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대상 블랙박스 사기, 자녀에게 묻고 계약하면 예방 가능

기사입력 2021-07-08 15:36 기사수정 2021-07-08 15:36

▲차량용품점에서 블랙박스를 막무가내로 설치했더라도 회원제 계약은 미뤄두는 것이 좋다.
▲차량용품점에서 블랙박스를 막무가내로 설치했더라도 회원제 계약은 미뤄두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서 어르신들이 150만 원에 달하는 블랙박스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을 가끔씩 봤는데, 그걸 우리 아버지가 당할 줄은 몰랐어요. 무려 400만 원이 넘는 회원제 블랙박스 사기를…ㅠㅠ.”

지난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작성자 아버지는 한 자동차용품점에서 블랙박스 설치비용으로 400만 원 넘는 돈을 결제했다. 최신 제품이라도 보통 30만~4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블랙박스를 10배 비싼 값에 구매한 셈이다.

심지어 설치를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작성자 아버지가 블랙박스를 업데이트하러 차량용품점에 방문했을 때 몰래 설치하고 환불이 안 된다며 결제를 강제한 사건이었다.

계약서는 사진 한 장뿐이다. 작성자는 해당 차량용품점을 고소할 수 있는지 물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블랙박스 '회원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보배드림)
▲노인을 대상으로 한 블랙박스 '회원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보배드림)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아버지나 어르신들이 비슷하게 피해를 본 사례가 많이 등록돼 있다. 몇년 전에 시작된 고가의 블랙박스 사기 피해는 최근까지도 이어지며 계속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도 청주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아버지가 블랙박스 사기를 당했다”며 피해를 호소했다.

이 같은 블랙박스 사기는 ‘회원제’를 사기 수법으로 활용한다. A씨 아버지는 6년간 160만 원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안심회원(VIP멤버십) 약정서’를 작성했다.

A씨 아버지가 구매한 제품은 ‘4채널’을 앞세운 제품이었다. 다양한 각도로 영상을 녹화하는 다채널 블랙박스는 복잡한 배선작업이 필요하다. 전방만 녹화하거나 전후방을 녹화하는 블랙박스에 비해서는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 포털사이트에 ‘4채널 블랙박스’라고 검색해봐도 30만 원대 제품이 수두룩하다.

고가의 제품 구매도 문제지만 6년간 AS 받는 ‘유료회원’으로 가입했기 때문에 취소하려면 고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A씨 아버지가 서명한 계약서에는 한 해 2차례 10만 원짜리 메모리카드를 무상교환해주는 사후 서비스 내용도 담겨 있었다. 메모리카드도 간단한 검색을 통해 1~2만 원대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A씨는 “몇 푼 안 되는 메모리카드를 갈아주는 게 회원 관리냐”며 “물정에 어두운 노인을 상대로 한 명백한 사기”라고 분개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기수법이 가격 비교, 계약 세부내용 확인에 취약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작정 설치하고 난 뒤 취소나 환불을 요청하면 장착비용과 제품손상비, 그리고 위약금을 요구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계약서를 확인하고 결제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오프라인 거래는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확인하거나 판매원의 설명을 들은 뒤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취소하기가 어렵다”며 “제품 가격도 자율이어서 터무니없이 비싸더라도 사기죄 등을 적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를 봤을 때 한국소비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블랙박스 사기 관련 게시글들은 주로 피해자 자녀가 사기임을 알아채고 올린다. 어르신들은 새로운 정보에 약하다. 비교 검색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아예 모르는 어르신들은 의외로 이런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기를 당하는 어르신들은 생각보다 조금 아는 노인들이다. 블랙박스에 여러 가지 기능이 들어가면 비쌀 수 있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노인들이 오히려 사기를 당하기가 더 쉽다.

전문가들은 확실하게 해당 내용을 잘 아는 어르신이 아니라면 무조건 자녀에게 먼저 물으며 여유를 가지고 계약을 진행하라고 조언한다. 당장 결제하지 않더라도 어떤 상품의 가격이 갑자기 올라가거나 물건이 사라지는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차량용품점에서 막무가내로 블랙박스를 설치하더라도 회원제 계약을 요구하면 일단 보류하고 관련 내용을 자녀나 아는 지인에게 묻는 것이 좋다.

노부모를 둔 자녀라면 부모님에게 어떤 물건을 사거나 계약을 할 때 자신과 연락을 하고 진행하도록 당부한다면 블랙박스 사기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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