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이 틀린,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기사입력 2017-08-18 16:59 기사수정 2017-08-18 16:59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박미령 동년기자)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박미령 동년기자)
예술과 시장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아니 정확하게 문학작품과 상업영화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원작자인 줄리언 반스가 ‘영화는 소설로부터 멀리 갈수록 좋다’고 말했다는데 이건 원작과 달라진 영화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영화가 책과 다르니 소설을 읽으라는 야유일까? 아무튼, 각기 다른 장르이니 무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런던에서 빈티지 카메라 점포를 운영하며 노년을 지내고 있는 토니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배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내용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첫사랑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의 죽음과 어머니가 토니에게 남긴 유산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유산 담당자를 통해 그 유산이 고교 친구인 아드리안의 일기장인 것을 확인했지만, 베로니카가 주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베로니카를 찾아 나선다.

이 사건을 계기로 토니는 젊은 날의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 영화는 토니의 시각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가면서 기억을 재현한다. 그러니까 베로니카를 찾아가는 과정은 곧 숨겨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우리가 얼마나 기억을 윤색하고 편집하는지,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하고 왜곡되어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토니는 가까운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모든 기억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하여 기억하고 있다. 집요하게 베로니카를 찾아낸 토니는 그녀가 냉소와 함께 건네준 과거 자신이 보냈던 편지를 읽고 충격에 빠진다. 그 편지는 첫사랑이었던 베로니카와 존경하던 친구 아드리안을 동시에 불행에 빠트린 악의에 가득 찬 저주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그의 기억은 혼선을 일으킨다. 베로니카가 자신을 버리고 아드리안과 사랑에 빠진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친구의 배신으로 알고 있다든지, 베로니카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엄마인 사라에 대한 기억의 왜곡 등 모든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베로니카가 손잡고 정신지체아 모임에 데리고 다니는 또 다른 아드리안을 보는 순간 당연히 베로니카의 아들로 생각했던 그가 사실은 동생임을 알았을 때 기억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작가와 감독의 행보는 이즈음에서부터 갈라진다. 작가는 구제불능의 토니를 통해 기억을 윤색하는 인간의 본질과 역사의 허구를 이야기하는데, 영화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야기로 이끌며 멜로드라마로 전환한다. 원작에 없는 딸의 출산과 새 생명의 탄생을 계기로 이루는 가족 간의 화해는 우리 드라마에서도 익히 보아온 너무도 식상한 줄거리가 아닌가.

언뜻언뜻 등장하는 아드리안의 지성과 비범성은 너무 생략되어 지적인 재미를 반감시킨다. “역사는 승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동시에 패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평범한 사람들의 회고이기도 하다.” 같은 대사는 맥락을 잃고 방황한다. 아드리안 2세가 베로니카의 동생이라면 아드리안과 엄마의 관계가 아리송한데 모든 것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버린다. 또 드라마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다만 출연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는 놀라웠다. 늙은 토니 역의 짐 브로드벤트와 늙은 베로니카 역의 샬롯 램프링은 기억에 남는다. 전체를 관통하는 카메라와 사진의 이미지는 기억과 왜곡을 이야기하는 소도구로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우리가 팩트로 믿고 있는 사진도 알고 보면 찍은 이의 시각에 불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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