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들의 천국,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

기사입력 2020-05-08 08:00 기사수정 2020-05-08 08:00

치매 환자를 집에서 돌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호자 등 가족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일상을 위협하는 대표적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치매센터가 지난 4월 발표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9’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중 치매 환자 수는 75만488명으로 추정된다. 65세 인구 10명 중 1명은 치매로 고통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대로 가면 2025년에는 100만 명, 2030년에는 137만 명을 넘어선다는 전망도 있다.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치매 환자 간병은 가족이나 천편일률적으로 운영되는 요양원 입소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바꿔나갈 때가 된 것이다. 치매 환자는 반드시 격리된 공간에서 돌봐야 하는 것일까. 평범하게 일상의 삶을 누릴 방법은 없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선진국 사례에서 찾아봤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길 잃어도 안심, 물건 값 계산도 맘대로

치매 환자 관리의 특별한 사례로 꼽히는 네덜란드 ‘호그벡’(Hogeweyk, 호헤베이크) 마을이 화제다. 암스테르담 외곽에 위치한 이 마을은 노멀 라이프를 실현하는 ‘천국의 마을’로 불린다. 2009년 문을 열었고 비영리 단체 ‘비비움’(Vivium)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1만2000㎡의 규모에 영화관, 카페, 마트, 헬스장, 레스토랑, 미용실 등 웬만한 편의시설을 다 갖춘, 치매 환자가 거주하는 곳으로 보기에는 매우 독특한 마을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치매 환자는 마트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살 수도 있다.

물론 이곳에선 물건 값이 따로 없다. 계산을 안 해도, 잘못 계산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후정산 개념으로 정부가 보조해주기 때문이다. 또 산책을 하다가 마을 안에서 길을 잃어도 의료진과 요양관리사 등 치매 환자의 2배에 가까운 인력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가 언제든 도움을 주므로 평소처럼 생활하면 된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을 수도 있고, 작은 텃밭을 가꿀 수도 있고, 다른 입주자와 취미생활을 함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웃과 교류하며 음주를 즐기는 치매 환자도 있다고 한다.

◇정신 흐릿해도 종일 누워 있을 필요 없어

거주 시설은 치매 환자 개인의 삶과 취향을 조사해 일곱 가지 인테리어로 지어 선택하도록 했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공방, 상류문화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클래식 감상실도 있다.

비록 정신이 흐릿하고, 손과 머리를 떨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어도 이 마을에서는 일반 요양원에서 지내는 경우처럼 종일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 치매 등급을 받은 입소자들은 개인 형편에 따라 한 달 최소 500유로(약 64만 원), 많게는 2500유로(약 322만 원)만 정부에 내면 된다.

병세가 깊은 치매 환자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배려하는 호그벡 마을은, 고령화에 직면한 나라들이 마주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게 해준다. 처음에는 다들 이 실험적인 시도가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 미국과 뉴질랜드, 이탈리아 등지에서 제2의 호그벡 마을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용산구에서 옛 양주휴양소 부지에 거주시설, 편의시설, 산책로, 텃밭, 문화시설을 갖춘 치매 환자 마을을 조성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착공해 2022년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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