에 직면해 젊은이들의 고충은 더욱 커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사람들은 여러 사람과 공유하는 재산은 잘 간수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른 사람과 공유한 물건보다 자기 물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공유지의 비극’을 세대 전쟁으로 풀어쓴 이야기를 살펴보자. 알버트 브룩스의 에 나오는 이야기다.
2020년대 암이 완전 정복되고 각종 요법의 발달로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노인들이 더욱 젊어 보이는 세상이 도래한다. 노인복지에 엄청난 재정이 투입되고, 젊은 세대의 부담은 늘어만 간다. 젊은 세대의 불만은 차곡차곡 쌓여가지만, 막강한 노인협회의 로비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를 대변하는 맥스라는 청년은 비밀결사체를 만들어 노인들이 타고 있는 유람선을 납치한다. 노인 대상 테러와 살인사건도 증가한다. 설상가상으로 LA에 대지진이 발생해 미국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적자재정으로 연명해오던 미국은 도시 재건을 위해 중국에 손을 벌린다. 결국 중국인이 연방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렇게 하여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은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비록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금을 누리는 자와 부담하는 자가 극명하게 대비되면 곤란하다. 그 순간 세대 갈등은 증폭되고 급기야 세대 전쟁으로 비화될 소지도 있다. 인간 욕망의 산물인 무병장수는 누구든 누려야 한다. 그리고 장수에 따른 연금 재정 문제도 골고루 나눠 가져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공유지의 비극’에 직면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다. 노후는 스스로 책임지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노력으로 견고한 연금 피라미드를 쌓아야 한다. 이른바 ‘자기노력 연금’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
>>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동네 서점이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스마트폰 가게나 음식점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서점이 문 닫는 원인은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책이 잘 안 팔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스마트폰 보급률은 1위이지만 독서율은 꼴찌라고 합니다. 다른 자료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 년에 아홉 권 정도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많이 읽는 것 같은데 꼴찌라니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하지만 일 년에 개인적으로 책을 사는 사람의 평균 구입 권수는 한 권이 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니 서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사지는 않지만 보는 사람은 있습니다. 소규모 서점들은 문을 닫고 있지만 대형 서점은 성업 중이고 각 공공기관에서 관리하는 도서관도 놀랄 만큼 늘었습니다. 여러 단체에서도 방문객이 기다리는 시간에 책을 보도록 하거나 대여도 해주는 소규모 서고를 많이 비치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사서 여러 사람이 돌려가면서 보는 시스템이 도서관이나 책 대여점입니다. 따라서 책은 덜 팔려도 독서율은 높아져야 정상인데 독서율도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하니 실망입니다.
동네 도서관에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은 독자 수요가 많아 서너 권씩 비치해두고 있지만 이름 없는 무명작가의 책은 어지간해서는 도서관에 발을 붙이지도 못합니다. 어렵게 책을 출판해도 사주는 사람이 드문 현실에 3류(?) 작가들은 힘이 빠집니다. 그리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출간한 저자들은 가능하면 책을 사서 보라고 권합니다. 책을 사서 읽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고 버리고 또 다른 책을 사라고 합니다.
책을 사보기로 했습니다. 매월 두 세권씩의 책을 산다고 해서 우리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지는 않습니다. 필자가 책을 사주는 작은 노력으로 작가들이 힘을 얻어 계속 정진하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책을 살 때 작은 갈등이 있습니다. 서점에서는 정가대로 다 줘야 하지만 인터넷으로 구입해서 집까지 배달되는 시스템을 이용하면 적어도 정가 대비 10퍼센트 정도는 저렴합니다. 원하는 책들이 동네 서점에 다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구입하면 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필자 편의에 의해 인터넷 서점만 고집하면 결국 동네 서점은 망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까지 하면 필자도 자신이 없어지고 우울해집니다.
이익이 많이 나지 않아도 종업원의 고용 창출을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착한 기업이 있습니다. 경영수지 적자로 회사 문을 닫으려 해도 종업원 사정이 눈에 밟혀 문을 닫지 못하는 기업과 가게도 있다고 합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익 창출이라고 배웠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각박한 세상이 됩니다. 유명 작가의 글만 아니라 완성도는 다소 떨어져도 혼신의 노력으로 저술한 책을 누군가는 사주고 읽어줘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돈을 쓰려고 해도 없어서 못 쓴다고 합니다. 경제력이 있는 나이든 시니어들은 돈을 써보지 못해서 못 쓴다고 합니다. 고기도 먹던 사람이 먹는다고 평생을 절약으로 살아 온 사람은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합니다. 요즘 세상에 소비는 미덕입니다. 시니어도 돈이 있으면 소비를 해야 합니다. 글을 쓴다면 남이 쓴 책도 한 권씩 사주고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거지에게도 적선하면서 나만 아니라 우리라는 세상 전체를 보는 눈이 내 자신부터 생겨나길 희망합니다.
