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의 거장 하종현 작가의 전시를 찾은 날, 그곳에서 청년 하종현을 마주했다. 유독 젊은 관람객이 많이 눈에 띈다. 올해 구순(九旬)의 작가는 1959년, 스물넷으로 돌아가 이 시대의 청춘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자화상’과 함께 두꺼운 물감과 어두운 색조, 불에 그을린 듯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앵포르멜(비정형)의 영향을 받은 거친 질감과 불규칙한 표면은 전후의 혼란과 불안을 담아낸 듯하다.
1967년, 하종현은 앵포르멜에 머물지 않는다. 제2차 경제개발계획(1967~1971)에 따른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그는 한국 사회의 도시화를 기하학적 추상화로 표현한다. 전통적인 한국적 요소와 채도 높은 색상, 도시화의 역동성을 표현한 패턴은 지금 봐도 세련된 감각을 자랑한다.
특히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한 그는 실험의 폭을 넓혀, 철조망•신문지•용수철•나무 등 일상적인 재료를 활용하며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입체적 실험에서 얻은 효과를 평면으로 옮기고자 고민한 하종현은 1974년 ‘배압법’을 고안해 물질과 신체의 만남을 강조한다. 캔버스 대신 마대를 사용하고 그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으로 제작한 ‘접합’ 연작은 실험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종현 5975’ 전시는 6.25전쟁 후 황폐한 현실과 앵포르멜(1959~1965), 도시화와 기하학적 추상(1967~1970),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새로운 미술운동(1969~1975), 접합-배압법(1974~1975)의 네 시기로 나뉜다. 하종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는 도전을 거듭하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하종현의 깊은 실험 정신과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려는 젊은 시절의 고민과 도전 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주요 작품

‘자화상’
홍익대학교 자화상 그리기 대회에 출품해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는 원래 자화상을 그리지 않기 때문에 유일한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자화상’, 1959, 캔버스에 유채, 63 x 40cm.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도시계획백서 67’
작품 상반부는 평평하지만 하반부는 물결치듯 주름져 있다. 아코디언처럼 접혀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간격이 짧아진다. 빠른 근대화·도시화로 마치 시공간이 압축되어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도시계획백서 67’, 1967, 캔버스에 유채, 112 x 112cm.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대위(對位)’
한쪽에는 신문이 쌓여 있고, 다른 쪽에는 같은 높이로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가 쌓여 있다. 신문이 정보를 담는 매체임에도 당시 검열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대위(對位)’ 설치 전경, 1971(2012년 재제작), 신문, 종이, 91.5 x 111.5 x 80 cm(작가 제공).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작가 소개 하종현1935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195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단색화의 거장으로 국내외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뉴욕현대미술관, 뉴욕 솔로몬R.구겐하임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전시 정보
기간: 2025년 2월 14일(금)~4월 20일(일)
시간: 12:00~19:00(월요일 휴관)
장소: 아트선재센터
관람 요금: 1만 원(25~64세), 7000원(19~24세, 65세 이상, 예술인 패스 소지자)
도슨트 투어 화요일~금요일, 일요일 오후 2시, 4시 / 토요일 오후 2시, 3시, 4시(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