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전 그들은 알았을까? 호롱불 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공부했던 행동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말이다. 교육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아이들을 매일 밤 가르치고 보듬었더니 사회의 귀한 일꾼으로 자라났다. 20대 초반 야학 선생님의 노력은 교육을 넘어선 사랑, 그 자체였다. 이와 더불어 스승을 향한 야학생들의 고마움으로 기억되는 서둔야학. 서둔야학 홈커밍데이 현장에 찾아갔다. 짝사랑하던 선생님을 다시 만나니 새록새록 옛 추억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서둔야학, 서울대 농대생의 열정으로 기억돼 ‘야학’이 뭔지 모르는 젊
댄스 스텝에서 남자 스텝은 거의 대부분 전진하는 스텝이다. 그러나 가끔 뒤로 가는 스텝이 있다. Back Check, Back Lock, Back Whisk, Back Corte 등이다. 가장 어렵다. 앞만 보고 가다가 뒤로 간다는 것은 루틴이 아주 훤해서 여유가 있지 않으면 자칫 까먹고 실수하기 좋다. 뒤로 가는 스텝이 모양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당구에서도 대부분 공이 앞으로 진행하는 형태로 친다. 끌어치기가 유일하게 백 스핀으로 공의 아래쪽을 치면 수구가 앞 목적구에 맞고 나서 공이 뒤로 굴러 오는 기술이다. 4구에서는
사상 처음 수능시험이 연기될 정도로 큰 지진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럴 때마다 국민에게 얼마나 빠르게 위기상황을 알렸는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첨단 문명기기를 손에 들고 살면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서울 남산, 안산, 봉화산 3곳에 옛적 재난통신수단 봉수대가 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쉬운 나지막한 곳이다. 봉수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옛날의 통신수단이었다.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국경의 긴급한 소식을 중앙이나 국경의 기지에 전하던 군사통신 방법이었다. 우리나라
진도 남단의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 팽목항이 있다. 선착장엔 주변의 섬으로 입출항하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위로 갈매기들이 날고 있는 평화로운 항구마을이다. 지난 3년 동안 이 마을엔 슬픔과 아픔이 가득 담긴 채 아직도 무거운 공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입구의 어판장은 찾는 사람 없이 꽃게 손질하고 있는 몇몇 상인들만 눈에 들어온다. 아픈 현실 부정하고 싶지만 그 앞엔 여전히 무수히 많은 노란 리본이 겨울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향해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울부짖던 부모형제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숙연해
‘7080세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를 말한다. 필자는 71학번이므로 ‘7080 세대’의 선두에 서 있다. 1970년대에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그 사이에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과 결혼까지 했다. 아이 낳고 열심히 가족을 먹여 살리다가 퇴직하고 이제 환갑을 넘어 칠십고개를 향해 가고 있다. ‘7080 세대’에서 빠르면 60대 중반이고 마지막 세대는 50대 초반이다. 필자가 졸업하던 무렵에는 취업이 잘되던 시기다. 기업들도 한창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라서 1980년대 말에는 오히려 구인난에 허덕였
얼마 전 필자는 창신·숭인 지구 도시재생을 알아보기 위해 이 동네를 찾았다. 창신동은 필자에게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네다. 선머슴처럼 천방지축이던 중학생 시절과 꿈 많던 여고 시절을 창신동에 있는 학교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돈암동에서 보문동 신설동을 지나 숭인동까지 버스를 타고 통학했는데 학교 앞에서 내리면 잘 다려 허리 잘록하게 맵시 있게 입었던 흰색 교복이 마구 구겨져서 한동안 돈암동 집에서 창신동 언덕을 걸어 통학하기도 했다. 이 동네는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골목마다 아직 친근함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다니
지금 생각하면 발칙하기도 했고 직장 동료들이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1978년 한창 젊은 나이에 미국 은행 (Bank of America)에 재직하던 시절이다. 아내와 필자는 사내 연애를 했다. 둘이 연애 중임을 알면 사람들이 놀려대서 피곤할 뿐 아니라 결혼하고 나면 둘 중 하나는 직장을 옮겨야 했으므로 비밀 연애를 했다. 그런데 갈 곳이 한정된 서울 시내에서 데이트를 하다 보면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직접 데이트 장면을 들킨 적은 없으나 연애기간이 길어지자 여기저기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편했다.