IT시대 아지트는 하드웨어 성격보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적인 측면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지트란 원래 비합법적인 운동의 근거지로 사용되는 집합장소를 뜻하나 여기서는 영어로 숨겨진 나만의 장소 ( Hiding place, safe house)의 의미로 해석해주면 좋겠다. 내가 편안하게 일을 하면서 글도 쓰고 책이나 신문을 읽을 수도 있는 아주 편안한 곳이다.
기업체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시니어로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나머지 삶을 보내는 아주 좋은 아지트가 나에게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평소 강조하는 도덕적인 삶을 사는데 아주 좋은 장소로 하루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으며 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나는 그곳에서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의 아지트는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CM국제계약연구소 블로그가 인기를 점차 누리면서 나는 이제 블로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가끔 블로그를 광고목적으로 임대하던지 아니면 사겠다는 제의도 받지만 나의 독자들이 편안하게 글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일체 사양하고 있다. 나의 아지트를 도덕적으로 순수하게 운용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송파의 사무실은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성격의 아지트이고 나의 블로그는 수많은 소프트웨어 중에 하나의 아지트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정동의 송파 사무실은 CM 국제계약연구소라는 공식적인 이름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나는 해외로 사업을 진출하고자 하는 모든 기업인들의 귀와 입이 되는 컨설팅을 하고 있다. 해외사업경험이 부족하거나 영어로 소통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제반 업무에 대한 컨설팅을 회사 실정에 맞게 나의 40여 년간의 직장생활 중에 터득한 경험과 지식을 근간으로 아주 저렴한 경비로 해주는 것이다.
아주 어려운 회사나 기업인을 위해서는 무료봉사도 한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서로 하는 계약업무나 합리적인 협상 등의 업무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국제적인 업무에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컨설턴트의 도움이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 일반화가 되어 있지 않은 이 분야는 국가적으로 우리나라를 중진국으로 진입시켜 경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국가에서도 최근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대학원에서 국제계약학과를 신설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이 분야를 법무 분야처럼 일반화시켰다면 우리나라 해양플랜트 사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사전 예방을 하였거나 적어도 반감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문제도 생기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항상 “계약이 반이다.”라는 말을 고객들에게 자주 사용한다. 그 만큼 제반 사업의 시작은 계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사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추진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수 조원 대의 적자를 보고 있는 해양플랜트 및 건설 분야의 사건도 잘못된 계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꿈, 모든 해외사업자들이 경제의 흐름을 읽고 합리적인 계약을 해서 적자를 보지 않고 항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의 저변을 확대하는 사업을 위해
나는 블로그 이름도 CM국제계약연구소라고 칭하게 되었다.
그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 나는 아직도 청춘이고 그 꿈을 향해 오늘도
Active Senior로서 도전하고 있다.
변종경(卞鍾敬·68) 국일제지(주) 사장에겐 ‘촉’이 있다. 신규 사업을 하면 길이 열린다.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기업도 그가 손을 대면 황금알을 낳는다. 사람들은 그의 촉을 부러워하고 타고난 기획전략가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의 촉이 이번엔 제조업에 뻗쳤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특수지 제지업체 국일제지(주)를 드라이빙하는 중책을 맡았다. ‘아직 제지업계 초보’라고 자신을 겸손하게 소개하는 그는 삼성맨으로서, 그리고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국일제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안주하는 삶은 재미없다”고 말하는 그의 인생과 재미있는 일, 그리고 추구하고 있는 미래에 대해 들어본다.
변종경 사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서울대와 UCLA 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물산 경영기획부장, 삼성그룹 비서실 임원, 사회공헌위원회 부사장 등 삼성맨 시절을 거쳐 삼부토건그룹 계열 (주)신라밀레니엄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그는 올해 초 국일제지(주) 사장으로 선임됐다.
‘고희록’ 써 경험과 지혜 전수하고파
사장으로 취임할 때 마침 그의 나이는 60대 후반에 들어섰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은퇴해도 여러 번 은퇴했을 나이, 그는 김형석 교수의 말을 빌려 이제야 자신이 전성기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96세의 나이에도 강의 등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65~75세의 나이가 쓴맛 단맛 다 보고 인생의 소중함을 음미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지금 김형석 교수가 말씀한 인생 황금기에 3모작을 하고 있어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종전에는 매주 수요일 등산, 주 1회 골프 등으로 건강관리를 했으나 요즘에는 매일 아침 20~30분 시트업 등 스트레칭을 하고 주말에 등산이나 골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건강관리는 킬리만자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그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여행 마니아는 못 되고요, 등산이나 트레킹은 자주 했지요. 여행은 새로운 풍광과 문물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좋고요. 등산이나 트레킹의 경우 목표에 도전하고 정상에 이르렀을 때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요. 그리고 등정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시간을 갖는 것도 보람이지요. 지난번 킬리만자로 등정 시에는 그동안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70세가 되면 그동안의 삶을 담아 을 써보기로 한 것이 수확이지요.”
