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정부가 고심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계속 미뤄왔다. 하지만 국제 연료비가 오르면서 인상 압력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물가 상승과 폭염 등 국내 현실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는 일반가구 전기요금이 주택용 필수사용공제 할인액 축소로 2000원 올랐다. 아직 남은 여름을 보내야 하는 시니어들의 전기요금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8일 정부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오는 9월 중 4분기 전기요금 변동안을 작성해 정부에 제출하고 최종 인가를 받아 전기료 인상 여부를 발표한다.
전기요금은 국민 생활과 가장 맞닿은 공공요금인 만큼 인상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전기료는 지난 2013년 11월 이후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다만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연료비 연동제’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을 미룰 명분이 약해졌다.
연료비 연동제란 전기 생산에 쓰이는 석유, 유연탄, 가스 같은 연료 가격과 전기료가 연동되는 제도다. 연료 가격이 내려가면 전기료도 내려가고, 연료 가격이 올라가면 전기료도 올라간다. 국제 연료 가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실적 변동 폭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한국전력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수준으로 작년과 비교해 2배가량 올라, 4분기에는 요금 인상이 있어야 정상으로 영업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게다가 상장사인 한전은 전체 지분 15% 이상을 가진 외국인 주주 눈치도 봐야 한다.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유가가 상승하고 있는 마당에 전기료를 계속 동결하면 수익 창출을 방해한 것으로 비쳐 외국인 주주 등이 배임 혐의로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한전의 ‘연료비조정요금 운영지침’에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뒀다. 이에 따라 연료 가격이 올라도 인상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국민 생활 안정을 명분으로 2⋅3분기 전기료 인상을 미뤘다.
연료비 연동제에 비춰보면 전기 생산에 쓰이는 연료비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필연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4분기 전기요금 인상도 미룰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기료가 오르면 가뜩이나 오르고 있는 소비자 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연료비 연동제로 소비자 물가가 더욱 상승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내년 3월 대선도 전기료 인상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폭염 속 전력 수급 위기 우려가 불거진 상황에서도 일부 대선 주자가 전기요금 감면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만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전기료가 표심에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다만 정부가 2, 3분기에 이어 4분기까지 전기료 인상을 막는다면 연료비 연동제가 유명무실해진다는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3분기 전기요금 발표 당시 “하반기에도 현재와 같이 높은 연료비 수준이 유지되거나 연료비 상승 추세가 계속되면, 4분기에는 연료비 변동분이 조정단가에 반영되도록 검토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앞으로 전기료 인상에 대한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 에너지 전환 정책 기조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 설비 투자비용이 늘어 발전 원가가 비싸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지난 5일 내놓은 세 가지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 1⋅2안은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탄소배출량을 반영했지만 3안은 온실가스 순 배출량 ‘0’을 목표로 한다. 초안일 뿐이지만 실행되면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최근 ‘에너지 믹스 보고서’를 통해 205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80% 수준으로 늘리면 태양광과 풍력 용량을 각각 154GW, 80GW로 늘려야 할 것으로 봤다. 학회는 이렇게 되면 2050년 전기요금은 91~123% 인상될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