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라북도에 닥친 경제적 위기는 위중하고 국가적인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등의 무거운 사건들은 전라북도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조업의 위기 외에도 농업 기반 지역이라는 특성상 농업의 사이즈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다른 측면에서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김장근 NH농협은행 전북 본부장이 처한 상황은 이처럼 녹록지 않다. 그가 바라보는 농촌에서의 은행의 역할, 그리고 농업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NH농협은행은 기본적으로는 농협은행 주식회사
죽음은 생의 마지막이지만, 죽음과 관련해 늘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 사내가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유품정리인으로 활동했고, 최초의 유품정리 회사를 창업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유품정리라는 생소한 분야의 정보 중 상당수는 그의 입과 글을 통해 나왔다. 김석중(金石中·49) 키퍼스코리아 대표의 이야기다. 그가 창업 8년 만에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라는 책을 펴냈다.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유품정리 개념이 도입된 이후 우리 사회 문화는 많이 달라졌는지 김석중 대표에게 물었다. “멍밖에 안 들었어요.” 기대 밖의 대답. 유품정리라는
여러 산업 현장에서 카운슬러로 활약하고 있는 신완정(申婉丁·58) 청아신상교육연구소 소장은 원래 직업 전선과는 거리가 먼 주부였다. 남편이 공군 장교로 있었기 때문에 전업주부를 고집했다 해도 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찍 결혼했죠. 공군사관학교 생도 2학년인 남편을 만나 임관식 때 약혼했으니까요. 그렇게 평범한 주부생활을 하다 다시 공부를 결심한 것은 30대 후반이 되어서였어요. 부대 내 종교활동에서 병사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상담을 공부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신학대학에
작년 초, 2기 동년기자 발단식에 범상치 않은 여인이 나타났다. 망사와 레이스로 된 코사지를 머리에 올려 쓰고, 화려하게 빛나는 공단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박애란 동년기자였다. 상냥한 어투로 자신을 핑크레이디라고 소개하던 그녀는 어느새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대표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중. 최근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영상 제작에도 참여하며 그 누구보다 활발히 동년기자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그녀다. 잘 영근 숙녀의 삶 속에는 어떤 우여곡절이 숨어 있을까? 동년기자 리포터 가능할까요? 박애란 동년기자에게 자주 가
“여러분의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응원합니다” 2018 지방선거에서 초박빙의 승부를 보인 지역, 바로 강원도 평창군이다. 한왕기 평창군수는 선거에서 현직 군수였던 심재국 후보를 단 24표 차로 이기고 가까스로 승리를 거머쥐면서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평창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낸 평창 토박이인 한왕기 군수는 요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한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평창의 미래를 미리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왕기 평창군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붉고 통통한 볼에 눈이 맑은 여자 같은 술이여!” 한산 소곡주에 취한 그가 감흥에 못 이겨 한밤중 끼적였다는 한마디다. 주선(酒仙) 이백이 그 모습을 봤다면 그냥 가지 못하고 배틀 한번 붙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술 향을 맡았다가 낯선 길로 들어섰다는 허시명(56) 씨. 우리 술 찾아 20여 년간 유랑하듯 전국을 떠돌더니 어느 날 술 얘기 좀 해볼 때가 됐다며 막걸리학교를 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술 인문학 바람의 신호탄이었다. 술 기행 떠났다가 아예 술 평론가가 되어버렸다는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술과 함께
엄마 친구 집 대문을 열다 7월의 뜨거운 열기조차 서늘하게 느껴질 만큼 사무친 그리움을 안고 고향 순창으로 갔다. 얼마 전 뇌졸중이 재발되어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한적한 골목길을 거닐다 어느 집 앞에 멈춰 섰다. 엄마의 오랜 친구 정봉애(89) 씨가 사는 집 앞. 한참을 서성이다가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네 엄마가 왼손은 마비됐어도 삶의 의지가 강해 몇 년은 더 살 줄 알았더니, 너무 갑자기 가버렸구나.” 등을 토닥이며 아픈 내 마음을 위로해주셨다. 50년 지기인 두 분
이소연을 탈북 방송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여성으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방송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외모와 실력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탈북 여군 군악대 출신이라는 이력도 한몫했다.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에도 북한 이슈가 터질 때 여러 번 출연했기 때문에 필자와도 추억이 많다. 이소연과 방송할 때마다 느끼지만 상당히 차분하고 세련되어서 북한판 ‘차도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탈북한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면 다소 격앙되고 흥분한 목소리를 내곤 한다. 이봉규 개인의 분석이지만,