11월 15일 수요일 오전 일산 킨텍스 전시장에서 대한민국 안전산업 박람회 개막식이 있었다. 이번 행사에선 안전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안전의식 향상을 목적으로 김부겸 장관이 나서서 12개 해외 정부 대표단과 32개 바이어, 그리고 참가 기업이 만나는 '비즈니스 교류회'를 개최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국내 안전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안전 분야 기술 제품의 판매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안전산업 박람회에 다녀온 날 경북 포항에서는 진도 5.4의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일본이 큰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도 우리
지난 달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재미있고 유쾌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주제는 성 평등이었다. 깊이 들어가면 그리 유쾌할 수만은 없는 남녀의 차별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래도 시종일관 분위기가 밝았던 건 사회를 본 최광기 여사 덕인 것 같다. 본인의 이름으로도 큰 웃음을 주었고 태어났을 당시 자매들의 출생신고가 아무렇게나 되었는데 딱 하나 아들을 낳자 그날로 출생신고를 하셨던 아버지를 예로 들며 태어나자마자 차별을 받았다고 고백해 청중을 웃겼다. 딸만 셋이었는데도 지극한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 덕에 필자는 남녀차별을 전혀 모르고 자랐다
1970년 11월, 동네 친구 4명이 교복을 입고 동네 사진관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찍은 사진이다. 일반 카메라로는 미흡했는지 정식으로 사진관에 가서 찍었다. 네 명 모두 이 사진에 큰 의미를 뒀던 것 같다. 사진은 평생 친한 친구가 될 것임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47년 만에 네 명의 친구가 다시 모여 사진을 찍었다. 한 명은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데 잠시 한국에 나왔다. 한 명은 은퇴 후 멀리 용문에 살고 있는데 이날 미국 친구를 만나겠다고 서울로 왔다. 또 한 명
10월 마지막 화요일은 금융의 날이다. 원래는 1964년부터 저축의 날로 불리며 그 해의 저축왕도 선정하고 알뜰살뜰 저축을 많이 한 사람의 미담을 치하하는 행사가 있었다. 오랜 시간 내려오던 저축의 날은 경제성장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의미가 약해지고 다양한 금융상품과 금융의 역할 다변화, 세계적인 초저금리시대에서 저축의 개념을 확장해 2016년부터는 명칭을 금융의 날로 변경 개편하게 되었다. '심부름했다고 엄마가 주신 돈 무얼 할까요? 과자 살까요? 사탕 살까요? 아니 아니 아니죠, 저금해야죠' 어릴 때부터 불렀던 동요인데 아직도
세계 최고수준의 대중교통은 전철무임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전철무임교통카드’는 시행초기에 일종의 전철무임 신분증 역할을 하였다. 대중교통 환승할인제를 시행하면서 이 기능을 부여하여야 했다. 지금은 환승할인이 되지 않아 말썽꾸러기가 된지 이미 오래다. 더구나 서울에서는 특정은행에서 독점 발행한 카드에만 ‘전철무임’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은행들이 수많은데 특정은행에서 ‘어르신교통카드’ 발급을 독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전철무임을 일부에서는 퍼주기 복지라면서 이의 폐지를 주장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exhibition 다빈치 얼라이브: 천재의 공간 일정 2018년 3월 4일까지 장소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예술, 과학, 음악,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사적 업적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색과 빛, 음향으로 재조명한다. 전시는 ‘르네상스, 다빈치의 세계’, ‘살아있는 다빈치를 만나다’, ‘신비한 미소, 모나리자의 비밀이 열린다’ 등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제1섹션에서는 실물 크기로 재현한 다빈치의 발명품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 베네치아에
한 시대를 풍미하고 아스라이 손 흔들며 사라졌던 대형 가수가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바로 김연자(金蓮子·58)다. 오랜 시간 일본에서 ‘엔카(えんか)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녀. 한국으로 돌아와 조용히 활동하는가 싶더니 8년 만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트로트도 엔카도 아닌 강렬한 사운드의 댄스음악 이른바 EDM으로 말이다.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단숨에 사로잡은 김연자와의 만남. 수은등 불빛 아래를 지나 찬란한 인생을 다시금 맞이한 그녀는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2017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신조어 5개를 꼽아봤다. 01. 넵병: 메신저로 오는 어떠한 제안이나 요청에 대해 ‘네’라고 답변해야만 하는 직장인들이 겪는 병. 이를 ‘넵병’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유행했다. ‘넵병’은 넵, 네, 넵!, 네에, 네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