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가 개정된 인구론을 발표한 시기는 1803년경이다. 당시 맬더스는 인간의 정욕은 변함이 없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라 했다. 반면, 식량 생산은 토지의 생산성에 한계가 있어 식량은 산술급수적 증가로 식량이 부족하여 인구감소를 겪게 될 것이라 했다. 식량부족에 의한 억제와 질병. 기근, 전쟁 등이 억제책이 될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 만혼이나 금욕
미국 내에 전쟁이 났다. 현대 미국사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나라에 종교적 갈등까지 겹친 것이다. 그 이후 미국은 서서히 변화를 몰아오고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이다. 아침부터 돌아가는 세탁소 기계 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필자는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한국 라디오 방송을 틀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한때 필자의 별명은 스테미나 여사였다. 다들 춥다고 웅크릴 때 필자는 추위를 안 탔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거나 몇 날 며칠 여행을 가도 피곤하다거나 지칠 줄을 모르니 친구들이 부럽다며 그렇게 불러주었다. 그래서 필자도 필자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으며 살았다. 엄마 아버지와 윗대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혈압이 높았으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항상 들었지만, 집안 내력인
나는 수원이란 작은 동네 서둔동에서 살았다. 초등 1학년부터 결혼할 때 까지 이사 한 번 안 하고 컸다. 서둔동에는 서울 농과대학과 진흥청이라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곳이 자리하고 있는 관계로 오랫동안 수원의 교육열이나 교육관계의 문제라면 모두 통계로는 전국 1위권이었단다. 수원에서 자라는 동안 연습림이라는 하늘이 안
1. 가락지를 낀 용의 꿈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나의 할아버지는 용꿈을 꾸셨단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용의 다리에 가락지가 끼어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걱정스러웠다고 하셨다. 그 덕택에 필자가 양자로 가서 잘 살 수 있었음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손자를 남겨 두는 결심을 하고 나의 사촌 형을 양자로 보내셨다고 한다. 필자는
1915년 5월 27일생이신 아버지와 1922년 11월 1일생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1946년 1월 4일 8시께 1942년 8월 13일 누님에 이어 둘째로 태어났다. 2년 뒤 여동생, 4년 뒤 또 여동생이 태어났고 막내 남동생과는 9살 터울이다
어릴 적 기억은 4세 때 한국은행 돌계단을 오르면서 엄마 손 잡고 명동 가던 것뿐이다. 누나는 공부를 잘해 늘
이른 아침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들었다. 올케였다.
“오빠가 중환자실에 계셔.”
오빠의 의식이 이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싸늘해지는 기분. 입원했다는 말도 없었는데 중환자실이라니?
사흘 전, 감기 기운이 있어 의원에서 약을 지어 먹고,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는데 호흡이 힘들다고 했다. 응급실에 가자고 했더니, 늦었다고 해서 이튿날 종합병원
몸이 아프면 슬프기 짝이 없다. 필자는 감정이 많아 그런지 몸이 약해지면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나 조용히 반성도 한다. 또 초심을 잃고 욕심을 부려, 가장 중요한 건강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돌아온 이유 중에 가장 첫 번째가 건강 문제였다. 갱년기가 오면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건강을 급격히 무너트렸다. 세탁소에서 바느질
누구나 어린 시절 동화책을 많이 읽고 자란다. 미녀와 야수, 신데렐라, 백설 공주, 인어공주, 잠자는 숲 속의 미녀나 전래동화로는 해님 달님, 콩쥐 팥쥐, 장화홍련전, 흥부 놀부 등이 있다. 재미있는 건 서로 다른 나라임에도 동화의 내용이 비슷한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나쁜 새엄마와 의붓언니에게서 구박받으면서도 씩씩하게 견디어 드디어 왕자님과 결혼까지 하게
몇 년 전 피곤함이 연속으로 와서 피곤하면 얼굴까지 아플 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지곤했다. 그럴 때는 전신마사지를 받거나 머리에 침을 맞거나 심하면 링거를 맞거나 했다.
하루는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다가 진맥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으니 내과에 가보라고 하여 기본검사를 하니 이미 당뇨병초기였다. 보약 먹으라고 하지않고 우선 피검사, 소변검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