“박술녀 한복을 입지 않으면 한국에서 가장 핫한 셀럽이 아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수긍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현재 한복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대체하기 어려운 박술녀가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일궈온 박술녀 한복의 성공담은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불굴의 의지로 요약할 수 있다. 비에 젖은 사람은 비가 두렵지 않은 법, 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사람. 한복 너머로 보이는 그녀만의 삶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술녀는 한복이다. 박술녀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리
시대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예술이다. 토양의 기운과 그 땅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의 기질이 조화를 이뤄내는 것은 전통예술이다. 역사의 질곡에 이은 현대사회 전환기에 살았던 한 소년. 그는 음악에 눈뜨면서 막중한 임무처럼 국악계의 문을 두드렸다. 전통음악의 한계를 허물고 한국 예술 전반에 주춧돌을 쌓다 보니 어느덧 30여 년 세월. 우리 음악이고 예술이고 하고 싶은 것이 여전히 많다고 말하는 KBS국악관현악단 이준호(李準鎬·59) 상임지휘자. 대금과 소금 연주자를 거쳐, 작곡가 그리고 대한민국 예술의 중심에서 명성 높은
빅토르 위고 하면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 하면 ‘장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자신의 이름에 나란히 할 만한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소설가에게 크나큰 로망이라 하겠다.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 등 다작의 장편소설을 통해 실존 인물의 삶을 재조명해온 소설가 김탁환(金琸桓·50). 그는 최근 집필한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의 주인공 ‘달문’이야말로 20여 년 소설가로 살며 만난 ‘인생 캐릭터’라 말한다. 김탁환의 인생 캐릭터 달문을 묘사하자면 이러하다. 귀밑까지 찢어진 입, 짓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상징하는 ‘오빠’들이 있다. 그런데 남진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울림은 수많은 ‘오빠’들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일찍이 나훈아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만들며 전설적인 남진 시대를 만든 그가 70이 넘어 펼치는 요즘 공연을 보라. 여전히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 과거와 다를 바 없이 변치 않는 에너지와 무대를 휘어잡는 여유, 특유의 인간적인 매너는 그를 영원한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더없이 남진다운 유쾌함과 호탕함이 어우러진 인터뷰에서 남진을 느껴보자. “50년 넘게 부른 노래는 제 인생
올림픽 폐막식을 앞두고 치러지는 마지막 경기인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질주도 끝이 난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2시간 13분 23초의 기록으로 결승 테이프를 끊은 마라톤 금메달의 주인공, 황영조(黃永祚·49)를 만났다. 가난해서 달려야 했던 소년 42.195km를 2시간 15분 안에 들어와야 한다고 가정하면 이는 100m 달리기를 422번, 그것도 한 번도 쉬지 않고 매번 18초의 기록으로 들어와야 가능한 일이다. 상상만 해도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무등산 자락에 가면 ‘생오지문예창작촌’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문순태(文淳太·80) 씨가 추구하는 문학의 열정을 증명하는 이곳 주변의 도로명은 생오지길. 원래는 만월2구라 불렸다고 한다. 그 이름을 바꾼 것이 바로 문 작가다. 그가 어린 시절 이곳을 생오지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 문학의 집을 만들어 생오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소설 ‘징소리’와 ‘타오르는 강’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깊게 새긴 그가 말하는 고향과 문학, 그리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인생을 들여다봤다. 문순태 작
처음에는 귀촌 목적이 아니었다. 꽃향기, 흙냄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텃밭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부부는 사랑에 빠지듯 덜컥 첫눈에 반해버린 땅과 마주했다. 부부는 신이 나서 매일 밤낮없이 찾아가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땅은 씨앗을 감싸 안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온몸으로 품었다. 텃밭은 꽤 큰 대지가 됐고, 이후 정자와 살 만한 집도 마련됐다. 나무와 숲을 가꾸는 것이 평생 직업이던 조연환 前 산림청장의 귀촌 인생은 그렇게 준비됐다. 13년 차 귀촌인 조연환 전 산림청장 이야기 충남 금산군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