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어서 즐거운 일은 호수공원에 나가서 봄볕을 쪼이는 일이다. 일하다가 지겨워서 작업실 커튼을 열고 내다보면 공원에 봄볕이 가득하다. 나는 햇볕이 아까워서 하던 일을 밀쳐놓고 공원에 나가 양지쪽에 앉는다. 노인들이 많이 나와 있다.
햇볕을 쪼일 때 해와 나 사이에는 중간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햇볕은 옷을 뚫고 들어와 내 몸속에 스민다.
자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워낙 적은 편이다. 영화관에선 저녁시간에 딱 한 회만 상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영화관은 거의 텅 비었다. 그 때문에 조용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폭격 소리에 초반엔 몇 번씩 놀라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그동안 우리네 삶이 비교적 평온하기만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며 여러 가지 후회를 한다. “나중에 만나자”라며 미루다가 끝내 만나지 못한 일, 부모님을 찾아봬야지 하고 마음만 먹던 일,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야지 하고 마음만 먹은 일 등등.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중에’란 말은 어쩜 실현될 수 없는 시간 약속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평생 덧난 고통의 기억을 꺼내는 일은 아픔과 함께 크나큰 두려움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뻔뻔한 일본의 만행을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김복동 할머니.
"우리가 죽으면 진실이 잊힐까 두려웠다. 나이 골 백 살을 먹어도 잊히지 않아, 이건 알려야겠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 거야." 심장에 박힌 기억은 지워지지도 않고 지울 수도
나른한 퇴근길,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에서 그를 보고는 자동으로 인사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참 오랜 친구였다. 뽀뽀뽀 체조로 아침잠을 깨면 항상 볼 수 있던 뽀병이었고, 주말 밤에는 두루마기나 정장을 입고 앵커석에 앉아 “지구를 떠나거라~” 혹은 “나가 놀아라~” 같은 유행어를 쉴 새 없이 제조하던 웃긴 아저씨였다. 문득 생각하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양승국 변호사가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옥봉! 450여 년 전의 선조를 이렇게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냥 부르고 싶네요. 시대를 격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박희채 박사가 일본에 사는 한국인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김 형,
입추와 말복이 지났으니 여름이 계절의 방을 빼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 유독 더웠던 작년 여름
2013년 이근후(李根厚·85) 이화여대 의과대 명예교수가 펴낸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4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당시 책의 서두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했던 이 교수. 그러나 최근 저서 ‘어차피 살 거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에서는 시력이
스케줄이 빡빡하다고 했다. 아침 시간에는 요양원 봉사에 오후에는 영화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바쁜 일정 쪼개서 만난 이 사람. 발그레한 볼에서 빛이 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웃으며 나왔을 것 같은 표정. 미련 없이 용서하고 비우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그 누구에게도 남부끄럽지 않은 환한 미소의 주인공이 됐다.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곳이 꿈의 무대. 시니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남편의 호통에 새댁은 눈물이 맺혔다. 결혼한 뒤 신랑을 돕겠다며 세탁소로 나섰는데, 그녀의 실수에 용서가 없었다. 서운함이 밀려왔다. 결혼생활 26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그 시절의 고생이 자긍심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하면서 “이젠 내가 남편에게 잔소리할 정도가 됐다”며 웃는다. 최근 양장기능사, 양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