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6년 인조 14년 청의 수십만 병사가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했지만 정세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자 세자만 보내고 남한산성으로 길을 바꿔 청군에 포위당한 채 47일간을 버텨야했다. 사가들은 이를 병자호란이라 불렀다.
김훈 원작,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은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상헌(김윤식
추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올려다보면서 소원을 빌어보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 방아 찧는 토끼가 보일 듯 말 듯 한 아이보리 빛의 둥근 쟁반 같은 달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풍성한 차례 음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을에 햇곡식이 나고 정성으로 준비한 차례 상에 자주 볼 수 없는 시댁 가족들이 둘러앉아 “형수님, 맛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올해 추석 연휴는 오래전부터 관심의 초점이었다. 몇십 년 만에 나타난 개기일식이라도 되는 양 소문은 무성했고 언론은 떠들썩했다. 온갖 이유를 붙여 중간에 낀 2일을 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압력이 줄을 이었고 결국 그 소망은 실현되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들은 무려 열흘이나 되는 기나긴 추석 명절을 시댁에서 보낼 수는 없다며 결혼을 연기했고, 예측대로 공항은
직장에 다닐 때는 명절 선물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명절 때만 되면 무슨 선물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많았다. 선물은 하는 사람의 정성이라고 하지만 받는 사람이 좋아할 선물을 찾아야 했다. 잘못하면 주고도 욕 얻어먹는데 그런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슨 선물 할까요 라고 물어보기도 어렵지만 가격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받으면서 별로
70년대에 미국에 이민 간 사람은 70년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도시 건물은 쭉쭉 올라가고 전철은 사통발달 하더라도 생활방식은 아직도 한국은 70년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미국 친구를 보면 전형적으로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에 살았었는데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 40여 년 간 살고 있다가 이번에 잠시 서울에 온 것이다.
금년은 유래 없는 10일간의 추석 명절 휴일로 국민들은 긴 휴식의 시간을 맞이하게 됐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젊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뉴스를 내보낸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명절을 중시하는 어른들에게는 괘씸한 젊은이들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 가운데는 명절만 되면 매년 두 번씩 반
가산 이효석(可山 李孝石)의 단편소설 의 주 무대로 알려진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이효석의 고향이기도 한 봉평은 매년 가을이 찾아오면 메밀꽃이 활짝 펴 수만 평의 메밀밭을 하얗게 물들인다. 한때 수입산 메밀에 밀려 사라질 위기도 있었지만 2002년 ‘이효석 문학관’이 개관되면서 다시 한 번 더 흐드러지게 그 꽃을 피우게 됐다.
소설가 이효석은 1907
헐렁한 바지와 감촉 좋은 티셔츠의 편한 차림, 가벼운 가방. 화장기 없이 모자를 눌러쓰고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지하로 내려가며 오늘 할 일에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양평으로 달릴 참이다.
요사이 혼자서 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연습 삼아 다녀보려고 하니 좀 긴장된다.
양평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양평 성당 근처의 식당에 들
“가형, 정말 고마워!”
“원장님, 왜요?”
“지난번 얘기해준 십일조 때문에….”
“그래서 뭐가 달라졌나보죠?”
“음, 덕분에 아이들한테 매달 용돈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 집안 분위기도 달라졌어!”
아침마다 체육관에서 보는 선배는 자식들한테 늘 불만이 있었다. 아들이 셋인데 국립병원장 출신이라 체면도 있고 해서 결혼할 때마다 강남에 집을 사주거나 전셋집을
그 선택은 누가 봐도 모험이었다. 준공무원급으로 평가받는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산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위험한 가장의 선택이었다. 그래도 그는 “조금 더 빨리 들어왔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한다. 경상북도 청송에서 만난 신왕준(申旺俊·53)씨의 이야기다.
신왕준씨가 고향인 청송 ‘부곡마을’로 돌아온 것은 2015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