살면서 지켜야 하는 3가지
은 제목 그대로 70세에 이른 자신을 돌아보며 쓰고자 하는 책이다. 베스트셀러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후손에게 자신이 평생 배운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70 가까이 살면서 꼭 지켜야 할 3가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책임지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성을 가지고 신뢰를 지키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 ‘인생의 평판을 쌓는 데는 30년이 걸리지만 평판을 잃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할 수 있겠지요.
둘째는 경제적으로 생활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돈이 수단이 될지언정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을 건사할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푸는 것도 마음만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베풀어야 효과가 높습니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셋째는 주변과 사회성을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저희 세대는 대체로 앞만 보고 달려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게 후회됩니다. 가족에게도 미안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랬고요. 요즈음은 가족, 친구들과 어울리려 노력해 많이 좋아졌지요. 평소부터 가족, 친구들에게 잘해야 노년에도 관계가 좋지 않을까요.”
기업은 복합적 가치를 지닌 조직
그는 최근 새롭게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각종 회의를 주재할 때 오프닝 멘트를 통해 자신이 경험했던 노하우 등을 간단한 사례 등과 연결시켜 전수해 주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물론 사전 준비 등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임직원이 경청하고 활용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에 나오는 ‘가르치면서 절반은 본인이 배운다’는 글귀대로 저도 준비하며 또한 배웁니다. 최근의 예는 ‘역발상 아이디어’를 강조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 축구대회 당시 한국과 프랑스가 1:1 무승부일 때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선수가 후반 46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한 뒤 홧김에 라커룸 사물함을 발로 차 찌그러졌는데 라이프씨티 축구경기장 측에서 배상 청구을 검토하다 오히려 찌그러진 사물함에 금테를 두르고 11유로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을 유치해 성황이라고 얘기해준 게 생각나네요.”
그가 현역 경영자임을 다시금 느끼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는 경영에 있어 기업 자체적으로 보면 수익 가치가 중요하겠지만 국가 및 사회와의 관계적 측면에서 볼 때 고용 및 인적 자본 형성, 기술 축적, 양질의 제품 및 서비스 제공, 사회공헌 등 사회적 가치 기여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경영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기업이야말로 복합적 가치를 지닌 조직이라는 생각이 이유였다.
“경영자의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요? 글쎄요. 고위 관료나 정치인의 길을 갔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반이었는데 대학은 문과를 택했지요. 당시 주변에서 저에 대해 나름 논리적이고 언변이 좋다고 부추겨 대입 때는 문과를 지원했습니다. 사실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사주에도 정치를 했으면 ‘한 인물’ 했을 거라고 하네요. 그러나 요즈음 세태를 보면 정치 지망 안 하기를 잘한 것 같고요.”
회사의 미래를 위한 길 닦는다
그는 자신을 ‘제지업계 초딩’이라고 겸손하게 낮춰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삼성그룹의 구조조정본부의 임원이었다. 기업과 경영의 엔진 구조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경험과 지식이 그의 커리어에서부터 보여지고 있었다.
1994년 삼성물산에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로 옮겨 삼성자동차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삼성이 상공부로부터 자동차 기술도입 신고서를 1차 반려받은 후 비서실에 차출되어 전략지원팀을 만들었고 6개월 뒤 삼성자동차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다. 10여년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서 열정과 집념을 갖고 그룹과 회장을 보좌하던 때를 회상하며 새로운 도전에 최선을 다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간 업무 파악을 통해 회사의 비전을 ‘첨단 정밀 종이로 100년 가는 강한 기업’으로 정하고 선순환적 구조조정, 즉 사업구조를 수익력 있는 기존 품목 이외 부가가치 높은 지종 확충, 영업 인력 확대 등 미래지향적 인력 운용, 쥐어짜기식 경비 절감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과감히 투자하고, 절약할 수 있는 경영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간 본사는 물론 2개 공장 200여 명 전 직원에게 7~8회 경영방침을 설명하고 회식을 통해 공감대를 갖는 기회를 가져 직원들이 ‘한번 해보자’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저 자신도 보람을 느끼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회사의 미래 토대 마련을 위한 청사진인 중기 계획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년에 가장 중요한 건 품위를 잃지 않는 것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쉽지 않은 미션을 수행 중인 그는 은퇴를 잊고 경영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가 나이 먹어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품위를 유지하려면 조급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자세도 중요하고 독서 등을 통해 인격 도야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갖고 베푸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 들어 품위가 있어야 멋도 있고 존경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위해 준비 중인 것들도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취업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트레킹 등 여행을 많이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그리스, 이집트, 터키, 러시아 등을 비롯해 중남미 지역을 여행하지 못해 시간이 나면 몇 년 내에 꼭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2인승 컨버터블 스포츠카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