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노경식(盧炅植·79)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얘기든지 들려주세요.”
극작가란 무언가. 연출가에게는 무한대의 상상력을, 배우에게는 몰입으로 안내하는 지침서를 만들어주어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자가 아닌가? 그래서 달리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인생 후배로서 한평생 외길만을 걸어온 노장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가산 이효석(可山 李孝石)의 단편소설 의 주 무대로 알려진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이효석의 고향이기도 한 봉평은 매년 가을이 찾아오면 메밀꽃이 활짝 펴 수만 평의 메밀밭을 하얗게 물들인다. 한때 수입산 메밀에 밀려 사라질 위기도 있었지만 2002년 ‘이효석 문학관’이 개관되면서 다시 한 번 더 흐드러지게 그 꽃을 피우게 됐다.
소설가 이효석은 1907
‘삼포세대’, ‘비혼’, ‘1인 가구’ 등의 유행어는 전통적 가족 형태의 붕괴가 급속하게 진행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조차 시대와 트렌드에 뒤처진 박제된 구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 등으로 초래된 경제적 어려움이 고조되고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꺼리는 ‘관태기(인간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의 사람들
시대가 변하면서 만화의 모습도 달라졌다. 우둘투둘 잿빛 종이 위에 그려졌던 무채색 주인공들은 매끈한 스마트폰 위에 저마다 형형색색 개성을 입게 됐다. 칸칸이 나뉜 지문을 읽느라 지그재그로 바삐 움직이던 눈동자는 이제 화면 스크롤에 따라 위아래를 훑는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 할 수 없을 만큼 만화는 만화 그 자체로 얻는 재미가 크다. 언제라도 즐거운 만화
만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이지만, 만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나 대우는 지금과 달랐다. 대표적 사례로 1972년에 있었던 정병섭 군 사망사건이 있다. 만화 주인공의 부활을 따라 하다 12세 소년이 숨진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사회가 발칵 뒤집혀 517개 만화대본 업소가 쑥대밭이 됐고 2만 권이 넘는 만화책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렇
“이제 제 라이벌은 나훈아씨예요. 한동안은 라이벌이 없었어요. 없는 동안에 저 혼자서 누나들을 많이 행복하게 해줬는데, 이번에 새 노래가 나온답니다(웃음).” 자신의 팬층이 가수 나훈아와 완벽하게 겹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가수’ 이동준은 원래 운동선수였다. 그것도 1979년부터 태권도 국가대표였으며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계선수권에서
“요즘 어때?”
“설렘을 잃어버렸어.”
결혼을 앞둔 딸의 기분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둘이 마음을 맞춰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정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아 쉽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이직하랴, 방 구하랴, 이사하랴 쉴 사이가 없었으니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결혼하겠다는 말을 처
지난 8월 27일, 야학 시절 필자에게 만년필을 선물로 주셨던 진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서둔야학 단톡방에서 이 소식을 알게 된 필자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지난 2월에도 예술의전당에서 건강한 모습을 뵈었는데!’
아아! 님은 가셨는데
님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크신
5070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헝그리(hungry) 세대다.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보다는 가족, 소비보다는 저축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는 아까운 줄 모르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몇 번이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5070세대다. 필자의 부모님도 평생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는 분들이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꿈에라도 거짓말을 했거든 깨어나서 반성하라’고 말한 도산 안창호는 그 모든 위업을 아우를 수 있기에 진실이 화두인 요즈음,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태산처럼 서 있는 거목이다. 대학 시절 처음 도산의 존재를 접한 후 평생 동안 그를 사숙했다. 일과 삶 모두에 도산의 정신을 새기기 위해 산 김재실(金在實)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