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 근엄한 얼굴, 크고 작은 석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쩌면 100년도 더 넘는 시간동안 비바람을 맞고 어디엔가 쓰러져 있던 석상. 사람의 욕심에 끌려 바다 건너갔다 돌아온 고단한 돌들의 쉼터가 서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우리옛돌박물관’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은 2000년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열었던 세중옛돌박물관을 서울 성북구
몸이 아프면 슬프기 짝이 없다. 필자는 감정이 많아 그런지 몸이 약해지면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나 조용히 반성도 한다. 또 초심을 잃고 욕심을 부려, 가장 중요한 건강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돌아온 이유 중에 가장 첫 번째가 건강 문제였다. 갱년기가 오면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건강을 급격히 무너트렸다. 세탁소에서 바느질
어렸을 적 한땀 한땀 바느질해 곱디고운 옷을 지어 인형에게 입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종이옷 만들어 입힐 때는 예쁜 무늬를 그려 넣고 색칠해가며 한껏 재주를 피워댔다, 특히 헝겊으로 인형 옷을 지을 때는 어머니가 모아 놓은 일본 잡지들을 꺼내 신식 스타일의 원피스를 만드느라 고심했었다. 길에 다니다가 바람에 굴러다니는 잡지 쪼가리가 패션에 관한 거라면 무조건
매일 매일 옷을 입고 살고 있지만 때마다 적절히 센스있게 옷을 매칭해서 입는다는 것은 어쩌면 의상을 디자인 하는 작업보다 크게 쉽지도 않은 것 같다.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어도 젊었을 때는 무난히 소화할수 있었지만 나이들어 체형도 변하고 이미지도 변하다 보니 좋아하는 옷이라고 무작정 선호할 수는 없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날렵한 투피스를 입고 자신의
미국 세탁소는 오후 7시까지 꼬빡 12시간 영업한다. 전 지역 어느 곳에서나 거의 똑같다. 드디어 이민생활 3년 만에 국제적 해변도시 산타모니카에 작은 클리너(세탁소)를 갖게 되었다. 필자의 가족은 커다란 꿈이라도 잡은 듯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것은 첫 번째 아메리칸드림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100년이 넘은 건물, 세탁소 옆에는 이란 마켓과 침대 파는
필자의 이민 시기는 1980년대 초반. 이민 가기 전에 이민1세가 살아야 할 삶의 행로가 불보 듯했다. 이미 필자보다 먼저 이민한 언니로부터 기능도 익혀오지 말고 노동력이나 강화하여 오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래서 필자가 한 이민 준비는 연고도 없는 시골에서 밭매기 봉사 두어 달 한 것이었다. 흙과 함께 잔뼈가 굵은 농군의 아내와 함께 이른 아침부터 땅거미
필자는 1944년 2월 16일 태어났다. 당시는 각박한 삶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여명이 바로 문밖인 시기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로 일제가 최악의 모습을 보였던 시기라 민간의 식량이 부족할 대로 부족했기 때문에 산모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 애를 낳았는데 자라지 못하여 큰 쥐만 하더라”는 말을 곧잘 했다. 좋은 점이라면 출산
첫번째 오남매가족사진, 1번 임산부필자 3번 40대의필자 4번 빛바랜 가족사진들 6번 두딸과 필자모습
카네이션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이 되면 유년 시절의 필자는 그리움 반 미움 반으로 시들어진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엄마를 그리다 잠이 들곤 했다. 어린 마음속에서 흘린 눈물은 차곡차곡 쌓여 강하고 모진 모성애를 잉태하기 시작했다.
눈물 속의
패션을 완성하는 데 있어 옷과 함께 소품의 역할도 중요하다.
남자와 여자, 개인의 기호에 따라 다르고 다양한 아이템들이 많이 있다. 시니어가 선택해야 할 패션 마무리 4종 세트를 정리해봤다.
더운 여름 스카프는 필수
스카프만큼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소품은 없을 것 같다. 단조로운 옷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하다. 스카프
어느 날, 남대문 시장 노점에서 메뚜기 설 볶아놓은 것을 한 대접 사왔다. 위생처리 겸 프라이팬에 다시 한 번 더 볶은 후 맛있게 집어먹고 있을 때, 퇴근하여 거실로 들어서던 며느리가 흠칫 놀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머니… 어떻게 그것을, 잡수세요?”
“먹어봐라, 고소하다! 아, 이제야 메뚜기 솟증[素症]을 풀었다!”
노릿노릿 잘 볶아진 메뚜기 두세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